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충남] 안면도 해송처럼 키 크고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젊은 해송이 산길을 내내 함께 걸어준다. 맑은 사람과 함께 하는 기분이랄까. 희리산에는 때묻지 않은 젊은 해송이 있다.
해송이 95%를 차지한다는 희리산은 해발 329m.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산이 험하지 않아서 ‘아버지 돌 굴러가유’ 충청도 사투리 가락으로 느릿느릿 등산을 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소나무들의 수령은 30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따위 다른 수종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이 짙다.
어찌나 빽빽하게 들어찼는지 100년 묵은 해송의 역할을 거뜬히 해낸다. 등산로를 따라 걷는 동안에 닮은 듯 하지만 서로 닮지 않은 여러 해송들을 만날 수 있다. 같은 나이를 먹었는데도 능선을 따라 키가 다르다. 바람이라든지 여러 영향이 있겠지만, 사람 키 보다 조금 큰 나무들을 만나면 반가우면서도 만만하다. 엉덩이가 있으면 툭툭 치며 ‘어서어서 커라’고 격려를 해 주고 싶다.
또 해송 몇 그루는 한바탕 경쟁이 붙었는지 솔방울이 덕지덕지 매달려있다. 그 빽빽한 해송 사이로 뿌리를 내릴 자리가 있는지. 하기는 자기 밥그릇은 다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니까. 희리산은 여느 산에서 볼 수 있는 계곡이 없다.
휴양림 산책로를 따라 물이 흐르기는 하지만 시원한 물소리를 들을 수 없다. 대신 휴양림 입구의 저수지가 시원한 운치를 자아내고 있으며 야외수영장이 있어 물놀이를 하기에 좋다.
희리산 정성인 문수봉에서는 서천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푸레나무 사이로 낚시 배가 한가롭게 떠 있는 흥림저수지도 보인다. 서쪽 능선 너머로는 바다가 살짝 이마를 내밀고 있다는데 아쉽게도 스모그가 끼어 바다를 보지 못했다.
산 등선을 따라서 해풍이 분다. 모자를 벗으니, 눌린 머리카락 사이로 바람이 솔솔 간지럽다. 떡갈나무 잎살 사이로 송홧가루가 노랗게 고인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내일은 비가 내린다고 하던데, 뻐꾹새 징하게 울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