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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섬여행 3제] 우리 국토의 최남단 섬, 마라도
[섬여행 3제] 우리 국토의 최남단 섬, 마라도
  • 이종원 객원기자
  • 승인 2004.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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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마라도에는 산이 없다. 파랗게 펼쳐지는 바다와 초록빛 가득한 평원이 아름답다. 2004년 8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마라도에는 산이 없다. 파랗게 펼쳐지는 바다와 초록빛 가득한 평원이 아름답다. 2004년 8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여행스케치=제주] 9년 전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찾은 적이 있다. 하필 그때 중국에 30년만의 대홍수가 나서 고속도로가 끊겼다. 이틀 동안 시골도로를 달려 새벽 3시가 돼서야 백두산 초입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장을 풀 겨를도 없이 바로 산행에 들어갔다.

쏟아지는 별빛을 맞으며 하염없이 걸었다. 3시간 정도 걸었을까? 드디어 안개 걷힌 천지가 내 시야에 펼쳐졌다. 폭발하는 감동을 간신히 추스르면서 스스로 결심한 것이 하나 있었다. “우리 국토를 죽도록 사랑하자.”

그렇다. 나의 국토사랑은 9년 전 천지를 보았을 때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작년에 동쪽섬 독도땅을 밟을 수 있었고, 금년 초에는 금강산까지 밟게 되었다. 상징적 의미를 지닌 곳에 꼭지점을 찍을 때마다 나는 벅찬 환희를 맛 볼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라도 역시 나의 국토순례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대한민국 최남단섬 마라도 표지석. 2004년 8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대한민국 최남단섬 마라도 표지석. 2004년 8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마라도는 큰 섬도 아니고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섬도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마라도를 필연적으로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최남단이라는 상징 때문일 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인체도를 내가 탐사했다면 나는 머리끝과 왼팔의 끝 그리고 발끝까지 구경한 셈이다. 이제 백령도만 다녀오면 신체의 끝자락은 다 돌아본 셈이다.

그렇게 구획을 그었으니 이제 그 안에 들어 있는 우리 산하를 샅샅이 훑어보는 일만 남았다. 마라도 가는 선착장 바로 옆에는 송악산이 길게 누어 있다. 영화 ‘연풍연가’와 드라마 ‘대장금’이 촬영된 곳이어서 요즈음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곳이다.

동굴은 일제치하 미군의 함정을 막기 위해 강제로 만든 것이다. 2004년 8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동굴은 일제치하 미군의 함정을 막기 위해 강제로 만든 것이다. 2004년 8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해변에는 동굴이 여럿 뚫려 있다. 자연적으로 생성된 해식동굴이 아니다. 일제치하 미군의 함정을 막기 위해 가미카제용 어뢰를 보관하려고 만든 장소다. 일본군은 미군과 마지막 한판 승부를 제주도에서 벌일 생각을 했다. 그걸 말해주듯 송악산 근처에는 알뜨르 비행장 흔적과 격납고와 포대의 잔재가 남아 있다.

이래저래 남의 전쟁판에 죽도록 고생한 제주의 민초들이다. 저 딱딱한 돌을 뚫으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역사가 만들어낸 비애를 보고 지금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반대편에 고개를 돌리면 산방산과 한라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제주도에서 한라산은 절대권력을 누리고 있다. 제주시내에서도, 성산포에서도, 서귀포에서도 고개만 쳐들면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한라산은 그렇게 쳐다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한라산이 그린 완만한 곡선은 사람을 참 편하게 만든다.

마라도 풍경. 2004년 8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마라도에서 바라본 제주 풍경.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2004년 8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이번엔 유람선 뱃머리에 자리를 잡았다. 확성기에서 들리는 뽕짝조의 음율도 이젠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바다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하멜이 표류했다고 전해지는 가파도도 보인다. 가파도는 릴레이의 중간 선수처럼 본섬과 마라도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가파도(갚아도)좋고 마라도(말아도)좋고’라는 말이 있듯이 외떨어진 두 섬은 세찬 바람을 함께 이기며 서로를 보듬고 살아왔다. 마라도 섬사람의 빚을 가파도 사람이 갚아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함이 묻어난다. 드디어 마라도가 보인다. 배가 가까이 다가 갈수록 섬이 더욱 크게 보이고 내 가슴 역시 부풀어 오른다.

