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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가족체험여행] 무릉이 어디메뇨, '영월 수주면 계곡축제'인가 하노라
[가족체험여행] 무릉이 어디메뇨, '영월 수주면 계곡축제'인가 하노라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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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영월 수주면을 가로지르는 맑은 계곡물.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영월 수주면을 가로지르는 맑은 계곡물.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여행스케치=영월] 세상에 다시없는 무릉도원이래도 여간해서는 짬 내어 가보기 어려운 도시민들을 위해 수주면 청년회와 수주축구클럽이 해마다 무릉계곡 축제를 연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축제가 지난 8월 9일과 10일 주말에 있었다. 가재잡기와 감자 캐기, 개울 낚시, 그리고 시원한 밤 계곡에서 펼쳐지는 모닥불 축제 등 계곡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행사들이 1박2일에 걸쳐 이어졌다.        

무릉계곡이 어디 있는가? 진나라 때 시인 도연명이나, 두류산 양단수를 두고 시를 읊은 남명 조식 선생이 정작 무릉계곡을 왔더라면 무어라 했을까?

동심은 차디찬 계곡 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동심은 차디찬 계곡 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수주면 계곡축제가 벌어진 요선정 일대.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수주면 계곡축제가 벌어진 요선정 일대.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강원도 영월군 백덕산쪽 법흥계곡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 물줄기가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주천강에 이르면서 ‘ㅗ’자 형태의 물줄기가 형성되고, 두 물줄기가 만나는 지점에서 다소 펑퍼짐해지는데 그 옆에 섬 모양의 깜찍할 정도로 작고 예쁜 산 하나가 강과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몸에 휘감은 형상을 하고 있으니, 바로 이 계곡이 무릉리 무릉계곡이다.

그 옆 마을이 도원(桃源). 영월 수주면은 약 1천6백여 명의 인구를 가진 작은 고을로 주변에 심산계곡과 명산대천을 아울러 안고 있다. 법흥·백년·엄둔·운학·두산·뱀골계곡 등에서 쉬지 않고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사자산(1,181m)과 구봉대산(870m), 백덕산(1,350m) 줄기들은 연봉을 이어가며 첩첩이 쌓여 산사람들을 부른다.

즐거운 꺽지 낚시.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즐거운 꺽지 낚시.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잡아도 좋고 못 잡아도 즐거운 꺽지 낚시
계곡축제는 오후 3시부터 시작됐다. 숙박 텐트를 배정하고 계곡에서 가족들끼리 자유시간을 가진 뒤 예정된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어 열린 꺽지 낚시대회는 요선정 바로 밑의 주천강가에서 벌어졌다.

강가 자생 버들가지를 어른 팔 길이 정도로 꺾어 그 끝에 한 뼘 가량의 낚싯줄과 낚시바늘을 묶은, 이 고장의 전통적인 꺽지 낚싯대를 이용하여 낚는 것이다. 꺽지는 그 습성이 하천 상류 지역의 물이 맑은 곳에서 살며 큰 수초나 돌 밑의 후미진 곳에 곧잘 숨는다. 그러니까 낚싯대를 돌 밑의 바닥과 틈새에 슬그머니 들이밀고 이리 저리 더듬기만 하면 곧잘 물려 올라온다.

원주의 오진택씨 가족은 물살이 센 곳으로 허리까지 들어가서 낚싯대를 드리웠지만 시간이 다 될 때까지 한 마리도 입질하는 놈이 없었다. 서초동 아줌마는 물에 신발을 적시지 않고도 강가에서 낚싯대를 이리저리 흔들다가 어른 손가락보다 조금 더 큰놈을 낚아냈다.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저씨들, 팔딱팔딱 뛰는 꺽지를 보고, “고놈, 참 힘 좋게 생겼다.” 서초동 아줌마, 처음 느껴보는 손맛에 신기하고도 부끄러운지 홍조를 띄고 감탄사를 연발하지만, 오진택씨 가족의 즐거움이 서초동 아줌마네 것보다 못하지는 않았으리라. 잡아도 좋고 못 잡아도 즐거운 꺽지 낚시! 인솔했던 주민 청년 신승은씨, “자, 내일 점심은 이걸로 어죽 한 그릇씩이다!” 계곡의 밤은 한낮의 열기를 쉬 식혀준다.

