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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안성 특집②] 안성 남사당패와 바우덕이
[안성 특집②] 안성 남사당패와 바우덕이
  • 김연미 기자
  • 승인 2004.09.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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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과 울고 웃으며 살아온 예인들을 만나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버나놀이 장면.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버나놀이 장면.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안성] 겨우 스물 한해를 살고 안성 남사당 청룡패의 꼭두쇠였던 바우덕이는 바람처럼 세상을 떠났다. 청룡사 올라가는 계곡 어딘가에 묻혔는데 마흔 둘의 남편은 무덤가에서 몇날 며칠을 슬피 울며 홀로 춤추고 장구를 쳤다고 전해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을 날리며 떠나를 가네

남사당패는 원래 남자로 구성된 예인 집단이다. 양반의 허락을 받아야만 마을에 들어가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괄시받던 천민이었지만 백성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이들에게서 지금은 대중예술의 뿌리를 찾는다. 바우덕이는 여자의 몸으로 남사당패의 꼭두쇠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꼭두쇠의 능력에 따라 단원들이 모이거나 흩어지기도 하고 공연수익도 달라지기에 통솔력이 뛰어나야 했는데 어린 여자가 어떻게 이끌었는지 의문이다. 어려서 남사당패의 손에서 자란 바우덕이는 경복궁 중건 당시 대원군의 명을 받아 공연을 할 때 신기에 가까운 묘기를 보여 옥관자를 하사 받았다.

이동희 안성시장에 의하면 “옥관자에 해당하는 관직을 찾아보니까 정 3품에 해당하는 하사품으로 지금으로 치면 경기도 부지사급에 이른다”고 한다.

무동놀이의 한 장면.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무동놀이의 한 장면.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바우덕이 패거리는 겨울이면 청룡사 계곡에서 어린 ‘삐리’들에게 기예를 가르치다가 봄철 농번기가 시작되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기예와 웃음을 팔고 다녔다. 이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청룡사 중건에 보태기도 했으니 그 의리와 성품은 정쟁을 일삼던 높은 양반들보다 훨씬 인간적이었다.

남사당 여섯 마당은 고사굿과 풍물놀이로 시작해서 땅재주놀이인 살판, 둥글고 넓적한 가죽접시인 버나를 돌리는 버나놀이, 탈놀이인 덧뵈기, 줄타기인 어름, 어린아이를 어깨위에 태우고 노는 무동놀이 등으로 하루 온종일 공연이 이어진다. 안성시 남사당패는 매주 토요일 6시 30분에 남사당전수관 앞마당에서 공연을 벌인다.

두 시간 정도 진행되는데 각 마당의 중요대목만 선보인다. 최근 홍보에 힘입어 가족 단위로 많이 오는데 남사당패와 관객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뒷풀이까지 한바탕 신명나게 놀고 가면서 한마디씩 한다. “재밌었지? 진작 와볼 걸…” “아니, 이걸 이 산속에 숨어서 하니 누가 알았나? 매주 토요일마다 한다는데… 기가 차네.” 안성시에서는 매년 10월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를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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