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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독자여행기 ①] 42년 만에 부여로 떠난 수학여행, "다시 뭉치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독자여행기 ①] 42년 만에 부여로 떠난 수학여행, "다시 뭉치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 신형국 독자(광주고 27회 졸업생)
  • 승인 2018.11.20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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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 27회 졸업생들의 수학여행
연꽃이 지고 난 뒤의 부여 궁남지
연잎밥과 막걸리로 되새기는 추억
사진 / 신형국 독자
궁남지의 가을풍경은 화려한 연꽃 대신 갈색 고엽과 줄기가 채우고 있다. 사진 / 신형국 독자
[편집자주] 독자들의 여행기에는 가족, 친구, 연인들이 느끼는 따뜻함이 묻어난다. 때로는 감성적이고, 자기 이야기 같은 이야기를 펼쳐내지만, 여행의 즐거움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을 없다. 매달 <여행스케치>에 자신의 여행기를 담아주는 독자여행기를 연재한다.

[여행스케치=부여]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40년 만에 고등학교 시절 추억을 되살려 부여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전라도 광주고교 27회 동창들의 부여 궁남지 여행기를 소개한다.

중년을 지나면서 사람들은 추억을 먹기 시작한다. 장년에 이르면 추억을 간식이 아닌 주식으로 먹고 산다는 사람들도 있다. 한동안 코빼기도 안 비치던 친구들이 나이 60 언저리에 이르면 어린시절 동창들 모임에 부지런히 쫓아다닌다. 그리고 옛날이야기를 늘어놓고, 누군가 그 시절 이야기를 꺼내면 귀를 기울이고 참견한다. 

중년이 되니 옛 친구들과 모여 여행을 다니는 기회가 늘어난다. 주말마다 만나서 등산이나 걷기 여행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그리고 소년소녀 시절에 다녀온 수학여행을 떠올린다.  

사진 / 신형국 독자
부부가 함께 온 친구들은 예쁜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 신형국 독자

수학여행을 다시 가면 좋겠다고? 
누군가 까까머리 시절에 다녀온 수학여행을 입에 올렸다. 그 찬란했던 청춘을 다시 살려낼 수야 없을 테지만 그 곳을 다시 가는 것은 어렵지 않을 터! 현충사, 설악산, 강릉 경포대, 속리산 법주사. 까짓거, 그 장소가 아니면 또 어떤가? 

고등학교 동창들이 42년 만에 수학여행 기분을 내보자고 뜻을 모았다. 장소는 부여! 부여는 백제의 향기가 가장 잘 남아 있는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 사람들이 자주 다니지 않은 고장이다. 과연 몇이나 호응해 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동창회장과 총무가 SNS에 방을 띄웠다.

서울에서만 버스 두 대에 나눠 타야 할 만큼 많은 친구들이 호응해 주었다. 부부동반을 허용하되 부인은 회비를 면제해 주었다!

70여 명 중 부부동반이 11팀이다. 나이 60에 이르러 부부가 같이 여행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눈총 주는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 여지껏 함께 여행하는 것은 부부전선에 이상이 없다는 증거 아닌가! 

사진 / 신형국 독자
가을이면 궁남지에서 국화꽃축제가 열린다. 사진 / 신형국 독자

버스 안에서 새삼스럽게 근황을 전하는데 이미 퇴직하여 집에서 쉬다가 산에서 놀다가 당구장에서 내기 당구를 친다는 친구들이 여럿 있다. 대학교수나 의사, 변호사들은 비교적 느긋하다. 작은 사업을 하는 친구들은 근근이 먹고산다고 엄살을 떨고, 공무원들은 국정감사 기간이라며 한 명도 함께하지 못했다. 

버스 안에서 저 지난날처럼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러볼까? 총무가 분위기를 잡는데 모두들 손사래를 친다. 이제는 시끄러운 분위기보다 조용한 것을 더 선호하는 나이란다. 이래서 어른들이 “나이가 무섭다”는 말씀을 하셨던 모양이다. 어느 정도 교양과 체면을 따지는 연륜이 되었고, 몸도 마음도 분출할 에너지가 부족한 모양이다.

