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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쌍굴에 남은 6.25전쟁의 상흔, 그해 여름 노근리를 기억하다
쌍굴에 남은 6.25전쟁의 상흔, 그해 여름 노근리를 기억하다
  • 유인용 기자
  • 승인 2019.05.03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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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피란민 200여 명 학살 '노근리 사건'
노근리평화공원에서
이달 18일에는 노근리장미축제 개최
사진 / 유인용 기자
충북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는 6.25전쟁 당시 임계리 주민 200여 명이 희생된 '노근리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여행스케치=영동] 충북 영동의 노근리 마을에서 영동 시내로 나오는 길목에는 길이 약 25m, 폭이 7m 남짓한 작은 쌍굴이 있다. 굴다리 양옆으로는 총탄의 흔적을 표시한 수백 개의 작은 흰 원이 그려져 있다. 6.25전쟁 당시 임계리 주민들이 다수 희생된 ‘노근리 사건’의 흔적이다.

총탄 자국은 굴의 내부 벽과 천장에도 남아 있다. 흰 원은 총탄을 맞은 흔적이고 세모는 아직도 총탄이 박혀 있는 곳이다. 굴 위쪽으로는 경부선이 지나고 쌍굴은 여전히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통로 역할을 한다. 쌍굴에서 큰길 건너편으로는 당시 사건을 추모하는 노근리평화공원이 조성돼 있다. 

노근리평화공원의 특별한 장미
6.25전쟁이 발발했던 6월이 다가오면 노근리평화공원은 유독 붉은 빛으로 물든다. 5만 송이가 넘는 장미꽃이 4500평에 이르는 부지를 가득히 채우며 피어난다. 올해 장미축제는 5월 중순에 열리지만 꽃송이들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듯 6월 25일 위령제를 지낼 때까지 활짝 핀 상태를 유지한다. 

최순자 영동군청 문화관광해설사는 “빨간 장미, 분홍 장미 등 다양한 빛깔의 장미들이 공원 전체를 수놓는 모습이 장관”이라며 “장미는 인근에서 화원을 하는 분이 공원의 분위기를 보다 밝게 만들고자 기증한 것”이라고 말한다.

노근리 사건이 일어났던 7월 말 즈음이 되면 연못에서 연꽃의 개화가 이어진다. 질퍽한 진흙에 뿌리를 내리고 수면 위로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연꽃의 모습이 마치 아픈 과거를 뒤로 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 노근리평화공원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하다. 9월 초에는 연꽃과 가을 장미를 함께 볼 수 있는 연꽃문화제가 열린다.

사진제공 / 영동군청
노근리평화공원에서는 이달 18일 장미축제가 개최된다. 사진제공 / 영동군청
사진제공 / 노근리평화재단
노근리평화공원에서는 9월 경 연꽃문화제가 개최된다. 사진제공 / 노근리평화재단
사진 / 유인용 기자
노근리 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탑. 사진 / 유인용 기자

노근리 사건을 추모하는 공간
여름철에는 이처럼 장미와 연꽃을 볼 수 있지만 노근리평화공원의 평화기념관은 연중 문을 열고 방문객들을 기다린다. 기념관 외부는 총탄을 맞은 철교 아래 굴다리에서 모티프를 따 둥근 구멍이 숭숭 난 철판으로 만들어졌다. 기념관에서는 노근리 사건의 경위 및 희생자들의 이름과 관련 유물,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 등을 알아볼 수 있다.

최순자 해설사는 “미군은 6.25전쟁 당시의 양민 학살을 쉬쉬해왔는데 미국 AP 통신이 일 년 반의 기획 취재 끝에 1999년 노근리 사건을 대서특필했다”며 “이후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사건을 인정했고 한‧미 공동수사가 진행되면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기념관 지하에서는 사건 관계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도 들어볼 수 있다. “미군 사령부가 민간인을 죽일 것을 명령했다”는 미군의 증언, “총을 맞고 쓰러진 엄마의 품 안에서 기적처럼 살아났다”는 생존자의 증언 등이 담긴 영상 파일을 재생해볼 수 있다.

기념관 앞에는 사건을 추모하는 조각품들이 모여 있다. ‘모자상’은 당시 쌍굴에서 출산을 하고 숨진 어머니의 젖을 아이가 빨고 있는 비극적인 모습을 재현했다. 공원 북쪽에는 위령탑이 서 있고 공원 안쪽으로는 장갑차와 군용 트럭, 군용 비행기 등 6.25전쟁과 관련된 전시물이 전시됐다. 공원 뒤 동산에는 당시 숨진 희생자들의 합동묘가 있다.

