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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농촌테마마을 체험기] 경북 영덕 나라골 보리말, "밀사리가 뭔지 아는겨~?"
[농촌테마마을 체험기] 경북 영덕 나라골 보리말, "밀사리가 뭔지 아는겨~?"
  • 김연미 기자
  • 승인 2004.07.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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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8개의 종택이 함께 살고 있는 나라골은 정겨운 동네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8개의 종택이 함께 살고 있는 나라골은 정겨운 동네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영덕] 밀사리, 여치집, 오디 따 먹기… 이제는 생소하게 들리는 이 말들이 십년 전만 해도 쉽게 할 수 있었던 놀이였다. 농촌이 자꾸만 작아져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영덕 나라골 보리말에서 만났다. 

마을회관에 불이 환하게 켜졌다. 창 너머로 풀벌레 소리가 가득하다. 보리이삭과 잎을 떼어 낸 덜 익은 푸른색, 누런색 보릿대가 매끄럽다. 감촉이 시원하다. 동네 어르신을 따라서 보릿대를 이리저리 구부려서 여치집을 만든다. 보기는 쉽지만 보릿대가 미끄러워서 할아버지가 만든 여치집처럼 예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열심이다.

여치집 만드는 법을 할아버지에게 배우고 있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치집 만드는 법을 할아버지에게 배우고 있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치가 쑥쑥 빠져나가게 엉성한 여치집을 만든 노덕환씨가 딸 지현(초등5)이와 아들 경빈(초등1)에게 “아빠가 부실공사 아파트를 졌네!”라며 웃는다. 아빠보다 솜씨 있게 만든 지현이는 여치집이 좀 작았는지 “아빠, 난쟁이 여치가 사는 집이야!”란다.

하루살이가 방안으로 들어오자 경빈이가 부채로 하루살이를 잡느라 툭툭 방바닥을 쳐서 바람이 인다. 노덕환씨 가족은 부실공사 여치집까지 포함해서 3개의 여치집을 만들었다.

종택 집안에는 정자가 한두 개 씩 꼭 있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종택 집안에는 정자가 한두 개 씩 꼭 있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밤은 풀벌레 소리로 가득하다. 사방 창호지문으로 흐르는 풀벌레 소리가 안과 밖이라는 공간을 없앤다. 닫혀 있어도 닫히지 않은 문. 곧 자연으로 가는 통로다. 그래서 오래된 고택은 낡았어도 편안하다.

새벽녘 풀벌레 소리를 잠재우고 대진항으로 나섰으나 구름 낀 동해 하늘에 해는 슬프게 떠올랐다. 마을로 돌아오는 길 담장에 석류꽃이 해보다 더 붉게 피었다. 마을에는 집집마다 백년에서 오십년은 족히 되었을 엄나무들이 많다.

우계종택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사람들이 더 먹을 수 있도록 큰 놋그릇에 밥을 담았다. 놋주걱은 백년도 넘은 것이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우계종택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사람들이 더 먹을 수 있도록 큰 놋그릇에 밥을 담았다. 놋주걱은 백년도 넘은 것이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우계종택은 안살림이 눈에 띈다. 5백년 된 항아리에 된장 고추장이, 백년 된 항아리에는 작년에 담은 매실주가 맛좋게 익었다. 놋그릇 주걱은 얼마나 오랜 세월 밥을 펐는지, 반쯤 닳아 있다. 명란젓은 고추와 마늘을 채썰어서 참기름에 살짝 무쳐 먹기 좋게 썰어 놓았다.

탱글탱글 알이 하나도 부서지지 않았다. 초봄에 어린 쑥을 뜯어서 잘 보관했다가 쑥국을 끓였다. 인심 좋고 적극적인 종부의 살림이 탐난다. 일부러 놋그릇 주걱을 들어서 밥을 푼다. 세상 밥 푸는 재미가 가장 맛 난다.  

인량리 고택은 경북 북부지역의 전통적인 집형태의 □자형 구조이다. 충효당, 갈암종택, 용암종택, 강파헌정침 등 양반 가옥이라 하지만 소박하다. 집 옆에 사과밭, 복숭아밭, 무화과 등 다양한 과실수가 있다. 어른들은 고택들에 관심을 보인다.

담을 따라서 경빈이와 또래 꼬마들이 우르르 달려간다. 오래된 집보다 논에 둥둥 떠 있는 개구리에 더 관심이 많다. 아이들 손에 개구리, 장수벌레, 강아지 등이 들려있다. 이렇듯 아이들은 꿈틀꿈틀 움직이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

뽕밭에서 오디를 따는 아주머니.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뽕밭에서 오디를 따는 아주머니.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마을 끝 뽕밭에 사람이 없었는데 불쑥 아주머니 얼굴 하나가 나온다. ‘뽕’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뽕녀 아주머니 뭐하세요?” “오디 따, 뽕잎을 살짝 들추면 까맣게 보이지. 오디야! 달아. 술 담으려고” 아주머니가 딴 오디를 아낌없이 나눠준다. 아주머니가 뽕밭으로 들어가고 밭은 또 사람이 없는 듯 잠잠하다.