그러나 친구들은 옆자리 앞‧뒷자리 친구들과 끊임없이 말을 섞는다. 이 버스에 타지 않은 친구들의 근황을 묻고, 안부를 전한다. 고교시절 수학여행이 오직 하나 되기 위한 열정으로 뭉친 여행이었다면, 42년만의 수학여행은 그리움의 간극을 채워가는 여행인 듯하다. 또다른 그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선생님에 대한 안부를 묻는다. 너무나 많은 세월이 흘러가버렸고, 그토록 화려하고 활기찼던 청춘시절이 이제는 이미 흑백 추억으로 변해버렸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사진 / 신형국 독자
궁남지는 무왕의 탄생과 관련된 전설이 담겨 있다. 사진 / 신형국 독자

연꽃은 졌어도 아름다움은 남아 있는 궁남지 
부여에서 궁남지 옆 향토음식점에서 연잎밥 정식을 먹었다. <여행스케치> 박상대 발행인이 추천한 황태골에서 점심을 먹는데 다들 깜짝 놀란다. 훈제오리구이, 야채샐러드, 해조류나물, 연뿌리, 부침개, 황태구이, 초밥 등등 여러 반찬에 막 쪄낸 연잎밥을 준다.

막걸리가 곁들어진 점심상에서 친구들은 주거니 받거니 회포를 푼다. 이제는 당당하게 막걸리를 마시는데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는 선생님 몰래 주막에 들어가 막걸리를 마셨다며 추억을 되새긴다.

사진 / 신형국 독자
부여 궁남지 특산 음식인 연잎밥과 막걸리를 먹고 있는 친구들. 사진 / 신형국 독자

궁남지 앞에서 김귀숙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 들었다. 학창시절 선생님이 해설할 때는 해찰 부리던 친구들이 해설사의 해설에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해설사는 궁남지의 위치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신체에 비유했다. 부소산이 머리, 정림사지가 가슴, 궁남지가 발이라고. 한 친구가 ‘발이 아니라 사타구니라 했으면 더 좋을 건데’ 하고 웃는다. 이곳 작은 연못에 살던 용과 연못 아래 살던 여인이 밤에 정을 통한 후에 아들(서동, 훗날 무왕)을 잉태했다는, 궁남지가 무왕의 탯자리나 다름없다는 삼국유사 전설에서 기인한 농담이었다.

당초에는 작은 연못이었는데 무왕 35년(634)에 궁의 남쪽에 연못을 파서 백마강 물을 끌어들였고, 주변에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었다. 왕과 왕비가 연못에 배를 띄우고 놀았다. 백제 당시에는 그 연못이 커서 3만여 평이었는데 백제가 멸망한 뒤에는 연못의 많은 부분이 농지로 이용되었다가 근래에 복구하여 현재는 1만 평에 이른다.

마침 부여에서 신동엽문학관 관장으로 일하는 김형수 시인이 합류하여 궁남지 산책을 함께했다. 김 시인은 “궁남지는 연꽃이 피었을 때보다 지금이 가장 아름답다”면서 궁남지 감상법을 이야기했다.

사진 / 신형국 독자
궁남지를 배경으로 반별 사진 촬영을 하는 친구들. 사진 / 신형국 독자

무더위가 물러가고, 가을바람이 불어오면서 연꽃잎이 지고, 연잎과 연줄기는 진한 갈색으로 변색되었다. 줄기는 대부분 허리가 꺾여서 물속에 머리를 박고 있지만, 수명이 다한 것이 아니다.

가수들의 노랫말이나 시인들이 시어로 사용하는 고엽의 원조가 꺾인 연잎이다. 연잎의 고엽은 이대로 아름다운 가을풍경의 주인공이다. 화려한 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화려했던 연꽃의 아름다움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변화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한여름에 들을 수 없었던 연잎과 줄기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몸을 비벼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람들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에너지 넘치는 화려한 젊음도 좋지만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도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을 수 있다. 연꽃은 수명을 다한 후에도 참 화려한 시절이 있었노라고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꿈틀대고 있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궁남지에서 우리는 저마다 삶의 추억을 담은 시를 쓰고 있었다. 화려한 시절은 갔어도 인생은 끝까지 아름다워야 한다.

사진 / 신형국 독자
궁남지를 배경으로 반별 사진 촬영을 하는 친구들. 사진 / 신형국 독자

친구들은 다시 정림사지를 거쳐 부소산과 부여읍내를 구경했다. 부여읍내의 도시계획을 세운 일본 사람들과 정림사지 발굴, 백제 사람들의 정신적 자양분을 쏟아냈을 정림사, 당나라 군대와 신라군대의 협공, 왜나라 해군의 지원, 백제의 멸망, 의자왕의 자살시도 등등 저마다 역사와 관광지 정보를 가진 친구들의 해설이 곁들여져서 더 즐겁고 유익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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