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끝물, 제거 전 남은 딸기 정리 필요
귀촌귀농 선배와 함께하는 간담회 시간도 가져
[여행스케치=곡성] 오전 7시 심채홍 센터장으로부터 짧은 문자가 도착했다. “오늘 오후 4시 딸기 하우스 재방문, 오후 6시 간담회가 있습니다” 점심시간 이후에도 시간은 많을 텐데 왜 하필 4시일까?
농촌에는 농촌만의 시간 흐름이 존재한다.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일은 오전 10시까지 이어진다.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간에는 잠시 일을 쉬며 낮잠을 자기도 하고, 못다 한 일을 해결한다. 살짝 해가 기우는 4시부터 일이 다시 시작된다. 일은 해가 지면 자연스레 끝이 난다.
안개마을에서 살기 시작한 지 이틀째, 오늘은 이 마을의 시간대로 살아보리라 결심한다.
여가 시간동안 달려본 섬진강 자전거길
곡성의 주요 관광지들은 안개마을에서 모두 자전거로 1시간 안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딸기밭 정리를 도우러 가기 전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마을 근처 섬진강 자전거길을 달려보기로 했다. 머리 위로 뜬 해 때문에 덥지만 페달을 밟을수록 바람도 세져 기분 좋게 시원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오르막길을 오르면 고달면의 밭 전경이 쫙 펼쳐진다. 딸기와 멜론이 주 생산물인 이곳은 여기저기에 하우스가 많다. 첫날 딸기 따기 체험을 한 하우스도 눈에 보여 반갑다. 마을에 이곳저곳을 하나씩 더 알아갈 때마다 이곳에 좀 더 적응했다는 생각이 든다.
큰 아름드리나무가 보인다면 섬진강 자전거길에 거의 다다른 것. 20분 남짓 달려 숨이 차, 나무 그늘아래서 잠시 숨을 고른다. 벚꽃이 지고 곡성 하면 떠오르는 장미가 피기 전, 진한 분홍빛을 띤 철쭉이 눈을 홀린다.
어느덧 ‘섬진강 자전거길’을 알리는 바닥의 파란 선이 나온다. 편하기로 이름난 자전거길 답게, 큰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다. 섬진강은 겨울의 황량한 색을 벗고 갓 피어난 푸릇푸릇한 초록빛 나뭇잎들로 가득하다. 살랑살랑 가볍게 몸을 싸고 도는 봄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기분이 이렇게 여유로운 일상이 계속 된다면 귀촌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키우는 일만 힘든 게 아니고 정리하는 일도 힘들다.
첫 날의 딸기 따는 체험 이후 새로운 딸기 농장을 다시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딸기밭을 정리하기 위함이다. 여름에 수확할 멜론을 심기위해 딸기를 밭에서 제거해야 하는데, 그 전에 아직 달려있는 딸기를 따야한다.
전남에서 먼저 살기 체험자들을 비롯해 센터 직원들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일손을 돕는다. 끝물이라 열매의 크기가 잘다. 상품가치는 없지만 큰 몸에 들어가야 할 단맛이 응축된 것인지 작을수록 맛이 달다.
하우스 안에 크게 틀어진 라디오를 들으며 남아있는 딸기 중 먹을 만한 딸기 따기를 시작한다. 원하는 만큼 혹은 작은 상자를 채우기만 하면 끝났던 체험과 달리 맡은 고랑의 남은 딸기를 정리할 때 까지 작업은 계속된다. “파란 채 바구니를 다 채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잠시, 작은 딸기 사이에서 괜찮은 것들을 찾다 보니 재미가 붙는다.
높은 하우스 온도, 딸기를 따기 위해 허리를 숙인 자세 때문에 이마와 등, 허리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맺히는 땀만큼 바구니 속 딸기도 쑥쑥 불어난다. 모두 합쳐서 두 바구니 하고도, 스티로폼 박스 하나를 가득 채우자 모든 고랑 딸기 정리가 끝난다.
가시에 찔려 아픈 손등을 만지고 있자 임 센터장이 “농사 지을 만하겠어요?”하며 물어온다. 바구니를 채운 딸기를 보면 뿌듯하지만 조금 전까지 온 몸에 흘렀던 땀과 허리 통증을 생각하니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옆방의 체험자가 “귀농까지는 힘들겠지만 귀촌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한다.
“외국에 와서 산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해요”
딸기를 따고 잠시 쉬자 귀농귀촌 선배와의 만남, 간담회 시간이다. 배달이 되지 않지만 주문을 해 직접 가져온 치킨까지 테이블에 놓이니 여행을 온 느낌이 잠깐 든다. 치킨을 보자 추선호 귀촌인은 “귀촌을 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 햄버거가 너무 먹고 싶어 순천까지 다녀왔다”며 말한다.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고민이라 놀랍다.
작은 일도 문제겠지만 대부분의 귀농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이 갖는 두려움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연고가 없는 사람은 적응하기 힘든지 등등. 추 귀촌인는 “연고가 없는 귀촌인도 있다”며 “마을 주민들이 새로운 사람을 밀어내지 않고 반기는 편”이라고 설명한다. 대신 배척이 없어 적응은 빨리 할 수 있지만 원래 살던 주민들에게 마을 구성원으로 인정받기까지 3~4년 정도 걸린다는 것이 그의 설명. 그는 “귀촌을 한 곳은 한국이지만, 외국에서 새롭게 정착해 산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한 번에 이해가는 비유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 비해 보수적인 면이나 도시와는 다른 시간 패턴 등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좋은 점도 많다”며 임 센터장을 말을 시작한다. “여기는 인사만 잘 하면 김치부터 쌀까지 생기는 곳이에요.” 마을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을 자랑하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 도시와 비교해 조용하다는 것도 플러스 요인 중 하나이다. 김 귀촌인는 “집 마당 남는 곳에 야채를 심으면 시장에 가지 않아도 자급자족하며 살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덧붙인다.
간담회까지 마치자 귀촌이나 귀농을 결심했다면 잠시 살아보거나 이곳 환경과 비슷한 삶의 패턴으로 살아보는 시간이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체험해보지 않고는 모를 것들이 너무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