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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사람들이 잠들다, 양화진 성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사람들이 잠들다, 양화진 성지
  • 조용식 기자
  • 승인 2017.07.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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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가 많아 ‘양화(楊花)’라는 마포구 합정동
천주교와 개신교의 성지가 한 곳에 공존
사진 / 조용식 기자
한국인 순교자를 비롯해 순교성지가 된 양화진. 사진 / 조용식 기자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여행스케치=서울] 버드나무가 많아 ‘양화(楊花)’라는 이름으로 불린 마포구 합정동. 경치 좋은 나루터가 있는 양화나루에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 천주교의 절두산 순교성지와 개신교의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이 있는 이곳을 서울시와 마포구는 ‘양화진 성지’라고 명명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성지가 한 곳에 공존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심사가 된 ‘양화진 성지’. 합정역 7번 출구를 나와 당산철교 방향으로 걸어가다 커다란 안내판을 만난다. 절두산 순교성지와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소개가 자세히 적혀있다. 이 안내판을 지나 한강 방향으로 걸어가면 ‘양화진 성지’를 만나게 된다.

천주교 신자들의 무덤, 절두산 순교성지 
양화나루에 우뚝 선 언덕에는 절두산 순교성지가 세워져 있다. 예전에는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잠두봉이라 불렀지만, 1866년 병인박해로 인해 천주교 신자들의 무덤이 되면서부터 ‘머리가 잘린 산’이라는 의미의 절두산으로 바뀌었다.

절두산 순교성지에 들어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가장 한적한 곳에 유리관으로 장식된 십자가가 바닥에 놓여있다. 그 앞으로 성 남종삼 요한의 흉상이 자리하고 있다. 흥성대원군에게 촉망을 받는 관리이자 천주교 신자였던 남종삼은 병인박해와 인연이 깊다.

사진 / 조용식 기자
유리관으로 장식된 십자가 주변으로 성 남종삼 요한의 흉상과 비문이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사진 / 조용식 기자
순교자들의 모습과 이름이 새겨진 순교자 기념탑. 사진 / 조용식 기자

19세기 말 러시아가 남쪽으로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프랑스와의 조약을 맺자고 제안한 남종삼의 제안을 흥선대원군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프랑스 선교사가 한양에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천주교에 대한 흥선대원군의 정책은 화천에서 배천으로 바뀌게 된다. 이후 천주교의 박해가 시작되고, 1866년 병인박해로 수많은 천주교인이 이곳 절두산에서 머리가 잘리는 처형을 당하게 된다. 

서재순 양화진 뱃길 탐방 해설사는 “결국 남종삼은 나이 50세에 서소문에서 프랑스 주교들과 함께 순교하였고, 1984년 한국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 되었다”고 설명한다.

기도 행렬이 끊이지 않는 김대건 신부 동상
성지 중앙에는 김대건 신부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독실한 천주교신자 집안에서 태어난 김대건 신부는 최방제, 최양업과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에서 신학공부를 한다. 1845년 사제서품을 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신부가 되지만, 더 많은 프랑스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 뱃길 탐사를 갔다가 체포되어 결국 처형을 당하게 된다. 

김대건 신부를 체포한 관리들은 총명하고 똑똑한 기품에 반해 천주교를 배신하면 목숨을 살려주고, 관직도 주겠다고 회유했으나, 오히려 관리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다 처형을 당한 김대건 신부. 당시 그의 나이는 26살이었다. 성직자로서의 활동은 1년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뛰어난 학식과 굳건한 신앙심이 모범이 되어 1984년 로마교황청으로부터 성인의 칭호를 받았다. 

사진 / 조용식 기자
김대건 신부 동상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천주교 신자의 모습. 사진 / 조용식 기자

한강이 바라도 보이는 곳에는 김대선 신부 동상과 쇄국정책의 상징인 척화비가 세워져 있다. 김대건 신부의 동상은 이곳을 찾는 신도들에게 기도와 함께 소망을 비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두 손을 마주 잡고 있는 김대건 신부 동상에 손을 올리고, 한참을 기도하는 신도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김대건 신부 동상 앞으로는 다섯 성자의 마지막 쉼터로 알려진 ‘오성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병인박해 당시 프랑스 신부 3명, 한국인 신도 2명이 갈매못으로 가던 도중에 잠시 쉬었던 곳이다. 이들은 넓찍한 바위에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서로를 격려하며 기도하고 성가를 불렀다고 한다. 1984년 5명 모두 복자에서 성인으로 시성된 후에 ‘오성바위’라고 불리고 있다.

조선 근대화를 위해 활동한 선교사들
절두산 순교성지 대각선으로 있는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은 서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의료, 교육, 언론 등에서 활동한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묘역 바로 옆에 위치한 양하진홀은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된 선교사들의 삶을 기리고 재조명하기 위한 공간이다. 양화진의 역사와 한글번역성경, 묘비의 탁본 등 선교사들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을 둘러보는 사람들. 사진 제공 / (주)컬처앤로드
사진 / 조용식 기자
뱃길 탐사프로그램인 ‘나의, 양화나루 유람기’ 프로그램의 참가자들. 사진 / 조용식 기자

마포구가 주최하고 (주)컬처앤로드 문화유산활용연구서가 주관하는 ‘나의, 양화나루 유람기’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양화진 성지를 더욱 알차게 여행할 수 있다. 임소영 (주)컬처앤로드 연구원은 “우리나라 근현대 역사 문화를 한눈에 살펴보는 뱃길 탐사 프로그램”이라며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을 중심으로 절두산 순교성지,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밤섬, 선유도 일대를 유람하는 코스”라고 소개한다. 오는 9월 6일과 27일, 10월 20일(새우젓 축제)과 25일에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회당 40명으로 진행하며, 체험비는 1인당 5000원이다. 문의 02-719-1495

Info 절두산 순교성지
관람료 자율적인 봉헌금(10인 이상 단체 관람시 사전 예약)
이용시간 화~일요일(오전 9시 30분 ~ 오후 5시)
주소 서울 마포구 토정로6
문의 02-3142-4504

Info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관람료 무료
이용시간 월~토요일(오전 10시 ~오후 5시)
주소 서울 마포구 양화진길 46
문의 02-332-9174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7년 8월호 [마포 구석구석]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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