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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7월호
[가을여행주간] 이북 땅이 아스라이 보이는 섬, 강화도 교동도
[가을여행주간] 이북 땅이 아스라이 보이는 섬, 강화도 교동도
  • 유인용 기자
  • 승인 2018.10.26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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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이후 실향민 대거 유입된 섬
황해도와 직선 거리 약 3km밖에 안 돼…
2014년 교동대교 개통 후 접근성 높아져
사진 / 유인용 기자
교동도의 철책. 교동도에서 연백리까지 직선 거리가 가장 가까운 곳은 2.6km밖에 안 된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여행스케치=인천] “섬 끄트머리에서 보면 바다 건너 이북 땅이 가깝게 보여서 꼭 손에 잡힐 것 같다구. 내 고향 옹진도 그 너머 어디쯤 있을 거야. 고향에 큰형님이랑 누님이 계시는데 생사라도 알고 싶은 마음이지. 이북까지 거리가 3킬로미터도 안 된다는데 다리 하나 생기면 걸어서도 갈 수 있을 것 같아. 우리나라 기술에 다리 하나 놓는 건 일도 아닐 텐데….”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교동도의 대룡시장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황인태 할아버지는 6.25전쟁 때 황해도 옹진에서 교동도로 피난을 왔다가 발이 묶였다. 곧 통일이 될 줄 알고 지척의 고향 땅을 눈으로만 보듬은 세월이 벌써 60년을 훌쩍 넘겼다. 함께 내려왔던 작은형님은 결국 고향 땅을 다시 밟아보지 못한 채 몇 해 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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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가 한창인 교동도의 풍경. 사진 / 유인용 기자
사진 / 유인용 기자
교동도에는 자전거 도로가 잘 조성돼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분단 이전 황해도 연백리와 교동도는 같은 생활권에 속했다. 두 지역 모두 예부터 논이 많아 쌀이 맛있기로 유명한 곡창 지대였다. 주민들은 배를 타고 자유롭게 왕래했으며 가을철에는 서로 추수를 돕고 곡식을 나눴다. 그러다 6.25전쟁 때 황해도에서 피난민들이 교동도로 대거 유입됐으며 그때 넘어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이 마을을 꾸렸다.

교동도에서 연백리까지의 거리는 3km 남짓. 가장 가까운 곳은 2.6km밖에 안 된다.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교동대교가 3.5km이니 오히려 분단선 북쪽의 황해도가 더 가까운 셈이다.

지척에 고향을 두고도 눈으로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마음에 실향민들은 고향 땅이 가장 가깝게 보이는 섬 북쪽 언덕에 ‘망향대(望鄕臺)’라는 비를 세우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비석 옆의 망원경으로는 바다 너머 농가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까지 보인다.

교동도 북쪽에 실향민들이 세운 망향대. 사진 / 유인용 기자
교동도 북쪽에 실향민들이 세운 망향대. 사진 / 유인용 기자
사진 / 유인용 기자
망향대 옆의 망원경으로는 황해도 땅이 가깝게 보인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사진 / 유인용 기자
교동도 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할 경우 날카로운 철책에 몸이 부딪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철책 너머 황해도 바라보며 달리는 길
교동도는 꽤 넓기 때문에 섬을 전체적으로 둘러보려면 차량을 직접 운전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혹은 자전거를 타고 둘러봐도 좋다. 교동도에는 섬 테두리를 따라 둥글게 돌아보는 ‘회주길’, 섬 중심에서 각지로 뻗어나가는 ‘마중길’ 등 자전거 도로가 조성돼 있다. 길 한편에 파란색으로 표시된 길이 자전거 도로다. 지형이 대체로 평탄하기 때문에 자전거로 돌아보는 것이 힘들지 않다. 대룡시장의 관광안내소 격인 ‘제비집’에서 자전거를 대여해 준다.

제비집의 이순덕 교동 서포터즈는 “제비는 교동의 마스코트 역할을 하는데 봄이 되면 제비가 많이 찾아오기 때문”이라며 “제비는 흙과 나뭇가지를 물어다 집을 짓는데, 실향민들이 그것을 보고 ‘혹여 고향의 흙을 물어와 집을 짓진 않을까’ 기대했던 애틋한 마음도 녹아 있다”고 설명한다.

