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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만화 속 배경 여행] 이미라 의 도시, 대구
[만화 속 배경 여행] 이미라 의 도시, 대구
  • 서찬휘 여행작가
  • 승인 2018.09.21 11: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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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순정만화 속으로
대구 달성공원 전경.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여행스케치=대구] 가을이 깊어 가는 즈음이면 문득 가슴 저린 사랑 이야기에 젖어 들고 싶다. 이런 날 눈앞에서 툭 하고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은 순정만화 주인공들과 함께라면 실로 완벽하다. 이번 여행지는 한때 수많은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인어공주를 위하여>의 무대, 대구다.

인터넷 대중화 시대의 초창기를 장식한 ‘야후 코리아’는 꽤 재기발랄한 광고를 선보이곤 했다. 그중 하나가 <순정만화클럽> 편인데,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혼자 만화책을 읽으며 눈물짓고 있다가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한다.

그러자 이 남자는 야후 코리아의 ‘순정만화클럽’에 들어가고, 모임 자리에서 순정만화를 읽다가 그만 사람들과 다 함께 울음바다를 이룬다. 

야후코리아 광고 '순정만화클럽' 편.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이 광고 속에서 남자가 읽는 만화가 바로 <인어공주를 위하여>다. 1990년대 순정만화 대표작으로 꼽는 데에 이견이 없을 이 작품은 이미라의 간판격인 작품이자 만화를 본 이들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가슴 저릴 푸르매, 이슬비, 서지원, 백장미 등 주요 인물상이 정립된 작품이기도 하다.

1990년대 순정만화 대표작 <인어공주를 위하여>
<인어공주를 위하여>는 한 시기 워낙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어서 당연히 팬들도 많았다. 흥행곡 ‘내 눈물 모아’를 부른 가수 고(故) 서지원도 이 작품의 팬이었고, 예명을 지을 때 작품 속 서지원에게서 이름을 따 왔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재미있게도 근래 최고의 인기를 끄는 아이돌 그룹 마마무의 멤버 휘인 역시 이모가 <인어공주를 위하여> 팬이었던 덕에 작중 인물 조휘인에게서 이름을 따 왔다고 한다. 작품의 흔적이 시대를 넘어 대중문화 아티스트에게도 드러난다는 건 그만큼 이 작품이 확실하게 한 시대를 풍미했음을 말해준다. 

만화 속 주인공은 어릴 때 헤어진 소꿉친구 푸르매와의 약속을 간직하고 있는 고등학생 이슬비. 한데 슬비는 새로 전학 온 푸른 고교에서 ‘명물’로 일컬어지는 서지원을 알게 된다.

서지원은 불량 서클의 리더이면서 신기하게 성적이 나쁘지 않아 학교에서도 어쩌지 못하는 존재다. 부잣집 딸 백장미는 사고로 자신의 발을 망가뜨린 서지원을 좋아해 발을 빌미로 안타깝고도 위험한 모종의 거래를 하고 있다.

<인어공주를 위하여> 나나코믹스판 단행본.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한편, 지원에게는 동생이 한 명 있다. 슬비는 우연히 동생 지수를 챙겨주다가 지원과 엮이는 일이 잦아지고, 그 과정에서 마냥 불량하기만 한 줄 알았던 지원에게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렇게 슬비가 지원에 대한 경계가 살짝 풀어진 순간, 지원은 푸르매와 슬비만이 알고 있을 말을 툭 던져 충격에 빠지게 만든다. 그들이 펼치는 가슴 아린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갈까?

<인어공주를 위하여>는 90년대 청춘의 감성을 담았다는 것 외에도 명확한 작중 지역을 밝힌 점으로도 주목받았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도시는 1980년대 후반 대구. 작가의 고향이기도 하다.

당시 순정만화는 서양을 배경 삼아 서양인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서울로 짐작되는 대도시를 무대로 삼은 경우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대구’라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화로 전체를 끌고 나가는 <인어공주를 위하여>는 독자들에게 상당히 독특하게 다가선 작품이다.

Tip 이미라, <인어공주를 위하여>(1990)
만화잡지 <하이센스>에서 <호두나무가 있는 동화>란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고, 이후 <인어공주를 위하여>로 제목을 변경해 만화잡지 <나나>에서 연재했다. 개그와 진지함, 눈물샘을 자극하는 애절함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1990년대 초중반 한국 순정만화 대표작. 감수성을 자극하는 장치들이 깊이 녹아있어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총 9권으로 완결되었고, 2000년 시공사에서 재출판하였으나 절판되었다. 현재는 네이버N스토어를 통해 전자책으로 전편(총 73화)을 감상할 수 있다.

<인어공주를 위하여> 속 배경지를 따라가는 여행은 달성공원에서 시작한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작품과 함께 하는 대구 ‘공원 여행’
<인어공주를 위하여> 속 주요 배경지 중 슬비네 집과 서지원네 집, 그리고 푸른 고교는 모델이 된 곳을 현시점에서 특정할 수가 없어 아쉽게도 여행지로 꼽을 수 없다.

