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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0월호
[신정일의 낙동강 1300리 걷기-마지막 회] 부산에 다다른 낙동강이 하구둑으로 흐르고…
[신정일의 낙동강 1300리 걷기-마지막 회] 부산에 다다른 낙동강이 하구둑으로 흐르고…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 승인 2019.03.2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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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 김해를 바라보며 부산으로 입성
낙동강 삼각주와 낙동강 본류의 진실
을숙도에서 떠올리는 낙동강의 과거ㆍ현재ㆍ미래
낙동강 1300리의 마지막 여정으로 부산에 접어든다.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낙동강 1300리의 마지막 여정으로 부산에 접어든다.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여행스케치=부산] 드디어 낙동강 1300리 답사 마지막 여정이다. 길고 긴 경상남도를 지나 부산광역시 북구에 접어든다. 강원도 태백에서 낙동강을 따라 이곳 부산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가. 부산 지하철 금곡역에 도착하고 안내판을 따라 따가운 햇살을 피한 채 역 구내 통로를 따라간다. 창밖으로 부산행 열차는 요란스레 지나가고 금곡주공2단지를 지나며 강은 저 멀리로 멀어진다.

인간이 바꾸어버린 낙동강 하류 물길
금곡 남쪽 동원마을 낙동강변에는 김해시 대동면 조눌리로 건너가는 동원나루터가 있었지만 나루터는 흔적도 없고 갈대만 바람에 사각거린다. 강 건너 김해는 여섯 가야의 으뜸이었던 금관가야의 땅이었다. 금관가야는 여섯 가야 중에서 세력이 가장 컸던 곳이라 다른 가야들이 맹주로 떠받들었다.

<동국여지승람>김해도호부편에 따르면 구형왕이 신라에 항복하자 법흥왕이 그를 손님으로 맞아 예를 갖추어 대접함과 더불어 금관가야를 금관국(金官國)이라 부르게 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인 문무왕 때에는 금관국을 폐하고 금관 소경을 설치하였고, 경덕왕 때에 이르러 비로소 그 이름을 김해로 고쳐 김해 소경(金海 小京)이라 불렀는데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명칭이 변경된 뒤에야 오늘날의 김해시가 된 것이다.

부산 북구의 낙동강 모습.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부산 북구의 낙동강 모습.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김해에 있는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릉.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김해에 있는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릉.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1916년부터 1926년 사이에 김해 북쪽의 대동면에 대동수문을 만들고 김해 남쪽에 위치한 녹산면에 녹산수문을 만들기 전까지는 낙동강의 본류가 서(西) 낙동강이었다. 현재의 낙동강은 서 낙동강 본류에서 가지 쳐 나간 줄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1916년부터 일본사람들이 기름진 삼각주를 농토로 만들기 위해 지금의 낙동강 폭을 넓히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강 양쪽에 둑을 쌓아 물의 흐름을 바꿀 계획을 세운 일본인들이 1931년에 그 공사를 시작해서 1934년에 거의 완성함으로써 오늘과 같이 되었다. 처음에는 낙동강 하류의 폭이 50m에 지나지 않았으나 주변의 흙을 파내어 임시로 놓은 철길을 통해 실어 올려 둑을 쌓아 지금과 같은 1000m가 넘는 폭이 만들어졌다.

낙동강 하류의 대저동, 강동동, 명지동 같은 삼각주는 낙동강 하류를 흐르는 물이 수천 수만 년 동안 흙과 모래를 실어다 날라 기름진 평야를 만들었다. 삼각주들이 언제부터 육지로 변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낙동강 하구의 끄트머리에 있는 명지도에서 조선시대를 앞서는 연대의 무덤들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오랜 세월 저편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낙동강 삼각주에 대한 첫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있다. 명지도는 김해부의 남쪽 40리 지점에 있으며 그 둘레는 17리이고 큰 비, 큰 가뭄, 큰 바람이 있기 전에는 반드시 천둥소리나 북소리, 종소리 같은 소리를 내며 우는 섬이다라고 했다. 그것은 이곳에 무성했던 갈대가 바람에 부대껴 내는 소리를 두고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철새들의 천국이었던 을숙도 앞에 서다
구포역을 지나자 구포교에 이른다. 1933년 완공되었던 구포교는 총길이 1060m에 폭은 8.4m로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 낙동강교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던 구포교는 부산과 경남을 잇는 주요 관문 역할을 했으나 낙동강변에 수많은 다리가 만들어지고 구포대교가 건설되면서 구포에서 김해 방면으로 가는 소형차들의 일방통행로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멀리 낙동대교가 보이고 그 위로 차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간다. 강 건너 저 멀리로 비행기 한 대가 서서히 내려앉고 드디어 낙동강의 하구인 하단동과 서면 그리고 김해공항으로 길은 나누어진다.

