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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코리아스케치] 옛것을 알리고 살리는 강화도 외포리 지푸라기 공예
[코리아스케치] 옛것을 알리고 살리는 강화도 외포리 지푸라기 공예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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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지푸라기 만으로 다양한 용품을 만드는 지푸라기 공예. 2003년 11월. 사진 / 김선희 객원기자
지푸라기 만으로 다양한 용품을 만드는 지푸라기 공예. 2003년 11월. 사진 / 김선희 객원기자

[여행스케치=강화]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금발의 청년 앤드류는 아직 한국말이 서툴다. 하지만 뉴질랜드의 시골에서 자랐다는 그는 한국의 시골 풍경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는 듯 했다. 언어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지만 지푸라기를 만지는 그의 손놀림은 여느 한국젊은이들과 다르지 않다.

“인자는 기억이나 할랑가 모르겄어.” 젊은이들이 지푸라기 공예를 알고나 있을까? 70이 넘으신 외포리의 동네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들만 보면 걱정이 앞선다. 지푸라기를 엮어 만든 멍석이며 가마니, 송뎅이, 우장, 짚신, 또아리, 시루받침, 맷방석 등등 어린 시절 하루 종일 자리를 깔고 앉아 만들었던 것들이다. 지금은 그 이름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지푸라기를 매만지는 손길들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강화버스터미널에서 세광아파트를 지나 안양대학교, 인산저수지를 끼고 우회전하면 강화도 외포리 방면이 나온다. 도로와 인접해 있는 장수촌(오리탕전문음식점)에 지푸라기 공예체험장을 물으면 주인의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겨울이면 할 일이 거의 없는 농촌 마을. 따로 여흥을 즐길 거리가 없어 어르신들은 긴긴 하루를 무료하게 보내야 했다. 그런 어르신들의 소일거리 마련에도 도움을 주고 옛것을 알리고 가르쳐 보자는 취지로 생각해낸 것이 ‘지푸라기 공예’였다고 안종철(59. 지푸라기공예회장)씨는 소개했다.

커피 한잔씩 하며 지푸라기 공예를 하시는 어르신들. 2003년 11월. 사진 / 김선희 객원기자
커피 한잔씩 하며 지푸라기 공예를 하시는 어르신들. 2003년 11월. 사진 / 김선희 객원기자

지푸라기 공예를 시작한 지 4년째, 아직은 외포리 마을의 모든 어르신들이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김문연(76) 황현구(72) 김의연(72) 안원석(84) 최예순(75) 어르신들이 주로 가르치고 계시는데 지푸라기를 만져보겠다는 젊은이들이 있는 자리면 어디라도 환한 얼굴로 마다하지 않으신다.

외포리에 마련해 놓은 지푸라기 체험관은 새로 건축한 마을회관 2층에 자리하고 있다. 1층에는 체험하러 온 사람들이 먹고 잘 수 있도록 방과 주방이 마련되어 있고 2층에는 지푸라기 공예가 가능한 넓은 방과 작품들을 볼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작품들은 하나하나 만든이의 정성이 들어가 있는 우리네 생활필수품들이다.

지푸라기 공예를 할 때 사용하는 도구들. 2003년 11월. 사진 / 김선희 객원기자
지푸라기 공예를 할 때 사용하는 도구들. 2003년 11월. 사진 / 김선희 객원기자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멍석 위에 자리를 잡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지푸라기를 꼬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최근에는 지푸라기 공예를 직접 체험하고 싶어 하는 초·중·고생들이 많이 찾고 있어서 어르신들의 입가에는 웃음이 그칠 새가 없다. 어르신들이야 지푸라기로 생활필수품을 만들어 쓰신 어린시절이 있었다지만 체험하러 온 학생들은 대부분 지푸라기로 무얼 만들 수 있는지 신기해할 뿐이다.

짚신 만드는 법을 배우는 체험객. 2003년 11월. 사진 / 김선희 객원기자
짚신 만드는 법을 배우는 체험객. 2003년 11월. 사진 / 김선희 객원기자

짚신 한번 삼어 봐
“짚신 삼을 때는 새끼를 꼬아서 먼저 발바닥을 엮는 중심날을 네 줄 만들어서 양쪽 엄지발가락에 걸지. 그걸 움직이지 않게 허리에다 지푸라기 몇 줄로 묶어서 고정시켜놓고 앞코를 만들면서 얽어나가다 고를 만들어. 고가 다 만들어졌다 싶으면 마지막에 새끼 꼬은 것으로 고를 연결해서 엮어주면 짚신이 다 만들어지지.”

낯선 이국인 앤드류. 말도 잘 안통하지만 연신 “잘하네, 잘한다.” 칭찬하시며 짚신 만드는 방법을 일러주시는 어르신의 손길에는 따뜻함이 배어 있다. 화려하진 않으나 옛것의 소박함과 마음 한켠을 잔잔히 울리는 지푸라기 공예품들은 여운이 길게 남는 우리네 삶이 숨쉬는 문화이다. 

