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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야생화 특집③] 눈에 넣고 가슴에 담고 싶은 우리꽃, 백두산 야생화
[야생화 특집③] 눈에 넣고 가슴에 담고 싶은 우리꽃, 백두산 야생화
  • 박상대 기자
  • 승인 2004.07.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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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여행스케치=백두산]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혜의 대초원과 원시림이 조화를 이룬 식물보고. 대자연의 위대함을 웅변하는 백두산의 변화무쌍한 일기와, 수많은 식물들과 바위산을 끌어안고 수만 년을 견뎌온 천지를 만나본다.

백두산 천지는 날씨 변덕이 심하므로 현지 전문가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백두산 천지는 날씨 변덕이 심하므로 현지 전문가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백두산 달문에서 본 천지
백두산은 언제 가도 손바닥에 전율이 인다. 벌써 세 번씩이나 백두산을 다녀왔지만 지금도 텔레비전이나 사진에서 백두산 사진만 접해도 가슴이 동동거린다. 5월말, 아직 백두산에는 눈이 쌓여 있다. 현지인들은 6월중순에나 야생화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아쉬워한다.

사실 그렇다. 백두산은 6월 중순이 지나야 눈이 다 녹고, 천지 얼음이 걷힌다. 천지를 보기 위해서는 북쪽 능선으로 지프를 타고 오르거나 장백폭포 쪽 달문으로 오르면 된다. 6월초에는 지프도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장백폭포 쪽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장백폭포 아래는 온천이 있어서 차로 오른 것보다는 사정이 낫다.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계곡가의 노천온천에서 온천물에 삶은 달걀을 팔고 있다. 어린 아이들은 장뇌삼을 팔기도 한다. 동행한 친구와 함께 호텔 입구 맞은편에 있는 소천지 은환호(銀環湖)를 둘러보았다.

이 호수는 유입되는 물줄기는 있어도 밖으로 물이 빠져나가는 곳이 없다. 호수는 지름이 40여m로 자그마하고 둥근 모양인데 호수 뒤편으로 물이 들어오지만 배수로는 없다. 달문으로 오르는 길은 철재 계단을 따라 이어진다. 10여분 오르자 폭포 기념 촬영 장소가 있다. 30여분 계단을 더 오르면 달문이다.

해마다 백두산 야생화를 촬영하러 다니는 여행객이 늘고 있다.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해마다 백두산 야생화를 촬영하러 다니는 여행객이 늘고 있다.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천지가 손에 잡힌다. 그런데 천지에 안개와 구름이 가득찼다. 아직 야생화는 없지만 여름이면 분홍색 구름 패랭이가 천지 주변에 가득 찬다고 가이드가 설명해 준다. 천지 물은 아직도 손이 시리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고 흐르는 물이 폭포를 이루고 있지만 천지의 물은 여행객의 손을 시리게 한다.

구름이 걷히면서 장군봉, 백운봉, 청석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장엄한 모습이다. 좀 더 높은 곳에서 천지를 굽어살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루에도 12번씩 바뀐다는 백두산 날씨다. 언제 구름이 끼고,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모른다. 현지 사람들도 세 번 오르면 한번 정도 천지를 온전히 볼 수 있다지 않는가.

잠시 흥분된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느닷없는 애국가가 천지에 울려 퍼진다. 한 무리의 한국 여행객들이 주먹을 위아래로 흔들며 애국가를 부른다. 무슨 뚱딴지 같은 짓이란 말인가? 10여년 전 처음 백두산을 여행할 때는 그런 무리들을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과연 잘하는 일인지 의심이 간다.

부채붓꽃 군락지.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부채붓꽃 군락지.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서부 능선을 타고 오르면 야생화 천지
백두산 아래 첫동네 이도백하를 출발한 지 3시간째 자동차는 비포장 환치루 도로를 거친 숨소리를 내며 달려간다. 야생화가 있는 서쪽 산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다. 포장도로를 달려 밀림의 도로로 접어든다.

북쪽 백두산을 오를 때 벌거벗은 자작나무 숲을 보았는데 서부 밀림에는 전나무 숲이 이어진다. 10년 전에 처음 찾았을 때만 해도 이 미로는 반드시 현지인이 자동차를 운전하게 했다. 조선족도 운전을 할 수 없었다. 워낙 광활한 밀림이라 한번 길을 잘못 들어서면 하루 종일 헛바퀴를 돌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매발톱꽃.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하늘매발톱꽃.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백두산(장백산)입구 서문 매표소를 통과하자 활엽수들이 새싹을 밀어내고 있다.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다. 그러나 또 언제 환한 모습을 보일지 알 수 없다. 산문을 통과하고 도로를 오르는 동안 얼마간은 자작나무과 고산목이 즐비하다.

재밌는 것은 산을 높이 올라갈수록 나무들의 키가 낮아지고 아래쪽 방향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다는 사실이다. 비바람 탓이란다. 또 한참 차를 달리자 아예 나무는 보이지 않고 푸른 초원이 펼쳐진다. 북쪽 능선을 오를 때 저 멀리 펼쳐져 있던 그 모습과 흡사하다.

눈 속에서 피어난 민병초.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눈 속에서 피어난 민병초.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다만 서쪽 산문 안에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들꽃들이 새생명을 잉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꽃들은 더러는 얼음장을 뚫고 올라왔을 것이고, 더러 꽁꽁 언 땅을 비집고 얼굴을 내밀었을 것이다. 꽃들은 새찬 바람을 온몸을 부대끼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떠 있고, 숲에서는 푸르름이 짙어가고, 초원에선 연두색과 노랑색, 분홍색과 보라색 점들이 수시로 자리 바꿈을 하고 있다. 차를 내려 초원을 걷는다. 아직 꽃들이 만개하진 않았다. 정말 장관이다. 에덴 동산이 이만큼 아름다웠을까? 꽃들이 만개할 때까지 백두산에 머무르는 방법은 없을까? 다시 기회를 만들어 찾는 수밖에.

두매자운꽃.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두매자운꽃.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수풀 사이로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또 다른 생명이 대지를 차지할 모양이다. 서부 능선 길 차에서 내려 30여분을 오르자 새로운 천지가 나타난다. 동행한 조선족 친구는 여름이면 양귀비꽃, 깽깽이풀꽃, 각종 나리꽃, 하늘매발톱, 꿩의 다리 군락, 붓꽃 군락 등이 정말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꽃밭에 엎드려 한동안 킁킁대고, 어떤 사람은 꽃잎을 따서 입에 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넋을 놓고 멍하니 앉아 있다고 귀띔한다. 천지 속으로 하얀 새털구름이 떠다닌다. 다시 천지에 손을 담그고 물을 한모금 마시고 싶다. 그러나 동행한 친구는 고개를 흔든다.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것. 남이 어두어지기 전에 하산해야 한다.  산문을 나가 마을까지는 또 얼마나 가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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