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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이달의 산] 선작지왓에 사는 바야바를 만나러 갈거나~ 한라산 영실코스 따라 오르기
[이달의 산] 선작지왓에 사는 바야바를 만나러 갈거나~ 한라산 영실코스 따라 오르기
  • 김정민 기자
  • 승인 2004.02.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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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한라산의 설경. 2004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한라산의 설경. 2004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여행스케치=제주] 서울에서 떠나오면서 아이젠과 장갑, 등산화, 등산바지를 챙겨 가지고 왔다. 전에 한번 선자령에 갔다가 산악회분들에게 복장불량이라고 어찌나 구박을 당했던지 이번 설산 등반에는 하나의 오차도 없게 하고 싶었다.      

폭설이 그친 지 겨우 이틀 째, 영실코스로 향하면서 한라산을 봤는데 눈이 많이 없었다. 강한 햇볕때문인지 어제와 또 다르게 높은 곳의 나무들까지 하얀 옷을 금세 벗어버렸다. 1100도로에서 영실코스로 진입하려고 하는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도로가 온통 눈밭이다.

이제부터 영실 등산로가 시작됨을 알리는 바위. 해발 1,280m. 2004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이제부터 영실 등산로가 시작됨을 알리는 바위. 해발 1,280m. 2004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조금 쌓인 것도 아니고 어른 발목은 폭 빠질 정도로 상황은 정말 심각했다. 강렬한 햇살이 나무 위의 눈은 모두 녹여버렸지만 깊이 쌓인 도로 위 눈까지 녹이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다. 차에서 내려 서둘러 도로를 따라 올라갔다. 그로부터 1시간. 겨우 영실코스가 시작된다는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매표소 입구에서 하는 말이 제설 작업이 빨리 이루어지면 등산시간이 꽤 줄어들 텐데 도로에서부터 걸어오느라고 3시간 30분 코스가 5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낑낑거리며 또다시 오르막을 오르려고 하자 차 한대가 입구로 가는 길이라며 매표소에서부터 태워주었다. 운전자는 오늘이 마침 쉬는 요일이라 6살배기 아들과 뒤늦은 눈꽃 등산을 간다 했다.

차로 가도 15분, 차를 얻어타지 못했다면 못해도 한 시간은 족히 걸렸을 법한 거리였다.

20여 분간 펼쳐지는 설경이다. 발이 푹푹 빠지는 곳이므로 스패치를 착용해야 한다. 2004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20여 분간 펼쳐지는 설경이다. 발이 푹푹 빠지는 곳이므로 스패치를 착용해야 한다. 2004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오백나한의 전설이 묻힌 곳. 영실
영실등산로 입구에 가면 ‘오백나한’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기암들이 울뚝불뚝 서 있는 커다란 산 아래에서 이런 전설을 전하고 있다.

그 옛날 제주도에는 설문대할망이 살았다. 설문대할망에게는 아들이 무려 5백 명이 있었는데, 한 끼만 끓여 먹으려 해도 커다란 가마솥에 한 솥 가득 죽을 끓여야 했다. 어느 날 먹을 양식이 뚝 떨어져 저녁에 죽 한 끼만 먹고 나면 내일부터는 굶어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생각다 못한 아들들은 막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둑질을 하려 내려갔고, 집에 남은 할망은 뒤주속의 쌀을 한 톨도 남김없이 긁어서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할망이 그만 발을 헛디뎌서 솥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도둑질을 나갔던 아들들이 돌아와 죽을 보고 어머니가 빠져죽은 줄도 모르고 맛있게 먹었다. 전과 달리 기막힌 맛이 난다고 아들들은 좋아했지만 맨 마지막으로 돌아온 막내아들은 어머니도 없고 꺼림칙한 생각에 나무주걱으로 솥을 휘젓다가 어머니의 뼈를 발견했다.

막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고 막내는 어머니를 먹어치운 형들과는 같이 살 수 없다며 차귀도로 건너가 장군석이 되었다. 그 뒤 나머지 남겨진 형들은 그 자리에서 돌로 변하여 바위가 되었다 한다. 그런데 마치 그 바위의 생김새가 마치 나한이나 장군 같다고 하여 ‘오백나한’, ‘오백장군’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사실은 4백99나한이라고 하는 것이 옳겠지만.

영실 눈밭 속으로 뛰어들다
이제 등산이다. 입구에 쌓인 눈덩이를 보고 기쁜 마음에 밟았다가 허벅지까지 쑥 빠져서 혼비백산 했다. 눈이 하얗게 쌓여서 좋아했더니만 결코 만만하게 볼 건 아니다. 아이젠을 차고 여느 등산객처럼 산을 올랐다. 눈이 덮여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개울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지만 누군가 처음 길을 내고 등산객들이 오며가며 눈을 꼭꼭 다져놓아 생각보다 푹푹 빠지는 감은 없었다.

한참동안 사진을 찍으며 걷고 있으려니 아까 입구에서 차를 태워준 아이 아빠와 그 꼬마가 다가온다. 올라가면 멋있는 풍경이 더 많을 텐데 초입에서부터 힘빼지 말라며 걸어간다.  

