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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백제의 최후와 완결을 꽃피운, 부여
백제의 최후와 완결을 꽃피운, 부여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7.05.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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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백제 - 부여
소박하고 찬란한 사비로의 여행
백제 예술의 마지막 정수를 만난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 8점 중 절반에 해당하는 4점의 유적이 자리한 부여. 사진 / 김샛별 기자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여행스케치=부여] 백제의 최후를 맞이했다는 사비성과 부소산 북쪽에서 백마강을 내려다보며 우뚝 서 있는 바위 절벽인 낙화암이 있는 곳,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사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 ‘마지막’이 서정성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마지막 수도에서 꽃피운 완숙한 백제 문화의 완결이 부여에 있다.

한성에서 웅진(공주)으로, 다시 사비(부여)로 수도를 옮긴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는 사비 백제의 마지막을 간직하고 있다. 새로운 도약과 번영을 꿈꾸며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한 백제는 철저한 계획을 세워 도시를 만들었고, 그것이 바로 부여다.

백제의 가장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에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 8점 중 절반에 해당하는 4점의 유적이 부여에 자리한다. 그러나 실제로 부여에서 사비 시대의 유적 중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오직 정림사 오층석탑 하나뿐이다. 당나라에 의해 멸망한 백제의 역사처럼, 사라진 유적들을 보기 위해선 숨결을 마주할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사라진 것들이 말해주는 것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부여 답사의 시작을 능산리 고분군에서부터 시작하길 권한다. 7개의 고분군을 지나며 왕도에 들어가는 기분을 갖게 된다고. 나성의 등줄기를 어깨너머로 바라보며 우리 역시 부여에 입성(入城)을 실감할 수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능산리고분군에서 내려다 본 부여의 풍경. 사진 / 김샛별 기자
사진 / 김샛별 기자
국립부여박물관에 견학을 온 아이들. 사진 / 김샛별 기자

사비시대 벡제의 왕은 모두 여섯. 의자왕은 죽임을 당하고 중국에 그 무덤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무왕은 익산, 성왕은 공주에 무덤이 있다. 총 7개의 고분이 있는 능산리 고분군은 왕의 숫자와 맞지 않으므로 왕족의 무덤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순선 부여 문화관광해설사는 “경주의 무덤들과 비교해 볼 때 아담해 보일 수 있지만, 왕릉이 아니라서 작은 것이 아니라 백제문화 특유의 소박함과 온유함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미 백제는 불교미술시대로 들어서며 무덤의 크기를 크게 하는 것보다는 그 안의 벽화나 고분 안의 사리장엄구에 바치는 것에 더 신경을 썼다. 이러한 백제 예술의 정수가 정림사지에 있다.

Tip
정림사지에 가기 전에 능산리 절터 서쪽 산등성이에 한 자락 남은 나성에 오르는 것을 추천한다. 성 안팎으로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의 구획을 나눈 나성은 석성으로 지어진 군사적 요충지였다. 지금은 나성의 능선을 따라 트레킹 코스가 조성되어 부여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Info 나성·능산리 고분군 
주소 충남 부여군 부여읍 왕릉로 61
문의 041-830-2511

소박한 그러나 볼수록 화려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사라졌으나 천 년 전의 역사를 간직한 채 여전히 그 자리에 우뚝 서있는 것이 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다. 목탑으로 지어졌다면 이 역시 사라졌을 터. 영속성의 부족과 화재에의 취약성을 고민한 백제인들은 석탑을 통해 종교적 영원성을 완성시켰고, 그 결과물이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백제탑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이며 우리나라 국보 제9호인 국가지정 문화재이지만 오층석탑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풍경에 역사적 상상력을 덧입히기 위해선 정림사지 박물관부터 들를 것을 권한다. 박물관에서는 정림사지를 발굴·연구·관리·전시하고 있으며 백제 불교 문화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정림사지에 가기 전에 능산리 절터 서쪽 산등성이에 한 자락 남은 나성에 오르는 것을 추천한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사진 / 김샛별 기자
백제 불교문화는 물론,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양식을 보여주는 정림사지 오층석탑. 사진 / 김샛별 기자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목조탑의 형태를 그대로 따라한 것과 달리 정림사지 석탑은 석재탑의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낸 것이 특징이다. 목탑에 비해 규모는 축소되었지만 세후여식을 간략화하여 정돈되고 세련된 조형을 창출하여 정돈된 형식미와 세련된 완숙미를 보여준다. 좁고 낮은 단층기단과 각층 우주에 보이는 민흘림, 살짝 들린 옥개석 단부, 낙수면의 내림마루 등에서 목탑적인 기법도 확인할 수 있으며 목탑의 모방에서 벗어나 완벽한 구조미를 보이며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양식으로서 의의가 있다. 

오층석탑의 아름다움을 보았다면, 이제 천천히 석탑과 멀어져 전체를 조망해보자. 정림사지는 1탑 1금당식 가람 배치 구조다. 이 가람 배치 구조는 고대 일본 가람조영의 모태가 되어 백제식과 동일한 일본의 사천왕사 양식을 낳아 백제가 일본 불교에 끼친 영향력도 확인할 수 있다. 동·서 양쪽으로 각각 연못을 파 다리를 통해 건너가게 해 일주문을 지나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었다. 이 연못 역시 현재까지 발굴된 최고(最古) 연못으로 삼국시대 사찰 조경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건축학적 측면 외에도 정림사지는 사비시대 사찰들 가운데 가장 중심에 위치해 도성과 나성을 조성할 때 계획 하에 조명되었음을 시사한다.

Info 정림사지
주소 충남 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3
문의 041-832-2721

자연의 순리에 거스르지 않는
정림사지가 그랬듯 부소산성 역시 자연을 그대로 활용한 것이 눈에 띤다. 봄이면 벚꽃이, 여름이면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이면 단풍이 물들었다 겨울이면 눈꽃이 피는 부소산은 어느 계절에 즐겨도 아름답다.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기에 왕궁의 후원 역할을 했던 곳으로 오늘날 부여 주민들의 산책길로도 사랑받는 이곳은 곳곳에 누각과 정자들이 있어 빼어난 백마강의 풍광을 즐기기 좋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부소산성 내 누각 중 하나인 영일루와 산책길. 사진 / 김샛별 기자
사진 / 김샛별 기자
관북리 유적의 전경. 사진 / 김샛별 기자

또한 위급할 때는 배후산성으로서 왕궁의 방어시설로 이용되기도 했다. 관북리유적이 궁성이라면, 나성은 도성 방어시설이며 부소산성은 그 가운데에서 산성의 역할도 했음은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부소산성 안에는 군량미를 보관했던 군창터와 군대 움막이 발견된 것이 그 흔적이다. 이는 백제 도성체계의 확립을 나타내준다. 부소산성은 백제가 멸망한 뒤 통일신라시대 및 조선시대에도 수리 보수 되어 계속 성으로 이용되었는데 이는 백제인들의 건축 기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순선 해설사는 “산의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조성한 토성에서 백제인들의 기술력은 물론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방식을 따랐던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Info 관북리 유적 및 부소산성
주소 충남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3
문의 041-830-2880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7년 6월호 [세계유산백제 -부여]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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