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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바람과 파도, 그리고 바위가 반겨주는 길
바람과 파도, 그리고 바위가 반겨주는 길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6.07.14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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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걷기 좋은 길 - 해파랑길 35코스
[여행스케치=강릉] 동해안에서 바다가 가장 아름다운 곳은 어딜까? 이 질문에 답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어느 지역에서든 바다는 각각의 멋과 맛을 선사할 테니. 그래도, 여름은 강릉이다. 푸른 바다를 질리도록 눈망울에 담을 수 있는 해파랑길 강릉구간의 최고 해안을 맛보러 간다.
해파랑길 35코스의 금진항~심곡항 구간. 기암괴석과 바다의 조화를 맘껏 맛볼 수 있는 길이다. 사진 노규엽 기자

해파랑길 35코스 - 옥계시장에서 정동진까지

길 위에 삶이 있다

옥계시장에서 금진항으로 향하는 길은 논과 밭 사이를 걷는 시골길이다. 사진 노규엽 기자

“옥계시장은 어떤 시장인가요?”
“시장이 물건 사고파는 곳이지, 별다를 게 뭐 있겠어요.”

외지인은 찾아간 장소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싶지만, 현지에 사는 사람에게는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이다. 강릉바우길 개척단 활동을 하며 강릉에서 살아온 김동길씨는 시장은 그저 시장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도 5일마다 열리는 전통시장이 한적한 시골동네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은 틀림없다.

1900년대부터 5일장 형태로 열리기 시작한 옥계시장은 지금까지도 명맥을 유지하며 지역민들의 인심을 엿볼 수 있게 한다. 4일과 9일이 장 서는 날이니 걷는 날짜를 맞추면 즐길 거리를 하나 추가할 수 있다.

옥계시장에서 금진항에 이르는 길은 논과 밭을 걸으며 자연과 교감하는 시골길의 향연이다. 갖가지 농작물을 두루 살펴보고, 하늘에 닿을 만큼 솟구친 소나무 숲을 걷고, 때로는 모래사장도 밟으며 두 다리를 달구는 구간이다.

강릉의 해파랑길을 걷다보면 서낭신을 모셔놓은 서낭당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장소인 서낭당은 국내 대표적인 토속신앙. 강릉에서는 농사뿐 아니라 매일 바다를 드나드는 고깃배의 안전과 풍어도 기원하였을 것이다.

옥계해변과 금진해변이 각각 작은 항구를 끼고 있는 모습이 바다에 기대어 먹고 살던 강릉 사람들의 생활을 대변해준다. 해변도, 항구도 작은 규모이지만, 그런 한적함을 찾아오는 낚시꾼과 서핑, 해수욕 등으로 바다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 그리고 해파랑길의 개통은 걷기꾼들도 이곳을 찾아오도록 했다. 

아직 해파랑길 곳곳에는 군부대용 철책으로 인해 바닷가 조망이 막히는 구간이 있어 아쉽다. 사진 노규엽 기자

파도가 만드는 꽃을 본 적이 있습니까?    
금진항 이후가 해파랑길 35코스의 최대 백미다. 강릉바우길로는 ‘헌화로 산책길’이라 명명되어 있는 이 길. 헌화로 중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 금진항에서 심곡항에 이르는 길이다.

금진항부터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차로 달려간다면 길이 가진 매력을 반도 보지 못하리라. 연안에 가깝게 자리 잡은 기암괴석들이 당장이라도 망망대해를 향해 뛰쳐나가려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질주를 막으려는 듯, 돌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 물과 돌이 만날 때마다 터져나가는 물거품은 아주 찰나의 순간동안 흰 꽃이 되어 시각을 자극한다. 이 아름다운 길이 2.2km 정도로 짧은 것이 아쉬울 정도다.

헌화로를 걸으며 ‘왠지 낯이 익은 이름인걸’이라고 생각했다면 십중팔구 정답이다. 신라 때 강릉태수로 부임해오던 순정공의 아내인 수로부인이 벼랑에 핀 꽃을 가져와주길 원했고, 아무도 나서지 못하던 상황에 소를 몰고 가던 한 노인이 꽃을 꺾어다 바치면서 불렀다던 헌화가. 그 일이 일어난 장소가 바로 이곳 헌화로다.

“붉은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받자오리다. (양주동 해독)”

사람이 갈 수 없는 천애절벽에 핀 꽃을 꺾어 바친 노인은 과연 사람이었을까? 산신이나 해신이 사람으로 화해 꽃을 꺾어준 것은 아니었을까? 연유를 알 수 없는 설화 속 길을 걸으며, 우리는 파도가 만들어내는 흰 꽃을 본다. 바람이 강해 파도가 센 날일수록 걷는 맛이 더욱 좋은 곳이 헌화로다.

바람이 센 날일수록 기암괴석에 파도가 부딪혀 하얀 꽃을 피워내는 장면을 질리도록 볼 수 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더욱 걷기 좋은 길로 거듭날 해파랑길    
이어지는 심곡항은 양양 남애항, 삼척 초곡항과 함께 동해 3대 미항(美港)이라 불리는 곳. 작은 항구이지만 헌화로를 따라 줄지은 기암괴석들과 깊고 푸른 물, 파도가 어우러진 풍경이 있어 ‘가장 아름답다’는 찬사를 듣는 게 아닐까 싶다.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이곳에 더 아름다운 풍경이 열린다. 심곡항에서 정동진까지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약 2.8km의 해안단구 탐방로가 완공을 앞두고 있어서다. 이곳은 동해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2300만 년 전의 지각변동을 관찰할 수 있는 길. 그동안은 해안경비를 위한 군 경계근무 정찰로로 사용되어 일반인에게는 단 한 번도 개방된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길을 산으로 낼 수밖에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해안탐방로가 오픈되어 바다를 보며 걷는 해파랑길이 더욱 완벽해진 것이죠.”

바다를 따라 걸을 수 없으니 산으로 길을 냈고, 그마저 조금이라도 좋은 길을 위해 몇 번이나 코스를 바꾸었다고 말하는 김동길씨. 이제 군부대의 협조로 길이 최종적인 완성을 앞두고 있다. 이렇듯 길은 끊임없이 변한다. 해파랑길은 과거부터 있어왔던 길이자, 지금 사람들을 위해 되살린 길, 그리고 앞으로 더 좋아질 길이다.

해파랑길 35코스가 마무리되는 정동진 해변. 사진 노규엽 기자

Info)해파랑길 35코스
옥계시장-옥계해변-금진항-심곡항-정동진역 약 13.8km, 약 5시간
찾아가기 : 동해고속ㆍ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 91번 이용, 옥계면사무소 정류장 하차 후 옥계시장까지 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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