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가족여행] 그윽한 가을의 향기를 마시자, 영평사 구절초 꽃차
[가족여행] 그윽한 가을의 향기를 마시자, 영평사 구절초 꽃차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2.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구절초 향기가 가득한 영평사. 2003년 12월. 사진 / 구동관
흐드러지게 핀 구절초 향기가 가득한 영평사. 2003년 12월. 사진 / 구동관

[여행스케치=공주] 공주에 있는 영평사는 오래된 절은 아니다. 하지만 구절초 꽃의 아름다움으로, 넓은 잔디마당과 어울린 단출한 가람들로 한번 다녀간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절이다.   

가을여행의 제멋이야 단풍이지만 구절초 꽃이 가득 피어있는 영평사에서는 단풍나무의 붉은 나뭇잎도, 은행나무의 노란 잎도 그 빛깔을 자랑하지 못한다.

구절초가 수수하게 피는 꽃이기는 하지만 영평사 주변에 워낙 많은 꽃이 피어 밤새 내린 눈처럼 절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영평사가 오래된 절은 아니다. 하지만 구절초 꽃의 아름다움으로, 넓은 잔디마당과 어울린 단출한 가람들로 한번 다녀간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절이다.

축제 와중에도 불공에 대한 발길은 끊이지 않는 곳이 영평사다. 2003년 12월. 사진 / 구동관
축제 와중에도 불공에 대한 발길은 끊이지 않는 곳이 영평사다. 2003년 12월. 사진 / 구동관

그곳에서 구절초 꽃 축제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예전부터 화전을 부쳐 먹던 중앙절(음력 9월 9일) 전후로 옛 풍습을 재현하는 자리를 마련하면서부터다. 구절초(九節草)라는 이름도 9월 9일(음력)에 아홉마디가 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니 정말 잘 어울리는 축제 아닌가?

영평사를 처음 찾은 것은 지난해였다. 하늘이 유난히 파랗던 그날 우연히 들렀던 그곳에서 한참동안 구절초 향기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면서 가족들과 함께 갈 가을 여행지로 손꼽아 두었었다. 올해는 축제 기간이 스무날이 넘어 그 기간 중 하루에 가족들과 함께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여행에는 어머님도 함께 하셨다.

오전 11시. 영평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환하게 핀 구절초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차에서 내려 절 마당으로 오르는 언덕길 양쪽에도 온통 구절초 일색인데 아름다운 경치를 좋아하는 다솜이가 많은 꽃들을 보며 활짝 웃는다.

언덕 사이 길을 걷던 현석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온통 벌들이야.”라고 투덜거리더니 벌들도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해를 끼치지 않으면 덤비지 않는다는 아빠의 설명을 듣고 조심스럽게 꽃 틈을 빠져 나간다. 언덕을 올라서니 넓은 마당과 절집이 보였다.

매년 구절초가 피는 10월 경에는 산사음악회, 국악 한마당이 열린다. 2003년 12월. 사진 / 구동관
매년 구절초가 피는 10월 경에는 산사음악회, 국악 한마당이 열린다. 2003년 12월. 사진 / 구동관

지난 밤 있었던 산사음악회 때문에 조금은 어 수선한 분위기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앞쪽에 무대도 설치 되어있고, 축제 기간동안 절집을 찾았던 사람이 많았던 탓인지 잔디마당도 볼품이 없어졌다. 하지만 절 둘레를 온통 감싼 구절초 꽃은 여전해 사람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머님이 대웅전에서 예불을 올리자 다솜이가 할머니를 따라 삼배를 드린다. 예불을 마치고 삼성각으로 오르는 길 옆쪽으로 커다란 수조가 있다. 여행객의 목을 축이기 좋은 그 수조에 구절초 몇 송이가 띄워져 있다. 물에서도 구절초 맛이 느껴지는 듯 했다.

사찰음식을 맛보기란 흔하지 않은데 깔끔한 맛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2003년 12월. 사진 / 구동관
사찰음식을 맛보기란 흔하지 않은데 깔끔한 맛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2003년 12월. 사진 / 구동관

절집을 돌아보는 일로 시장기가 돌 무렵 절집 한쪽에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장독대가 가지런히 늘어선 옆쪽에서 장작불에 국수를 끓이고 있었다. 축제기간동안 절집을 찾은 사람들에게 국수를 대접하고 있었다. 더욱 좋은 것은 무료란다. 절 음식이 맛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 절집 음식을 맛보기는 쉽지 않다.

시장기를 느낀 사람들의 줄이 꽤 길었지만 국수를 재빨리 끓여 내는 보살님들의 손놀림 덕분에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국수 한 그릇에 김치 한 보시기를 받아 따뜻한 햇살에 자리를 잡았다. 국수는 국물이 진하거나 꾸미가 많지는 않았지만 대신 깔끔한 맛이 좋았다. 현석이와 다솜이도 한 그릇을 맛있게 먹었다.

