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10월호
[신정일의 한강1300리 걷기 ③] 정선군 임계면 월탄리에서 정선 아우라지까지
[신정일의 한강1300리 걷기 ③] 정선군 임계면 월탄리에서 정선 아우라지까지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 승인 2019.06.19 14: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암석 위에 자리한 구미정
동굴이 여러 개 보이는 정선과 삼척
정선 아리랑의 기원이 된 아우라지
정선군 임계면에 자리한 낙천리에 흐르는 한강 물줄기.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정선군 임계면에 자리한 낙천리에 흐르는 한강 물줄기.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여행스케치=정선] 월탄마을에서부터 혈천동에 이르는 물길은 8자 형으로 굽이쳐 흐른다. 강 건너 가파른 절벽과 동굴에서는 물오리 몇 마리가 날아오른다. 굴속에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넓은 못이 있었기 때문에 혈천동이라 이름 지은 혈천마을의 혈천교를 지나자 조선조 때 임계역이 있었던 역평마을에 도착한다.

벼랑 위에 자리한 구미정은 봉산리의 골지천가 암석 위에 세워졌다.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벼랑 위에 자리한 구미정은 봉산리의 골지천가 암석 위에 세워졌다.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구미정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우리 땅 걷기 회원들. 사진 / 여행스케치 DB

아홉까지 경치가 특색 있는 암석 위 구미정
소나무 아래를 걸어가며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솔바람 태교를 생각해 본다. 옛사람들은 아이를 가지게 되면 소나무 아래에 바르게 앉아 솔잎을 가르는 장엄한 바람소리를 온몸으로 맞으며 들었다고 한다. 밉고 고운 정, 시기와 증오, 원한 등 모든 앙금을 가라앉히기 위해 솔바람 소리를 태아에게 들려주었다는데 이 얼마나 아름답고 슬기로운 태아법인가.

소나무숲 우거진 산을 가로질러 내려가니 새로 만든 다리가 보인다. 휴일이라 놀러 온 사람들 몇 있다. 사이다 한 잔씩을 얻어 마시고 나선 길은 이제 탄탄대로이다. 흐르는 물길을 따라 한참 내려가 구미정에 도착한다. 

구미정으로 향하는 길  물길 위로 나무다리가 놓였다.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구미정으로 향하는 길 물길 위로 나무다리가 놓였다.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골지천을 끼고 도는 낙천리 바위안 마을의 풍경이 평화롭다.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골지천을 끼고 도는 낙천리 바위안 마을의 풍경이 평화롭다.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정선군 임계면 봉산리 골지천가의 넓은 암석 위에 세워진 구미정은 규모는 열 평 정도로 조선 숙종 때 이조참의를 지냈던 이치가 기사사화를 피하기 위해 이곳 봉산리에 은거하면서 세웠다고 전해진다.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그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이 정자를 중심으로 주위의 경치가 아홉 가지 특색이 있다고 하여 구미정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항상 물고기가 많이 모인다고 하여 어량(漁梁), 주위의 밭두렁이 그림보다 아름답다는 전주(田疇), 주위에 있는 바위들이 섬과 같이 아름답다는 반서(盤嶼), 주위 곳곳에 쌓아 올린 돌층대의 아름다움인 층대(層臺) 등이 그것이다. 또 이곳을 중심으로 18경을 얘기하기도 한다.

받아들인다는 것, 더불어 산다는 것
개병교다리를 건너자 소나무 한 그루가 바람으로 뿌리가 뽑혀 넘어져 다른 나무에 열십(十)자로 접목되어 있는 것을 본다. 받아들인다는 것, 더불어 산다는 것이 저런 모습이 아닐까. 물막이 댐이 아래 부근에 있는지 물의 흐름이 보이지 않고 바람이 잔잔히 일어난다.

