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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전남에서 먼저 살아보기] 농촌에는 농촌만의 시간이 있다 – 곡성 안개마을②
[전남에서 먼저 살아보기] 농촌에는 농촌만의 시간이 있다 – 곡성 안개마을②
  • 김세원 기자
  • 승인 2019.04.23 1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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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나무와 분홍빛 철쭉 보며 달리는 섬진강 자전거길
딸기 끝물, 제거 전 남은 딸기 정리 필요
귀촌귀농 선배와 함께하는 간담회 시간도 가져
사진 / 김세원 기자
곡성은 푸른 나무와 진분홍, 다홍빛 철쭉으로 가득하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여행스케치=곡성] 오전 7시 심채홍 센터장으로부터 짧은 문자가 도착했다. “오늘 오후 4시 딸기 하우스 재방문, 오후 6시 간담회가 있습니다” 점심시간 이후에도 시간은 많을 텐데 왜 하필 4시일까? 

농촌에는 농촌만의 시간 흐름이 존재한다.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일은 오전 10시까지 이어진다.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간에는 잠시 일을 쉬며 낮잠을 자기도 하고, 못다 한 일을 해결한다. 살짝 해가 기우는 4시부터 일이 다시 시작된다. 일은 해가 지면 자연스레 끝이 난다.

안개마을에서 살기 시작한 지 이틀째, 오늘은 이 마을의 시간대로 살아보리라 결심한다.

사진 / 김세원 기자
큰 길의 오르막을 오르면 안개마을 앞 딸기 하우스가 가득한 풍경이 보인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여가 시간동안 달려본 섬진강 자전거길
곡성의 주요 관광지들은 안개마을에서 모두 자전거로 1시간 안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딸기밭 정리를 도우러 가기 전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마을 근처 섬진강 자전거길을 달려보기로 했다. 머리 위로 뜬 해 때문에 덥지만 페달을 밟을수록 바람도 세져 기분 좋게 시원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오르막길을 오르면 고달면의 밭 전경이 쫙 펼쳐진다. 딸기와 멜론이 주 생산물인 이곳은 여기저기에 하우스가 많다. 첫날 딸기 따기 체험을 한 하우스도 눈에 보여 반갑다. 마을에 이곳저곳을 하나씩 더 알아갈 때마다 이곳에 좀 더 적응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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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가 큰 아름드리나무는 좋은 그늘을 선사한다. 사진 / 김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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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옆 핀 철쭉이 눈길을 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큰 아름드리나무가 보인다면 섬진강 자전거길에 거의 다다른 것. 20분 남짓 달려 숨이 차, 나무 그늘아래서 잠시 숨을 고른다. 벚꽃이 지고 곡성 하면 떠오르는 장미가 피기 전, 진한 분홍빛을 띤 철쭉이 눈을 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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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선을 따라 달리면 되는 섬진강 자전거길. 사진 / 김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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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릇푸릇한 나무 덕에 싱그러운 섬진강. 사진 / 김세원 기자

어느덧 ‘섬진강 자전거길’을 알리는 바닥의 파란 선이 나온다. 편하기로 이름난 자전거길 답게, 큰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다. 섬진강은 겨울의 황량한 색을 벗고 갓 피어난 푸릇푸릇한 초록빛 나뭇잎들로 가득하다. 살랑살랑 가볍게 몸을 싸고 도는 봄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기분이 이렇게 여유로운 일상이 계속 된다면 귀촌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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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줄기를 제거하기 전 남아있는 딸기를 정리해야 한다. 사진 / 김세원 기자

키우는 일만 힘든 게 아니고 정리하는 일도 힘들다.
첫 날의 딸기 따는 체험 이후 새로운 딸기 농장을 다시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딸기밭을 정리하기 위함이다. 여름에 수확할 멜론을 심기위해 딸기를 밭에서 제거해야 하는데, 그 전에 아직 달려있는 딸기를 따야한다.