섬을 밟았을 때 그 묘한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마라도는 산이 없다. 해발 38m, 동서 폭이 5백m, 남북이 1.2Km. 해안선의 길이라고 해봐야 고작 4.2km의 작은 섬이다. 신작로가 남북으로 길게 가로지르고 있어 항공모함의 활주로만큼이나 시원스럽다.

“숨바꼭질을 해도 술래를 금방 찾을 수 있어요.” 마라도를 한바퀴 둘러보는데 1시간이면 족하다. 옛날엔 울창한 삼림으로 가득 했는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나무를 태워버렸다고 한다.

선창가 초입 자전거 대여점. 2004년 8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선창가 초입 자전거 대여점. 2004년 8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선창가 초입에 자리 잡은 자전거 대여점이 눈에 들어온다. 코발트빛 바다를 배경 삼아 페달을 밟는 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연인끼리 왔다면 2인용 자전거를 타는 것이 어떨까? 마라도에는 아무런 가로막이 없다. 푸른 초원을 거침없이 달리면 그만이다. 함께 페달을 밟으며 미래를 설계해보는 것은 어떨까?

해안선을 따라 목책이 길게 이어졌다. 이 길을 따라 마라도를 둘러보면 파란 바다와 신록의 초지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바다를 바라보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한다. 한 여인이 바다를 향해 힘껏 팔을 내뻗고 있다. 이 여인은 바다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의 애인은 마라도 바다야.’

듬성듬성 갈대가 자라고 있다. 육지의 갈대와는 사뭇 다르다. 바람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키를 낮추고 잔뜩 엎드리고 있다. 선인장 군락지도 마찬가지다. 하늘을 향해 올라간 것이 아니라 낮은 포복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마라도의 식물들은 자연과 싸울 의사가 없다. 그저 순응하며 살아갈 뿐이다.  

장군바위는 천신이 내려오는 길목으로 알려져 있다. 2004년 8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푸른 풀밭 뒤로 마라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한 우리나라 제 1호 등대.  2004년 8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가장 높은 곳에 마라도 등대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 제 1호 등대이자 가장 밝은 등대라고 한다. 동지나해로 향하는 어민들에게 등대는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마라도는 세계 각국의 해도에 반드시 들어가는 중요지점이다. 민족이 세계로 뻗어나가는데 헤드라이트가 되길 바란다.

마라도 등대를 밝히기 위해 복합발전시스템이 구비되어 있다. 태양전지 3백73장과 풍력발전기 2기로 이루어졌다. 청정에너지인 빛과 바람을 이용하여 전기를 일으키는 셈이다. 등대 앞에는 작은 성당이 서 있다. 우리나라 최남쪽에 등대는 불을 밝히고 성당은 진리를 밝히고 있다.

장군바위는 천신이 내려오는 길목으로 알려져 있다. 2004년 8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장군바위는 천신이 내려오는 길목으로 알려져 있다. 2004년 8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조금 더 내려가면 ‘대한민국 최남단 비’가 서 있다. 반도의 끝-해남 땅 끝에서도 비슷한 비석을 본 적 있다. 그때보다 더 감격스러워 비의 여기저기 어루만져 본다. 실은 최남단 비 뒤 쪽에 장군바위가 있다. 바위는 마라도의 수호신이 되어 마라도를 지켜주고 있다.

