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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8월호
[가족여행] 과재구 시인과 함께 한 '순천만 포구' 나들이
[가족여행] 과재구 시인과 함께 한 '순천만 포구' 나들이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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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화포 앞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순천만 마을 풍경. 2003년 12월. 사진 / 한결가족
화포 앞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순천만 마을 풍경. 2003년 12월. 사진 / 한결가족

[여행스케치=순천] 불빛들이 빛나기 시작한다. 저 불빛은 화포의 불빛이고, 저 불빛은 거차의 불빛이며, 저 불빛은 와온 마을의 불빛이다. 하늘의 별과 순천만 갯마을들의 불빛들을 차례로 바라보며 나는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가 하는 싱거운 생각에도 잠겨본다. 당신 같으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나의 선택은 마을의 불빛들이다. <곽재구의 포구기행> 중 

가을 한낮에 들어선 ‘화포’포구는 온통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수런수런, 두런두런, 와아와’ 저렇게 빛나는 물빛을 보노라면 수십만의 사람들이 모여 맑고 고운 표정으로 일제히 손을 흔드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일요일 오후 느긋하게 가족 모두가 손을 잡고 함께 걸었던 게 언제였을까.

한낮의 햇살을 받아 화포 앞바다는 온통 은빛으로 빛난다. 2003년 12월. 사진 / 한결가족
한낮의 햇살을 받아 화포 앞바다는 온통 은빛으로 빛난다. 2003년 12월. 사진 / 한결가족

오후 출근 덕에 항상 쫓기듯 일요일 오전을 후딱 해치웠던 우리가족이 모처럼 하루 종일 한가롭게 바닷가를 거닐게 되었다. 그것도 ‘포구기행’으로 친근한 곽재구 시인과 말이다.

순천대에서 만나 화포로 함께 온 시인은 ‘시간과 길과 인연’을 이야기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한결이는 <아기 참새 찌꾸>를 쓴 아저씨를 직접 만난다는 설렘으로 더욱 즐거운가 보다. ‘찌꾸’는 한결이와 나이가 같다. 1992년 2월 1판 1쇄. 한결이도 그 2월에 생명을 얻어 엄마 뱃속에서 찌꾸를 읽었다.

집에서 가지고 간 책을 보여드리니, “이야, 출판된 해에 읽었네!”라고 너무 반가워한다. 아가에게 책을 읽어 준 엄마가, 태어나 또 함께 읽자고 책 앞쪽에 메모를 해두었는데 그 옆에 사인도 해준다. ‘늘 지혜롭고 튼튼하게 자라 이 세상을 뒤덮는 큰 나무 되렴’

물론 한결이는 <아기 참새 찌꾸>를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었을 뿐 아니라 <초원의 찌꾸>, <아기 참새 찌꾸 2>도 읽었다. “근데 찌꾸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어요?” 참새 이름이 참 마음에 든다던 한결이가 시인에게 궁금했던 걸 풀어놓는다.

곽재구 시인과 함께한 한결가족. 2003년 12월. 사진 / 한결가족
곽재구 시인과 함께한 한결가족. 2003년 12월. 사진 / 한결가족

“아, 그거. 내 이름이 ‘재구’잖냐? 참새는 ‘짹짹’ 운다고 하고. 참새소리와 내 이름을 합친 거야” “으음, 그랬구나. 너무 멋져요” 답을 들은 결의 얼굴이 기쁨으로 차오른다. 옆에 다가오더니 귀엣말로 <낙타풀의 사랑>을 사 달라 한다. 이쁜 녀석.  

수더분하게 생긴 시인은 먼저 바다와의 인연으로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갔다. 화포와의 인연은 어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체험에서 비롯됐다 한다. 수 년 전 완전한 도시인이었던 그 때, 더 이상 길이 없는 이 곳에 들러 아낙네들이 맛조개를 잡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더란다.

비 오는 날, 갯벌 흙을 뒤집어쓰고 맛을 잡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방인에게 그네들이 처음부터 좋은 감정을 갖긴 어려웠을 터. “뭘 그렇게 보느냐”는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몇 시간이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더니 결국은 맘을 열더라는 것. 이후 이 마을은 마음이 뭔가를 그리워하면, 그저 달려가 안길 수 있는 그런 곳이 되었더란다.

그러면서 이 곳을 기점으로 한 ‘거차’와 ‘와온’, ‘달천’ 등 순천만 포구마을들은 차츰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다는 것이다. 바닷가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재첩처럼 생긴 조개를 가득 잡아오는 아주머니의 바구니를 함께 들며 물어보니 ‘썩서구’라고 부른다는데 두 번을 들어도 발음을 잘 잡을 수 없다.

순천만 갈대밭 원경. 2003년 12월. 사진 / 한결가족
순천만 갈대밭 원경. 2003년 12월. 사진 / 한결가족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이나 거부감이 전혀 없어 너무 편하다. “이젠 웬만한 도시사람들보다 수입이 낫기 때문에 생기는 여유”라고 시인은 분석한다. 다음으로 시인이 안내한 곳은 순천만에서 가장 유명한 ‘대대포구’ 갈대밭이었다. 갈대가 그 특유의 자태와 은빛으로 부서지려면 시간이 더 흘러야만 할 것 같은데, 갈대밭 곳곳에는 탐방객들로 가득 찼다.

