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역사를 휘감는 예술목, 해남 우수영 문화마을
역사를 휘감는 예술목, 해남 우수영 문화마을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7.07.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트투어 ③ 해남
고뇌하는 이순신의 드라마 담은 마을
빈 집에는 예술이 새 주인이 되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영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과 그 신화를 함께 만든 주민들의 이야기. 사진 / 김샛별 기자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여행스케치=해남]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불러내는 것이 있다. 애국심이라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것. 하지만 영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과 그 신화를 함께 만든 주민들의 이야기도 있다. 그 역사를 예술로 풀어낸 우수영 문화마을로 향했다.

바다를 끼고 망해루까지 올라가는 길의 이름은 ‘역사의 길’. 우수영의 역사는 왜란을 빼놓곤 말할 수 없다. 우수영은 말 그대로 전라도의 우측, 울돌목 가까이에 건축된 ‘수영’이었다. 명량대첩의 기반이 된 영광은 다음날 왜군의 반격과 분풀이로 온 마을이 불탄 아픔이 남아 있다.

명량대첩 그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지다
길을 따라 난 벽화는 명량대첩과 관련한 우수영의 드라마가 담겨 있다. 눈에 띄는 것은 근엄하고 용맹스러운 표정의 이순신이 아니라 고뇌하고 슬픔의 눈을 한 인간 이순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순신 동상이 갑옷을 갖춰 입고 칼을 차고 있는 것과 달리 우수영 벽화에는 손에 지도를 들고 도포 자락을 흩날리며 울돌목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명량대첩의 승리를 그려낸 순간 역시 눈이 슬프다. 승전의 순간, 적이지만 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격한 자의 막중한 책임감이 담겨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이강준 작가의 <울돌목-바다가 울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사진 / 김샛별 기자
양현진 작가의 <각인된 기억 3>. 사진 / 김샛별 기자
사진 / 김샛별 기자
우수영의 정체성을 단어를 통해 표현한 박방영 작가의 <우수영 여행>. 사진 / 김샛별 기자

장남수 우수영 문화마을 해설사는 “오신 분들이 색이 왜 이렇게 칙칙하냐 묻곤 한다”며 “벽화들에 대부분 강한 색이 아니라 일부러 흑백톤을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인간적 고뇌와 전쟁의 슬픔을 표현한 것”이라며 동시에 “오랜 사진첩에서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지 않냐”라고 말한다. 

이 길을 쭉 따라 올라가면 보이는 망해루는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을 지켜보았다고 알려진 곳. 흰 거품을 일으키며 소용돌이치는 바다를 보며 진두지휘할 전투를 구상했을 이순신이 그려진다. 지금은 우수영 문화마을과 다리 건너편의 진도타워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쉼터다.

Info 우수영 문화마을
주소 전남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 마을 일대
문의 061-532-1330 

Tip 
대중교통을 이용해 우수영 문화마을까지 이동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해남터미널에서 우수영으로 가는 것보다 광주버스터미널(유스퀘어)에서 우수영(진도행)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 것이 빠르다. 

동백, 강강술래, 용잡이 등 우수영의 이야기
“저 작품 보입니까?” 장남수 마을해설사의 손짓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양현진 작가의 <각인된 기억> 시리즈 중 하나다. 실크전사로 뽑은 글귀와 사진을 제작한 유리조각으로 모양을 만든 작품이다. 사람의 머리 모양 안에 동백과 울돌목의 바다가 표현되어 있고, 더 자세히 살펴보면 마을 주민들의 얼굴이 그 안에 빼곡하다.

장남수 마을해설사는 “동백은 해남의 군화고, 우수영은 울돌목의 정신”이라며 “마을 주민들이 가슴 속에, 머리 속에 늘 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마을미술 프로젝트가 단순한 미술품 설치나 벽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마을 주민들의 감성과 지역의 정체성을 담아냈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해남 출신의 이정순 작가의 <우수영의 전래문화>는 전라 우수영 수군진에서 정월대보름에 열리는 ‘용잽이놀이’를 타일을 이용해 현대적 이미지로 재해석했다. 또한 유네스코 문화유산이자 우수영마을 주민들의 정신인 강강술래와 농악놀이, 부녀농요 등을 동판으로 표현한 작품들도 눈에 띤다. 