왜 ‘뽕’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을까 이제야 상상이 간다. 뽕밭이 감쪽같이 사람을 숨긴다. 뽕밭 뒤로 누에치는 창고가 있다. 잠자는 누에가 사람들이 들어서자 꼬물꼬물 일어난다. 아이들은 어느새 여치집에 누에를 하나 담아 넣었다.

리어카에 보리도 싣고 아이들도 싣고 보리타작을 하러 간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리어카에 보리도 싣고 아이들도 싣고 보리타작을 하러 간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마을 입구에 보리와 밀이 곱게 익었다. 할아버지가 낫을 들고 보리 베는 시범을 보인다. 우선 보릿단을 묶을 메끼를 만드는 것조차 쉽게 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싹둑싹둑 잘도 베는데, 사람들이 보리를 베는 게 아니라 뽑고 있다. 보리가 뿌리째 뽑혀서 흙이 묻어있다.

조용했던 마을이 시끌시끌하다. 그래도 어찌어찌 해서 한 고랑 잘 벴다. 할아버지가 보리밭 옆에 불을 피운다. 밀을 한 단 베어 와서 밀사리를 한다. 보리는 노랗게 익었는데 밀은 아직 파랗다.

밀사리는 밀을 불에 살짝 익힌다. 밀을 훑어내서 손바닥에 놓고 비벼서 바람에 '후' 불면 맛있는 밀사리가 된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밀사리는 밀을 불에 살짝 익힌다. 밀을 훑어내서 손바닥에 놓고 비벼서 바람에 '후' 불면 맛있는 밀사리가 된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밀을 구어 먹는 것이 밀사리다. 밀을 살짝 익혀서 밀 알갱이를 훑어 내린다. 밀껍질이 벗겨질 때까지 손바닥에 올려놓고 비빈다. 그리고 ‘후’ 입바람을 분다. 손바닥은 까맣게 됐지만 탱글탱글한 밀 알갱이가 쫀득쫀득하다. 어른들이 입술 주위가 까맣게 되는 줄도 모르고 즐거워한다. 달콤한 과장에 익숙한 아이들도 생각보다 잘 먹는다.

잘 익은 불이 아까워서 그 속에 감자를 굽는다. 시끌시끌한 게 정말 보리타작에 나선 분위기다. 보릿단을 리어카에 싣는다. 보릿단을 나르는 것은 아이들 몫이다. 다 실은 보릿단 위에 아이들을 태우고 과수원집 마당으로 갔다.

보리를 한 묶음씩 끈으로 묶어서 돌덩어리에 내려친다. 도리깨질처럼 요령이 필요하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보리를 한 묶음씩 끈으로 묶어서 돌덩어리에 내려친다. 도리깨질처럼 요령이 필요하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보리타작을 한다 했는데 마당에는 커다란 돌덩어리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두 주먹에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보리를 끈으로 묶어서 돌 위에 내려친다. 꼭 도리깨질을 하듯 할아버지의 팔이 자연스럽게 돌아간다.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한번씩 친다.

어떤 녀석은 힘만 세서 휙 돌 위에 내려 꽂는다. 보리가 우수수 떨어진다. 일이라 하기보다 사실 놀이에 가까운 보리타작이었는데, 새참이 더 푸짐하다. 영덕게장과 부추전에 시원한 맥주 한잔. 영덕 나라골은 처음으로 농촌테마체험을 했다.

아직 민박이라는 개념도 없는 어르신들이 준비하느라 힘드셨을 텐데 그런 내색도 없이 가족 대하듯 해 주신다. 이제 보리체험은 내년이 돼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름과 가을 또 어떤 체험을 할 수 있을지 기대하면서 지현이와 앵두 씨를 누가 더 멀리 뱄나 내기를 했다.

Tip. 가는 길
승용차 영덕 -> 울진 7번국도 영해 -> 영양방면으로 약 4km -> 인량마을 표지판

나라골은 농촌체험을 할 수 있는 인심좋은 마을이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나라골은 농촌체험을 할 수 있는 인심좋은 마을이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나라골 
경북 영덕군 창수면 인량(나라골)리에 자리한 마을로 특이하게 안동 권씨, 영양 남씨, 함양 박씨, 무안 박씨등 다양한 성씨가 살고 있다. 그래서 종택만 해도 갈암종택, 용암종택, 우계종택 등 8개나 된다. 이 종택들은 조선시대 건축양식으로 원형이 잘 보존된 편이다.  

뒷산 지형이 학이 날아갈 듯한 모습으로 나래골 또는 익동·비계동이라 하다가 음이 변하여 나라골 국동(國洞)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고, 삼한시대 부족국가 우시국의 도읍지라 해서 나라골(국동)이라 했다고 한다.

그 유명한 영덕 대게를 맛 볼 수 있으며, 4km를 가면 송림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대진해수욕장이 있다.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얕아 가족들이 물놀이하기에 좋다. 그 보다 좀 멀리에 고래불해수욕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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