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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8월호
[여행 레시피] 암벽 위에 걸린 섬진강변의 작은 암자, 구례 오산 정상의 사성암에서
[여행 레시피] 암벽 위에 걸린 섬진강변의 작은 암자, 구례 오산 정상의 사성암에서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19.06.04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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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명의 스님이 머물렀던 사성암
사성암 대표 문화재인 약사유리광전부터
꽃과 함께 쉴 수 있는 한옥 카페 무우루까지
원효·의상·도선·진각 등 네 명의 스님이 머물렀다 하여 이름 붙은 사성암.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구례] 전남 구례군 문척면에 솟은 오산(531m)은 인근 지리산에 비하면 그야말로 동네 뒷산이지만 섬진강을 끼고 누운 데다 조망이 좋아 찾는 이가 많은 편이다.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과 같으며 예부터 소금강”으로 불렸던 이 산 정상부엔 백제시대 연기조사에 의해 건립된 사성암이 있다. 본래 오산암이었던 것이 원효·의상·도선·진각 등 네 명의 스님이 머물렀다 하여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사성암은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 이래로 고려시대까지 고승들의 수도처였고, 지금도 많은 이들의 기원이 맴도는 곳이다.

구례로 가는 기차 안, 직사각형의 넓은 창문으로 스치는 바깥 풍경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먼 미래의 인류는 먼 곳을 보는 능력, 근시가 퇴화될 수도 있겠다’ 생각해보니 언제부턴가 먼 곳을 볼 일이 없어졌다. 책상 위의 컴퓨터, 손안의 스마트폰, 네모난 아파트와 교실, 창문을 열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시야를 가로막는 건물과 벽들로 눈은 늘 가까운 곳에 고정돼 있었다. 구례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모처럼 초록으로 물든 먼 곳의 산을 본다. 빠르게 달리는 기차 밖 풍경은 초록 물에 젖은 붓처럼 쭉, 두툼한 선을 긋고 있었다.

구례의 역이 구례역이 아닌 구례구역이 된 이유는 이곳이 순천 땅이기 때문이다. ‘구례’ 뒤에 붙은 ‘구’는 입구라는 뜻으로, 순천시 황전면에 있는 이 역에서 구례교를 건너 섬진강을 넘어야 비로소 구례 땅이 된다. 멀고 높은 곳을 보려면 노고단(1507m)이 제격이지만 이번엔 오산에 위치한 사성암으로 간다. 오산은 섬진강 너머의 산이지만 그만큼 지리산을 잘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성암까진 차량 통행이 가능하지만 주차 공간이 협소해 주말을 포함한 휴가철엔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야 한다. 오전 8시 20분부터 오후 6시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셔틀버스의 요금은 왕복 3400원, 편도 1700원. 

사성암으로 가는 오르막에서 뒤를 돌면 섬진강의 모습이 펼쳐진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죽연마을 주차장을 떠나 사성암으로 향하는 버스는 저 아래 섬진강을 두고 구불구불 굽이진 길을 따라 올랐다. 고도가 제법 되는지, 순간 귀가 찌릿하다 뻥 뚫린다.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뜨거운 햇살이 쏟아진다. 하필 주차장에서 사성암까진 가파른 오르막이다. 몇 걸음 떼었을 뿐이지만 벌써 등이 흥건하다. 숨을 몰아쉬며 뒤돌아보니 남원을 지나 구례 들녘을 적시는 섬진강의 모습이 뚜렷하다.

사성암의 대표적 문화재인 약사유리광전.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황금색으로 음각된 사성암 마애여래입상
KBS 2TV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팀은 이 높은 암자에서 스님들과 족구를 해 화제가 됐었다. “저기가 족구를 했던 곳이구나!” 아직도 사성암을 찾은 관광객들은 그 이야기를 한다. 사극 ‘추노’ ‘토지’ 등도 절벽에 걸린 이 암자에서 촬영됐다. 절 입구에서 길은 양쪽으로 갈린다. 약사유리광전은 오른쪽이고, 소원바위, 지장전, 도선굴, 나한전, 산왕전 등 나머지는 왼쪽에 있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3호이자 명승 제111호인 사성암의 대표적 문화재는 25m 절벽에 지어진 약사유리광전이므로 먼저 우측으로 방향을 튼다.