이천기 작가가 만든 <술래공작소>는 우수영 일대에 전승·연회되는 놀이인 강강술래, 가마등, 남생아놀아라, 지와밟기 등 여러 대목 중 12개의 작품을 도자벽화로 표현했다. 이곳에서는 미리 예약 후 방문하면 도예체험도 해볼 수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땅끝하나 팀이 복원해 새로운 커뮤니티 공간이 된 <면립상회>. 사진 / 김샛별 기자
사진 / 김샛별 기자
마을안내소 역할을 하는 <복덕방>. 사진 / 김샛별 기자

빈 집에 기록된 지난 삶들
진도와 해남을 잇는 우수영마을은 1970년대 이후 저잣거리와 면사무소, 우체국, 초등학교 등이 이전하면서 급격히 쇠퇴했다. 역사의 배경은 유수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쇠퇴하게 되어 빈집이 조금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이 빈 집을 활용한 아트하우스 프로젝트들엔 그간의 우수영이 담겨 있다. 남문에서 동문까지 저잣거리를 중심으로 비어 있는 점포 5곳을 아카이브관, 나무이야기, 면립상회, 복덕방, 문방구라는 이름으로 예술 공간을 조성해두었다. 

<면립상회>는 과거 상가였다 집이기도 했던 공간의 역사를 담아낸 작품이다. 1440년 군사 주둔지 수영이 설치되면서 인구가 늘고, 남문을 중심으로 시장 거리가 형성되어 선착장의 번화가였던 흔적을 모아두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해남 농수특산물을 우수영 창에 저장해 수탈했던 일본이 각종 생활용품 잡화, 목화, 술, 포목, 농기구 등을 판매했던 역사가 있다. 목화재배와 포목판매가 주를 이뤘던 그 시기를 콘셉으로 잡아 목화에서 실이 나오는 과정을 담은 실의 방, 천과 바느질 도구, 다리미, 옷이 있는 방으로 연출되어 있다. 현재 집의 주인이 목수인 것에 착안해 실제 사용했던 연장들과 나무들도 한쪽 벽면에 채워져 있다. 여기에 마을 주민들의 생활유품과 그 시절의 흑백사진들이 있어 추억을 돋운다.

맞은 편 <복덕방>은 구 현대부동산이 있던 자리. 복덕방이라는 커뮤니티 공간을 마을안내소로 복원한 것이다. 500원을 넣으면 마을사람들의 덕담이 담긴 종이를 뽑을 수 있는 자판기가 흥미를 자극한다. 가장 안쪽의 금두꺼비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모니터에 미리 저장된 마을 주민들의 덕담이 랜덤으로 나온다. 함께 쉬어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이자 주민과 관람객의 새로운 만남의 형태를 의도한 것. 

사진 / 김샛별 기자
우수영 문화마을 미술감독을 맡은 최문수 작가를 <수다방>에서 만났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사진 / 김샛별 기자
망해루 옆에 설치된 우수영 초등학생의 시. 사진 / 김샛별 기자

<복덕방> 바로 옆의 <수다방>은 마을 주민의 추억을 스토리텔링해 작품화한 것이다. 이미선 작가가 알아듣지 못했던 사투리를 벽면에 붙였고, 오래전 신문이 붙은 문짝, 아름다운 자수 문양 등을 주워 작품화했다. 옛것과 새것이 혼용된 이 공간에는 작가가 직접 주민들과 함께 만든 도자기 꽃도 전시되어 있다.

시가 어루만지다
우수영을 한 바퀴 돌다보면, 곽재구 시인의 시와 우수영 초등학교 학생들의 시가 곳곳에 보인다. 솔직하고 재치 있는 아이들의 시는 곽재구 시인이 우수영에 내려와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그 중에서 직접 뽑아낸 것. 여기에 곽재구 시인이 우수영에 선물한 3편의 시가 타일에 곱게 담겨 있다.

곽재구 시인은 “우수영 하면 이순신만 떠올리는 데,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내는 데는 한 명 한 명의 민초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그 정신이 이어져 지금의 우수영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우수영의 혼과 정신을 예술로 담아내 마을의 명맥을 지키려는 운동이 우수영을 휘감고 있다. 

최근, 원래의 자리가 아닌 학동리 청룡산에 자리했던 명량대첩 승전비도 원설립지인 우수영 문화마을(문내면 동외리)로 이전되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와 함께 개방했다. 살아있는 역사교과서 역할로의 우수영 문화마을이 더 기대된다.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7년 8월호 [아트투어]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