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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남도 문화 따라잡기] 월출산 벚꽃 보리밭이 한 폭의 수채화, 영암
[남도 문화 따라잡기] 월출산 벚꽃 보리밭이 한 폭의 수채화, 영암
  • 김연미 기자
  • 승인 2004.05.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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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여행스케치=영암] 신령스런 바위가 있는 곳이라 하여 영암이라 한다. 영암은 백리 벚꽃길, 월출산, 도갑사, 왕인박사, 구림마을, 영보마을 등 남도문화에서도 독특한 문화가 형성된 곳이다. 

영암은 벚꽃이 한창이다. 영암읍에서 삼호읍 용당리까지 1백리,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비처럼 내린다. 쑥쑥 자란 보리는 월출산을 등지고 바람이 나부끼는 대로 눕는다. 논갈이를 하지 않은 논은 자운영 꽃밭이다.

영암 들녘이 내려다보이는 월출산.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영암 들녘이 내려다보이는 월출산.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영암은 월출산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들녘 한가운데 우뚝 솟은 월출산은 눈을 뜨면서부터 늘 저 만치 있는, 영암 사람에게 어머니 같은 산이다. 마을은 월출산을 등지거나 바라보며 자리하고 있다.

월출산은 말 그대로 ‘달을 낳는 산’, ‘달이 뜨는 산’이다. 달은 여성을 상징하곤 한다. 달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아이는 대단한 사람이 된다고 했던가. 그래서 그런가 월출산 달밤은 신령스럽고 아름답다. 보름에는 화강암에 쏟아지는 달빛이 낮처럼 밝아 손전등을 끄고 다닐 수 있을 정도란다. 그러나 만만한 산이 아니다.

경사가 평균 30∼40도, 계곡이나 능선은 20∼25도의  급경사다. 특히 산 전체를 이루고 있는 화강암 바위는 등산 내내 호흡을 가쁘게 한다.

월출산 초입 조릿대길.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월출산 초입 조릿대길.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전남의 설악산 월출산 천황봉 오르기
햇살이 보리밭에서 기분 좋게 조는 토요일. 월출산 타잔 전판성 씨, 제니 박선희 씨와 함께 산에 올랐다. 두 사람은 영암군청 산악동우회 선후배다.

월출산은 구정봉 기준으로 동쪽은 설악산을 서쪽은 지리산을 많이 닮았다. 그래서 동쪽은 바위 길이고, 서쪽 도갑사로 가는 길은 흙 길이다. 시간이 넉넉하면 천황사지∼바람폭포∼천황봉∼구정봉∼억새밭∼도갑사(약 6시간 소요)를 잇는 종주능선을 타면 좋았겠지만 체력이 약한 나를 배려해서 3시간(거리 5.9km)정도 걸리는 코스 천황사지∼구름다리∼천황봉∼바람폭포∼천황사지로 올랐다.

천황사지 주차장에서 등산화 끈을 단단히 맸다. 산은 사람을 긴장시킨다. 쉬이 정상에 가는 것도, 요령 피는 것도 원치 않는다. 세상 모든 일에 요령이 있다해도 산은 우직한 사람들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에 간다.

천황사지를 오르는 돌계단 주위로 키 큰 조릿대가 시원한 터널을 만든다. 조릿대 사이로 동백이 붉게 피었다. 동백꽃이 통째로 뚝뚝 떨어진다. 사랑, 이별, 열정… 무슨 속내를 붙여야 동백이 지는 모습을 담아낼 수 있을까. 삶의 굴곡이 짧아서 그런지, 동백꽃 지는 모습을 담아낼 길이 없다. 전판성 씨가 동백꽃을 하나 따서 뒤쪽을 빨아보라며 준다. 달다. 꽃이 달다.

30여분 오르니 천황사지다. 절은 불에 타 없어지고 천막 안에 부처님을 모셨다. 깨진 동종이 처량하게 천막밖에 있다. 처음으로 가난한 절을 보았다. 바위 길이 가파르다. 잡아주는 손이 따뜻하다. 박선희 씨가 뒤에서 따라오다가 경사가 급해 먼저 올라서 손을 잡아준다. 빠르지 않은 나를 이끌어주느라 월출산 제니가 힘들었을 것이다.