포구를 휘감고 있는 방조제에도 행렬이 이어진다. 이 곳은 처음 온 게 아닌지라 다른 이들처럼 경탄까지 나오진 않았는데, 시인과 함께 방조제를 걸으면서 느낌이 달라지고 절로 의미가 부여되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얼마 전 느리게 걸으며 명상하는 걸로 유명한 틱낫한 스님이 송광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단다.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주차장에서부터 경내까지 걸어가는데, 그렇게 느릴 수가 없더란다. 한 사람이 스님께 여쭈었다. “이렇게 천천히 걸으면서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지금 이 순간, 발끝에 닿는 모든 것을 느끼지요”

첫 만남에 오늘은 많이 걸을 거라 이야기하더니, 바로 이렇게 걷는 것이 틱낫한 스님의 모습에서 힌트를 얻은 걷기라는 말도 더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수만 평의 갈대밭도 장관이지만, 지금 우리가 걸으면서 갈대를 함께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하고 의미 있는 발걸음이 되는 순간이었다.

순천만 갈대밭 근경. 2003년 12월. 사진 / 한결가족
순천만 갈대밭 근경. 2003년 12월. 사진 / 한결가족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것보다 의미 있고 값지지만, 또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만물이 다시 들어오고 느낌이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갈대에 대한 온갖 표현이나 찬사는 이 순간만큼은 별 의미가 없다. 여유로운 발걸음은 더욱 한가함을 이끌었다.

시인이 단골이라는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장척마을의 찻집에서 시간을 늘리게 됐다. 언덕배기에 말 그대로 하얀 집을 지어 놓고 손님을 맞고 있는 이곳은 주인이 정성스레 가꾼 너른 뜰의 온갖 화초가 또한 일품이었다. 한가롭게 잔디밭에 앉아 꽃을 감상하면서 아이들과 노닥노닥, 하하호호 웃다 보니 해가 어느새 바다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어스름으로 사위가 여위어가고 가로등이 하나 둘 불을 밝힐 무렵, 시인과 우리는 그가 가장 아낀다는 ‘와온’ 마을을 찾았다. 와온(臥溫), 말 그대로 따뜻하게 누울 수 있는 이곳에서 시인은 “꿈이 있어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며 그 배경을 이야기했다. 시인에 따르면 땅끝마을은 그냥 땅 끝이라는 호기심 때문에 가기도 하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생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찾는 곳이라는 것이다.

따스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와온마을 선착장 가로등. 2003년 12월. 사진 / 한결가족
따스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와온마을 선착장 가로등. 2003년 12월. 사진 / 한결가족

포구도 마찬가지. 더 이상 갈 곳 없는 바닷가 끝에 서서 생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실제로 IMF 때 한 실직자가 삶의 의지를 잃고 세상을 떠돌다 이 와온 마을까지 스며들었는데 그는 이곳에서 뭔지 모를 따뜻함을 느끼고 다시 생의 의지를 되찾았단다. 그리하여 막노동을 하면서 마을 외딴 산기슭에 땅을 사고, 하루 벌이로 벽돌 몇 장씩 사 나르며 지금도 집을 짓고 있단다.

시인이 가리킨 그 집은 외로이 떨어져 있긴 했지만 이야길 들어선지 새나오는 불빛만은 너무도 따스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도 이 곳에 꿈을 하나 심어 놓았단다.

“글만 쓰는 사람 같은 이들은 어쩌면 사회적응능력이 없는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들을 위해 이 곳 와온 마을에 방 몇 칸 있는 문예학교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들이 글만 써도 좋고 그렇게 지내다 사회적응력을 키우면 더 좋겠지요.”

시인이 ‘포구기행’을 시작하게 된 것도 바로 이 곳, 와온 마을의 힘이었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시인과 함께 할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여느 포구와 다를 것 없는 마을들이 시인의 눈과 마음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갯벌에서 캔 조개를 들고 나오는 동네 아주머니. 2003년 12월. 사진 / 한결가족
갯벌에서 캔 조개를 들고 나오는 동네 아주머니. 2003년 12월. 사진 / 한결가족

“순천에 사는 사람들도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잘 몰라요” 그렇다. 발길 닿았던 곳도 그냥 지나치면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와온에서 바라 본 순천만 여러 포구들의 불빛은 그대로 가슴에 스며들었다. 그건 아름답다거나 곱다거나 하는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막 떠오르기 시작한 별들도 안온함을 더한다. “이 포구에 가로등이 18개 있거든요. 제가 지인들에게 하나씩 분양했어요. 저기 불도 안 들어 오고 허리가 조금 꺾인 가로등이 제 거예요.”라고 말하는 시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지는 듯하다.  

그렇게 ‘시간과 길과 인연’의 이야길 차곡차곡 쌓다보니 어느새 포구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내음’을 실어 나르는 불빛들만이 점점 또렷해지고 그 가운데 그래도 삶은 살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연신 파도가 밀려오는 방파제엔 나트륨 가로등이 노란빛을 따스하게 내린다. 그 편안함과 따스함을 가득 안고 와온 포구를 뒤로 우리가족의 가슴속엔 ‘인연’으로 덧댄 ‘시간’의 흐름 앞에 ‘꿈’이라는 길이 길게 뻗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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