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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0월호
[펜션 여행] 봉평 가서 어슬렁거리기? 봉평심스캐빈
[펜션 여행] 봉평 가서 어슬렁거리기? 봉평심스캐빈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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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봉평심스캐빈의 통나무집. 2003년 9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봉평심스캐빈의 통나무집. 2003년 9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여행스케치=평창] 가까이 지내는 이가 “봉평 가서 어슬렁거리다 왔는데 너무 좋았다”고 한다. ‘어슬렁거리다’는 표현이 재밌어 좀더 물었더니, 펜션에서 하루를 묵고 왔는데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려 작은 미술관도 갔다 오고, 봉평 시골 장도 어슬렁거리며 구경하고, 숯불에 고기 구워먹으며 새벽까지 이런저런 정담을 나누고… 차분한 시간을 누리고 기운차게 돌아왔는데 이런 것이 진짜 여행이 아닌가 싶더라는 것이다.                                                     

그 말에 공감이 갔다. 대개의 여행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에 치이고 도로가 막힌다고 짜증을 내면서도 이름 있는 곳, 볼거리, 즐길 거리를 찾아 줄기차게 쏘다닌다. 산에 올라갔다오기 무섭게 바다로 달려가고, 문화유적지 휘둘러보고 곧바로 차를 타고 ‘다음!’ ‘철인 경기’라도 하듯 한바탕 강행군을 하고 피곤에 지쳐 눈도 제대로 못 뜨며 돌아와야 비로소 ‘여행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대체 왜 그럴까?

펜션 앞에서 마주 보이는 풍경. 산들이 깔끔하다. 2003년 9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펜션 앞에서 마주 보이는 풍경. 산들이 깔끔하다. 2003년 9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아무튼 그 친구가 ‘어슬렁거린’ 곳이 바로 이곳 봉평 원길 2리이다. 심스캐빈(Sim's cabin)은 마을 앞을 흐르는 강을 바라보고 지은 네 채의 통나무집. 주인이 머무는 본채와 세 채의 독립된 통나무집들이 나란히 서 있다.  

17년간 서울에서 사업을 한 심재황 씨가 어느 날 갑자기 별다른 연고도 없는 이곳에 나타난 것은 지난해 3월. “봉평이 고향인 친구가 하도 좋다고 해서 노후에 내려와 살고 싶다는 생각에 몇 년 전 땅을 사두었습니다. 그러다 어차피 내려 갈 거 빨리 가자는 생각이 들었지요” 거래처 사장이 “잘했어, 당신은 장사묶기가 아니야”라는 말이 이 곳에 와서 실감이 났다고 한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는 것. 묵은 위장병이 씻은 듯 사라졌다는 말이 햇볕에 그을려 활기차 보이는 낯빛이 정말 그렇게 보였다. 마음은 편한데 몸은 좀 고달팠다. 통나무학교에 가서 통나무 집짓는 요령을 3주 배우고 바로 시작한 집짓기가 1년이 넘게 걸렸다.

다락방과 주방. 주방에는 사기그릇은 물론 각종 주방기구가 모두 준비되어 있다. 2003년 9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다락방과 주방. 주방에는 사기그릇은 물론 각종 주방기구가 모두 준비되어 있다. 2003년 9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내가 살 집 내 손으로 만든다는 생각에 1년을 콘테이너에서 지내며 공사를 꼼꼼히 챙겼다. 그 통에 남들보다 비용도 두 배로 들었다고 다시 하라면 못하겠다고 손사레를 친다. 마흔 훌쩍 넘긴 나이에 한겨울을 탱탱 언 콘테이너에서 쪽 잠을 자면서 한 채 한 채 만들었다. 며칠씩 세수도 못하기 일쑤. 이제껏 장사만 하고 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지냈는지 아내도 신기해하는 눈치다.  

아내는 서울에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직장생활을 한다. 주말이면 다녀간다지만 거를 때도 있으니 영락없는 홀아비 신세다. 그래도 신이 난다. 펜션 위치를 잘 잡았다는 생각에 기운이 더 나는 모양이다.

“봄에는 천지에 산나물이고 흥정계곡, 철쭉이 좋습니다. 여름에도 모기가 없어요. 가을에는 메밀꽃 피고 단풍 들고. 겨울이면 흰 눈에 스키장까지 있으니…”

방에서 저 멀리 들판이 풘히 내다보인다. 메밀꽃이라도 피면 잠이 안 올 듯. 2003년 9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방에서 저 멀리 들판이 풘히 내다보인다. 메밀꽃이라도 피면 잠이 안 올 듯. 2003년 9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통나무집은 네 채가 모두 제각각이다. 베란다를 만들고 각각 야외용 식탁까지 놓았다. 취사시설은 물론 주방기구와 사기로 만든 예쁜 그릇, 수저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챙겼다. 손님은 몸만 오면 되는 그야말로 펜션. 요즘 마구 들어서는 ‘무늬만 펜션’과는 확실히 다르다.

가끔 손님이 험하게 다루는 바람에 그릇에 이가 빠져 속이 상하긴 하지만 아직은 쇠로 된 그릇 덜렁 내놓고 싶진 않다고 한다.

지난 7월부터 시작했는데 알음알음으로 손님이 찾아든다. 여기서 손님이 왕이라고 행세하면 좀 곤란하다. 주인이 손님을 고른다. 시끌벅적 요란한 단체 손님들은 자칫 퇴짜 맞을 수 있다. “글쎄, 옆에 분들에게 피해를 주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여기는 가족이 와서 하루 이틀 쉬어가는 곳입니다. 봉평에 펜션 많아요.”

캐빈은 한 채 한 채 약간씩 다르다. 2003년 9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캐빈은 한 채 한 채 약간씩 다르다. 2003년 9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구체적으로 말은 안하지만 떼로 몰려와 밤새 술 마시고 떠드는 젊은이들은 다른 펜션이나 콘도도 많으니 그리로 가라는 눈치다.  

펜션 앞을 흐르는 강은 맑다. 가을에 와서 고기를 잡으면 딱 좋을 듯 보였다. 펜션 앞에 자전거가 네 대 서있다. 펜션으로 들어오는 마을 입구에서 본 무이 미술관이 떠올랐다. 폐교를 개조한 이 미술관은 서양화가와 도예가, 조각가와 서예가의 창작실이다.

나도 이 자전거를 타고, 강을 따라 난 한적한 시골 길을 달려 미술관에 가볼까나. 해가 뉘엿뉘엿 저물며 산그늘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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