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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가족체험여행] 하늘하늘한 5월의 푸르름, 고창 보리밭 기행
[가족체험여행] 하늘하늘한 5월의 푸르름, 고창 보리밭 기행
  • 김정민 기자
  • 승인 2004.05.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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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푸른 보리밭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2004년 5월. 사진 / 김정민 기자
푸른 보리밭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2004년 5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여행스케치=고창] 하늘하늘 무릎 크기만큼 자라는 보리밭 구경은 5월 초가 가장 좋다. 흔들리는 푸른 보리밭. 보리들을 실로폰 삼아 연주하는 바람의 노래는 그야말로 일품이라고. 3월 말의 보리는 고개조차 가누지 못하는 신생아 같다. 여느 잡초보다 여리디 여린 잎이 송송 자라있다.

3월 말의 보리는 잔디밭 수준이다. 잔디보다도 여린 잎이 감질맛 나게 돋아나 있다. 한번 밟으면 발자국이 확연하게 드러나서 지레 놀라 발뒤꿈치를 들게 된다. 어린보리는 4월이면 강건하게 자란다. 하루에 2~3cm가 불쑥불쑥 자라나 말경에는 무릎높이만한 키를 이룬다.

땅에 흩어진 이삭들이 알알이 달린 보리가 되는 생명의 신비. 그 물결이 올해도 13만 평에 걸쳐 펼쳐질 것이다. “농장 면적은 총 17만평이죠. 보리를 심고 나머지 2만평에는 노란 유채를 심었어요. 나머지 땅에는 다양한 영농체험을 할 수 있게 관광농장으로 꾸미고 있습니다.”

고창읍성 전경. 2004년 5월. 사진 / 김정민 기자
고창읍성 전경. 2004년 5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손님을 맞이하러 나온 농장주 진영호씨의 활기찬 설명이 이어졌다. “보리밭은 원래 지금이 밟는 시기가 아니예요. 막 보리대가 나오는 시기죠. 잘못해서 밟으면 나오기 시작한 어린 보리대가 꺾이죠. 그래서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은데, 멋진 풍경을 보고자 하는 손님들을 말릴 수가 없죠.”

주인은 뼈아픈 농담을 하면서 농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리는 보통 11월까지 씨를 뿌려서 싹을 틔워요. 겨울에서 봄을 지나는 동안에는 씨가 뿌려진 땅을 꾹꾹 밟아주어야 해요. 그러면 2, 3, 4월에 자라 6월 초에 누렇게 영글면 추수를 하죠.” 보리의 일생을 이야기 하자 한 아이 아빠가 보리심은 모양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런데, 논에 가면 일렬로 벼가 자라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는 잔디처럼 열이 없네요” 잔디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자라는 보리가 내심 신기했던 모양이다.

고창 고인돌 유적지. 2004년 5월. 사진 / 김정민 기자
고창 고인돌 유적지. 2004년 5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씨를 뿌리는 방식의 차이예요. 조파 방식과 산파 방식이 있는데 조파방식은 논처럼 정렬하여 씨를 하나씩 떨어뜨리는 거고 산파방식은 저희처럼 흩뿌리는 것인데 저희는 워낙 지대가 넓다보니 산파방식을 택한거죠. 씨 뿌리고 보리 밟고 추수하고. 이제 모두 기계식으로 해요.”

외국의 너른 들판 마냥 기계식 영농이라니. 농장주 말에 따르면 보리는 전량 국내에서 소비된다고 한다. 대량 생산되는 곡물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국제시세와 절대 겨룰 수 없다고 했다. 국내가격이 국제시세의 3배정도 된다고. 얼마나 귀한 보리란 말인가. 넓은 곳에 보리를 심어서 어디로 보내나 했는데 의문점 하나는 풀린 셈이다.

벌써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의 보리들은 녹다운 되었다. 하지만 어찌 아이들이 그것을 알겠는가. 아이들이 뛴다. 멀리서 엄마, 아빠를 부르면서 해맑은 웃음을 짓는다. 꼭 ‘5월은 어린이날’이라는 노래를 불러줘야 할 것 같다. 차 안에서 그동안 너무 공부할 것이 많아 힘들었다고 성토하던 아이들도 오랜만에 그늘을 벗었다.

