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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독자여행기 ②] 통영과 남해로 떠난 느린 가족여행, 오붓하고 다정했던 사흘
[독자여행기 ②] 통영과 남해로 떠난 느린 가족여행, 오붓하고 다정했던 사흘
  • 김우정 독자
  • 승인 2018.11.20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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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가 알록달록한 동피랑마을…
통영의 대표 먹거리 충무김밥‧꿀빵
'토지'의 흔적, 박경리기념관까지
사진 / 김우정 독자
여름 성수기를 지나 비교적 한적한 풍경의 통영. 사진 / 김우정 독자
[편집자주] 독자들의 여행기에는 가족, 친구, 연인들이 느끼는 따뜻함이 묻어난다. 때로는 감성적이고, 자기 이야기 같은 이야기를 펼쳐내지만, 여행의 즐거움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을 없다. 매달 <여행스케치>에 자신의 여행기를 담아주는 독자여행기를 연재한다.

[여행스케치=통영] 몇 해 전 가을, 어머니를 모시고 언니들과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그때 만들었던 추억과 기억은 자꾸만 다시 여행을 떠나라 등 떠밀곤 했다. 그래서 늦가을로 접어드는 이맘때, 남편, 딸, 아들과 함께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어딜 가야 좋을지 곰곰이 생각하던 찰나, 바다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딸이 통영과 남해 일대를 2박 3일간 둘러보는 코스를 짰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움직이기로 정했다.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내려놓는 느린 여행. 그게 우리 가족의 여행 방식이었다. 

여름 성수기를 지난 통영은 다소 한적했고,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우리 가족은 가장 먼저 동피랑 마을에 도착해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동피랑 마을은 벽화로도 유명하지만, 걸음을 옮기는 길목마다 소박한 매력이 있었다. 

특히 경상도 사투리를 그대로 옮겨 적은 패널이 무척 정겨웠다. ‘강구안을 채리보모 분이 써언하이 가라앉고 그라는기라, 그라이께 오곰재이 오글티리고 살아도 내구석이 좋은기라.’속이 상해서 문드러지다가도 뻥 뚫린 강구항(통영항)을 보면 화가 시원하게 가라앉는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됐고, 다리를 오므릴 정도의 작은 방이라도 내가 사는 이곳이 좋다는 말이 애틋하게 다가왔다.

사진 / 김우정 독자
예쁜 펜션과 어우러진 남해의 풍경. 사진 / 김우정 독자
사진 / 김우정 독자
박경리기념관으로 올라가는 길. 사진 / 김우정 독자

동피랑 마을 초입에 있는 <빨간 머리 앤>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카페 역시 인상적이었다. 카페 내부 곳곳에 앤 캐릭터 물품이 있었는데, 앙증맞은 스티커를 갖고 싶다는 딸에게 스티커를 사주며 다가올 한 해를 기록할 2019년 달력도 하나 샀다.

맛있는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은 ‘통영’하면 절로 떠오르는 충무김밥과 달콤한 꿀빵을 사서 한적한 벤치에서 나눠 먹었다. 오랜만에 네 명 모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먹은 음식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좋았던 공간은 박경리 기념관이었다. 대하소설 <토지>를 읽으며 마음속으로 늘 존경해온 작가를 기억하는 공간이라니. 작가의 생애를 훑어보고, 그가 남긴 말을 읽으며 이루 말할 수 없이 벅찼다. 기념관 뒤편에는 박경리 선생의 묘소가 있었는데, 묘소로 향하는 길목에는 드문드문 시비가 서 있어서 걸음을 멈추게 했다. 남편은 “이럴 줄 알았으면 꽃이라도 한 송이 사 올걸”하며 주저하는 나의 손을 꼬옥 잡고 함께 길을 올랐다. 

묘소에서 돌아와 아쉬운 마음에 다시 기념관에 들어서니 출구에 방명록이 있어 이름과 남기고 싶은 글을 적었다. ‘기억합니다’라고.

사진 / 김우정 독자
박경리기념관의 기념비. 사진 / 김우정 독자
박경리기념관의 외관. 사진 / 김우정 독자
박경리기념관의 외관. 사진 / 김우정 독자

통영을 둘러보고 나서는 남해로 이동해 한적한 펜션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넓고 아늑한 숙소, 바다를 향해 난 창문에는 푸른 풍경이 아른거렸다. 잔잔히 일렁이는 바다는 우리 가족만을 위한 바다 같았다. 

다음 날 아침, 푹 자고 일어나 짐을 꾸리고 나서는 해변을 천천히 걸었다. 가족과 함께 아옹다옹 보냈지만,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짧은 여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쌀쌀하지만 기분 좋은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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