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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독자여행기 ③] 42년 만에 다시 떠난 졸업 후 수학여행, "친구야, 속초 설악산에서 우리 다시 만났다"
[독자여행기 ③] 42년 만에 다시 떠난 졸업 후 수학여행, "친구야, 속초 설악산에서 우리 다시 만났다"
  • 김영도(목포고 27회 졸업생)
  • 승인 2018.12.1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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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목고 27회 졸업생들의 수학여행
호젓한 영랑호와 설악산 단풍 속에서 되새기는 우정
광주, 목포,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모여 사진을 찍었다. 사진 / 김영도ㆍ천기철 독자
광주, 목포, 서울에 사는 친구들이 모여 사진을 찍었다. 사진 / 김영도ㆍ천기철 독자
[편집자주] 독자들의 여행기에는 가족, 친구, 연인들이 느끼는 따뜻함이 묻어난다. 때로는 감성적이고, 자기 이야기 같은 이야기를 펼쳐내지만, 여행의 즐거움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을 없다. 매달 <여행스케치>에 자신의 여행기를 담아주는 독자여행기를 연재한다.

[여행스케치=속초]오전 11시 즈음 서울 사당역 주차장은 반가운 악수와 포옹으로 소란스럽다. 대기 중인 버스 이마에는 재경목고 27회 자막이 번쩍인다졸업 후 40년 만에 가는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설악산이다. 광주, 목포, 서울 세 곳에서 각 지역 동창회별로 출발하여 영랑호리조트에 집결, 친교의 행사를 갖고 하룻밤을 보낸 뒤 설악산 권금성케이블카를 탄 다음 되돌아오는 것으로 일정이 짜여 있다.

출발이다. 버스는 줄곧 달려 인제 내린천 휴게소에 도착한다. 휴게소의 규모와 색다른 모습에 호기심이 일며 꼭대기쯤에 있는 양양고속도로 건설 소개관을 둘러본다. 건설과정과 공법 을 소개하는 사진을 보는 중에 여러 친구들이 문철 주변에 모여든다. 당시의 공법과 신공법 소개까지 흥미를 더하는 전문가다운 설명에 귀가 즐겁고 유식해진다. 광주, 목포 친구들도 도착해 반가운 인사를 나눈 다음 영랑호리조트로 가서 여장을 푼다오후 6시 드디어 수학여행 기념행사와 향연이 펼쳐진다.

세월이 더 깊게 만든, 여전히 멋진 친구들
먼저 목포, 광주, 서울 회장이 나와 감회를 전한 후 각각 지역 동창들을 소개한다. 이어서 노래자랑이 펼쳐진다. 먼저 서울팀 삼광, 정재, 성완의 노래와 댄스, 몸짓이 백점 만점에 백점 만점이다. 가수 이외 서울 동창들 십 수명이 백댄서다. 이어 목포 동창들이 노래한다. 일류 가수 뺨치는 실력들이다.

광수는 기타 치는 폼도 잡아가며 무대를 누빈다. 철우는 맛깔스럽고 끝을 당기는 듯한 창법으로 매력을 끈다. 노래 끝나고 마이크를 두 손으로 잡고 깊이 굽혀 관중석에 인사하는 폼이 확실히 놀아본 솜씨다. 석봉도 빠지지 않는 매력을 발산한다. 형철의 노래솜씨도 만만치 않다. 백댄서 성규, 효근도 대단한 열정의 몸짓을 보여준다.

광주는 태환이 노래한다. 고래사냥을 부른다. 가슴 깊은 곳에서 세상을 향해 무언가를 쏟아내는 느낌이다. 함께 무대에 나와 춤을 추는 판재의 율동은 오묘하다. 살짝 비트는 마지막 몸동작이 마음을 잡아끌며 매력 발산이다. 이어서 모든 친구들 일어나서 아리랑 가락에 맞춰 앞 어깨에 두 팔을 얹고 왼발, 오른발, 어깨 춤, 엉덩이 춤 끊어질듯 긴 줄 이어가며 우정을 엮어간다.

철기의 날개를 활짝 편 비행 폼도 멋있다. 한일의 덩실덩실 아리랑 춤사위도 즐겁고 기중의 흐뭇한 미소도, 양일의 환한 미소, 순석의 묵직한 미소도 어우러진다. 분위기 돋우는 승태와 성후의 목청도 높아간다.

졸업 후 수학여행의 시작을 연 기념행사에서 멋진 친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진 / 김영도ㆍ천기철 독자
졸업 후 수학여행의 시작을 연 기념행사에서 멋진 친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진 / 김영도ㆍ천기철 독자
기념행사가 끝나고 영랑호를 산책한 친구들. 사진 / 김영도ㆍ천기철 독자
기념행사가 끝나고 영랑호를 산책한 친구들. 사진 / 김영도ㆍ천기철 독자

행사는 끝나고 밤은 깊어간다. 친구들은 지칠 줄 모르고 새벽으로 나아간다. 어떤 친구들은 밤샘 고스톱으로, 또 어떤 친구들은 술집으로, 어떤 친구들(종옥, 준식, 작훈, 영도)은 영랑호 산책에 나선다.

밤 10시 반쯤 달빛도 아늑하고 밤기운도 부드럽다. 호수 주변 길은 호젓하고 상긋한 기운이 콧속으로 들어와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영랑호를 반쯤 돌 때부터는 세찬 바람이 걸음을 막으며 동해안 해풍의 위세를 보여준다. 하지만 간간이 바람 잔잔해진 시간이 오면 한쪽 방향으로 나란히 기운 달빛에 물든 영랑호 갈대에 미소 짓고 사진 한 컷으로 이 아름다운 우정의 순간을 잡아두곤 했다. 가로수 사이로 달은 이따금씩 고운 얼굴로 반긴다.