바람폭포 물줄기가 시원하다.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바람폭포 물줄기가 시원하다.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돌이 많고 물이 적어서 생물이 살기 어려운 조건이라지만 고추나무, 붉가시나무, 신갈나무 등 7백 여종 다양한 식물이 살고 있다. 나무마다 이름표가 붙어있다. 그렇게 앞뒤를 돌아보며 1시간 정도 산에 올랐다. 너럭바위에 앉아 돌아보면 영암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인 중에 영암이 고향인 분이 있다. 아무리 등산이 힘들어도 구름다리까지는 꼭 가라하더니, 그 구름다리다. 전국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다리. 지상높이 1백20m, 길이 52m, 폭 60m. 바람이 다르다.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찔하다.

월출산 하이라이트, 구름다리.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월출산 하이라이트, 구름다리.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다리 중간에서 저절로 멈추게 되는 게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천왕봉, 사자봉, 장군봉 등 제각기 다른 얼굴의 장엄한 바위 때문에 1백20m 높이를 흐르는 바람 아래서 저절로 서게 된다. 대둔산의 다리가 고속도로라면 월출산 구름다리는 국도란다. 대둔산의 다리 높이가 80m, 월출산 다리가 40m 더 높으니 그 말이 맞기도 한다.

천황봉은 월출산 최고봉이다. 해발 8백9m지만 사실은 8백13m라고 한다. 높이가 잘못 보도돼서 더 낮게 알려졌단다. 몇 미터 차이라고 하지만 나 같은 신참내기에는 왜 그리 정상이 높기만 한지. 월출산 타잔은 먼저 오르다 우리가 보이지 않으면 “의아”라는 신호를 보낸다.

천왕봉에서 만난 어린이.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천왕봉에서 만난 어린이.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그는 오랜만에 등산코스로 올랐다. 타잔에게는 길 아닌 곳이 길이다. 매달 14일이면 야간 산행을 한다. 일행이 오든 안 오든 시간이 되면 묵묵하게 산에 오른다. 그가 등산로에 있는 계단 오르는 방법을 알려준다. 계단을 밟지 않은 다리는 힘을 빼서 발까지 쭉 폈다가 계단을 밟고 다른 쪽 다리를 쭉 폈다가 밟기를 반복하다보면 다리에 무리가 덜 간다고 한다.

박선희 씨는 내 무거운 다리에 최면을 걸어주었다. ‘다리가 새처럼 가볍다’ 이렇게 생각하면 진짜 가벼워진다고 한다. 산을 오르는 내내 ‘나는 가볍다’라고 주문을 걸었다. 그러나 어느새 ‘나는 새처럼 가볍고 싶다’라고 중얼거렸다. 사방 탁 트여서 영암 개신리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맛에 산에 오른다. 멀리 바라볼 수 있다는 게, 내려다 볼 수 있다는 게, 산다는 게 좋다.

영암 들녘에서 바라본 월출산.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영암 들녘에서 바라본 월출산.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도선국사가 창건한 도갑사
월출산 서쪽 자락에 자리한 도갑사는 풍수지리로 유명한 도선국사가 창건한 절이다. 국보로 지정된 해탈문 주위로 동백꽃이 곱게 피었다. 해탈문을 들어서면 절은 황량하다. 조선시대에는 9백66칸의 전각과 당우가 있었다고 하던데 임진왜란과 6.25를 거치면서 황량한 절이 되었다.

도선국사가 “내가 떠난 후 철모 쓴 자들이 와서 절에 불을 지르리라” 예견했다고 한다. 이왕 예견할 것 막는 방법도 좀 알려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도갑사는 옛 모습 찾고자 발굴중이다.

대웅전 앞에 있는 커다란 석조에는 맑은 물이 흐린다. 예전에 도갑사가 얼마나 큰 절인지 이 석조가 말해주는 듯 해 세월의 무상함을 담담하게 느끼게 한다.

절 마당 뒤 왼쪽으로 오르면 월출산 등산로가 나온다. 정자를 지나서 미륵전으로 향한다. 미륵전에는 2.2m의 무표정한 석가여래좌상이 있다. 미륵전에서 나와서 쭉 올라가면 도선국사의 업적을 기록한 도선수미비가 있다. 4.8m의 커다란 비가 사람을 압도한다.