병풍바위 위로 오르는 길. 눈꽃이 쌓였지만 강한 햇살에 눈이 군데군데 녹았다. 2004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병풍바위 위로 오르는 길. 눈꽃이 쌓였지만 강한 햇살에 눈이 군데군데 녹았다. 2004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탄 바 있다는 영실 소나무림을 거쳐 눈 사이로 부끄럽게 고개를 내민 개울가를 건너 산행을 거듭했다. 새끼 소나무들도 무거운 눈을 지고 있느라 힘겨워 보이는데 키 작은 시누대들은 거의 익사 직전이다.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아서 안쓰럽기 그지없다.

완만한 곡선이 어느덧 급한 오르막으로 바뀌고 나무 사이로 묶여있는 밧줄을 잡고 쉼 없이 올라갔다. 중간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을 만났는데 발로 딛고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철퍼덕 주저앉아 엉덩이 썰매를 타고 내려왔다. 신발을 보니 아이젠도 없는 일반 운동화. 아마도 산행을 포기한 모양이다.

막 오르막을 빠져 나와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전경과 함께 병풍바위라고 부르는 바위가 동양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도깨비처럼 영실기암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만큼 올라오니 일행들이 모인다. 중국에서 만난 일본친구가 놀러와서 제주로 함께 놀러왔다는 이, 그리고 아까 전부터 같이 올라온 아이 아빠와 꼬마.

제주출신은 아니지만 직장 때문에 제주로 내려왔다는 아이의 아빠는 외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반짝이는 곳은 바다이고 저쪽은 애월읍, 그리고 이쪽은 북제주군이라며 설명을 해줬다. 그런데 솔직히 안개에 휩싸여 있어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아이의 아이젠을 정비했다. 이제부터 제 2막이 시작 되었으니 열심히 올라가 보잔다. 앞을 보니 병풍바위 쪽으로 올라가는 등산객들이 보인다. 햇볕이 너무 강렬하게 내리쬐어 목조계단으로 되어 있는 등산로가 드러났다. 엄마 하이힐을 신은 양 아이젠을 차고 눈 없는 등산로를 걸으려니 위험해서 아이젠을 벗어버리고 산행을 계속했다.

병풍바위 위로 올라가는 길은 바로 낭더러지다. 그래서 발밑을 조심해야 한다. 2004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병풍바위 위로 올라가는 길은 바로 낭더러지다. 그래서 발밑을 조심해야 한다. 2004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병풍바위로 올라설수록 발을 헛디디면 바로 낭떠러지인 등산로가 있다. 내려가는 사람도 올라가는 사람도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조심스럽게 모퉁이를 돌았는데, 등산객에게 길을 비켜준다고 살짝 비켜서면 바로 무릎까지 발이 빠지는 눈밭이다. 이 곳이 바로 구상나무 숲인가 보다.

눈꽃이나 상고대를 예상했지만 아쉽게도 너무 많은 폭설에 나무가 눈을 이고 있는 형상이었다. 열심히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등산로를 20여 분간 헤쳐갔는데, 드디어 찾아 헤매었던 설경을 만났다. 바로 선작지왓. 위에 가면 더욱더 멋진 풍경이 있다더니 바로 이곳을 말했던 모양이다. 선작지왓의 ‘작지’는 작은 돌, ‘왓’은 벌판이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으로 작은 돌들이 널려 있는 벌판’이라는 뜻이다.

아쉽게도 영실 코스에서 백록담으로 오르는 길이 통제됐다. 짧은 등산이 아쉽다면 윗세오름에서 어리목으로 넘어가면 된다. 2004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아쉽게도 영실 코스에서 백록담으로 오르는 길이 통제됐다. 짧은 등산이 아쉽다면 윗세오름에서 어리목으로 넘어가면 된다. 2004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아름다운 설경, 선작지왓과 백록담 화구벽
얼마 전 뉴스에서 방송기자가 한라산에 폭설이 내렸다며 눈꽃이 핀 배경으로 방송을 하던 바로 그 곳이었다.  

백록담의 화구벽과 윗세오름의 봉우리, 그리고 선작지왓의 넓은 평원이 삼박자를 이루고 있는 곳에 도달했다. 이제부터 윗세오름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0.7km. 끝없이 펼쳐진 눈밭 한가운데를 걷고 있노라니 어디선가 어렸을 적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설인 ‘바야바’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바야바가 나타나면 어떡한다지. 등산로 외에는 눈도 많이 쌓여서 헤엄을 쳐야만 빠져나올 수 있을 터인데. 앞으로는 포스터 물감을 잔뜩 풀어놓은 듯한 군청색 하늘과 하얀 눈구릉이 풍광을 그리고 있고, 뒤로는 선작지왓 아래 융단처럼 고운 빛깔의 구름들이 깔려있다. 아아, 눈 감아도 잊혀지지 않을 풍광이로다.

한라산 등반코스
한라산 올라가는 길은 총 4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한라산을 등반하려면 입산제한 시간이 있으므로 이를 잘 보고 따라야 한다.

성판악코스 (총9.6km, 편도 4시간 30분 소요) : 성판악 -> 사라악 -> 진달래밭 -> 정상
어리목코스 (총4.7km, 편도 2시간 30분 소요) : 어리목광장 -> 사제비동산 -> 만세동산 -> 윗세오름
영실코스 (총3.7km, 편도 1시간 30분 소요) : 영실휴게소 -> 병풍바위 -> 윗세오름
관음사코스 (총8.7km, 편도 5시간 소요) : 관음사 야영장 -> 구린굴 -> 탐라계곡 -> 개미등 -> 용진각 ->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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