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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한국의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① 법주사, 세속을 떠난 산에서 부처님 세계로 들어가는 절
[한국의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① 법주사, 세속을 떠난 산에서 부처님 세계로 들어가는 절
  • 노규엽 객원기자
  • 승인 2019.08.1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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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이 주변을 둘러싼 고즈넉한 사찰 풍경
1450~60년을 이어온 오랜 역사
팔상전, 쌍사자석등, 금동미륵대불 등 문화재 보유
<편집자 주> 2018년 6월 30일,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에서 개최된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이 신청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확정됐다. 이에 해당하는 사찰은 영주 부석사, 양산 통도사, 보은 법주사, 해남 대흥사, 안동 봉정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등 총 7곳. 각 사찰이 세계유산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역사적 이유와 사찰문화 등을 면면히 살펴본다.

[여행스케치=보은] 법주사는 한국에 현존하는 수많은 사찰 중에서도 이름이 꽤나 알려져 있는 절이다. 1970년에 국내 6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속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이유도 있거니와, 등산로로 이어지는 길목에 자리해있어 등산객들은 물론 일반 방문객들의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높고 낮은 산자락 사이에 자리한 고요한 사찰
법주사를 찾아가는 길은 보통 속리산의 서쪽 자락으로 접근한다. 조선 세조 때 왕의 가마가 지나갈 길을 열어주어 벼슬을 하사받았다는 정이품송을 지나 속리산국립공원에 가까워지면 속리산터미널을 중심으로 식당들이 모여 있다. 그 음식거리를 따라 산으로 향하다보면 식당이 점점 드물어지며 이내 매표소가 나타나고, 매표소를 지나 소나무가 주종을 이룬 숲을 따라 가다보면 길이 양갈래로 나뉜다. ‘세조길’이 보이는 오른쪽 길은 속리산 정상인 천왕봉과 문장대 등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로 향하는 길이고, 정면의 하천을 건너는 다리가 법주사 정문으로 가는 길이다.

법주사 정문의 명칭은 금강문. 금강역사라 불리는 호법신장과 사자를 타고 앉은 문수보살, 코끼리를 타고 앉은 보현보살상이 안치된 장소다. 금강문을 지나 법주사 경내에 들어서면 좌우로 공간이 열리지만, 아직은 길을 흐트러트리지 말고 곧바로 걸어가는 편이 좋다. 다시 정면에 보이는 사천왕문을 지나야 일반 세상인 속세에서 불교 세상으로 들어서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천왕은 동서남북 네 방위를 관장하는 존자들로서, 외부로부터 절을 보호한다는 뜻과 함께 사람들은 통과시키되 악귀는 물러나게 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법주사 대웅보전. 양옆을 지키고 있는 두 그루 나무가 그늘 쉼터를 만들어주고 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법주사 대웅보전. 양옆을 지키고 있는 두 그루 나무가 그늘 쉼터를 만들어주고 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세조길을 따라 속리산 등산도 즐겨볼 수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세조길을 따라 속리산 등산도 즐겨볼 수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법주사 메인 탐방로는 입구 금강문부터 일자형으로 이어진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법주사 메인 탐방로는 입구 금강문부터 일자형으로 이어진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법주사 무경스님은 “산자락에 둘러싸인 평평한 분지에 자리한 법주사는 기울어진 산자락에 계단식으로 만든 사찰과 비교해 가람(건물) 배치가 다르다”며 “금강문에서 시작하여 일자형으로 주요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어 금강문부터 부처님을 모신 대웅보전까지 한 방향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입구부터 줄곧 직진으로 경내를 탐방하는 것이 법주사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팔상전과 금동미륵대불이 방문객을 맞이해준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사천왕문을 지나면 팔상전과 금동미륵대불이 방문객을 맞이해준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사천왕문을 지나면 높고 큰 팔상전이 눈앞을 가로막고, 왼편으로는 금동미륵대불이 온화한 미소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팔상전을 살짝 비껴 돌아 계속 직진하면 쌍사자석등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시야가 훤하게 트이며 법주사의 대웅보전이 눈에 들어온다. 대웅보전 앞으로는 두 그루 나무가 좌우를 지키고 있다. 이 대목이 법주사의 첫 방문을 일자형으로 탐방해야 하는 이유다. 좌우사방으로 자유로이 열려있는 사찰 구조를 따라 길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둘러본다면 자칫 놓칠 수도 있는 풍경. 일자형 길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대웅보전과 두 그루 나무가 만들어내는 모습은 법주사 경내에서도 가장 안정감이 느껴진다.

이곳에서는 몸도 마음도 급할 것 없이 나무 그늘 아래 잠시 앉아보는 것이 좋다. 대웅보전에서 울려나오는 목탁 소리와 경전 소리가 주변 산세에 부딪혀 가벼운 메아리로 퍼지고, 그에 바람 소리마저 더해지면 세상의 근심이 잠시 잊힌다. 딱히 불교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대도, 불경 소리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대도, 법주사가 건네주는 소리와 풍경은 불교세계에 다다른 것처럼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Info 속리산터미널
주소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202
문의 043-543-3613

법주사를 향하는 길복에서 만나는 정이품송의 모습.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법주사를 향하는 길복에서 만나는 정이품송의 모습.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1500년의 향기와 함께 하는 법주사
법주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인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창건 설화에서도 신비함을 엿볼 수 있다.

"신라 진흥왕(540~576) 때 의신조사께서 인도와 중국을 통해 들여온 경전을 달구지에 싣고 돌아다니며 부처님 말씀을 전파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달구지가 움직이지 않아 주변 지형을 살펴보았더니 형세가 법이 머무르는 곳이라 하여 이 자리에 사찰을 창건하셨다 전해지죠."