Info 노근리평화기념관
입장료 무료
운영시간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30분 (11~2월은 오전 10시~오후 5시, 월요일 휴관)
주소 충북 영동군 황간면 목화실길 7

사진 / 유인용 기자
노근리평화공원의 기념관. 기념관 외부는 총탄을 맞은 철교 아래 굴다리에서 모티프를 따 둥근 구멍이 숭숭 난 철판으로 만들어졌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사진 / 유인용 기자
당시 쌍굴에서 출산을 하고 숨진 어머니의 젖을 아이가 빨고 있는 비극적인 모습을 재현한 '모자상'. 사진 / 유인용 기자
사진 / 유인용 기자
노근리 사건을 최초로 다룬 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사진 / 유인용 기자

미군을 따라 떠난 피란길
그렇다면 1950년 여름, 노근리와 임계리에서는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추풍령의 남쪽에 자리한 임계리는 영동의 민주지산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 한 자락의 산골마을로 한때 100여 가구가 살 정도로 큰 마을이었다. 질 좋은 황토가 풍부해 가마터가 5개나 있었고 마을 뒤편에는 황금을 캐는 금광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6.25전쟁 당시 미군들이 지나가면서 임계리는 과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전쟁이 발발하고 한 달 여 지난 7월 중순, 임계리에 미군들이 나타나 주민들에게 피란을 떠날 것을 주장했다. 25일 저녁 주민들은 미군의 인솔 아래 피란길에 올랐고 경부선 철길을 따라 황간 방향으로 이동했다. 다음날인 26일 한낮 즈음, 철로 아래로 노근리를 잇는 쌍굴다리가 나왔다.

미군들은 피란민들을 모두 굴다리 위 철로로 올라가도록 한 뒤 별안간 총격을 시작했다. 군용 비행기가 날아와 폭탄을 터뜨렸고 굴다리 일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피란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총격을 피해 쌍굴 안으로 몸을 피했다. 미군은 굴 양쪽에 진을 치고 굴 내에서 인기척이 날 때마다 총을 쐈다. 굴다리를 지나는 개천은 피로 붉게 물들었고 총격은 꼬박 3박4일 동안 이어졌다. 미군이 철수하고 나서야 비로소 생존자들이 굴에서 나올 수 있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노근리 쌍굴다리 양옆으로는 수백 개의 총탄 흔적이 남아 있다. 세모는 아직도 총탄이 박혀 있는 곳이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사진 / 유인용 기자
쌍굴 내부에도 당시 학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사진 / 유인용 기자
최근 임계리 마을의 밭에서 발견된 총탄. 사진 / 유인용 기자

미군이 주민들을 학살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있지만 북한군에 대한 미군의 보복 심리라는 것이 주된 의견이다. 당시에는 북한군들이 농민으로 위장해 마을에 잠입해 있다가 미군을 기습 공격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미군에서 피란민들을 구호의 대상이 아닌 적으로 간주하면서 학살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최순자 해설사는 “6.25전쟁 당시 미군의 양민 학살은 전국 120여곳에서 발생했는데 노근리 사건도 그 중 하나”라며 “노근리 쌍굴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수는 대략 200~300명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한다.

새롭게 바뀐 황금을 따는 마을
노근리 사건이 있은 지 69년. 이제 임계리 마을에서는 당시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가마터와 금광으로 부유했던 과거의 모습은 사라졌고 밭에서는 요즘도 가끔 총탄이 발견되지만 마을 사람들은 임계리를 새롭게 꾸려나가고 있다.

마을의 전체 분위기는 우려와는 달리 생동감이 넘친다. 40여 가구 6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임계리는 대부분 농가에서 복숭아와 밤, 사과, 포도 등 농사를 짓는다. 황토로 만들어진 마을 담장에는 마을 특산품인 버섯과 포도 등 귀여운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최근에는 ‘황금을 따는 마을’이라는 이름을 달고 제철 과일 따기나 감자 캐기, 도자기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 마을도 운영하고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임계리 마을의 풍경. 사진 / 유인용 기자
사진 / 유인용 기자
임계리 마을의 황토로 만들어진 담벼락에는 귀여운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한 임계리 주민은 “노근리 사건은 마을 사람들에게 다신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픈 사건이었기 때문에 마을에는 당시와 관련된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말한다.

임계리 마을에서 노근리평화공원까지는 약 10km. 그 당시 임계리 주민들이 저녁부터 다음날 한낮까지 꼬박 걸은 길이 차량으로는 약 15분 거리다. 쌍굴과 기념관을 둘러보며 노근리 사건을 되짚어 보고 공원에서 장미와 연꽃을 감상한 뒤 임계리 마을에서 간단한 체험 활동을 하면 하루 코스로 알맞다. 호국보훈의 달, 마냥 묵직하지만은 않게 6.25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는 여정이기도 하다.

Info 황금을 따는 마을
주소 충북 영동군 영동읍 임계1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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