왼손으로 망치질 하는 모습이 신기하신지 웃으시는 할머니. 2003년 11월. 사진 / 김선희 객원기자
왼손으로 망치질 하는 모습이 신기하신지 웃으시는 할머니. 2003년 11월. 사진 / 김선희 객원기자

지푸라기 공예 체험기  
강화에 대한 소개 글을 읽으면서 그 역사적 중요성 때문에 좀 긴장되었다. 이 작은 섬에서는 수많은 대규모 전투와 정치적 사건들이 일어난 것 같았다. 물론 한국에는 수천 년의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의 현장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여러 지역들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섬에 대해 약간의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전날 잠을 거의 못 잤던 탓에 나는 가는 도중 자연스럽게 잠에 빠져들었다가 강화도로 다리를 건너기 바로 전에 깨어났는데 그 순간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듯한 인상에 그 즉시 반해버렸다. 잠이 덜 깨 반은 꿈속을 헤매고 있었지만 다리를 건너 나무로 뒤덮인 언덕과 경사면 꼭대기에 걸려있는 낮은 구름들은 확실히 강하게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듯한 신비로움으로 섬을 덮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 마을을 벗어나자 이 섬의 신선한 아름다움은 굉장히 선명해졌다. 퍼붓는 비는 대지를 침묵하게 했으며 깊이와 명암을 만들어 내는 먼 거리의 언덕들은 안개에 싸여 있었다. 부드러운 회색빛 하늘아래 초목들은 더욱 찬란하게 두드러져 보였다. 깨끗하고 푸른 뉴질랜드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복잡한 서울에서 1년 동안 산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강화도의 넓고 광활한 들판과 사랑스러운 초록 언덕들을 경험한다는 것은 나에게 무척 신선한 일이었고, 영혼이 재충전 되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마을에 도착해서 나는 짚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전통적인 수공예품들이 전시한 방으로 들어갔다.

지푸라기를 엮는 손. 2003년 11월. 사진 / 김선희 객원기자
지푸라기를 엮는 손. 2003년 11월. 사진 / 김선희 객원기자

나는 이 곳 사람들이 짚으로 만든 공예품들을 보고 감탄하고 말았다. 나에게 지금까지 본 것 중 한국 사람의 가장 뛰어난 재능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이렇게 간단한 재료만을 가지고 다양한 방법과 쓰임새를 개발해낸 능력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먼저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는데 오리구이 요리가 나왔다. 나는 원래 음식을 조금 먹는데다 배도 고프지 않았지만 요리는 참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공예 작업장으로 돌아왔는데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 모여 있었다. 이제까지 한국 노인들과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것은 정말 귀중한 경험이었다.

나는 서로 의사소통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고 그래서인지 나는 그들의 얼굴 너머에 새겨진 지혜와 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이 능숙한 솜씨로 지푸라기로 새끼를 꼰 다음 다시 바구니와 짚신 등을 엮는 것을 지켜보았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오래 전부터 갈고 닦은 기술을 가진 손동작을 보면서 내가 직접 하게 되면 얼마나 서툴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당황하기도 했다.

확실히 첫 번째에는 많은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서투르기만 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나는 지푸라기를 위 아래 엮고 또 엮고, 새로운 가닥을 이어 붙이며 새끼를 엮을 수 있었다. 나는 내 손으로 일을 하고 창조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을 사랑한다. 비록 함께하는 사람들과 재료가 나에게는 낯설긴 하지만 창조적인 과정들은 그렇지 않았다.

앙증맞은 짚신. 2003년 11월. 사진 / 김선희 객원기자
앙증맞은 짚신. 2003년 11월. 사진 / 김선희 객원기자

새끼를 꼬는 일은 어려워서 하다보면 나는 내 식대로 좀 쉽게 해보려 했는데, 노인들은 내가 혼자 제대로 할 수 있을 때까지 틀린 점을 바로 잡아가면서 나를 이끌었다. 얼마나 서툴렀는지 짚신을 완전히 만든 다음 부드럽게 다듬기 위해서 나무망치로 두드리는 일이 가장 쉬운 일이었다.

노인들은 내가 오른손으로 망치를 사용하지 않는 걸 보고 웃었다. 아마도 그들은 왼손잡이를 많이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들이 나를 도와줘서 만든 신발은 아마도 그들의 소장품과 비교하면 훌륭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만든 나만의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좀더 시간이 있었다면 나는 더 오래 머물면서 그것을 만들었을 것이다.

어찌됐든 나는 지푸라기 공예 체험을 즐겼으며 재충전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한국문화의 또 다른 면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한국에 보낸 지 벌써 2년, 그러나 항상 더욱 알고 싶은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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