시원한 계곡물에서 놀다보면 처음 보는 사람들도 순식간에 친해진다.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시원한 계곡물에서 놀다보면 처음 보는 사람들도 순식간에 친해진다.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더위? 그런 거 몰라요!"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더위? 그런 거 몰라요!"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맑은 물이 상류 법흥계곡으로부터 쉼 없이 흘러내리고, 아이들은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처지인데도 남녀 없이 어느새 물장난을 치며 놀 정도로 가까워진다. 자연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켜 놓는다.

저녁식사로 먹었던 꽁보리밥의 뒷맛에 이끌려 어른들도 동동주와 도토리묵, 파전을 사이에 두고 하나둘씩 둘러앉아 산골 계곡의 밤이 가져다주는 느긋함에 빠져들어 간다. 심금을 털어놓고 얘기꽃을 피운다. 밤 여덟시 반이 조금 넘어 캠프파이어 점화식이 시작되고, 폭죽이 터지면서 시작된 불꽃 점화는 ‘계곡축제’라는 글자를 뚜렷한 불꽃으로 장식하면서 골짜기를 순식간에 밝혀 주었다.

공중으로 쏘아 올린 폭죽과 함께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와아!’ 하는 탄성이 터져 오른다. 축제는 순식간에 절정으로 치닫는다. 불꽃도 사그라지고, 가족들끼리 화롯가에 둘러앉아 참숯에 감자와 옥수수를 구워먹는 구수한 산골의 내음! 산 속에서 보는 달은 이제 보니 서울에서 보았던 그 달이 아닌 모양이다. 계곡의 밤은 이렇게 깊어만 간다.

우리는 감자 캐러 갑니다!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우리는 감자 캐러 갑니다!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산골 안개구름은 게으른 몸을 일으켜 산봉우리를 떠나고
산골의 여명은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 도시보다는 더디 오는 것일까. 축제 2일째 날이 밝았다. 텐트 속에서 몸을 뒤척이고 있을 때 수주면 청년회원들의 아침거리 준비로 부산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텐트를 열어젖히자 주방의 한 아줌마가 마을 노총각에게 “이눔아, 그러니께 아직 장가도 못갔제!”하는 꾸짖는 듯 덕담인 듯한 소리가 아침인사처럼 들린다.

아침 햇살이 허락 없이 텐트 안까지 깊숙이 들어온다. 계곡으로 내려가 간단히 얼굴을 씻었다. 시리도록 차갑고 맑다. 직접 콩을 갈아 가마솥 장작불을 지펴 만든 순두부 요리가 아침상에 올라왔다. 그 동안에도 법흥사쪽 산 정상에는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아직 산골 안개구름이 봉우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오전 첫 행사로 요선정(邀仙亭) 구경과 삼행시 짓기가 이어졌다. 강원도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요선정은 조선 중기 풍류가인 봉래 양사언 선생이 이곳 경치에 반해 선녀탕 바위에 ‘요선암(邀仙岩)’이라는 글자를 새긴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는 게 수사모(수주 사랑 모임) 신승은 총무의 설명이다.

게으른 산골 안개는 봉우리를 떠나지 못하고.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게으른 산골 안개는 봉우리를 떠나지 못하고.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1913년, 이 지방 원씨, 곽씨, 이씨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숙종·영조·정조가 편액, 하사한 어제시(御製詩)를 봉안하기 위하여 지은 것인데, 건립 당시 주천 청허루에 보관되어 오던 숙종의 어제시를 이곳으로 옮겨 봉안했으며, 그 모양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집으로, 노송 숲에 가려져 밖에서는 정자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또 요선정 바로 옆에는 강원도 유형문화재인 마애여래좌상이 큰 바윗돌 면에 부조되어 있고, 정각의 주위에는 기묘한 형상의 화강암 벽과 수려한 자연이 어우러져 수주면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하고 있다. 이어서 감자 캐기 농촌 체험, 어른 주먹만한 감자가 호미 끝에 딸려 나올 때마다 여기저기서 ‘우와!’ 하는 어린애들의 탄성이 연발이다.

