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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산골마을에서의 하룻밤] 잘 알려진 오지 어성전을 아시나요? 양양 어성전 2리 탁장사마을
[산골마을에서의 하룻밤] 잘 알려진 오지 어성전을 아시나요? 양양 어성전 2리 탁장사마을
  • 여행스케치
  • 승인 2004.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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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탁장사마을 이장님댁 무와 배추밭. 2004년 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탁장사마을 이장님댁 무와 배추밭. 2004년 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여행스케치=양양]  마을은 정말 조용합니다. 마을을 어슬렁거리면 누군가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강아지 한 마리 보이지 않네요. 날은 추워지고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솔솔 올라오고 있는데 오늘밤 묵을 집의 부녀회장님은 어디를 가셨는지 소식이 없네요. 석양이 점점 내려앉으면서 굴뚝을 타고 올라오는 연기가 점점 진해집니다.

어성전 2리 마을은 양양에 있습니다. 양양, 속초가는 고속버스가 가는 길에 잠시 손님을 내려놓고 사라집니다. 양양은 2002년 몰아쳤던 태풍 루사로 아직도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계곡에는 쓸려 내려온 자갈과 흙이 주인인양 행세를 하고 있어서 거의 사막 같습니다.

도로도 쓸려나가서 마을로 들어가려면 머리까지 흔들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한답니다. 어성전 2리 마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학생도 없다며 버스조차 끊겼는데 이 비포장도로 때문에 양양에서 마을까지 들어가려면 승용차로 40분이 족히 걸립니다.

겨우살이 장작을 패시는 할아버지. 2004년 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겨우살이 장작을 패시는 할아버지. 2004년 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마을주민 평균나이대가 60~70대. 그래서 그런가? 아이들이 없어서 평상시에도 이렇게 마을이 조용하다고 합니다. 이제는 농촌에도 보일러니 수세식 화장실에 가스렌지까지 모두 들어와 있지만 그래도 아궁이에 불 때는 집이 많습니다. 집집마다 겨우살이를 위해 장작들을 가지런히 쌓아 올렸네요.

지붕 아래서는 빨간 감들이 말라갑니다. 담벼락에는 맛있는 시래기가 주렁주렁 달려있습니다. 앗, 차소리가 들립니다. 마을에 손님이 왔네요. 동두천에서 온 유치원생들인데 이 어성전 마을로 체험캠프를 하러 왔답니다. 마을에서 소담스럽게 지어놓은 사랑방에 묵습니다. 사랑방은 큰 방 하나와 넓은 부엌이 있지요.

체험장 내 부엌 아궁이에서 불이 지펴지고 있다. 2004년 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체험장 내 부엌 아궁이에서 불이 지펴지고 있다. 2004년 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선생님들이 부엌에서 아이들 먹일 밥을 한다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습니다. 선생님들도 전기밥솥에만 밥을 해봐서 가마솥 밥은 자신이 없다고 그 큰 가마솥에는 국만 끓였습니다. 어라? 한 아저씨가 무언가를 굽고 있네요. 자세히 다가가 보니 개구리네요.

겨울잠을 자러 들어갔을 텐데 어떻게 찾아내셨을까요? 신기해서 주위를 왔다갔다 거렸는데 낯선 사람이라 그런지 귀한 개구리는 얻어먹지 못했습니다. 부엌을 둘러보니 없는 것이 없습니다. 김치 냉장고도 있고 부엌살림 살이에 식재료가 다 있네요.

한 아이가 쉬야가 마렵다고 화장실에 데려다 달래요. 사랑방 바로 옆에 정랑간이라고 써 있네요. 그 옆에는 목간, 그리고 체험장이 있네요. 이 곳이 바로 손님들을 위한 캠프장입니다.

동네 개들도 낯선 사람을 구경하는 탁장사마을. 2004년 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동네 개들도 낯선 사람을 구경하는 탁장사마을. 2004년 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아. 그런데 왜 어성전 2리를 탁장사 마을이라고 부르냐구요? 조선조 말기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해 전국 각처에서 목재를 모아들였던 때가 있었답니다. 그 때 당시 개자니골, 그러니까 어성전 2리 마을과 가매소골, 강릉시 삼산리 사이에 있는 바듸재에 국유림이 있었다네요.

이 때 공교롭게도 제일 큰 나무 한그루가 있어서 두 지역 사람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안간힘을 썼었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기를 하나 했는데 그 나무를 메는 일이었죠. 강릉에서 힘세기로 유명한 권장사는 나무를 지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고 개자니골 출신 양양의 탁장사는 나무를 지고도 서림까지 넘어와 끝내 나무를 차지 했었대요.

그 때부터 마을에서는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그 이후로 이 마을을 탁장사 마을이라고 불렀답니다. 마침 부녀회장님이 도착하셨다네요. 왜 이렇게 늦으셨냐니까 산에 장뇌를 심고 오셨다네요. 한 뿌리에 16만원하는 장뇌가 부녀회장님댁의 또 하나의 수입원이래요.

장뇌는 산삼의 일종으로 손발이 차갑고 시릴 때, 아이들 감기 잘 걸릴 때, 수술 후 회복기에 있는 환자에게 좋고 항암제 역할도 한다네요. 가끔씩 민박 묵어가는 손님들도 사간답니다.

