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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해상관광과 섬 트레킹을 한 번에 즐기는 알짜 여행
해상관광과 섬 트레킹을 한 번에 즐기는 알짜 여행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18.09.19 1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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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대교 유람선 타고 두둥실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지에서 출발해 충렬사까지 둘러보는 충무공투어호.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남해] 섬진강을 따라 달리던 19번 국도는 하동의 남쪽 끝 노량에서 바다와 부닥친다. 지난 45년간 바다와 바다를 잇던 붉은 다리 아래로 즐비한 식당가와 파도에 가볍게 몸을 흔드는 배들이 보인다. 다리를 건너 19번 국도를 버리고 선착장으로 내려서면 주황빛으로 색칠한 배 한 척이 대기 중이다. 남해대교 유람선이다.

남해를 한 바퀴 이어 걷는 남해바래길 제13구간 ‘이순신 호국길’의 표지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하동의 노량에서 남해의 노량으로 바다를 달려 넘어온다. 이 길은 남해를 한 바퀴 이어 걷는 남해바래길 제13구간 ‘이순신 호국길’의 일부이기도 하다.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지(이락사)에서 출발해 이순신영상관~차면항~월곡항~노량을 지나 충렬사(사적 제233호)까지 가 닿는 7.2km의 길. 바래길을 알리는 이정표 너머로 ‘충무공투어’호가 정박해있다. 시간에 맞춰 승선한 이들을 태우고 서서히, 배는 항구를 떠나 노량의 바다로 질주한다.

이순신장군의 마지막 바다, 노량
1973년 완공된 남해대교 아래를 지나면 길이 990m에 주탑 높이 148.5m의 노량대교(제2 남해대교)가 나온다. 9월 12일에 문을 연 따끈따끈 새 다리다. 공사 9년 만에 개통된 노량대교는 이순신 장군의 해전 승리를 기념해 학익진 모양으로 설계됐다.

기울어진 두 개의 탑이 하동과 남해의 땅끝에 견고하게 버티어 케이블을 지탱하는 세계 최초의 다리다. 어마어마한 교각이 머리 위를 스친다. 바다는 잠시 검은 그림자에 갇혔다. 배가 다리를 벗어나면 오래된 것과 더 크고 높아진 새것의 조화가 미술작품처럼 어우러진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 승리를 기념해 학익진 모양으로 설계된 노량대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노량대교는 하동과 남해의 땅끝에 견고하게 버티어 케이블을 지탱하고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바다, 관음포.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고개를 남으로 돌리면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바다, 420년 전 7년 전쟁의 종지부를 찍었던 그 바다 관음포다.

“바람결에 화약 연기 냄새가 끼쳐왔다. 이길 수 없는 졸음 속에서, 어린 면의 젖냄새와 내 젊은 날 함경도 백두산 밑의 새벽 안개 냄새와 죽은 여진의 몸 냄새가 떠올랐다. 멀리서 임금의 해소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냄새들은 화약 연기에 비벼지면서 멀어져갔다. 함대가 관음포 내항으로 들어선 모양이었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 아프게 표현한 바다다. 숲 사이로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맨 처음 오른 곳, 이락사가 보인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1832년(순조 32) 장군의 8대손 이항권이 왕명에 의해 단을 모아 제사하고 비와 비각을 세워 이락사라 이름 지었다. ‘대성운해(大星殞海)’ 즉, ‘큰 별이 바다에 떨어지다’라는 편액이 붙은 묘비각 안에는 홍문관 대제학 홍석주가 비문을 짓고, 이조참의를 지낸 이익회가 쓴 유허비가 있다. 이락사는 사적 제232호로 지정된 곳이다.

바다는 이제 말이 없다. 노에 짓이겨 부서진 조선 수군과 왜군의 시신, 푸른 바다를 붉은 피로 물들이고, 총성과 비명과 북소리로 뒤섞였던 바다, 활활 타고, 무너지고, 가라앉은 울분의 역사는 이제 기록으로 남았다. 도열한 섬들 사이로 바다는 잠잠하다.

대도에 상륙하다
배는 바다 위를 스르르 미끄러져 나아간다. SF영화에서 보았음직한 하동화력발전소와 삼삼오오 모인 낚싯배를 향해 손을 흔든다. 북쪽으로 길게 드리운 능선은 지리산이다. 남한 내륙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1915m)는 구름 사이로 얼굴을 가렸다. 바닷바람과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머릿결을 날린다. 바다에서도 산에서도 제법 가을 냄새가 난다.