엄마가 캔 감자 지키기.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엄마가 캔 감자 지키기.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입가에 검댕 묻혀가며 고구마 구워먹기.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입가에 검댕 묻혀가며 고구마 구워먹기.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우리 딸들도 서로 자기가 캐보겠다고 호미자루를 다툰다. 이 감자를 수확하기 위해 봄부터 땀 흘렸을 농민들의 노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혹 이 애들이 가꾸고 기르는 노고는 모른 채 수확하는 기쁨만 알고 가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그걸 가르쳐야 할 책임이 부모인 내 몫이라 생각하니 숙제 하나를 받아가는 기분이다.

감자 캐기가 끝나고 개울물에 비지땀을 씻으며 돌탑 쌓기와 가재잡기 행사가 열렸다. 계곡이 워낙 맑고 깨끗해서인지 어른 손가락만한 가재들이 제법 잡혔다. 애들은 그림책에서나 보았던 가재를 실제 눈으로 확인하니 신기하기도 한 모양이다. 평소 같으면 식때도 기운 오후 두 시인데 여전히 돌 틈을 뒤지며 개울을 떠날 줄 모르는 아이들.

어죽 한 그릇 더 드시래요!
도회지에서의 평소 점심시간보다 조금 늦어져서일까, 아니면 오전의 감자 캐기에 기력을 소진해서일까. 저마다 간식으로 제공한 찐 옥수수와 감자를 먹으며 시장기를 참고 있는 기색이다.

“아줌마, 다 되었어요?” “다 되얏드래요.” 그래도 다 된 기색이 아니다. “인제 다 돼가요?”,  “금방 다 돼요….” 독촉하던 그 사람, 행사 진행표를 보더니 더 이상 독촉하지 않는다. 원래 진행표상에 오후 두 시로 점심이 정해져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아침 식사도 좀 늦은 듯했던 게 이제야 이해가 간다. 내 어릴 적 시골 살던 때의 식사시간도 이랬었지…. 해 뜨기 전 시원할 때 아침 일을 하고 늦은 아침을 먹고…. 아,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간다. 이 모든 것이 농사짓는 일의 순리임을.

영월 수주면 계곡의 아름다운 풍경.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영월 수주면 계곡의 아름다운 풍경. 2003년 9월. 사진 / 신수룡

“어죽 한 그릇 더 드시래요.” 어제 잡은 꺽지와 청년회원들이 잡은 민물고기를 넣고 어죽을 끓였다. 추어탕 비슷한 맛이긴 하나 색다른 맛이다. 시장기가 반찬이 되어서인지 더 맛있다. 여기저기서 죽 퍼가는 부산함. 아마도 올라갈 길을 걱정하는 모양들이다. 일요일 오후의 귀경길이 거의 전쟁임을 사람들은 모를 리 없다.

모든 일정을 마치자 오후 세 시. 서둘러 청년회장 정삼진 씨와 신승은 씨, 신승환 씨와도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내 손을 꼬옥 감싸 쥐어주는 신승은 씨의 악수에 농촌의 묵직한 힘이 실려 있는 듯했다.

주천강을 따라 운학천을 지나 신림 IC에 들어설 때까지 내년 행사 때도 꼭 놀러 와야 한다는 말이 귀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무릉리를 벗어나자 본능처럼 집과 학교(직장)가, 그리고 어제 오늘의 새로운 뉴스거리들이 궁금해졌다.

이제야 나는 속(俗)으로 돌아온 듯하다. ‘도화원기’에서처럼 나도 길을 지나는 사람에게 묻고 싶어진다. “아저씨요! 지금이 어떤 세상입니까?” 다시 무릉계곡을 찾지 못한다면 어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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