전통놀이마당에 있는 굴렁쇠. 아이들은 자유롭게 마당을 뛰어다니며 굴렁쇠를 굴린다. 2003년 12월. 사진 / 구동관
전통놀이마당에 있는 굴렁쇠. 아이들은 자유롭게 마당을 뛰어다니며 굴렁쇠를 굴린다. 2003년 12월. 사진 / 구동관

점심공양을 마치고 햇볕 좋은 절 마당에 앉았다. 현석이와 다솜이는 국수를 먹기 전부터 벼르고 있던 굴렁쇠 굴리기에 나섰다. 절집에서 어린이들의 전통놀이 체험으로 마련해 둔 것인데 곳곳에서 아이들이 아빠, 엄마에게 굴렁쇠 굴리기를 배우고 있었다. 현석이와 다솜이도 굴렁쇠가 낯설어 겨우 두 발자국 만에 엎어진다. 하지만 몇 번 연습을 하니 제법 잘 굴려 현석이는 한 시간 넘게 열중했다.

‘산속 차마실’로 구절초 꽃차를 마시러 갔다. 절 마당 한쪽에 자리 잡은 찻집이다. 현석이는 굴렁쇠 굴리기에 빠져있어 찻집에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꽃차라는 말에 다솜이는 큰 기대를 가지고 따라 나섰다. 자리에 앉으니 귓대사발에 따끈한 차가 나왔다. 한잔을 따라 마셔보니 진하지 않은 맛이 은은하다.

'산속 차마실'에서 마실 수 있는 예쁜 구절초차. 2003년 12월. 사진 / 구동관
'산속 차마실'에서 마실 수 있는 예쁜 구절초차. 2003년 12월. 사진 / 구동관

가을을 마시듯 천천히 차를 마셨다. 찻집에는 두 분의 보살님이 계셨다. 한 분은 계속 꽃차를 우려내고 있었고, 또 한분은 귓대사발을 비운 손님들에게 다시 새로운 차를 채워 주었다. 우리가 마신 구절초 꽃차는 영평사에서 직접 만들었단다. 꽃을 따서 뜨끈뜨끈한 방에 한 송이씩 펼쳐 말린 것이란다.

그런 꽃차를 다솜이는 아홉잔이나 마셨다. 채워지기가 바쁘게 잔을 비우는 다솜이를 옆에 앉았던 손님들도 신기한 듯 바라 본다. 준비해준 차를 다 마시고 빈 찻잔으로 한참을 기다리자 그 손님들은 그 분들의 몫을 다솜이 잔에 채워줬다.

두 보살님들이 정성스레 차를 우려주신다. 2003년 12월. 사진 / 구동관
두 보살님들이 정성스레 차를 우려주신다. 2003년 12월. 사진 / 구동관

여행을 자주 다니면 음식 가리는 것이 덜하다. 차를 마시는 것을 보더라도 역시 우리 아이들은 ‘잡식성’이다. 찻집에서 나가려 할 때 현석이가 들어왔다. 굴렁쇠 굴리기를 하고 땀흘리며 들어오는 현석이에게 보살님이 막잔에 시원한 구절초 꽃차 한잔을 주셨다. 단숨에 들이키자 한잔을 더 채워 주셨다.

오후 2시 30분. 국악한마당이 시작되었다. 연주곡마다 악기별 설명이 곁들여졌다. 절집에서 듣는 소리라 그런 것일까? 우리 소리들이 환한 가을날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마당 한쪽에서는 스님들과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다담’도 함께 이루어졌다.

우리는 한 시간정도 연주를 듣고 영평사를 나왔다. 누렇게 익은 벼들이 들판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이미 수확이 이루어진 곳도 있었다. 논 옆에 잠시 차를 세우고 아이들과 들판을 보았다. “익은 벼를 보면 무엇이 생각나니?” 아빠의 질문에 “고개를 숙인다” 아이들이 바로 대답한다. 그렇게 논두렁은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

말린 구절초. 이 구절초를 물에 띄우면 향긋한 향이 스미는 차가 된다. 2003년 12월. 사진 / 구동관
말린 구절초. 이 구절초를 물에 띄우면 향긋한 향이 스미는 차가 된다. 2003년 12월. 사진 / 구동관

Tip. 구절초
들국화는 가을 들판에 피는 국화과 식물로써 쑥부쟁이류나 산국, 감국, 구철초류가 이에 속한다. 쑥부쟁이나 구절초는 그 종류만 해도 10가지가 넘는다. 그 중 구절초는 크게 나누어도 4-5가지가 될 정도로 다양한 형태를 띄고 있는데 가을 중부지방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종류가 바로 산 구절초다.

잎이 가늘고 키가 작으며, 흰색 꽃이 보통이지만 가끔 연한 보라색이나 분홍색 꽃을 피우기도 한다. 구절초는 쓰임새가 많은 꽃인데, 봄철에 돋아나는 어린 싹은 나물을 하고 여름철에 따는 센 잎은 튀김을 해먹는다.

명의 이시진은 <본초강목>에서 ‘구절초는 건위, 보익, 신경통, 정혈, 식욕부진에 좋다’고 하였다. 꽃을 말렸다가 그 꽃잎을 우려 차로 마셔도 좋다. 특히 구절초 차는 정신이 맑아지고 집중력을 향상시킨다고도 한다. 그 특유의 향기가 있어 꽃을 띄워 목욕을 하기도 하고 베개 속에 꽃잎을 넣으면 그 향기로 인해 피로가 풀리고 악취도 예방할 수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