교동도에는 망향대 말고도 이북 땅이 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섬 서쪽 끝의 난정전망대다. 망향대에서 난정전망대를 잇는 길은 철조망과 그 너머 서해를 바로 옆에 두고 섬 가장자리를 따라 달리는 길이다. 자전거를 타고 이동할 경우 날카로운 철책에 몸이 부딪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진 / 유인용 기자
교동도의 철책. 사진 / 유인용 기자
사진 / 유인용 기자
난정전망대에서 육안으로 멀리 보이는 황해도 지역. 사진 / 유인용 기자

망향대에서 이북의 육지가 잘 보인다면 난정전망대에서는 넘실대는 바다가 눈에 더 들어온다. 동산의 나무 사이에 자리한 망향대와 달리 난정전망대는 저수지 한편에 만들어져 경관이 탁 트여 있다. 전망대에 앉아 철조망 너머로 반짝이는 바다와 그 너머의 황해도를 바라보고 있자면 마음 한편이 절로 무거워진다.

새떼 한 무리가 난정저수지에서 목을 축이고 바다를 건너 연백리로 날아간다. 저수지 옆으로는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철책이 막고 서 있지만 하늘까지는 닿지 않으니 날개 달린 새들은 남북을 오가는 데에 자유롭다.

Info 제비집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매월 두 번째, 네 번째 월요일 휴무)
이용금액 자전거 2시간대여 일반 4000원, 전기 8000원
주소 인천 강화군 교동면 교동남로 20-1

사진 / 유인용 기자
교동도 대룡시장의 예스런 풍경. 사진 / 유인용 기자
사진 / 유인용 기자
교동도 대룡시장의 필수 코스, 교동 이발관. 처마 밑에 제비집이 남아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시간이 멈춰버린 대룡시장
지금이야 다리가 놓여 강화도에서 육로 왕래가 가능해졌지만 교동도는 몇 해 전만 해도 강화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육지와의 교류가 더뎠던 탓에 60~70년대 거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교동도 대룡시장은 ‘시간이 멈춘 곳’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기도 하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으면서 약간의 연출도 첨가됐다. ‘이상하면 살펴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자’ 등의 문구가 적힌 슬로건과 포스터가 골목 곳곳에 붙었다.

물론 양복점, 다방 등 수십 년간 세월의 흔적을 입어 곤때 묻은 간판들도 마주할 수 있다.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황해도 청년들이 고향 지역의 시장을 떠올리며 만든 공간들. 지금은 향수에 젖은 관광객들을 맞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교동이발관, 동산약방, 중앙신발, 거북당 등은 모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매스컴을 타면서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유리창에 투박한 붉은색 글씨의 ‘약’이 적힌 동산약방에서는 나의환 할아버지가 손님을 맞는다. 교동도에서 나고 자란 나의환 할아버지가 58년째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나의환 할아버지는 6.25전쟁 참전 용사로 국가 유공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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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룡시장 동산약방의 나의환 할아버지. 사진 / 유인용 기자

그는 “옛날엔 황해도에서 온 실향민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지금은 많이들 돌아가셔서 점차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며 “시장에 약국만 몇 개가 있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동산약방 하나만 남았다”고 말한다.

대룡시장의 시간이 멈춘 이유는 섬이었기 때문만은 아닐 테다. 살아생전 고향 땅을 다시 밟길 희망하는 실향민들의 마음이 거리의 시간을 붙잡아둔 것은 아닐까. 교동도의 시간은 여전히 멈춰 있고 새들만이 철책 위를 넘나들며 남북의 소식을 서로에게 전한다.

한편 대룡시장에서 남쪽으로 약 2km 더 내려가면 섬의 남쪽 끝인 남산포다. 고려 시대에는 사신들이 드나들던 큰 포구였으나 지금은 낚시꾼들이 찾는 한적한 바다다. 섬 북쪽이나 서쪽과 달리 철책이 없어 트인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서해 너머로 저무는 낙조를 바라보며 여행을 마무리하기 좋은 장소다.

사진 / 유인용 기자
교동도 남쪽 남산포에서는 철책이 없는 서해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Tip 강화도에서 교동도 들어가기
교동도는 섬 전체가 민간인통제선 너머에 있어 차량으로 섬에 들어가려면 신분증 제시 후 차량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대중교통의 경우 강화터미널과 교동도를 잇는 70번 버스가 하루 11회 왕복 운행한다. 첫차는 강화터미널에서 오전 6시 10분에 출발하고 막차는 교동도에서 오후 9시 30분에 나온다. 강화터미널에서 교동 대룡시장까지는 버스로 약 40분가량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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