장군 바위는 하늘에 살고 있는 천신이 땅에 살고 있는 지신을 만나기 위해 내려오는 길목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 때 일본인들이 자기 나라쪽을 향해 신사참배 했던 곳이란다. 오늘날에는 마라도 주민들이 해신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초코렛 캐슬. 2004년 8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초코렛 캐슬. 2004년 8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조금 가면 ‘초코렛 캐슬’이라는 예쁜 집도 보인다. 젊은이들이야 좋아하겠지만 순박한 마라도 분위기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 두루마기를 입은 어르신이 넥타이를 맨 모습만큼이나 어색하게 보인다. 마라도에 와서 초콜렛을 먹을 이유가 있을까?

마라도에는 총 30가구에 80여명의 섬주민이 살고 있다. 이들은 주로 관광업과 어업에 종사한다. 마라도사람들은 어떤 집에서 사는지 궁금해 시선을 돌담 너머로 옮겨보았다. 아담한 함석집은 소박하기 그지없고 마당에는 파릇한 파가 자라고 있다.

절집도 보인다. 화산암으로 쌓은 탑도 올라가 있다. 범종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평화의 메아리가 세계 구석구석 퍼져 나가길 바란다. 교회도 만났다. 섬 주민 80명밖에 없지만 우리나라 3대 종교가 이 좁은 마라도에 비집고 살아가고 있다.

마라분교 모습. 제주 전통 대문으로 학교 정문을 해두었다. 2004년 8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마라분교 모습. 제주 전통 대문으로 학교 정문을 해두었다. 2004년 8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초원 위에는 팔각정도 편안하게 서있다. 이곳에서 바라본 바다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편편한 섬과 달리 해안은 상어의 이빨처럼 울퉁불퉁하여 기암절벽이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이 멋진 곳에서 낚시대를 드리우면 얼마나 기분 좋을까? 드넓은 초지에는 마을사람 모두가 축구를 해도 좋을 정도로 넓은 운동장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진돗개를 만났다. 마라도에서 만난 것은 모두 ‘우리나라 최남단의’란 수식어가 붙는다. 강아지도 마찬가지다. 머나먼 마라도까지 와서 컹컹 짖는 모습이 사뭇 신기하다. ‘독도에서 본 삽살개와 마라도 진돗개를 미팅을 시켜주면 어떨까?’ 라고 흐뭇한 상상을 해본다.

유신때 마라분교 아이들이 선생님 손에 이끌려 서울의 빌딩 숲을 구경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때는 정말 ‘깡촌에서 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 아이들이 너무나 부러울 따름이다. 교문은 제주도 전통문처럼 꾸며져 있어 이채롭다.

마라도 자장면 집. 2004년 8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마라도 자장면 집. 2004년 8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언젠가 핸드폰 CF에 나오더니 마라도는 자장면으로 유명해졌다. 그 때문인지 일부러 핸드폰을 걸어 자장면을 시켜먹는 낚시꾼도 있다. 그럼 3륜 오토바이가 즉시 달려가 자장면을 배달해준다. CF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듯. 자장면 집은 두 집이 있는데 서로들 원조라고 플래카드를 높이 내걸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마라도 자장면은 돼지고기를 쓰지 않는다. 오로지 해산물과 야채로 만들어진 소스가 얹힌다. 바다를 바라보며 젓가락을 휘젓는 기분은 마라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추억거리가 아닐까?

섬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무덤이었다. 네모난 돌담에 빙 둘러싸인 봉분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뭍에 올라가지 못하고 죽어서도 마라도를 지키는 모습이 의연하게 보인다. 저 멀리 한라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마라도 역시 한라산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니 마라도는 한라산의 보호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동단 독도가 기운찬 남성의 섬이라면 최남단 마라도는 부드러운 곡선미를 가진 여성의 섬이다. 짧은 시간에 난 그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마라도를 다시 찾아야 할 이유다.  

Info
송악산 선착장에서 유람선이 9:30-15:30분까지 7회 운행한다. (40분소요. 배시간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꼭 확인을 해야한다. 체류시간은 1시간 30분이지만 그 배를 놓치면 다음 배를 타고 나오면 된다.)
주변여행지 : 송악산, 산방굴, 추사적거지
맛집 : 해녀식당 저렴하게 회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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