바위 한쪽을 채운 소망과 기원이 담긴 황금빛 하트 소원지.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바위벽에 에둘러 덧대진 계단을 올라선다. 남쪽에서 쏟아진 뜨거운 햇살이 새하얀 돌바닥에 부딪혀 눈이 부셨다. 길을 꺾어 오르자 바위 한쪽이 온통 황금빛이다. 각자의 소망과 기원을 담은 글들이 황금빛 하트 소원지에 빼곡하게 적혔다. “어디 사는 누구 공무원 시험 합격” “그곳에 사는 누구는 만수무강” 스님은 불자들의 소원을 주소까지 불러가며 세심하게 기원하고 있었다.

약사유리광전은 1년여 간의 보수 공사를 끝내고 지난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불당 안 유리벽 너머엔 황금색 선으로 음각된 고려 초기 작품 마애여래입상(시도유형문화재 제220호)이 있다. 높이 약 3.9m로 “오른손을 들어 중지를 잡고 왼손은 손가락을 벌려 가슴 앞에 대고 있는” 아미타수인에, 법의는 통견, 다소 도시적이란 평을 받고 있다. 기원을 끝내고 나서는 스님에게 반배를 하고 섬진강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땀으로 젖은 머릿결을 시원한 바람이 몇 차례 훑고 지난다.

딱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설이 있는 사성암 소원바위.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소원바위와 오산 산행
소원바위 쪽 계단을 오른다. 800년쯤 됐다는 귀목나무 그늘 아래 몇몇의 사람들이 쉬고 있다. 나한전, 산왕전, 지장전 등을 차례로 지나면 청동 불상 옆으로 소원바위가 보인다. 바위 벽면에 다닥다닥 동전이 붙었다. 동전 몇 개로 소원을 빌고 이뤄지길 바라는 게 민망할 지경인데, 바위는 마치 미안해하지 말라는 듯 넓고 곧은 어깨로 위로하고 있었다. 

소원바위 옆엔 배례석도 있다. 배례석은 절을 찾는 불자들이 부처님께 합장하고 예를 갖추는 장소다. 사성암에선 수행하는 스님들이 이 배례석에서 화엄사를 바라보며 부처님께 예를 올렸다고 한다. 

바람과 빛이 통하는 도선굴. 이 옆으로 오산 정상까지 오르는 계단이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소원바위 옆 쪽에 자리한 배례석.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이쯤에 서면 구례를 양쪽으로 가른 시원한 강줄기와 그 강을 기준으로 나뉜 구례의 풍경, 또 지리산 만복대 종석대 노고단 반야봉 왕시루봉과 이름을 일일이 알 수 없는 산봉우리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건물과 모니터에 갇힌 눈이 모처럼 먼 곳, 초록으로 청량한 자연 풍경 앞에서 호강한다.

오산 산행은 이 사성암에서 시작한다. 소원바위 데크를 따라 계단을 올라서면 곧 오산 정상이고, 이후로는 걷기 좋은 산길이다. 숲으로 들어서자 앙칼진 솔잎 사이사이로 한낮의 뜨거운 햇살이 거울조각처럼 퍼져 나갔다. 

위쪽으로 올라서니 나한전과 섬진강, 지리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두어 개의 봉우리를 넘으면 피라미드처럼 삼각으로 선 자래봉이 가깝고, 그 너머로 둥주리봉이 보인다. 곳곳에 전망대 역할의 정자도 있어 쉬어가기 좋다. 툭 트인 암릉에 서서 폐부 깊숙이 오산의 숨결을 들이킨다. 바람 안엔 섬진강의 물 냄새와 지리산에서부터 날아온 산 냄새가 골고루 섞였다.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 초록색 바람이다.