무경스님의 말처럼 법주사 홈페이지에도 의신조사가 창건을 하고 진표율사가 7년 동안 머무르며 중건하였다고 적혀있다. 한편, 고려 때 지어진 역사서 <삼국유사>에 따르면 금산사를 떠나온 진표율사가 속리산에 들러 길상초가 난 자리에 표시를 해두고 금강산으로 올라가 7년 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국내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인 팔상전.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국내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인 팔상전.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팔상전 내부에는 팔상도가 그려져 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팔상전 내부에는 팔상도가 그려져 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그 후 다시 남으로 내려온 진표율사가 금산사와 부안 부사의방에 머물 때 속리산에 살던 영심, 융종, 불타 등이 찾아와 진표율사에게 법을 전수받았고, 그 때 진표율사가 속리산에 표시를 해둔 자리를 알려줘 영심스님 일행이 길상초가 난 곳을 찾아 절을 짓고 길상사라 칭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내용에 근거하여 법주사는 영심스님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이야기하기도 하며, 고려 때는 절 이름을 속리사라고 불렀던 기록을 보아 길상사에서 속리사로 고쳐 부르다가, 다시 법주사로 바뀐 것이 아닌가 추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대략 15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법주사이지만, 오랜 세월을 지나오며 변화를 겪어왔다. 특히 1500년대 후반의 임진왜란과 1950년 일어났던 6.25전쟁 등에 화를 입기도 했다. 무경스님은 “많은 외침을 받으며 법주사 건물이 불에 타서 소실되기도 했지만, 소실 이후 원형을 복원하려는 노력을 거쳐 다시 일으켜 세웠다”며 “법주사의 세계유산 등재는 단지 1000년 이상을 이어왔다는 것뿐 아니라 그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본다”고 말한다.

팔상전과 쌍사자석등 등 국보급 문화재 보유 
금강문부터 대웅보전까지 거닐며 법주사의 전체적인 모습을 본 이후에는 사찰 경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국보급 문화재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좋다.

먼저 사천왕문을 지나며 눈앞을 가로막았던 팔상전은 국보 제55호로, 한국에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이다. 사찰 창건 당시에 의신조사가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이 목탑은 임진왜란(정확히는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졌는데, 사명대사와 벽암대사에 의해 인조 2년(1624)에 다시 복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보 제5호인 쌍사자석등.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국보 제5호인 쌍사자석등.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이 탑의 중요성에 대해 무경스님은 “법주사가 자리한 지형이 배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돌로 탑을 만들면 배가 무거워 가라앉을 수 있으니 나무로 팔상전을 지어 돛 역할을 맡긴 것”이라며 “배가 바람을 받고 부처님 세계에서 중생 세계로 나아가는 형상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팔상전 내부에는 중앙기둥 벽마다 두 폭씩 8장의 팔상도가 그려져 있다. 팔상도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8단계로 나누어 표현한 그림으로,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오랜 옛날에 문맹들도 불교의 가르침을 그림으로 알 수 있도록 전했던 방식이라 한다.

팔상전과 마주보고 있는 쌍사자석등도 국보이다. 국보 제5호인 이 석등은 신라 성덕왕 19년(720)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높이 10척에 이르는 8각 석등을 두 마리 사자가 마주서서 받들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쌍사자석등은 한국의 사찰들 여러 곳에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지는데, 법주사처럼 잘 보존되어 남아있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은 중요 문화재다.

국보 제64호 석연지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국보 제64호 석연지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법주사의 또 하나의 국보는 국보 제64호로 지정되어 있는 석연지다. 쌍사자석등과 같은 해에 조성된 것으로, 옛 법주사의 본당이었던 용화보전이 있었을 때 극락정토의 연지를 상징하며 화강석으로 조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금동미륵대불은 법주사 창건 당시에 있던 불상을 현대에 새롭게 복원한 것이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금동미륵대불은 법주사 창건 당시에 있던 불상을 현대에 새롭게 복원한 것이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한편, 국보 외에도 법주사에서 가장 눈에 확 띄는 금동미륵대불을 빼놓을 수 없다. 원래 신라시대 때 청동으로 만들어 건물 안에 모셔놓았던 미륵대불은 조선말에 헐렸으나, 1980년대에 들어 다시 청동으로 복원을 하고 2000년 초반에 금을 입혀 지금은 금동미륵대불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이 대불은 용화정토에 이르러 깨달음을 설하시는 미래의 미륵부처님을 의미한다. 기단부 내부로 들어서면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도솔천의 모습을 형상화시킨 용화전이 있으며, 용화전 벽면에는 13개의 미륵십선도가 부조되어 있다.

법주사 한 켠에서 볼 수 있는 마애여래좌상.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법주사 한 켠에서 볼 수 있는 마애여래좌상.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이외에도 고려시대 대표적 마애불인 마애여래의좌상의 독특한 모습, 공개는 되지 않고 있지만 선희궁원당과 왕가에 얽힌 사연 등 법주사가 겪어온 이야기들을 알면 더욱 보이는 것이 많아진다.

무경스님은 “법주사는 불법을 전하는 사찰이지만 현대에는 불교를 믿는 사람만 오는 곳이 아니다”라며 “종교적 의미만이 아닌 한국의 역사이며 세계에 의미가 있는 것을 전하는 곳으로 인식하고 방문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Info 법주사 탐방지원센터
주소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84
입장료 어른ㆍ대학생 4000원, 청소년ㆍ군인 2000원, 초등학생 1000원

※ 본 기획 취재는 국내 콘텐츠 발전을 위하여 (사)한국잡지협회와 공동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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