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이달의 산] 세월의 이끼가 까맣게 낀 돌절구가 있는, 입암산성
[이달의 산] 세월의 이끼가 까맣게 낀 돌절구가 있는, 입암산성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09.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백암산에 올라 바라본 풍경.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갓바위 정상에 올라 바라본 풍경.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장성]  등산을 자주 하는 사람들에게는 심심한 산 그러나 가족이 등산하기에는 딱 좋은 산. 곳곳에서 세월이 묻어나는 전라도 장성의 착한 산.                        

입암산성이라 하여 서산의 해미읍성이나 남한산성 정도로 생각해서 스포츠 샌들을 신고 겁도 없이 산에 올랐다. 4시간 30여분의 등산 후 발에는 두 개의 물집이 잡혔다. 여행에서 사전 준비가 왜 필요한지 절실하게 느꼈다. 내려오는 길에 샌들을 신고서 산에 오르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거칠지 않은 계곡을 따라서 산행은 시작된다
입암산성 등산로는 장성군 남창계곡을 지나서 가야한다. 남창계곡은 여름에는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고, 가을에는 내장산 단풍축제로 차가 들어가지 못 할 정도란다. 그러나 남창계곡을 벗어나 입암산성을 오르는 등산로는 한산하다.

갓바위 가는 길.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갓바위 가는 길.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남창계곡 입구 남창매표소를 지나서 등산로 초입까지 한참 걸어가거나 자가용을 이용해야 한다. 입암산성 등산로는 전남대수련원 옆의 남경산기도원 입구 바로 왼쪽에 있다. 조금 들어가면 몽계폭포와 백암산 상왕봉으로 들어가는 안내표지가 나온다.

등산로 초입에서 등산을 준비하는 하원제약 광주지점 사원들을 만났다. 등산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 틈에 끼어서 즐겁게 산행을 시작했다. 입암산성은 입암산의 서쪽 능선에 있다.

입암산은 687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으로 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과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에 걸쳐서 위치한 산이다. 장성군 남창계곡을 지나서 은선계곡을 따라 정상인 갓바위를 넘어서 입암산성 북문과 남문을 거쳐 산성계곡으로 내려오는 9km정도의 등산코스다.

심한 등산로가 없어서 등산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조금은 심심한 산이고 어린 아이가 있는 가족이 등산하기에 좋은 곳이다. 단풍이 곱게 물든 길을 지나면 계곡 위로 다리가 놓여있다. 완만한 산을 닮아서 그런지 계곡이 거칠지 않다. 그러나 물의 차가움은 깊은 산 못지 않다.

조금 올라가니 삼나무 인공군락지가 시원스럽게 뻗어있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안내표지판이 붙어있어서 갈 길을 가늠할 수 있다. 50분 정도 걸어오니 두 갈래로 길이 갈라진다. 갓바위쪽 가는 길과 입암산성 가는 길. 우리는 갓바위쪽으로 해서 입암산성쪽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입암산성 남문.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입암산성 남문.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은선계곡을 따라서 올라가는 도중에 박신기 씨가 이쯤에는 영지버섯이 있을 만한 곳이라며 잠깐 등산로 길을 이탈한다. 돌아왔을 때 손에는 영지버섯이 하나 들려있다. 딱딱한 영지버섯이 참 신기하다. 등산을 자주 하다보면 어느 곳에 더덕이 있는지, 어떤 버섯이 있는지 알 수 있다 한다. 덕분에 산에서 채취한 영지버섯을 얻을 수 있었다.

갓바위에 도착했다. 철재사다리가 놓여있는 바위가 나타난다. 갓바위라 하지만 그렇게 특징이 있는 바위 형상을 하고 있지 않다. 바위 위에 겨우 6명이 좁게 앉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한쪽으로는 정읍일대의 넓은 들판이 한 눈에 들어오고 서북쪽으로는 내장산 자락들이 쭉쭉 뻗어가고 있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서 좋다.

옆 바위로 이동해서 점심을 먹었다. 박신기 씨가 싸온 매실장아찌가 맛났다. 철재 계단을 내려와서 옆 능선의 나무계단을 내려오니 북문이 보인다. 북문을 지나면 그 때부터 그야말로 길이 보이지 않은 숲길이 나타난다. 잡목들이 자라서 목까지 올라온다. 하원제약 이승엽 씨는 민 소매 옷을 입어서 팔을 번쩍 들고 그 길을 지나야 했다. 등산에서 긴바지와 긴소매는 필수다.

숲길을 벗어나자 신기하게도 넓은 분지가 나타난다. 주위는 온통 산인데 그 안에 상당히 넓은 분지가 있어서 이 곳에 절이 5개가 있고, 고려 때는 수백의 군사가 머물렀다는 말이 믿어진다. 걸어가는 길에 질경이가 자라고 억새풀이 쭉 펼쳐졌다. 늦가을에 오면 억새로 장관을 이루겠다. 풀들을 한번 다 걷어내고 싶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입암산성 분지 안의 집터에 있는 돌절구.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입암산성 분지 안의 집터에 있는 돌절구.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오는 길에 개울가에 집터가 있고 두 개의 돌절구를 보았다. 형태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데 세월의 빗물이 고여서 까맣게 변해버렸다. 그 곳에 개구리 한 마리가 헤엄을 치다 사람들 발자국에 놀라 펄쩍 억새 숲으로 뛰어든다. 입안산성 남문에 집을 잃은 기왓장 갓바위에서 30분쯤 그렇게 평지를 걷다보니 드디어 남문에 도착했다.

입안산성 남문.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입안산성 남문. 2003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입암산성은 높이 5m, 길이 5.2km 정도의 돌로 쌓은 성이다. 해미읍성이나 남한산성처럼 복원이 잘 돼서 산책 코스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잡풀이 우거지고 돌들이 달그락거려서 발을 잘 못 딛으면 떨어질 것 같아 위험했다. 5m정도의 높이지만 밑에 잡풀이 우거져서 더 높게 느껴진다.

성문은 없고 그 윤곽만 남아있다. 그 옛날 수문장들은 사라지고 성문 사이로 얼음처럼 차가운 물만 흐른다. 그 물 속에 기왓장 하나가 뒹군다. 다시 산죽을 따라서 50여분 정도의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오는 길에 등산을 이제 막 시작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뒤쳐지는 김상옥 씨가 가방을 들어주겠다는 따뜻한 말을 건넨다.

입암산성 밑에는 식당이 없다. 구멍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고 짧은 인연을 마쳤다. 어쩌면 지루한 산행이 될 수 있는 길을 길동무 해준 하원제약 광주사무소 직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입암산성
삼국시대부터 성이 있었다고 하는데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수축 혹은 개축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서쪽의 삿갓바위에서는 노령을 남북으로 넘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감시할 수 있고, 사방이 높고 중간은 넓은 분지가 있어서 외부에서 성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요새지다.

고려말 몽고에 대항해서 송군비 장군이 몽고군을 물리친 곳이고, 조선시대에는 왜적에 맞서던 윤진 장군 등이 장렬하게 전사한 곳이다. 포대 4곳, 성문 2곳, 암문 3곳이 있으며 성안에는 다섯 개의 사찰이 있어서 승장을 두었으며 각종 무기를 넣어두는 창고 등이 있었다. 현재는 남문과 북문 두 큰 터가 남아 있다. 1970년대까지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