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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밀양 영남루와 항일운동거리
밀양 영남루와 항일운동거리
  • 박상대 기자
  • 승인 2019.08.05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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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역사를 품고 있는 따뜻한 고장, 밀양
밀양강변에 자리한 영남루는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조선 3대 누각으로 불리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밀양강변에 자리한 영남루는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조선 3대 누각으로 불리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밀양] 밀양에는 아름다운 누각 영남루가 있고, 유서 깊은 사찰 표충사가 있다. 굵은 이름을 남긴 선비들을 배출했고, 만주땅을 호령했던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했다. 밀양아리랑을 취재하러 갔다가 먼저 마주한 것들을 먼저 소개한다.

밀양 선비들을 길러낸 영남제일누각 영남루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살금살금 걸어 다녀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삼복 더위에 밀양을 찾아갔다. 밀양역에서 택시를 타고 영남루로 갔다. 도로에서 돌계단을 타고 오르자 웅장한 건축물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퇴계 이황이 영남루를 다녀간 뒤 남긴 현판. 사진 / 박상대 기자
퇴계 이황이 영남루를 다녀간 뒤 남긴 현판. 사진 / 박상대 기자

영남지방의 대표적인 누각 영남루. 넙은 마당을 가로질러 누각으로 다가갔다. 영남루란 현판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교남명루(嶠南明樓), 강좌유부(江左府)가 시선을 끌어당긴다.

조선의 3대 누각으로 평가받는다는 저명한 누각이다. 문화관광해설사(황선미)를 따라 2층에 오르니 사방이 열려 있고, 발 아래 밀양강이 흐르고 있다. 땡볕이 내리쬐는 한낮인데 누각 마루에 앉으니 시원한 강바람이 분다.

영남루는 밀양강변에 서 있어서 경관이 수려한데 야경도 아름답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영남루는 밀양강변에 서 있어서 경관이 수려한데 야경도 아름답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밀양강은 수백 수천년 동안 밀양 사람들을 먹여 살린 강물이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니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스쳐간다. 얼굴은 본 적 없으나 이름은 익숙한 사람들! 표충사에서 삼국유사를 탈고한 일연 스님, 고려 때 목은 이색, 조선 때 변계량김종직문익점, 표충사의 사명대사와 효봉 스님, 독립운동가 노상직김원봉, 그리고 현대의 작곡가 박시춘과 사상가 신영복 교수 등등.

영남루는 조선시대 밀양도호부의 객사 부속건물이었다. 손님을 접대하거나 주변 경치를 보면서 여흥을 즐기던 건물이다. 고려시대에 처음 지었는데 여러 차례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였다.

영남루는 밀양강변에 서 있어서 경관이 수려한데 야경도 아름답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영남루는 조선 순조 때 건립한 건축물인데 아름드리 소나무 기둥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신라시대 이 자리에 영남사(嶺南寺)라는 절이 자리를 잡았는데, 고려시대에 절이 없어진 자리에 누각을 짓고 영남루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몇 차례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다 헌종 때 (1844년) 세운 것이 오늘에 전하고 있다. 기둥이 아름드리 소나무로 되어 있고, 마루에 깔린 널빤지도 두툼하다. 시민들이 휴식처로 활용하고 있는 누각은 시원한 바람이 불기도 하고, 확 터진 시원한 시야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영남루 2층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니 사방에 크고 작은 현판들이 걸려 있다. 동서남북 들보 아래에 청룡 백호 현무 주작을 그려 넣고, 용머리에 사신도를 그려 넣어 이 누각이 범상치 않음을 알린다. 신선들과 눈을 맞추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라. 난간에는 구름이 흐르고, 저 위에는 용들이 여의주를 물고 있다. 멀리서 달려온 여행객에게 이곳이 선계임을 자랑하며 쉬어가라 유혹한다.

고려시대 유학자 이색 선생과 세종의 스승 변계량 선생, 조선시대 유학자 김종직 선생, 이웃 청도현감을 지낸 문익점 선생의 글귀가 적힌 현판들이 세월의 향기를 뿜어낸다. 해가 져도 다른 데로 옮기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너무나 포근하다.

영남루 옆에 아랑 낭자의 영혼을 추모하는 사당이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영남루 옆에 아랑 낭자의 영혼을 추모하는 사당이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아랑 낭자의 슬픈 전설
영남루에는 아주 슬픈 전설이 전한다. 옛날에 밀양 부사에게 아랑이란 딸이 있었는데, 아름답고 마음도 어진 그 딸을 관아의 심부름꾼인 통인이 사모하였던 모양이다. 통인은 유모를 꼬드겨서 어느 달밤에 아랑을 불러냈고, 낭자를 욕보이려 했으나 반항하자 칼로 찔러 죽였다. 그리고 그 시신은 영남루 대숲에 유기하였다.