대도로 향하는 충무공투어호가 바다 위를 스르르 미끄러져 나아간다. 사진/황소영 객원기자.
충무공투어호의 객실 내부. 사진/황소영 객원기자
띠섬 또는 큰 섬으로도 불리는 대도 바다의 모습. 사진/황소영 객원기자

하동 금오산(849m)이 가깝게 보일 때쯤 대도에 닿는다. 멀리서부터 가슴을 뛰게 하던 섬이었다. 띠섬 또는 큰 섬으로도 불리는 대도는 하동군 유일의 유인섬으로 300여 년 전 남해에 살고 있던 부부가 조업 하다 풍랑에 떠밀려와 정착한 곳이다.

대도에 도착한 충무공투어호에서 하선하는 승객들. 사진/황소영 객원기자
빨간 모자를 쓴 풍자 건물 옆으로 보이는 해안산책로. 사진/황소영 객원기자

섬에 발을 디디면 파란 가을 햇살 아래로 짭조름하면서 달큼한 바다 냄새가 난다. 빨간 모자를 쓴 풍자 건물(카페) 옆으로 해안산책로가 놓였다. 50분쯤 배를 타고 온 터라 가볍게 걷기로 한다. 양옆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머릿결이 날린다. 바람을 피해 등을 돌리면 금오산과 풍차 건물, 우리가 타고 온 선착장의 배가 제법 이국적 풍경을 자아낸다. 와아, 다들 감탄을 한다.

디귿(ㄷ) 모양으로 연결된 해안산책로 나무데크는 리조트 건물을 좌측에 끼고 바다와 좀 더 가깝게 붙는다. 파도가 금방이라도 발끝에 닿을 것 같다. 바다로 내려서는 계단은 이미 찰랑찰랑 물에 잠겼다. 만조인 모양이다. 데크 왼쪽 벽면은 퇴적암이다.

디귿(ㄷ) 모양으로 연결된 해안산책로 나무데크 사진/황소영 객원기자
바다 위로 올라서 다리를 건너면 글램핑장이 있다. 사진/황소영 객원기자

신기한 암석더미여서 금방이라도 짠, 화석이 튀어나올 기세다. 실제 대도 인근의 하동 가덕리에선 4년 전 낚시 중이던 주민이 육식공룡 화석을 발견한 사례도 있다. 방향을 꺾어 다시 바다 위로 올라서 다리를 건너면 글램핑장이다. 여름에는 워터파크도 운영한다. 쉬엄쉬엄 1시간쯤 돌아본 후 승선한다. 짧고 무던해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는 산책코스다.

남해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승객의 모습. 사진/황소영 객원기자

배는 왔던 물길을 되짚어 남해로 돌아간다. 대도를 경유한 B코스는 남해와 하동의 바다를, 섬에 닿지 않는 A코스는 광양만을 포함해 영호남의 바다를 모두 경유한다. 바다는 2시간 전 출발할 때와 다르지 않다. 같은 하늘, 같은 볕, 같은 산을 보며, 같은 바다를 오가지만 대도의 이국적 풍경은 꿈처럼 설레고, 그늘에 잠긴 이락사 앞에선 가슴이 먹먹하다.

김훈의 소설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또……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내가 먼저……, 관음포의 노을이…… 적들 쪽으로…….”

이순신이 마지막 숨을 거둔 관음포와 노량은 남해의 바다다. 그 옛날, 왜선과 뒤얽혀 싸웠던 귀한 이들의 붉은 피와 거친 숨결이 바람에 자꾸만 묻어난다. 출발 장소인 노량 선착장에 배가 들어선다. 멀리서 본 바다와 직접 느낀 바다는 이전과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Info
충무공투어 해상 크루즈 A코스는 남해대교를 출발해 하동화력발전소~광양만~관음포~이락사를 거쳐 돌아오는 코스로 1시간 30쯤 걸린다. 요금은 어른 18,000원(어린이 12,000원). 대도상륙관광을 겸한 B코스는 2시간쯤 걸리며 어른 21,000원(어린이 16,000원)이다. 2개의 실내 객실과 야외 테라스로 이뤄진 2층 배의 총 승선 인원은 285명, 대도상륙관광은 88명이 정원이다. 기상 상태에 따라 운행 여부가 달라지므로 출발 전 전화로 문의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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