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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가을호수] 갈바람 속에 노를 저어 볼까나, 포천 산정호수
[가을호수] 갈바람 속에 노를 저어 볼까나, 포천 산정호수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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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망무봉 그림자가 호수에 길게 드러눕는다.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망무봉 그림자가 호수에 길게 드러눕는다.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여행스케치=포천] 물은 차고 길은 쓸쓸하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은 소란스럽고, 바람은 사람을 그립게 만든다. 호수에 드리운 산 그림자가 깊다. 산 속의 우물. 산정호수에 낙엽 태우는 냄새가 그득하다.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고즈넉한 호수에 발을 담은 망무봉. 그 그림자가 호수에 잠잠히 드리워져 있을 뿐. 조용하다. 호숫가를 따라 가는 산책로에는 낙엽이 뒹굴고, 드문드문 놓인 나무 의자에 연인 몇 쌍이 앉아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고 있다. 평일의 산정호수는 이렇다.

자전거를 타고 지날 수 있는 산책로.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자전거를 타고 지날 수 있는 산책로.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두 군데 놀이동산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소음이 시끄럽기는커녕 오히려 적적함을 더해준다. 부산스러운 것은 가을 하늘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구름이 소란스럽다. 저 편 호숫가에서는 낙엽 태우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따금 부는 바람에 노점상들이 다슬기를 삶고 있는 냄새가 묻어난다.

이렇게 한가한 산정호수도 주말이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북적인다. 특히 10월의 주말이면 북쪽 명성산에 억새가 절경을 이루는데 이때는 자동차로 올라오기가 어려울 정도다. 억새밭 축제가 낀 중순경 주말에는 인파가 절정에 달해 산 밑에서 걸어 올라가거나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주말 가족들이 몰려오면 신나게 돌아가는 놀이기구들.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주말 가족들이 몰려오면 신나게 돌아가는 놀이기구들.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그럴 때면 호수에는 보트들이 가득하고, 놀이시설은 쉼 없이 돌아간다. 사방에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호수 가득 찬다. 바이킹이 왔다 갔다 할 때 지르는 비명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한 즐거운 유원지가 된다.

한적한 호숫가는 연인들의 길
북쪽으로 명성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남쪽 관음산이 은근하게 받쳐주는 모양새가 산 속에 솟아난 우물 같다 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

호수를 한바퀴 도는 길은 반은 자전거를 탈 수 있을 정도로 평탄하고 반은 오르락내리락 걷는 재미가 있는 숲길이다. 한바퀴 도는데 천천히 걸어도 약 1시간 반 정도면 충분하다. 남쪽 아랫마을이 하동, 위쪽 호숫가 마을이 상동이다. 운천 쪽에서 오다보면 하동을 거쳐 상동으로 산을 휘돌아 올라간다.

하동에 주차하고 상가를 질러 산책로를 따라 상동으로 올라가는 길도 있는데 대부분 상동까지 차로 올라가는 게 보통이다. 상동과 하동사이의 산책로는 구름다리를 지나는데 그 아래로 산정폭포가 흘러내린다. 연인들이 좋아하는 길이다.

허브를 키우는 쉼터. 비닐하우스이지만 운치가 있다.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허브를 키우는 쉼터. 비닐하우스이지만 운치가 있다.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가족을 싣고 유유히 헤엄치는 백조 보트. 수차를 돌리는 아빠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어쨌거나 아이들은 신난다.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가족을 싣고 유유히 헤엄치는 백조 보트. 수차를 돌리는 아빠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어쨌거나 아이들은 신난다.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산안마을 쪽으로 가다보면 호숫가에 비닐하우스가 네 동 보이는데 허브를 재배하는 곳이다. 허브 차등을 파는 쉼터이기도하다. 가족끼리 오면 아이들 극성에 놀이시설과 보트장에서 멀리 벗어나기가 어렵다. 발로 젓는 백조보트, 노를 젓는 2인용 보트 그리고 호수 위를 질주 할 수 있는 모터보트 등이 있다.

사계절 모두 가볼만 한데 봄 벚꽃, 여름 호수, 가을 단풍, 겨울 빙판을 들 수 있다. 한겨울 꽝꽝 언 호수에 눈이라도 함빡 내리면 바로 온 가족이 뛰어놀 수 있는 썰매장이 된다. 산 속에 오롯이 담긴 호수라 새벽에 이는 물안개가 일품이라는데 누군가는 ‘전설적’이라는 수사까지 동원하며 극찬을 한다.

산속의 저수지 산정호수는 농업용수를 얻기위해 만들어졌다.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산속의 저수지 산정호수는 농업용수를 얻기위해 만들어졌다.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우렁된장 맛 보고 가세요”
산정호수를 자연 호수로 알고 있는 이도 간혹 있는데 실은 1925년에 농업용수를 얻기 위해 축조된 저수지이다. 어떻게 이 산속에 저수지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도 궁금하지만 도대체 이 많은 물이 어디서 흘러내려왔는지도 궁금하다. 뒷산 명성산을 보면 순 암벽만 보이는 것이 물이 많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어찌됐든 8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르다보니 마치 자연적으로 형성된 호수와 같은 느낌이 든다. 서울에서 가까워 당일 나들이코스로 많이 꼽는데 바로 뒤 명성산 억새밭까지 올라갈 작정을 하고 1박2일로 일정을 잡아야 제 맛을 즐길 수 있다.

명서산에서 바라본 산정호수.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명서산에서 바라본 산정호수. 2003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산정호수 뒤편의 자인사는 원래 그 터가 유서 깊다. 고려 태조 왕건이 궁예의 수하에 있을 때 후백제와 일전을 벌이기 위해 떠나면서 산제를 지낸 곳이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왕건에 의해 쫓겨난 궁예가 명성산에서 최후의 일전을 치르기 앞서 제를 지낸 곳이라니 운명은 얄궂다.  

왕건은 고려 태조로 등극하고 이 터에 암자를 지었는데 이후 숱한 전란 속에 소실되었다 다시 세우기를 수차례 6.25를 끝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이 지방이 군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지역이었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데 1964년 주춧돌만 남은 이 터에 자인사가 들어섰고 오늘에 이른다.

서울 가까운 관광지답게 가족이 와서 묵을 만한 숙소는 충분하다. 하동 쪽에는 대형 콘도가 있고 호수 인근에도 비교적 깨끗한 숙박시설들이 있다. 명성산 뒤쪽이 갈비로 유명한 포천 이동면이다. 때문에 산정호수에도 이동갈비 집들이 많다.

“오늘 우렁된장백반이 좋아요. 한 술 드고 가세요!” 후덕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손짓을 한다. 우렁된장, 민물매운탕, 산채백반, 버섯요리, 토종닭백숙 등등 이동갈비 말고도 식단이 풍성하다. 인근 산에서 채취한 나물이나 약재, 버섯 등을 파는 노점상이나 다슬기, 문어다리 심지어 메뚜기 등등을 파는 리어카들도 심심풀이 먹거리에 한몫 단단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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