전남에서 먼저 살기 체험자들을 비롯해 센터 직원들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일손을 돕는다. 끝물이라 열매의 크기가 잘다. 상품가치는 없지만 큰 몸에 들어가야 할 단맛이 응축된 것인지 작을수록 맛이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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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자와 센터 직원들 모두 딸기 정리에 손을 보탠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사진 / 김세원 기자
텅 비어있던 바구니가 어느새 가득 찬다. 사진 / 김세원 기자

하우스 안에 크게 틀어진 라디오를 들으며 남아있는 딸기 중 먹을 만한 딸기 따기를 시작한다. 원하는 만큼 혹은 작은 상자를 채우기만 하면 끝났던 체험과 달리 맡은 고랑의 남은 딸기를 정리할 때 까지 작업은 계속된다. “파란 채 바구니를 다 채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잠시, 작은 딸기 사이에서 괜찮은 것들을 찾다 보니 재미가 붙는다. 

높은 하우스 온도, 딸기를 따기 위해 허리를 숙인 자세 때문에 이마와 등, 허리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맺히는 땀만큼 바구니 속 딸기도 쑥쑥 불어난다. 모두 합쳐서 두 바구니 하고도, 스티로폼 박스 하나를 가득 채우자 모든 고랑 딸기 정리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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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구니 2개와 스티로폼 박스 1개를 가득 채우고 딸기 정리는 끝난다. 사진 / 김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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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심은 멜론 싹이 벌써 났다. 멜론은 다 크는데 까지 3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사진 / 김세원 기자

가시에 찔려 아픈 손등을 만지고 있자 임 센터장이 “농사 지을 만하겠어요?”하며 물어온다. 바구니를 채운 딸기를 보면 뿌듯하지만 조금 전까지 온 몸에 흘렀던 땀과 허리 통증을 생각하니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옆방의 체험자가 “귀농까지는 힘들겠지만 귀촌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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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한지 4년, 추선호 귀촌인은 곡성 ‘맛담’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 중이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외국에 와서 산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해요”
딸기를 따고 잠시 쉬자 귀농귀촌 선배와의 만남, 간담회 시간이다. 배달이 되지 않지만 주문을 해 직접 가져온 치킨까지 테이블에 놓이니 여행을 온 느낌이 잠깐 든다. 치킨을 보자 추선호 귀촌인은 “귀촌을 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 햄버거가 너무 먹고 싶어 순천까지 다녀왔다”며 말한다.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고민이라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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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을 나눠 먹으며 귀촌과 귀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간담회. 사진 / 김세원 기자

작은 일도 문제겠지만 대부분의 귀농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이 갖는 두려움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연고가 없는 사람은 적응하기 힘든지 등등. 추 귀촌인는 “연고가 없는 귀촌인도 있다”며 “마을 주민들이 새로운 사람을 밀어내지 않고 반기는 편”이라고 설명한다. 대신 배척이 없어 적응은 빨리 할 수 있지만 원래 살던 주민들에게 마을 구성원으로 인정받기까지 3~4년 정도 걸린다는 것이 그의 설명. 그는 “귀촌을 한 곳은 한국이지만, 외국에서 새롭게 정착해 산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한 번에 이해가는 비유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 비해 보수적인 면이나 도시와는 다른 시간 패턴 등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좋은 점도 많다”며 임 센터장을 말을 시작한다. “여기는 인사만 잘 하면 김치부터 쌀까지 생기는 곳이에요.” 마을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을 자랑하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도시와 비교해 조용하다는 것도 플러스 요인 중 하나이다. 김 귀촌인는 “집 마당 남는 곳에 야채를 심으면 시장에 가지 않아도 자급자족하며 살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덧붙인다.

간담회까지 마치자 귀촌이나 귀농을 결심했다면 잠시 살아보거나 이곳 환경과 비슷한 삶의 패턴으로 살아보는 시간이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체험해보지 않고는 모를 것들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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