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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체험여행] 천 년 전 바닷속 보물선이 들려주는 서해안 이야기
[체험여행] 천 년 전 바닷속 보물선이 들려주는 서해안 이야기
  • 조유동 기자
  • 승인 2019.01.24 1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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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피해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으로
4월 30일까지 '바다에서 찾은 고려의 보물들' 특별 전시 개최
시민들이 뽑은 고려 보물 3점 만나볼 기회
사진 / 조유동 기자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는 태안 지역에서 조사하고 직접 발굴한 유물 3만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 조유동 기자

[여행스케치=태안] 금은보화를 가득 실은 보물선에 대한 얘기는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바다 깊이 잠든 보물 이야기는 사람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우리나라에도 보물선이 잠든 바다가 있다. 바로 서해안이다. 구불구불한 해안선과 크고 작은 섬이 가득한 서해는 예로부터 안개가 짙게 끼고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커 이곳을 지나는 배들의 무덤이 되었다. 그 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이다.

주꾸미가 발견한 보물선엔 청자가 한가득
그동안 서해에 잠들어 있던 수중 문화재들은 주로 목포에서 보존했다. 하지만 태안 지역에서 5척의 난파선이 연이어 발견되며 보다 가까운 곳에서 유물을 관리할 필요가 생겼다. 바닷물 속에서 잠겨있던 유물을 꺼내면 훼손을 막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발견된 지역에서 가까울 수록 더 깨끗하게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흥내항에서 갈매기를 닮은 안흥나래교를 건너면 태안군 끝자락 신진도의 작은 어촌 마을 옆에서 지난 12월 개관한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전시관에서는 군산부터 인천까지 서해 중부 해역에서 모은 약 3만여 점의 유물을 보관 중이다.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고려청자. 2007년 주꾸미 어업 중 함께 건진 청자 사발을 시작으로 발굴된 태안선에서 2만 5000점에 이르는 유물이 나온 덕분이다.

사진 / 조유동 기자
지난해 12월 개관한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은 현재 임시 개관 중으로 올 11월 정식으로 개관한다. 사진 / 조유동 기자
사진 / 조유동 기자
수중 문화재를 조사하고 발굴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사진 / 조유동 기자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이 만들어진 계기가 된 고려시대 태안선은 1131년, 지금의 전남 강진에서 빚은 도자기들을 싣고 개경으로 향하던 중 태안 앞바다 대섬에서 침몰했다. 차곡차곡 잘 포장된 청자가 가득할뿐만 아니라 두꺼비 모양의 벼루와 사자 모양 향로같은 독특한 자기까지 발굴된 말 그대로 보물선이다. 태안 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된 난파선이라 태안선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후 2009년 마도1호선부터 2015년 마도4호선까지까지 신진도와 이어진 섬, 마도 앞바다에서 4척의 난파선이 더 발굴됐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고급품, 일상용품, 항아리에 저장된 곡물과 젓갈 등 다양한 유물이 잠들어 있었다. 이경은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 홍보팀장은 “서해 갯벌의 부드러운 흙들이 유물을 덮어 진공상태처럼 유물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며 “바닷속에서 많은 유물이 발견되고 상태도 좋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시민이 직접 뽑은 보물 중의 보물은 무엇일까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은 보물 중의 보물을 모아 4월 30일까지 ‘바다에서 찾은 고려의 보물들’ 특별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올 11월 전시관이 정식 개관하기 전 바닷속에 모습을 감춘 채 천 년에 가까운 시간을 견딘 보물을 미리 만날 기회다.

사진 / 조유동 기자
청자 연꽃줄기 무늬 매병은 그 용도와 이름이 처음으로 밝혀진 유물이다. 사진 / 조유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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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모란 연꽃무늬 표주박 모양 주전자는 섬세한 표현이 돋보인다. 사진 / 조유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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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머리에 해학적인 모습을 한 청자 사자모양 향로. 사진 / 조유동 기자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귀하게 모셔진 보물 3점이 눈길을 끈다. 전시관에서 선정한 5가지 유물 중 SNS 이벤트를 통해 시민들이 직접 뽑은 가장 보고 싶은 유물 3점이다. 셋 중 가장 의미가 깊은 유물은 바로 ‘청자 연꽃줄기 무늬 매병’. 고려청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의 유선형 몸에 연꽃무늬를 음각으로 새긴 청자다. 매병을 발굴했을 때 병 입구에 묶인 죽찰에 ‘오문부라는 사람에게 꿀을 담은 준(樽, 술병)을 보낸다’는 내용이 쓰여있어 매병을 무슨 용도로 사용했는지, 뭐라고 불렀는지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지금으로 치면 택배 운송장이 유물과 함께 발견된 셈이다.

‘청자 모란 연꽃무늬 표주박 모양 주전자’는 가장 화려한 외형을 자랑한다. 모란과 연꽃 그림이 도자기에 무늬를 파고 그 속에 금이나 은을 채운 상감기법으로 잘록한 몸체를 장식한다. 손잡이는 덩굴식물 두 줄기가 서로 몸을 꼬고 타고 오른다. 따뜻한 물을 담아 내용물을 보온하는 데 사용한 받침 그릇도 세트로 발견돼 그 화려함을 온전한 모습으로 감상할 수 있다.

보물 3점 중 마지막은 가장 귀여운 모습을 지닌 ‘청자 사자모양 향로’다. 향로 뚜껑 위에 사자 한 마리가 웅크린 채 입을 벌리고 앉았다. 특징적인 모습만 과장해 빚어 귀여운 대두 사자가 탄생했다. 향로에 향불이 남은 채로 뚜껑을 덮으면 사자가 벌리고 있는 입으로 연기가 솔솔 새어 나왔다 하니 그 모습을 상상해보면 귀여움이 더해진다.

이 외에도 전시실의 또 다른 귀염둥이 두꺼비 모양 벼루, 태안선 선원의 유골, 뱃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해주는 생활용품과 사슴뿔 같은 사치품까지 바다에서 찾은 다양한 고려시대 보물을 기획전시실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신진대교 마주하며 보물선을 마음에 남기다
상설전시실에서는 다른 시대 유물들도 함께 전시 중이다. 인천 영흥도에서 온 솥은 바다에서 발굴된 배 중 가장 오래된,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다. 안산 대부도에서 발견된 2척의 고려시대 선박에서는 대단하지는 않지만,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는 물건이 발견되었다. 배 위에서 지낼 때 어떤 물건들을 썼는지 보여주는 청동 숟가락 같은 알짜배기 유물이다.

사진 / 조유동 기자
두꺼비 모양의 휴대용 벼루도 귀여운 모습이 온전히 보존됐다. 사진 / 조유동 기자
사진 / 조유동 기자
신진대교가 보이는 오션뷰가 펼쳐진다. 사진 / 조유동 기자
사진 / 조유동 기자
안흥내항에서 갈매기 모양의 안흥나래교를 지나면 곧바로 전시관을 오갈 수 있다. 사진 / 조유동 기자

상설전시실 한켠에는 수중 유물 발굴 당시 현장의 모습을 재현해두고 실제 장비를 전시해 수중 문화재 발굴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준다. 유물이 발견된 지역을 조사하고 탐사하는 과정도 영상으로 상영해 이해를 돕는다.

관람을 마치면 전시관 내 휴식공간에서 잠시 풍경도 감상해보고 떠나자. 자리에 앉아 전시의 여운을 즐기고 있노라면 큰 창 너머로 신진대교와 안흥항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지니 여행을 마무리하기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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