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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취미여행] 18년 우정 그리고 오대산 사랑, '꽃을 찾는 사람들'의 꽃밭이야기
[취미여행] 18년 우정 그리고 오대산 사랑, '꽃을 찾는 사람들'의 꽃밭이야기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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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오대산의 아름다운 풍경. 2003년 11월. 사진 / 꽃을 찾는 사람들
오대산의 아름다운 풍경. 2003년 11월. 사진제공 / 꽃을 찾는 사람들

[여행스케치=평창] 멀쩡한 직장 때려치우고 꿈을 가꾸어가는 사람들. 꽃을 사랑해서 꽃을 찍고 꽃을 키우는 사람들. 네 남자의 18년 우정과 오대산 이야기.

가슴이 설렌다. 처음으로 남자 네 명과 산행 데이트를 즐겼다. 오대산 주봉 비로봉 (1,563m) 가는 길이 참 멀고도 짧았다. 해가 쨍쨍하다 오대산 초입에서 부슬비가 내린다. 네 남자가 잘 가는 오대산 동대산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산구절초가 가을 하늘에 하늘하늘 피어있다. 2003년 11월. 사진제공 / 꽃을 찾는 사람들
산구절초가 가을 하늘에 하늘하늘 피어있다. 2003년 11월. 사진제공 / 꽃을 찾는 사람들

꽃을 찾는 사람들 18년 우정은…
네 남자 김영철, 서효원, 안흥식, 윤순기 씨는 건국대 85학번 생물학과 ‘식물반’ 동아리 모임에서 만난 친구다. 그 때부터 늘 함께 다녔다. 18년 짧지 않은 세월이다. 오대산은 대학 MT 때 와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오대산은 이들의 식물원이며 4계절 내내 낙원이다. 그 때부터였다. 주말이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대산국립공원으로 달려와 꽃을 찍었다.

오대산을 이들만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오대산 자락에 네 남자 손길을 벗어나서 꼭꼭 숨어있는 꽃이 몇 개나 될까? 오대산 비로봉,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등 골짜기 골짜기 들의 손길을 피한 곳은 없다.

오대산에 물든 단풍. 2003년 11월. 사진제공 / 꽃을 찾는 사람들
오대산에 물든 단풍. 2003년 11월. 사진제공 / 꽃을 찾는 사람들

꾸미지 않은 자연색 그대로…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어제의 가을 산이 아니다. 김영철 씨가 가방에 넣고 다니는 여자친구 우비를 빌려준다. 길 사이로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다. 나무 밑둥에 각가지 버섯들이 고개를 내민다. 김영철 씨는 오대산을 오르는 동안 가장 열심이다.

비가 내려서 카메라를 가방에서 꺼내지도 못 하는데 물기 먹은 꽃을 찍는다. 어떻게 찍어야 가장 자연색에 가까운지, 몇 년간 발로 뛰어다니면서 직접 체득한 것을 내게도 꼼꼼하게 알려준다.

“우리는 예쁜 꽃만 찍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파인더로 보는 꽃보다 그냥 보는 꽃이 더 예쁘죠. 우리는 우리나라에 사는 자생식물을 자료화하고 있습니다. 벌써 우리가 모은 데이터가 엄청날 거예요. 예쁜 꽃은 화분에 더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꽃은 생태를 알 수가 없어요. 우리는 생태를 알 수 있는 꽃을 찍어요. 예쁘게 꾸미지도 않고 자연색 그대로 찍지요. 야생식물은 그 자연 상태를 알아야 자료로써 가치가 있습니다.”

이들이 오대산에서 발견한 식물만 해도 수천 종에 이른다. 아마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에서 가장 많은 식물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오대산국립공원일 것이다. ‘꽃을 찾는 사람들’이 오대산국립공원에 많은 자료를 주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주말이면 모여서 꽃을 찾아 사진을 찍었다. 그 때는 정말 취미였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아예 한살림 차렸다. 강원도 횡계에 아파트를 빌려 네 남자가 동거를 시작했다. 취미로 만족하려고 했던 꿈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꽃을 찾아 사진을 찍던 사람들이 이제는 꽃을 가꾸기 시작했다. 대관령 삼양목장에서 꽃밭을 가꾼다. 이렇게 말하면 집 앞 화단을 가꾸는 수준으로 알겠지만 삼양목장에 ‘자생식물 생태 꽃단지’를 만들고 있다. 아직 그 규모가 얼마만큼 될지 알 수 없지만….