부사는 갑자기 사라진 딸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찾지 못했고, 한참 뒤에 부인한 부사가 꿈에 나타난 아랑의 어울한 호소를 듣고 유기된 시신을 찾았다. 그리고 꿈속에서 아랑이 말한 대로 고을 남자들을 불러 모아 범인을 찾으려는데 나비로 변한 아랑이 범인 머리에 앉았다 날아가는 것이었다. 결국 범인은 이실직고 하였고, 처벌을 받았고, 아랑의 원혼을 달래 주었다는 것이다.

영남루 오른쪽 언덕에 있는 사명대사 동상. 사진 / 박상대 기자
영남루 오른쪽 언덕에 있는 사명대사 동상. 사진 / 박상대 기자
영남루 오른쪽 담장 옆에 있는 작곡가 박시춘이 살던 집. 사진 / 박상대 기자
영남루 오른쪽 담장 옆에 있는 작곡가 박시춘이 살던 집. 사진 / 박상대 기자

지금 영남루 대숲 위에 아랑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다. 그리고 그 언덕 위에 임진왜란 때 조선 포로들을 구해온 사명대사의 동상이 서 있다. 일제 신사가 있던 자리에 후세 사람들이 사명대사의 기운으로 일본의 기를 꺾어달라는 뜻으로 동상을 세워 두었다. 영남루 바로 옆에 우리나라 가요계에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작곡가 박시춘이 어린시절을 보낸 집터가 복원되어 있다.

영남루 마당을 가로질러 천진궁(天眞宮)이라는 건축물이 하나 있다. 오랫동안 단군 할아버지와 임금들의 어진을 모시던 곳인데 일제 강점기 때 밀양시민들의 항일 의지를 꺾겠다면서 어진과 신위를 폐하고, 감옥으로 활용하였다. 지금은 다시 복원하여 단군 이래 8왕조의 시조 위패를 봉안하고, 해마다 봄과 가을에 어천대제와 개천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해천 항일운동 테마거리는 밀양 시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해천 항일운동 테마거리는 밀양 시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해천 항일운동 테마거리는 밀양 시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해천 항일운동 테마거리는 밀양 시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해천 항일운동 테마거리와 김원봉 선생 생가
밀양시에는 전국에서 유일한 거리가 하나 있다. 밀양시 내일동에 있는 '해천 항일운동테마거리'가 그것이다. 아주 작은 시내인 해천을 사이에 두고 오밀조밀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동네가 온통 항일운동 거리가 된 것이다.

독립유공자 80여 명을 배출한 고장에서 조선의열단 김원봉과 윤세주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김원봉과 윤세주는 같은 동네 이웃집에서 자랐고, 초등학교 다닐 때 벌써 일제식 교육에 불만을 품고 일장기를 화장실에 버린 대가로 학교를 퇴학당했다.

항일운동 테마거리 김원봉 선생 생가터에는 밀양의열단전시관이 서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항일운동 테마거리 김원봉 선생 생가터에는 밀양의열단전시관이 서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김원봉이 먼저 만주로 떠나 조선의열단을 조직했고, 뒤이어 윤세주도 길림으로 찾아가 의열단 대원이 되었다. 천하의 의로운 일을 열렬히 실행하기로 맹세한 의열단원 중에는 밀양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가입해 있었다.

지금 이 거리에는 김원봉의 집터에 밀양 의열기념관이 세워졌고, 윤세주의 집터는 빈터로 잔디가 깔려 있다.

이 거리 집집마다 담벼락에 글씨와 그림, 사진으로 밀양 사람들의 항일운동 역사, 참여자, 3.1운동이나 경찰서 폭탄 투척 등 수많은 행동들이 소개되고 있다. 의열기념관에서는 김원봉 단장을 중심으로 신흥무관학교 시절, 의열단 시절 조선 사람들의 활약상 들을 영상과 사진으로 소개하고 있다.

밀양의 산내면 얼음골로에 있는 호박소. 화강암 계곡에 있는 폭포가 만들어낸 호박소에는 여름이면 많은 피서객들이 찾는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밀양의 산내면 얼음골로에 있는 호박소. 화강암 계곡에 있는 폭포가 만들어낸 호박소에는 여름이면 많은 피서객들이 찾는다. 사진 / 박상대 기자

해천 주변에는 드문드문 항일운동 분위기를 깨지 않을 정도로 카페와 음식점이 있고, 쉴 만한 데크도 마련되어 있다. 시내에는 수련과 창포가 피어 있고, 맑은 물이 흐른다. 밀양 사람들의 정성이 가득 담긴 동네에서 먼저 간 선배 어른들의 향가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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