보리피리를 불어보는 체험객들. 2004년 5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보리피리를 불어보는 체험객들. 2004년 5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농장 구경 가자는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던 아이들이 말 한마디에 전원집합한다. “얘들아, 보리피리 불러가자.” 17만평 농장을 둘러보려면 차로 움직여야 하지만 관광농원쪽으로 오면 주차장에서 보리밭과 산책로를 쉬엄쉬엄 걸어갈 수 있다. 산책로를 걷다보면 농장주의 부친인 고 진의종 전 국무총리를 기리는 작은 기념관도 있다.

보리가 익을 무렵이면 아카시아꽃이 향기 최루탄을 발산한다. 농장주인을 따라 주위를 걸었더니 카네이션 온실이 나왔다. 나머지 땅에는 꽃을 재배하는데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항상 인력이 부족하다.

카네이션 한송이를 피우려면 필요없는 싹들을 제거해줘야 한다. 관광농원에 오면 체험을 할 수 있다. 2004년 5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카네이션 한송이를 피우려면 필요없는 싹들을 제거해줘야 한다. 관광농원에 오면 체험을 할 수 있다. 2004년 5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카네이션을 피우기 위해서는 줄기에서 자라나는 싹들을 제거해줘야 합니다. 줄기 당 7~8개의 필요 없는 싹들이 자라는 데 그것을 모두 사람 손으로 제거해야 해요. 농원에 오시면 이런 작업도 직접 해볼 수 있죠.”

벌써부터 밖에서는 보리피리 부는 고동 소리가 들린다. 뚜뚜뚜뚜. 어릴 때의 추억이 상기되는 듯 하나둘씩 보릿대를 잡고 피리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체험여행단 중 최고령인 어르신은 보릿대를 입에 넣고 태평소처럼 불어댄다. 역시 고수는 다르다. 모두들 어찌나 열심히 만들던지 손톱 끝이 초록빛으로 물들어간다.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자연피리다. 어느새 엄마들은 수북이 쌓인 보릿대를 챙겨들었다. 봄냄새가 나라고 집안에 꽂아두겠단다. 뚜뚜뚜뚜. 입에는 보릿대롱을 물고 보리밭 길을 가족들이 손을 잡고 걸어간다. 식사로 밥알이 입안에서 각기 노는 보리밥이 나왔다. 인스턴트 음식은 전혀 없다.

맛있는 꽁보리밥. 양푼에 비비는 재래식 꽁보리밥. 2004년 5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맛있는 꽁보리밥. 양푼에 비비는 재래식 꽁보리밥. 2004년 5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무채와 각종 나물, 된장, 고추장이 어우러져 새빨간 보리비빔밥이 탄생했다. “아빠 어릴 적에는 지금 이때를 보릿고개라고 불렀어. 쌀도 다 떨어지고 보리도 이제 자라고 있으니 먹을 게 없잖아. 보리밥이라도 실컷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다니까? 너는 얼마나 행복한 거야. 이렇게 밥도 먹고 살잖아.”

아빠들은 감격에 겨워하는데, 아이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지 입만 삐죽거린다. 바람이 다시 살랑댄다. 바람이 키 큰 보리들과 놀고 싶어서 어서 크라고 독촉하는 것 같다. 사잇길을 걷다보니 음악시간에 부르던 노래 구절이 생각난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Tip.
가는 길
서해안 고속도로 선운산 IC로 나와서 흥덕 방향 22번 국도로 우회전, 1km를 간 후 고창 영광 방면 23번 국도를 탄다. 이후 공음 방면으로 가다가 계동버스 정류장 삼거리에 서 있는 학원 농장 간판을 참고하자.

청보리밭 축제 : 4월 4일에서 5월 16일까지 농장에서는 청보리밭 축제를 개최한다. 보리밥, 보리개떡 먹기체험장, 보리밭 사잇길 걷기 체험, 보리품종 전시회, 추억의 보리 방앗간, 카네이션, 분재 전시판매가 함께 펼쳐진다.

보리피리 만들기 : 튼튼한 보릿대를 하나 고른다. 겉보릿대에서 속보릿대를 잡아 빼서 서로 분리한다. 보릿대가 분리되면 적당한 크기(4-5cm)가 되도록 자른다. 아래 부분을 손으로 꾹꾹 눌러서 연하게 만들고 그 반대편 구멍으로 입에 넣어 피리를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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