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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이달의 기차역] 겨울 해맞이, 구룡포 과메기를 찾아가는, 포항역
[이달의 기차역] 겨울 해맞이, 구룡포 과메기를 찾아가는, 포항역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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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포항역 풍경.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사람들로 북적이는 포항역 풍경.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여행스케치=포항] 역전 광장은 어느 역이나 낯익은 풍경이 있다. 비둘기, 노인, 부랑자 그리고 바삐 걸어가는 여행객.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와 TV가 켜진 대합실. 커다란 시계탑. 그렇다. 역에는 시계탑이 있다. 떠나는 시간, 돌아오는 시간. 역은 시간을 지키는 곳이다.         

광장 한쪽에 기다랗게 조성된 공원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멀리 젊은 연인 한 쌍이 다정하게 앉아있고 그 앞으로 엄마와 아이들, 무언가 이야기에 열중하는 중년의 사내들과 그 옆으로 노부부.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미군 병사.

겨울철 포항역에는 구룡포 진미 과메기를 맛보러 오는 손님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겨울철 포항역에는 구룡포 진미 과메기를 맛보러 오는 손님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서로서로 갈지자로 앉아 있다. 제각기 다른 길을 걸어온 남녀노소 이방인들이 제각각의 갈 길로 떠나는 자리. 그들 앞에 빗장처럼 가로 누운 시간은 같다. 어느 순간 하나 둘 일어나 대합실로 들어가고 이내 텅 비어 버린다. 그 자리에 부랑자 한 사람 와서 길게 드러눕는다. 시간을 잃어버린 이.

역전 광장 끄트머리에 있는 택시 승강장. 줄지어 서있던 택시들이 역에서 나온 손님들을 태우자마자 이리저리 휭 하니 떠난다. 소란도 잠시, 승강장은 텅 비어 버린다. 뒤늦게 손님을 찾아온 택시 한대가 잠시 섰다가 천천히 큰 길로 돌아나간다. 헐레벌떡 달려왔다가 터덜터덜 가는 뒷모습이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망설이기라도 하듯 흔들린다.

택시 승강장 건너편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구멍가게가 있고 그 옆으로 난 골목길에서 빨간 불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온다. 홍등가. 길 하나를 두고 맞은편에는 대형할인매장이 들어서 있다. 대형 매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환한 형광 불빛과 어슴푸레한 골목길의 은은한 붉은 등불. 같은 세상이자 다른 세상이다. 어둠은 두 세상을 똑같이 품는다.

동대구까지 가는 노선에 출퇴근을 하는 승객들이 많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동대구까지 가는 노선에 출퇴근을 하는 승객들이 많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아침. 역은 분주하다. 새벽 5시 15분에 동대구에서 출발한 통일호가 8시 1분에 도착한다. 하양과 영천, 경주, 안강을 거쳐 온 열차에서 과일이며 생선, 채소 보따리를 이고 진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줄지어 내린다. 포항역 옆으로 난 주택가 골목길은 순식간에 시장이 된다.

“언제부터요? 글쎄… 저기 저 할머니가 새댁 때부터 떡을 팔기 시작했다. 한 40년은 되었을 건데, 아무튼 오래 됐어요.” 길 끄트머리에서 커피를 파는 아주머니도 장사한지 십여 년이 넘었건만 언제부터 시장이 시작됐는지 모른다. 옆에 할아버지에게 물어봐도 가물가물하다. 누구하나 똑떨어지게 말해주지 못하는, 역이 있고 사람이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형성된 번개시장이다.

광장 옆 인근 골목길에 아침마다 농촌에서 온 과일과 채소가 풍성한 번개시장이 선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광장 옆 인근 골목길에 아침마다 농촌에서 온 과일과 채소가 풍성한 번개시장이 선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안강 단감, 기계 사과… 포항 인근 농촌에서 한보따리씩, 채소며 과일을 이고 와서 팔다가 점심 무렵이면 파장을 하고 돌아간다. 한때는 골목 깊숙이까지 번창했던 시장이다. 인근 주민은 물론 외곽에서도 이 시장을 찾아 북적일 때는 생선이며 옷가지 등등 품목도 많았다.

포항 외곽지에 신시가지가 조성되고, 역 앞에 대형할인매장이 들어서면서 시장은 급격히 쇠락하였다. 깎자, 말자 흥정하는 목소리들도 예전만 못하다. 어쨌거나 그래도 어김없이 오늘도 장은 선다. 점심때면 또 다른 손님들이 우르르 내린다. 단체로 오는 노인들이다.

“대구나 경주 등지에서 오는 노인회 분들이지요. 대개 12시 19분 열차로 와서 죽도시장에서 회 한 접시에 소주 한잔 걸치시고 4시 20분 차로 가시고는 합니다.”

동해안 최대의 재래시장이라는 죽도시장. 신선하면서도 싸고 양도 많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동해안 최대의 재래시장이라는 죽도시장. 신선하면서도 싸고 양도 많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포항역에서 죽도시장까지는 차로 10분 거리. 죽도시장은 영남 최대의 재래시장이다. 관광명소로 만들고자 시에서 지속적으로 개선사업을 하고 있다. 덕분에 그 많은 가게들이 반듯반듯 질서정연하다. 뒤로는 건어물과 야채 가게가 있다. 시장에서는 그 어디서보다 푸짐하고 저렴하게 회를 먹을 수 있다.