죽연마을에 자리한 한옥을 개조해 만든 카페 무우루.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카페 무우루에서의 휴식  
카페 무우루는 사성암 셔틀버스 매표소 맞은편 죽연마을에 있다. 매표소를 등지면 횡단보도 2개가 보이는데 그중 왼쪽의 횡단보도를 건너야 가깝다. 어깨까지 올라온 돌담에 빨간 장미가 탐스럽다. 붉은 꽃잎 너머로 한옥을 개조한 카페가 언뜻언뜻 보인다. 반쯤 열린 대문으로 빠끔 고개를 들이민다. “우와!” 저절로 짧은 감탄사가 쏟아진다. 마당 가득 풍성하고 예쁜 들꽃들이 그득했다. 빨랫줄에 걸린 하얀 앞치마는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처럼 흔들렸다. 카페 안 모든 풍경은 그 자체로 꽃이다.

여러 꽃들이 카페 마당을 물들여 탄성을 자아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장미치즈케이크와 제주산 블루베리 에이드.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이미 몇몇 손님들로 채워진 실내 대신 툇마루 한쪽, 작은 소반 앞에 자리를 잡는다. 주인장이 주고 간 메뉴판은 한지다. 조금씩 찢어진 한지 위엔 직접 그린 그림과 손으로 꾹꾹 눌러쓴 메뉴명이 적혔다. 쑥치즈케이크, 흑임자 인절미 무스케이크, 단군신화 파운드케이크, 옥수수치즈케이크…. 한참을 고민하다 담장에 걸린 장미가 떠올라 장미치즈케이크와 제주산 블루베리 에이드를 고른다. 음식이 준비될 동안 카페 안을 두리번두리번 살펴본다. 굳이 꾸미지 않아도 예쁜 곳이다. 이 집의 음식 대다수는 천연의 재료를 이용한다. 달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아 오히려 더 좋은 곳, 꼭 구례의 자연을 닮았다.

굳이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카페 무우루의 음식 대부분은 천연재료를 사용해 만든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카페 주인 강영란씨는 30여 년간 중학교 역사 교사로 근무했다. “교사로서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걸어야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더 전해줄 수 있다”는 이유로 틈만 나면 국내 곳곳의 산과 강을 걸었고, 거리를 넓혀 인도와 유럽 등을 다니기도 했다. 지난 2014년엔 딸과 함께 걸은 고비사막 여행기 <엄마와 딸, 바람의 길을 걷다>를 펴냈고, 두어 차례 사진전도 개최한 작가기도 하다. 손님을 맞고 보내느라 분주한 그녀와는 달리 툇마루 한쪽에 앉아 부드러운 빵 조각을 입안에 넣고 녹이는 여행객은 한없이 평화롭다.

원데이 사성암 여행 레시피
① 대중교통이든 자가용이든 상관없이 사성암까진 셔틀버스를 타고 가는 게 좋다. 죽연마을 앞에 매표소가 있고, 차를 세워둘 주차장이 있다. 오전 8시 20분부터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어른 기준 왕복 3400원, 편도 1700원이다. 문의_ 061-781-6111
② 셔틀 종점인 사성암 주차장에서 사성암까지는 가파른 오르막이지만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사성암엔 별도의 입장요금이 없다. 이정표를 따라 약사유리광전을 보고, 그 후에 소원바위 쪽으로 올라간다. 순서는 바꿔도 상관없다. 소원바위 옆에 오산 등산로가 있으므로 산행을 겸할 생각이라면 소원바위를 마지막으로 가야 한다.
③ 사성암 바로 위가 오산 정상이다. 이후 매봉~자래봉~선바위전망대 갈림길 등을 거쳐 마고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는 약 7.3km에 3시간쯤 걸린다. 오산 산행 후 또는 사성암만 본 후 셔틀버스 주차장이 있는 카페 무우루(061-782-7179)에서 여유를 즐긴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문을 열며, 노키즈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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