구포역을 지나면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에 이른다.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구포역을 지나 낙동강 하구로 향한다.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낙동강 위를 지나가는 남해고속도로.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낙동강 위를 지나가는 남해고속도로.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낙동강 하국둑 기념비.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낙동강 하국둑 기념비.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서걱거리는 갈대와 새들의 천국이었던 낙동강이 인간들에 의해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훼손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낙동강 하구의 대표적인 삼각주로 알려져 있는 을숙도는 70만평으로 서울의 여의도와 비슷한 면적이다. 철새들의 천국으로 자리 매김 되길 바라는 을숙도(乙淑島)는 중리 남쪽에 있는 섬으로 월숙도, 을숙도, 하단도 등으로 불리는데 김해군 대저면 맥도리에 딸려 있다가 1979년에 부산시 명지동에 편입되었다.

이곳 낙동강 하구 을숙도에 낙동강 하구둑이 준공된 것은 1987년이었다. 부산시 서하구 하단동에서 강서구 명지동까지 을숙도를 가로질러 세워진 거대한 물막이댐을 만들게 된 것은 식수와 농업용수로 쓸 강물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도시 규모가 팽창되면서 물 부족을 겪게 된 부산시가 낙동강에서 물을 확보하고자 했지만 만조 때만 되면 바닷물이 하구에서 40km 가량 떨어진 삼랑진까지 올라가면서 부산시민들이 먹는 물금취수장을 지나가기 때문에 수돗물에 바닷물이 들어가기도 했다. 또한 김해평야 역시 만조 때마다 밀려드는 짠물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하구둑을 만들었고 그 뒤부터 짠물이 섞이지 않는 강물을 1년에 75천 만톤 확보하게 된 것이다.

낙동강 하구둑이 바꾼 낙동강 하구의 모습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로 명성이 자자했던 을숙도에는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10만 마리가 넘는 철새들이 찾아왔다. 위치상으로 시베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를 잇는 철새이동로의 중간기착지였던 을숙도에 그 종류들도 206종에 10만 마리가 넘는 철새들이 찾아왔다는데 지금은 고니와 청둥오리 등 몇 종류 소수만이 찾아 올 뿐이다.

1966213일 을숙도를 중심으로 한 낙동강 하구 3799만평을 국가지정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묶으며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지정했으면서도, 정부와 부산시는 낙동강 하구둑을 건설하며 돌이킬 수 없는 우를 범하고만 것이다.

그나마 나아진 것은 낙동강에 분뇨를 마구 버려 낙똥강이라고 불리었던 부산시민들의 분뇨가 을숙도 남쪽 끝에 세워진 위생처리 관리소를 거쳐 동해 쪽의 바다에 버려진다는 것일 뿐이다.

바닷물의 유입을 막기 위해 건설된 낙동강 하구둑.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바닷물의 유입을 막기 위해 건설된 낙동강 하구둑.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원래 낙동강의 하구였던 부산 다대표의 몰운대.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원래 낙동강의 하구였던 부산 다대표의 몰운대.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낙동강하구둑 다리 위로 한국수자원공사라는 글씨가 한자씩 따로따로 떨어져 쓰여 있다. 다대포해수욕장, 하단, 을숙도로 길은 나뉜다. 흐르는 듯 흐름을 멈춘 듯 일렁이는 낙동강물을 보며 여러 생각에 젖었다.

양날의 칼이 바로 개발과 보존 인데, 어떻게 할 것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나고 태어나도 열 나라가 일어서고 쓰러져도 낙동강은 1천년이고 2천년이고 그냥 그대로 낙동강일 뿐이다.

낙동강이 원래는 다대포까지였는데, 낙동강 하구둑이 만들어지면서 강과 바다가 하구둑에서 나뉘고. 상념에 젖어 바라보는 바다는 설레듯 출렁거리고 출렁거린다. 그 물결 위로 니체의 말 한마디가 사뿐히 내려앉는다.

대지는 아직도 위대한 영혼들에게 열려있다. 거기에는 의로운 사람들을 위한 장소, 하나나 혹은 두 사람을 위한 자리 침묵의 바다냄새가 풍겨오는 그러한 장소들이 남아있다

그렇다 낙동강의 끄트머리 강물이 바다와 만나야 되는, 그러나 인공의 장벽 때문에 만나지 못하는 이 낙동강 하구둑에서 끝간 데 모르게 펼쳐져 있는 바다를 보며 자연과 나를 돌아다보며 자연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등뼈를 이룬 백두, 설악, 속리, 태백 그리고 덕유산을 비롯한 모든 산이여. 그 산자락에서 흘러내려 동서해바다로 몸을 푸는 금강, 섬진강, 한강, 낙동강, 그리고 만경강과 동진강이여. 세상을 넓게 바라보지 못한 사람들이 그대들을 배신하고 괴롭힐지라도 사람들을 감싸주고 희망을 심어 주면서 세세토록 흐르고 흘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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