대구서 포항까지 2시간 남짓 거리. 왕복요금이 2천6백원인데 경로 우대로 50% 할인 받으면 1천3백원. 여럿이서 추렴하니 회 한 접시에 소주 한잔해도 일인당 1만원이면 충분하다. 오가는 기차에서 이야기 꽃 피우고, 푸짐하게 회 드시고…. 따로 효도관광 갈 일이 없단다.

포항역은 1918년 11월 1일 포항에서 하양까지 협궤선 운행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45년 광궤선으로 개량하고 92년 새마을호가 개통되었다. 일제는 위로 태백에서 내려오는 동해선과 이을 계획이었는데 그 이유야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한반도 호랑이 등뼈를 타고 내려오는 탄광지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마을호 식당차. 포항까지는 장거리이므로 자가용보다는 기차여행을 권한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새마을호 식당차. 포항까지는 장거리이므로 자가용보다는 기차여행을 권한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한때 포항 항구와 연계하여 남해에서 생산한 비료와 석탄 등을 싣고 나르던 화물운송량도 많았는데 지금은 시대가 바뀌며 물량이 사라졌다. 포항제철에서 생산한 철강제품은 괴동역에서 출발을 하기 때문에 포항역은 하루 9천에서 1만 명에 이르는 여객운송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역? 많이 커졌지. 재작년엔가 새로 단장을 하고 예전보다 손님도 많이 늘고….” 40년 넘게 역전을 지켜온 구멍가게 아주머니 말에 따르면 포항역은 성장하는 역이다. 92년 새마을호가 개통되고, 94년에는 복합열차가 운행되면서 운행회수가 늘자 이용객도 늘었다. 복합열차란 16량으로 경주까지 왔다가 그 후 8량은 포항으로 8량은 울산으로 가는 열차다.

포항의 호미곶이 해맞이 명소로 유명해지고, 죽도시장, 구룡포 과메기 등이 이름을 타면서 관광객들도 늘었다. “여름이면 칠포 등 해수욕장을 찾아온 젊은 여행객들로 역이 터져나갈 듯 붐빕니다. 그땐 정말 정신없지요.” 장영수 역무팀장. 포항에서 자라 역 앞에서 뛰어놀던 소년이 지금은 역무를 책임지는 팀장이다.

종착역 포항에서 선로는 하나로 묶인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종착역 포항에서 선로는 하나로 묶인다.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포항 역은 통근열차로 이용하는 이들도 많아 낯익은 손님들도 적지 않다. 아침에는 어떻게 오는지 모르지만 저녁에는 꼭 타는 반통근객들도 많다. 사람 사이에는 정이라는 게 있어 바삐 스쳐가는 역이라 말 한마디 나누지는 못해도 행여 며칠 안보이면 어디 아픈가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도 한단다.  

21시 48분. 동대구로 가는 막차. 늦게까지 야근을 하거나 회식자리에 참석했던 직장인들이 헐레벌떡 달려온다. 집으로 가는 열차. 차창 밖으로 불빛이 환하다. 자리에 앉은 이들, 편하게 뒤로 기댄다. 덜컹 덜컹 거리는 기차 바퀴를 자장가 삼아 하루의 피로를 풀 단잠을 자려는 듯. 저러다 종착역까지 가면 어떻게 하나.  

포항 시가지 풍경.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포항 시가지 풍경.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Traveler’s Guide
포항역 인근 여행 가이드
포항 문화관광과에서 추천한 1박 2일의 포항 여행코스. 출발지가 서울이라면 되도록이면 새마을호 열차를 이용하기를 권한다. 교대로 운전하더라도 장거리 운전은 가족의 안전에 절대 도움이 안 된다. 포항 역전 광장에 렌트카 출장소가 있고 교통편을 상세히 알 수 있는 관광안내소도 있으므로 굳이 차를 타고 오지 않아도 그리 불편하지 않을 듯.  

호미곶 해맞이광장.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호미곶 해맞이광장. 2003년 12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제 1코스 : 포항 남쪽 일대를 돌아보는 코스. 그 유명한 겨울 구룡포 과메기와 호미곶의 일출, 상생의 손, 등대박물관 등을 중심으로 엮은 코스. 오어사는 호수가에 있는 천년 사찰로 원효암과 자장암 등이 있다. 포항역 -> 포스코(역사관) -> 오어사(운제산) -> 영일만온천 -> 구룡포읍(과메기·회) -> 대보면(호미곶 해맞이광장) -> 포항시내

제 2코스 : 포항 북쪽 관광지를 중심으로 짠 코스. 내연산은 포항 일대에서 관광지로 이름난 산. 내연산 수목원과 유명한 신광온천단지를 둘러보고 시내 죽도시장에서 과메기를 맛볼 수 있다. 포항역 -> 환호해맞이공원 -> 보경사(내연산) -> 내연산수목원 -> 죽장하옥계곡 -> 신광온천 -> 포항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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