탁장사마을 이장님댁에서 열린 마을회의. 동네 중역들이 모두 모였다. 2004년 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탁장사마을 이장님댁에서 열린 마을회의. 동네 중역들이 모두 모였다. 2004년 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체구도 작은 분이 고단하실텐데도 가족들을 위해서 식사를 챙기십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생글생글 웃으면서 어찌나 살갑게 대해주시는지 오늘 밤 이집에 묵길 정말 잘 했다 싶어요. 밥을 후다닥 먹고 부녀회장님네 부부를 따라 마을 회의에 참석하러 갑니다. 이장님댁에 두루두루 다 모이셨네요.

사람이 많아지니 소리가 점점 높아집니다. “싸우는 것 같지요? 강원도 사투리가 원래 그래서 그렇지 자세히 들어보면 그냥 말하는 거예요. 놀라지 마시라구. 강원도 사투리가 어떻게 보면 평양말 같기도 하대요.” 하며 부녀회장님이 쿡 찔러주십니다. 마을회의라고 해도 대단하진 않았습니다.

이틀 후에 중고생 3백30명이 체험을 하러 온다네요. 그 준비를 하느라고 모이셨나 봐요. 하루간의 체험뿐이지만 그래도 어떻게 재미있게 해줄까 궁리를 하시는 모양입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부녀회장님 댁으로 돌아왔죠. 잘 곳을 알려주십니다. 부녀회장님댁 아들방이예요. 따로 민박용 방이 없으시냐고 했더니 농가민박은 손님이 오면 가족이 쓰던 방을 그냥 주신대요. 대신 다른 게 있다면 탁장사 마을이 찍힌 이불과 베개를 주시지요.

부녀회장님 부부는 40대세요. 이 마을에서 제일 젊은 부부죠. 어려서부터 이곳에서 자라 이곳으로 시집을 오셨대요. 그래서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동네일에 발벗고 뛰어다니시나 봐요. 얼마나 말씀을 잘하시는지 구렁이가 담 넘어 가는 것도 모르겠습니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섰는데 화장실만큼은 고치지 않으셨대요. 일명 푸세식 변소. 전등도 없어서 문을 닫으니 깜깜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스름한 저녁 사랑방에 불이 훤하다. 2004년 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어스름한 저녁 사랑방에 불이 훤하다. 2004년 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마을이 어둠속에 휩싸였습니다. 하늘에 별이 수두룩하게 떠있습니다. 역시 공기가 맑은 것이 이게 바로 시골 공기인가 봐요. 다음날 아침, 부녀회장님의 10년지기 친구 스쿠터 뒤에 올라타고는 회장님댁 원두막으로 향했습니다. 어성전 계곡 근처에 있는데 여름에 오면 참 예쁠 것 같았습니다.

아저씨가 직접 만드신 투박한 원두막과 1m70cm정도 되는 키작은 소나무들이 밭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눈이 와서 설화가 피면 정말 한 폭의 그림 같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성전 자랑이 또 있네요. 어성전은 이제는 계곡이 많이 알려져 ‘잘 알려진 오지’라고도 합니다. 봄이면 아줌마부대들이 좋아할 봄나물들이 산 한가득 피고, 여름이면 계곡에서 고기잡고 옛어른들이 다른 지역갈 때 넘나들던 옛길 트래킹을 할 수 있죠. 가을에는 송이도 채취하고 겨울에는 눈이 소복하게 쌓이니 눈썰매도 타고 설피도 걷구요. 특히 보너스로 비닐포대 썰매도 탈 수 있다는 군요. 겨울이니 눈이 쌓이면 재미있는 놀거리들이 많아지겠어요.

어성전 계곡 가는 길. 2004년 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어성전 계곡 가는 길. 2004년 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이제는 떠날 시간입니다. 이장님의 트럭에 올라타고 다시 비포장도로길을 달립니다. 덜컹덜컹. 그냥 조용한 농가에서 하룻밤을 묵었을 뿐인데 가슴 한 켠이 묵직한 것이 자꾸 뒤를 돌아보고 싶어집니다. 아마도 어성전 분들이 주신 인심을 너무 많이 먹었나봅니다.   

양양탁장사마을 농촌전통테마 프로그램 탁장사 마을은 농촌전통테마마을로 갖가지 체험프로그램이 있어 구미에 맞게 프로그램을 짤 수 있다. 전해내려오는 탁장사 이야기를 체험행사로 재연하는데 준비된 통나무를 톱질해 지게로 져 나르는 시합을 통해 탁장사 후계자를 뽑고, 비석치기나 줄당기기 등 놀이를 즐긴다.

밤엔 모닥불에 양미리, 감자 등을 구워먹고, 전통식 메밀국수를 뽑거나 떡메도 친다. 이외에도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을 벗삼아 다양한 체험거리들이 있으므로 때에 맞게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가능하다. 

아직은 단체손님들이 예약을 하고 들르기 때문에 개인가족이 가서 체험하기는 힘든 실정, 그러나 민박은 가능하다. 민박은 조식이 포함되는데 주인들이 먹는 똑같은 밥과 반찬이다. 단, 주인의 음식솜씨에 따라 맛은 다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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