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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주말 가족나들이] 꽃과 연인들의 나라, 춘천 남이섬
[주말 가족나들이] 꽃과 연인들의 나라, 춘천 남이섬
  • 김선호 객원기자
  • 승인 2004.06.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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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꽃으로 뒤덮인 남이섬. 2004년 6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꽃으로 뒤덮인 남이섬. 2004년 6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여행스케치=춘천] 아침부터 햇볕이 환하게 쏟아진다. 햇볕이 마음에라도 들어왔는가, 마음도 환하게 열리는 오늘은 여행하기 좋은 날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초록빛으로 찬란하다. 새잎이 돋는 산줄기는 파랗고 그 줄기를 연결하는 산등성이는 초록빛 물결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그 사이로 드문드문 산 벚꽃이 피어 연두색 물감을 풀어놓은 도화지 위에 연분홍 점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듯하다. 

춘천 가는 길. 기차는 춘천의 봄소식을 싣고 서울로 가고 우리는 춘천의 봄을 맞으러 가는 길이다. 기차가 지나간 길, 양옆으로 하얀 조팝나무가 꽃을 피웠다. 기적소리가 떨구어 놓은 봄소식인 듯 기찻길 옆을 따라 하얀 조팝나무 꽃들이 기적소리에 맞춰 하얀 꽃구름을 피워 낼 것만 같다.

남이섬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2004년 6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남이섬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2004년 6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남이섬의 시작은 경기도 가평군이다. 그러나 남이섬은 강원도 춘천에 있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부근에 자리한 섬 남이섬은 아침부터 관광객들의 행렬로 장사진을 이뤘다. 때는 화창한 봄날.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남이섬이 멀리 보인다. 십분 간격으로 남이섬으로 왕복하는 배편이 있다.

남이섬까지의 뱃길도 십분이면 충분하니 매표소안 간이식당에서 바라보는 남이섬이 손에 잡힐 듯 하다. 그날의 남이섬은 꽃섬이 되어 있었다. 봄을 완성하는 산빛에 환호성을 내지르며 굽이굽이 돌아온 길, 그 끝에서 만난 남이섬은 길에서 만난 모든 봄빛을 아우르고 화사하게 손짓하고 있었다.

물가에 발을 담그고 있는 나뭇잎의 새순이, 연두색이 꽃만큼이나 고왔다. 나무아래 산벚꽃이 기다란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아래 개나리가 작은 울을 둘렀다. 개나리는 물가에서 강물을 희롱하듯 노란 촉수를 드리우고 있었다. 꽃과 나무가 강물에 비쳐든 풍경을 사진에 담느라 카메라를 든 여행객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울창한 나무터널. 2004년 6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울창한 나무터널. 2004년 6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꽃과 동화의 나라
꽃울타리속에 펼쳐진 남이섬은 동화나라만 같다. 여기저기 예쁜 조형물들이 즐비하고 진짜 동화나라로 안내를 해 줄 것만 같은 미니열차는 어딘가에 있을 동화의 나라를 꿈꾸게 한다. 우선, 동화 속 같은 풍경부터 살펴보자 하는데 동화의 나라로 착각한 아이들이 자꾸만 보챈다. 미니열차부터 타자고. 아이스크림 먹자고, 자전거부터 타자고…. “그래, 다 하자. 먼저 한바퀴 돌아보고 말이야, 워밍업이라는 말이 있잖니?”

‘꽃과 동화의 나라’를 천천히 산책하듯 둘러보기로 한다. 나무가 참 좋다. 이 좋은 나무들이 각각의 이름을 달고 여행객들을 불러 들였다. 푸른 잎새로 겨울을 견딘 잣나무산책길, 이제 막 연둣빛 새싹을 틔우고 있는 은행나무길, 자작나무길, 그리고 남이섬의 명물인 메타세콰이어길이 이어져 있다.  

우람한 나무들이 한결같이 우뚝 솟아있는 산책길을 따라 가족들과 연인들이 끝도 없이 걸어간다. 원근법의 원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가까운 나무들과 먼 나무들 사이로 높다란 아치가 이어진다. 나무들 사이로 꽃들도 지천이다. 꽃과 나무 사이로 청솔모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남이섬의 청솔모는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듯 지나가는 여행객을 빤히 쳐다보기도 한다.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는 한 사람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고 제 할일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잡으러 가자 비로소 그 특유의 빠른 걸음으로 나무를 타고 높은 가지로 올라가 버렸다.

타조 나타나다
남이섬에서는 여러 동물도 만날 수 있다. 청솔모, 토끼, 오리, 닭 그리고 타조까지. 청솔모는 나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쉽게 만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한꺼번에 여러 마리가 어울린 풍경을 볼 수도 있다. 강물에 둥둥 하얀 오리와 청둥오리가 한가롭게 유영하는 모습은 평화롭다.

'꽃밭 섬에 토끼 출입금지' 토끼체포대작전. 2004년 6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꽃밭 섬에 토끼 출입금지' 토끼체포대작전. 2004년 6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남이섬을 활기차게 할 목적으로 데려온 토끼는 그 수가 많이 불어 요즈음은 골머리를 앓는 모양이다. 토끼란 녀석이 먹지 말아야할 꽃을 먹어 버리는 바람에 ‘토끼생포 대작전’이 지금 남이섬에서 한창 진행 중이다. 토끼를 잡으면 마리당 3천원의 현상금도 있으니 한번 도전해 보기 바란다. 타조는 농장이 따로 있어 울에 가두고 키운다.