특히 거북상의 섬세한 조각이 묘미이다. 금방이라도 날카로운 발톱으로 얼굴을 할퀴고 여의주를 문 입으로 위협할 듯 하다. 17년 동안 만들어서 효종 4년(1653)에 완성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도선국사는 온화한 스님이기보다 당대의 날카로운 지식인이 아니었나 거북의 형상을 보면서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월출산 풍경.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월출산 풍경. 2004년 5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주변여행지
① 일본 아스카문화의 창시자 왕인박사유적지
왕인박사는 백제사람으로 일본 응신천황의 초빙을 받아 논어 10권,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 후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되었는데 일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왕인’이란 이름이 나온다. 일본 고대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성인으로 일본에서 추앙받고 있으며 그의 무덤은 일본 오사카와 교토 히라카타에 있다.  

1987년에 조성된 왕인박사유적지에는 왕인박사 일대기를 그림으로 나타낸 전시관이 있고 안쪽에 사당을 모셨다. 정문을 나와서 오른쪽 길로 가면 왕인이 태어났다는 성기동이 있다. 또한 성기골 계곡물을 그가 마셨다고 하여 석천이라 부른다. 석천 옆에 약수를 먹으면 머리 좋은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하니 믿고 마셔보라.  

월출산 중턱으로 40분쯤 오르면 박사가 공부했다고 전해오는 책굴과 문산재 양사재가 있다. 책굴 앞에는 왕인박사 석인상이 있는데 고려초기작품으로 부처와 닮았지만 봉수자세가 틀리다하여 왕인박사 석인상이라고 한다. 영암에서는 매년 4월초 <왕인문화축제>를 개최하며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연다.

② 구림마을과 영암 도기문화센터
월출산을 바라보고 있는 구림마을은 도선국사와 왕인박사가 태어난 곳이다. 회사정, 죽정서원, 국암사, 조씨 종택 등 고택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돌담이 잘 만들어져서 돌담을 따라 쭉 마을을 돌아보면 좋다.

구림문화센터 앞에는 왕인박사가 띠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났다는 상대포가 있다. 지금은 물을 막아서 작은 저수지가 됐지만 그 당시는 국제무역항이었다. 구림마을에는 도기문화센터가 있어 녹갈색, 흑갈색 유약을 입힌 시유도기를 볼 수 있다.

태토는 영암의 천연황토를 사용하고 유약은 황토와 소나무 재를 수비하여 만든 재유, 황토재유, 흑갈유 등을 사용해서 색감이 중후하고 자연스럽다. 옛 질그릇의 멋이 살아있다. 특히 무료로 도자기를 직접 빚어볼 수 있으며 만든 도자기를 가져가고 싶을 때는 1만원을 주면 유약을 입혀 구워서 보내주기도 한다(택배비는 별도).

③ 초가집이 아름다운 영보마을
영보마을로 가다보면 월출산이 멀어지는 듯 하다 막상 마을에 도착하면 월출산이 앞산처럼 가까이 보인다. 구림마을이 잘 가꾸어진 마을이라면 영보마을은 아직도 시골 마을 정취를 간직한 곳이다.

특히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최성호 가옥은 호남의 대표적 부농 가옥으로 안채, 사랑채, 헛간채, 문간채가 초가집으로 지어졌다. 내부는 수리됐지만 옛 초가집의 매력이 그대로 남아있다.

④ 목포 유달산이 보이는 영암방조제
영암과 해남의 경계를 짓는 영암방조제는 현대삼호중공업 조선소가 보이고 그 너머로 목포 유달산이 보인다. 이 방조제에서는 9월부터 10월까지 갈치가 많이 잡힌다. 방조제에 앉아서 낚시대를 던져놓으면 초보자도 쉽게 잡을 수 있다고 한다.

가는길 : 서해안고속도로 -> 목포IC -> 2번국도 -> 819번 지방도로(독천) -> 영암

맛집
·청하식당 갈낙탕 - 영암 낙지는 빛깔이 희고 깨끗하다. 입으로 다리를 끊어도 쉽게 끊긴다. 갈낙탕은 싱싱한 낙지에 갈비탕을 넣어서 끓인 탕으로 깔끔하고 시원하다.

·월출산종합음식문화원 - 월출산 천왕사지 매표소 바로 밑에 있다. 다양한 음식이 있으며 특히 된장국과 추어탕이 시원하다.

자는 곳
·월출산장호텔
- 도갑사와 5분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도갑사를 둘러보고 월출산을 등산하기에 좋다. 미리 예약하면 아침식사를 할 수 있다.

·월출산신라모텔 - 월출산 천왕사지 코스 쪽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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