하지만 작품에서 중요한 곳으로 등장하는 공원 세 곳, 특히 두류공원과 달성공원은 <인어공주를 위하여>를 좋아했던 독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성지순례’ 코스가 되었다. 장미와 지원의 관계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망우공원까지 더하면 ‘공원 여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류공원과 달성공원은 서로 가까운 곳에 자리한 공원이다. “달성공원에 갔다가 오후에는 두류산에 올라가 볼까?”라는 작품 속 대사를 그대로 따르면 달성공원을 먼저 갔다가 두류공원으로 이동하면 된다.

두 공원 모두 지하철역과 멀지 않아 초행길이라도 크게 헤매지 않고 갈 수 있다. 작품 내 시간 속에서는 지하철이 없었지만 말이다.

동학 창시자 최제우 동상.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 시비. 우리나라 문학계 최초의 시비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달성공원 관풍루.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삼한시대 성곽 자리에 자리한 달성공원은 곳곳에 수령 100년이 훌쩍 넘는 나무들이 서 있어 운치를 더한다. 게다가 과나코와 사슴을 비롯해 호랑이, 코끼리, 물개 등 동물들이 다수 있어 서울 능동의 어린이대공원과 비슷한 인상을 준다.

어린이대공원에 비하면 비교적 작은 규모지만 바람 드는 곳에 자리한 관풍루나 옛 토성 자락을 따라 조성된 1km가량의 산책로를 걸으면서 한적한 기분을 만끽하기 좋다.

달성공원은 일제가 공원으로 조성했다는 점에서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공원 한편에는 대구의 옛 흔적을 훑을 수 있는 향토 역사관이 자리한다. 또한, 공원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남순행로 관련 조형물들이 서 있어 대구의 근대사를 짐작게 한다.

달성공원 토성 산책로. 중간쯤에서 푸르매는 저만치의 아파트들을 보며 명대사 “와아 저 아래 찬장이 잔뜩 있다”를 외쳤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슬비네를 따라 두류공원에 가면 입구의 큰 분수대와 더불어 작품 속에서는 완공되지 않아 공사 중인 뼈대만 묘사되어 있던 83타워를 길 건너 두류산 자락 저편으로 감상할 수 있다.

두류산에 올라 건너편 아파트를 보며 <인어공주를 위하여> 팬들 사이에서 화제였던 푸르매의 대사 “와아 저 아래 찬장이 잔뜩 있다”를 읊어볼 만 하지만, 두류산 일대는 이제 E월드라는 놀이동산으로 변모해 옅은 아쉬움을 자아낸다.

Info 달성공원
주소
대구 중구 달성공원로 35 

Info 두류공원
주소 대구 달서구 공원순환로 36

Info 망우공원
주소
대구 동구 효목1동 산234-35

서지원과 백장미의 만남 장소에 가다
작품 제목에 걸맞은 ‘진짜 주인공’으로 꼽히는 인물 백장미와 서지원이 만나는 장소, 망우공원으로 향해본다.

영남 의병의 시작을 알린 홍의장군 곽재우를 비롯해 315명의 의병을 기리는 이 공원은 곽재우 장군의 호인 망우당(忘憂堂)에서 이름을 따 왔다. 이 탓에 표석은 망우공원이라 서 있지만, 망우당공원이라고도 불린다.

망우공원(망우당공원) 표석.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이곳에는 곽재우 장군 동상과 더불어 임란호국영남충의단, 그리고 의병들의 기록을 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자리한다. 전시관에서는 15분 분량의 3D 입체 영상으로 영남 의병의 전과와 의미를 소개하는 영상도 볼 수 있다.

망우공원 옆에는 대구 읍성의 남문이었던 영남제일관이 있다. <인어공주를 위하여>에도 망우공원과 함께 백장미가 서지원을 기다리는 장소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영남에서 의병을 처음으로 일으킨 ‘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 동상.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임란호국 영남 충의단 전시관.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망우당 기념관. 현대는 닫혀 있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망우공원과 영남제일관 앞으로는 금호강이 흐른다. 포항에서 발원해 대구를 감아 돌아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강. 갈대밭이 무성하던 시기가 있었고 지금은 오염되어 잘 얼어붙지도 못한다는 이 강에 만화는 또 다른 슬픔 하나를 얹는다. 지원과 지수의 부모님이 합창단을 꾸릴 만큼 아이를 낳자며 행복에 젖던 때의 추억이다. 

이곳에서 지원의 엄마는 바람 불 때면 갈대가 가야금 소리를 내서 강 이름이 ‘금호강(琴湖江)’이라는 유래를 말하며 “우리 아이들이 자랐을 무렵엔 이 강이 다시 맑아져서 가야금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 말한다. 

망우공원 앞을 유유히 흐르는 금호강.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하지만 엄마는 지수를 낳다가 죽고 말았고, 아빠는 그렇게 사랑하던 이를 죽게 한 둘째 지수에게 사랑을 주지 못한 채 자식들과 떨어져 있어야 했다.

그래서 ‘형아’ 지원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지수는 건널목 저편의 지원에게 간다고 달려가다 그만 차에 치여 죽고, 재가 되어 다시 이 금호강을 따라 흘러간다. 작품을 보며 눈물지었던 사람이라면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로 금호강 자락을 바라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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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2019-03-30 00:06:42
아...인어공주를 위하여...울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이미라 작가님의 안부가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