「고기 반 물 반인 우리 동네에 산불 없네, 반천 2리 주민일동」이라는 플래카드를 보며 반천리에 다 왔음을 알 수 있다. 반천대교 아래로 강은 다시 푸르게 흘러간다. ‘우우’ 휘몰아오는 바람소리는 강물에서부터 들려오는 것일까?

파랗고 빨간 '산불조심' 깃발이 펄럭거리고 있는 마을길로 들어선다. 돌담이 아름답게 쌓여진 집, 뻥 뚫린 나무로 굴뚝을 만든 집, 나무구유가 찌그러진 함석지붕 밑에서 썩어가는 집…… 저 집에 사람이 살았던 시절은 어느 때쯤일까.

어천동마을을 지나며 강은 도장골로 휘어돌아간다. 이곳 반천리의 노일 남쪽에는 산이 성처럼 높다고 하여 성북동이라는 마을이 있고, 어전 서쪽에는 서낭당 옆에서 달을 바라보면 다락 위에서 달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하여 월루라는 마을이 있다. 느릅나무 마을 건너편에 울창하던 소나무 숲은 2002년과 3년에 나라 곳곳을 후비고 지나간 태풍, 매미와 루사 때 다 휩쓸려갔지만 그 아래 벼랑은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노일마을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바라본 골지천은 깎아지른 벼랑과 푸른 소나무숲 그리고 깊은 소가 빚어낸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반천대교 아래로 원앙새 두 마리가 사이좋게 내려가고 우리들 역시 강을 따라 내려간다. 많이도 걸어왔다. 시속 80km의 차라면 한 시간에 달릴 거리를 우리는 사흘 동안에 걸어간다. 강 건너 바위벼랑 위로 사람이 드나들었음직한 동굴들이 여러 개 뚫려 있다. 정선, 삼척은 말 그대로 동굴의 천국이다.

소수력발전소를 지나는 물은 시기를 탄다. 비가 많이 내리거나 큰 물이 나면 그제서야 강 폭을 가득채울만큼 많은 물이 흐른다.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소수력발전소를 지나는 물은 시기를 탄다. 비가 많이 내리거나 큰 물이 나면 그제서야 강 폭을 가득채울만큼 많은 물이 흐른다.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봉정리 마을에서 보이는 한강의 모습.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봉정리 마을에서 보이는 한강의 모습.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봉정리 소수력발전소를 지난다. 물은 이곳에서부터 산을 뚫고 딴 길로 돌려지고 잦아든 물길은 작은 도랑물처럼 흐른다. 큰물이 나거나 장마 때에만 강폭 가득히 물이 흐르고, 평상시에는 작은 물줄기만 흐른다. "소수력발전소가 만들어진 지 15년에서 20년쯤 됐을 거예요. 그 뒤로 이 지역에 고기가 별로 없어요"라는 마을주민의 말이 생각난다. 

물이 없는데 고기들이 어떻게 살겠는가. 봉정교 아래에서 물은 완전히 사라진다. 마른 냇가, 건천이 되고 만 것이다. 옛날에는 물 반, 고기 반이었다는 이골지천이 인간의 편리 때문에 자연 자체가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만 것이다. 

발면동 잠수교에서 숨어들었던 물줄기가 다시 나타났다. 이렇게 높은 다리가 장마 때마다 물에 잠긴다는데 그 물의 위용을 짐작할 듯하다. 

광업소를 돌아 나오며 강 건너를 바라보니 '주식회사 정선소수력발전소'가 보인다. 저 아래로 흐르는 물은 봉정광업소에서 흘러나오는 폐수들과 뒤섞인 채 한강으로 흐를 것이다. 

새치교를 지난 물길은 다시 넓고 깊게 흐른다. 푸릇푸릇한 풀들 위로 거름 포대들이 띄엄띄엄 놓여져 있지만 빈집들은 이 마을도 예외가 아니다. 바라보기 민망할 정도로 허물어져 가는 저 빈 집들의 돌담들이여!