나무터널이 우거진 월정사입구. 2003년 11월. 사진제공 / 꽃을 찾는 사람들
나무터널이 우거진 월정사입구. 2003년 11월. 사진제공 / 꽃을 찾는 사람들

자생식물생태꽃단지
삼양목장에 심는 꽃은 그 지역 생태에서 가장 잘 적응하는 식물이다. 다른 지역에서 사는 식물이 아주 예쁘고 그 쓰임이 유용하다고 해도 이 지형에 적응 못 할 수 있고, 적응을 했다손 치더라도 그 속성이 온전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은 요즘 참 바쁘다. 자생식물 단지도 조성해야지, 그 지역을 돌아다니며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내년에 파종할 씨앗들도 모아야 한다.

서효원 씨는 신농같은 남자다. 오대산을 오르는 동안 풀을 뜯어서 직접 먹어본다. 대외 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그들 중에서 가장 미남이라고 한다. 전에는 더 미남이었다는데, 아무 풀이나 먹어보는 습관 때문에 한번 심하게 고생을 한 후 조금 망가진 상태란다. 여전히 잘 생겼기 때문에 진실인지 확신할 수 없다.

2시간 30분이면 오를 수 있는 산을 네 걸음에 맞춰서 느려진다. 안흥식 씨는 어제 작업을 하면서 다리를 다쳤다며 천천히 걸었다. 약수터에서 물도 떠주고 네 남자 중에서 가장 자상한 남자다. 윤순기 씨는 별로 말이 없다. 비 때문에 다 젖은 옷을 입고도 소탈하게 웃으며 “춥다” 그 한마디를 남긴다.

오대산 노인봉 풍경. 2003년 11월. 사진제공 / 꽃을 찾는 사람들
오대산 노인봉 풍경. 2003년 11월. 사진제공 / 꽃을 찾는 사람들

정상에는 비와 안개가 쌓여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아쉽게 내려와야 했다. 등산로라 많은 야생화를 보지 못 했지만 눈 밝은 네남자 덕택에 예쁜 꽃들을 카메라에 담아올 수 있었다.  

오는 길에 오대산 잣송이를 주었다. 물론 알맹이는 쏙 빼먹고 껍데기만 남은 송이다. “청설모가 귀신같이 파먹지, 녀석들이 남겨놓은 알맹이는 텅 빈 벌레 먹은 잣이에요.” 서효원 씨 말이다. 잣송이를 들여다보니 알뜰하게도 파먹었다. 근데 청설모가 바빴는지 딱 한 개 남겨놓았다. 서효원 씨가 깨줘서 먹었는데 오대산을 내려오는 내내 입안에 잣 향기가 가득하다. 오대산 향기가 이렇구나!  

봄을 기다리는 씨앗
시간이 남아서 가족들 외에 여자가 처음 방문한다는 숙소에 잠시 들렸다. 채집해 온 씨들은 말려서 분류되어 있다. 내년 봄을 기다리 듯. 숙소 한 귀퉁이 이름표가 붙은 바구니 70개가 옹기종기 있다. 모아놓은 씨앗들이다.

일이 끝나고 돌아오면 농부가 깨를 털 듯 TV를 보면서 씨를 턴다. 벽에는 다양한 꽃 사진이 걸려있다. 이번에 가꾸어 놓은 자생식물 생태 꽃단지는 태풍 ‘매미’로 쓸려가 버렸다. 네 남자는 오래된 농부처럼 심드렁하게 “다시 심으면 되죠!” 한다. 어쩐지 그 말을 듣고 있으니 ‘진짜 농부가 되겠구나!’ 벌써 믿음이 생긴다. ‘우직하게 살아가겠구나!’ 벌써 미소에 여유가 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동네에 피는 꽃 위로 별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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