호젓하고 잔잔한 영랑호의 모습. 사진 / 김영도ㆍ천기철 독자
호젓하고 잔잔한 영랑호의 모습. 사진 / 김영도ㆍ천기철 독자

방마다 이야기꽃으로 물들었을 것이다. 어느 방. 한 친구의 인생 역정. 잘 나가던 사업가에서 '아이엠에프'로 꺾어지고, 도박에 심취해 인생의 한 때를 아깝게 날려 보내고, 막노동부터 대리운전까지 다해보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자격증을 갖추고 앞으로의 인생을 대비해가는 아픈 인생사와 다시 일어서는 투혼의 얘기를 듣는다. 또 다른 친구로부터 의학과 한의학 사이의 논란에 대한 심도 있는 의견을 듣는다. 인간의 생리를 근본에서 살펴 치료하려고 정진해 온 의술인의 모습이 엿보인다.

단풍 젖고 비에 물든 설악산, 친구들 마음도 젖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8시 30분경 버스에 승차한다. 호텔을 떠날 때 설악산 쪽으로 무지개가 곱게 걸쳐있다. 상서로운 기운이다. 비가 간간이 내리기 시작한다. 햇볕이 나면서 비가 내리니 호랑이 장가가는 비, 여우 시집가는 비라는 얘기도 나오며 금방 그칠 비라고 점쳐봤지만 빗줄기는 약간 더 굵어지며 그칠 줄 모른다.

이튿날에는 비가 와서 권금성 케이블카 일정이 취소됐다. 사진 / 김영도ㆍ천기철 독자
이튿날에는 비가 와서 권금성 케이블카 일정이 취소됐다. 사진 / 김영도ㆍ천기철 독자

설악산 입구로 들어가는 길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경탄이 절로 나온다. 산은 온통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고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자연의 신묘한 아름다움에 마음이 빠져든다. 비 때문에 예정된 권금성 케이블카 일정은 취소된다. 예약된 식당은 취소가 불가하단다. 결국 식당으로 들어간다. 식당입구 처마 밑에서 여러 명의 친구들이 비를 피하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처량도 하고 별난 재미도 선사한다.

식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다시 식사를 하기로 한다. 막걸리에 소주에 벌떡주까지 "위하여"가 연신이다. 대다수는 그 시간에 비빔밥 한 그릇까지 비운다. 우리 친구들 위 대하다. 대현은 실무처리에 부산하고 성후는 이 좌석 저 좌석 건배 제의에 바쁘다.

식당 밖으로 나오니 비는 그쳤다. 설악산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과 친구들 사진을 찍어댄다. 헤어지기 아쉬워 바닷가로 이동한다. 멀리 구름을 잔뜩 머금은 속초바다를 배경으로 전체로 한방, 지역별로 한방, 연방신방 찍어댄다. 아쉬움에 헤어지지를 못한다. 자주 만나자 다짐하고 긴 악수와 포옹 끝에 겨우 헤어진다. 종학 친구가 말린 오징어를 사서 차마다 선물한다. 세 대의 버스가 각기 돌아갈 곳을 향해 출발한다.

다시 헤어지는 아쉬움, 긴 여운. 잘 가시게, 또 보세...
42년 만의 졸업 후 수학여행이 끝났다. 그때와 비교할 때 변한 것도 있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수피아여고, 영천여고, 호수돈여고생들, 42년 전에 만났던 그녀들은 없었다. 그러나 어렴풋한 설렘의 추억은 남아있다. 그때는 선생님들이, 이번에는 우리 스스로 인솔했다.
 

속초의 아름다운 단풍과 함께 사진 촬영~ 사진 / 김영도ㆍ천기철 독자
속초의 아름다운 단풍과 함께 사진 촬영~ 사진 / 김영도ㆍ천기철 독자
다시 헤어지는 아쉬움 속에 동해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사진 / 김영도ㆍ천기철 독자
다시 헤어지는 아쉬움 속에 동해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사진 / 김영도ㆍ천기철 독자

옛날에는 경포해수욕장의 갑작스럽게 깊어지는 경사각과 깨끗하고 깊고 수평선 같은 큰 바다에 놀랐다. 우린 대륙붕이 발달한 완만하고 뻘로 탁한 바닷가와 다도해를 많이 봐왔기에 그랬다. 그때는 어머니에게서 용돈을 받아 왔다. 이번에는 자기가 번 돈 아니면 아내에게서 받아왔다. 많은 어머니, 아버지들이 그동안 떠나셨다. 그러나 그분들에 대한 그리움이나 존경의 마음은 여전하다.

우리의 외모도 많이들 변했다. 뿐만이랴, 세상은 폭풍처럼 우릴 몰아쳤다. 우리는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변하면서 깊어져 왔다. 과오도 실패도 있었다. 그것도 우리를 깊어지게 했다. 우린 어떤 것은 지켜왔고 꼭 지키고 싶었다. 우리도 세상을 바꾸어 왔다. 정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그래, 우리 친구들 많은 것을 잘 지켜 오셨다, 앞으로도 잘 지켜 가시리라. 많은 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 같은 내 친구들. 그 빛이 나를 이끌었다. 그 빛이 나를 지켜본다. 그 빛이 나를 감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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