아우라지가 저만큼 보이고 구성지게 흐르는 물은 구비를 돌아간다. 강가의 버드나무들이 피우는 연두색 잎들은 너무도 곱고 강물소리는 생생하다. 

역무원 없이 텅 비어있는 아우라지역.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역무원 없이 텅 비어있는 아우라지역.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사연이 쌓여 아리랑이 되어 흐르는 곳
발길은 어느새 아우라지역에 닿았다. 역무원들도 없고 열차 시간도 씌어 있지 않은 텅 빈 이 아우라지(옛 이름 여량역)역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남모르게 쌓여졌을까? 

우리는 드디어 아우라지 나루에 닿는다. 아우라지는 정선군 북면 여량리의 한강 상류에 있는 나루터로, 평창군 도암면의 황병산과 구절리에서 흘러내린 송천과 동쪽에서 흘러온 임계천이 합류하는 곳이다. 이 아우라지의 뱃사공이 부르던 노래가 정선아리랑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정선 아리랑은 아우라지 나루의 뱃사공이 부르던 노래이다. 사진은 아우라지 근처 골지천.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우리에게 익숙한 정선 아리랑은 아우라지 나루의 뱃사공이 부르던 노래이다. 사진은 아우라지 근처 골지천. 사진 / 신정일 (사)우리 땅 걷기 대표

정선아리랑, 즉 정선아라리가 처음 불리기 시작한 것은 조선 왕조 초기부터였다고 한다. 고려 왕조를 섬기고 벼슬에 올랐던 선비들 중 7명(전오륜, 고천우, 김충한, 변귀수, 김한, 이수생, 신안)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성을 다짐하면서 깊은 산골인 개성의 두문동에 은신하다가 지금의 정선군 남면 낙동리 거칠현동(居七賢洞)으로 옮겨 살며 지난날 섬기던 임금을 사모하고 고려 왕조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였다.

그들은 멀리 두고 온 고향의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본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애달프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한시를 지어 읊었는데 이것이 정선아리랑의 시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확실하지는 않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상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또 다른,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옛날 여량리에 사는 여자와 아우라지 건너편 유천리에 사는 남자가 연애를 했다. 그들은 동백을 따러 간다는 구실로 유천리에 있는 싸리골에서 서로 만나곤 하였다. 그러나 어느 가을에 큰 홍수가 나서 아우라지에 나룻배가 다닐 수 없게 되자 그 여자는 남자를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정선아리랑 가락에 실어 부르게 된 것이란다.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억수 장마 지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명사십리가 아니라면서 해당화는 왜 피나
 모춘삼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우나

 정선읍내 일백오십 호 몽땅 잠들여놓고서
 이호장네 맏며느리 데리고 성마령을 넘자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잠시 잠깐 님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저 건너 묵밭은 작년에도 묵더니
 올해도 날과 같이 또 한 해 묵네

 당신은 나를 흙싸리 껍질로 알아도
 나는야 당신을 알기를 공산명월로 알아요

그러나 정선 아라리는 사회적 시대적 흐름에 따라 새로 만들어지고 있기도 하다. "반달 같은 우리 오빠는 대동아전쟁 갔는데 샛별 같은 우리 올케는 독수공방 지키네"라거나, "사발그릇은 깨어지면은 세네 쪽이 나고 삼팔선이 깨어지면은 한 덩어리로 뭉치네"라고 분단 상황을 노래하기도 하였으며, "아우라지 건너갈 때는 아우라지더니 / 가물재 넘어갈 때는 가물감실하네"라고 날 가문 날을 노래하기도 했다.

물은 푸르고 맑다. 우리가 맨 처음 검룡소에서 만났던 강물은 어디쯤 흘러가고 있을까? 우리가 다음 달 오월에 다시 여정에 오를 때까지 이 강물은 여전히 푸르고 맑게 흘러가겠지.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