실제로 본 타조는 그 크기도 엄청나고 무엇보다 기다란 다리가 인상적이었는데 녀석 때문에 재미난 구경을 했다. 강변을 따라 섬을 돌아보며 보트를 타는 곳을 지나치고 있었는데 저 앞에서 이상한 물체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한가롭게 걷는 길이었고, 자전거탄 사람들이 햇살을 가르며 달리는 곳이었는데 정체불명의 물체가 겅중거리듯 다가오는 것이었다. 타조였다.

사람들은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표정으로 타조에게 길을 양보했다. 타조도 그런 풍경에 익숙했는지 사람이 보이면 길을 비켜주기도 하고 잠시 멈춰 서는 지혜(?)를 발휘했는데 타조와 같은 방향을 가는 사람들에게 타조가 보일 리 만무했다. 길가에 갑작스럽게 타조가 등장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걷던 아가씨들 뒤로 타조가 길 좀 비켜주라는 듯이 앞으로 나선 것이다.

남이섬에 사는 타조. 2004년 6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남이섬에 사는 타조. 2004년 6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아무 생각 없이 뒤를 돌아본 세 명인가 네 명인가 하는 아가씨들이 마침내 타조를 발견하고는 내지르는 비명이라니… 그걸 지켜보는 여행객들은 길을 걷다말고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고, 뜻밖의 재미난 상황을 연출한 타조는 부리나케 길을 비켜준 아가씨들을 뒤로 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기 길을 걸어가는 것이었다. ‘타조, 타조, 조타, 조타, 타조, 좋다.’ 아이들이 즉석에서 노랫말을 만들어 흥얼거린다.

꽃과 나무와 함께 강변을 따라 걷는 길, 물살을 가르며 보트가 지나갈 때마다 강물이 찰랑이며 물이랑을 만들어 냈다. 물이랑을 따라 햇살을 받고 반짝이는 물비늘이 눈부셨다. 아이들은 강가에 서서 물수제비를 뜨고 물가에서 자라는 나무는 햇살이 따가운 듯 강물로 가지를 드리웠다.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남녀 주인공들의 첫키스 장소. 2004년 6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남녀 주인공들의 첫키스 장소. 2004년 6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그 길을 따라 사랑하는 이들이 여유롭게 걷는, 아름다운 남이섬의 풍경이 평화로웠다. 걸어서 한바퀴 남이섬을 돌아보았다.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잘 알려진 남이섬엔 외국인 관광객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이웃나라 일본과 홍콩 대만의 여성들이 이곳을 찾는다 한다.

드라마의 촬영지를 찾아온 외국인 여행객을 위한 방송이 각국의 언어로 계속되고, 주인공이 걸었던 흔적을 남긴 장소들이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다. 두 주인공이 첫 키스를 했던 장소라든가, 함께 걸었던 가로수길, 앉아서 얘기 나눈 벤치들에는 어김없이 연인들이 들렀다 간다. 사랑의 맹세를 하면 이루어질 것 만 같은 섬, 남이섬은 연인들의 섬이다.

대장부틔 뜻을 미처 펼치지도 못하고 꺾인 남이 장군의 묘. 2004년 6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대장부틔 뜻을 미처 펼치지도 못하고 꺾인 남이 장군의 묘. 2004년 6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자전거로 강변을 드라이브하다
드디어 자전거를 탔다. 비포장길, 그래서 흙먼지 날리는 풋풋한 길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2인용 자전거를 탄 연인들의 모습이 정겹다. 보조페달이 달린 유아용 자전거를 탄 아이를 앞세우고 나란히 자전거를 타는 부부의 모습이 따뜻하다.

어느덧 훌쩍 커버린 두 아이는 어른용 자전거를 차지하고 우리부부는 2인용 자전거를 골랐다. 오후 들어 남이섬에 몰려온 사람들로 섬은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다. 차는 없으되, 사람과 자전거가 한꺼번에 쏟아져 교통정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게 복잡하다. 아이들에게 ‘사람조심’하라고 몇 번이고 당부를 하고서야 자전거에 올랐다.

남이섬 선착장 입구에 세워진 섬 안내도. 2004년 6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남이섬 선착장 입구에 세워진 섬 안내도. 2004년 6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자전거를 타고 섬을 한바퀴 도는 동안 몇 번인가는 사람들을 피하느라 우리가 탄 자전거가 넘어지는 일을 겪었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 남이섬을  활기차게 하는 자전거 타는 풍경이 평화롭기 위해선 ‘자전거와 보행자를 위한 교통수칙’이라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자전거 탈 생각으로 룰루랄라, 남이섬으로 여행을 기다렸던 아이들은 이보다 더 신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전거를 달렸다. 햇살과 바람을 가르고 자전거를 달려 섬을 두 바퀴를 돌고도 아쉬운 모양인지 자전거 페달에서 다리를 뗄 줄 모른다.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려주자 아쉬운 대로 다음에 또 오자며 순순히 양보를 하는 아이들 못지않게 강변길을 따라 자전거를 달리는 일은  어른인 나에게도  즐거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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