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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겨울농촌 체험여행] 충남 서천 이색체험마을과 금강 하구 철새 탐조
[겨울농촌 체험여행] 충남 서천 이색체험마을과 금강 하구 철새 탐조
  • 김진용 기자
  • 승인 2005.02.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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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충남 서천 이색체험마을에서 전통놀이를 하는 아이들.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충남 서천 이색체험마을에서 전통놀이를 하는 아이들.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스케치=서천] 깜빡 잠이 들었나 봅니다. 겨울 농촌 체험을 떠나는 14가족을 실은 버스는 여전히 서해안 고속도로의 아침 공기를 가르고 있습니다. 새벽잠을 설쳤을 법도 한데, 앞좌석의 8살 정은이는 혼자 깨어나 김이 뽀얀 차창에 뭔가를 그리고 있습니다. “뭐 그리니?”, “초가집이랑 철새요.”

제법 시장기가 도는 시간. 이색 체험마을이라는 이름을 내건 화산리 마을에 다 왔습니다. 아늑하고 포근한 골짜기에 잠겨 거뭇거뭇한 겨울 들녘이 마당처럼 펼쳐진 조그만 산골 마을이군요. 군수님은 물론 근처 초등학교 풍물패까지 왕림해 풍악을 울리니, 손님맞이 잔치 분위기가 제법 흥이 오릅니다. 체험 가족들의 식당인 비닐하우스 안은 왁자지껄합니다.

칼국수 면을 조심스럽게 칼질하는 아이.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칼국수 면을 조심스럽게 칼질하는 아이.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칼국수 반죽을 하는 사람들.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칼국수 반죽을 하는 사람들.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승진이가 밀가루 반죽을 미느라 진땀을 빼고 있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인데다 얇게 밀지 않으면 제대로 된 칼국수 면발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웃음을 참으며 손을 뻗었다 움츠리기를 몇 번이나 합니다. 마을에서 자란 엄나무 잎을 갈아 빚은 엄나무밀가루 반죽은 주무르고 이기고 미는 사이 제법 얇게 펴집니다. 희진이도 팔을 걷어붙이고 식칼을 들었습니다.

한쪽 어깨는 밀려 올라가고 삐딱 고개를 뺐습니다. 밀가루 반죽 채썰기에 나선 것입니다. 한가닥한가닥 썰어낸 면발을 가지런히 밀어내는 품에 뭘 알기나 한 듯 기품이 배어 있습니다. 엄마가 반죽하고 아빠가 밀고 아이가 채 썬 칼국수 반죽 면발이 도마 곳곳에 그득히 쌓일 무렵, 야채와 바지락이 듬뿍 담긴 육수가 끓으면서 칼국수가 풍덩풍덩 빠지기 시작합니다.

보글보글 김이 올라오는 솥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아이의 눈, 하릴없이 국자만 휘휘 젓고 선 아이의 눈도 기다림으로 가득하고, 오랜만에 남편과 아이들을 코치하며 식사 준비를 끝낸 엄마는 한결 여유 있는 표정으로 군침을 삼키고 있습니다. 칼국수 두 그릇을 후루룩 해치우고 나서도 또 빈 그릇을 내미는 아이는 놀랍게도 평소 입맛이 짧던 승진이입니다.

엄마는“매일 데리고 와야겠네”기특해 하면서도, 그릇을 소리내 박박 긁는다고 또 눈치를 줍니다. 문득 승진이는 건너 식탁의 정은이네 가족을 곁눈질합니다. 아빠는 물론 할머니까지 대가족이 둘러 앉아 먹고 있는 게 부러운 모양입니다. 아빠가 직장일 때문에 이번 여행을 신청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습니다.

점심을 해치운 꼬마들은 벌써 뒷동산에 올랐습니다. 어디서 구했는지 나무 막대기 몇 개를 꼬나 쥐고 칼싸움을 벌입니다. 전자파에 찌들린 요즘 아이들도 뒷동산에만 올려놓으면 이렇게 칼싸움을 벌이는군요. 급기야 무덤 위를 날아다니기 시작하자 당연히 동네 어르신의 불호령도 떨어지겠지요.

'이하복 전통가옥'에서 오랜만에 마주친 가마니틀을 보고 반가워하는 할머니.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이하복 전통가옥'에서 오랜만에 마주친 가마니틀을 보고 반가워하는 할머니.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초가로 보존된 양반 가옥으로는 유일하다는 ‘이하복 전통가옥’에서 수미네 할머니가 걸음을 멈춘 곳은 가마니를 짰다는 가마니틀 앞입니다. “한 명은 짚을 먹이고 또 한 명은 바디질을 하는 거란 말이야. 이 구멍으로 씨줄을 한 묶음 날줄에 감아 끼워 끝을 맞추고…” 할머니가 한참 신이 난 사이 중학생인 수미는 벌써 사라져 버렸고, 이웃 가족 아이들만 동그란 눈을 말똥거리고 있지만 어째 영 알아듣는 폼은 아닙니다.

2백 년 된 전통 가옥을 구경했으니, 1천 5백km를 날아온 손님도 보러 가야겠지요. 호수가 얼면 새들은 어디로 갈까. 가족들이 향한 곳은 시베리아에서 온 겨울 철새의 보금자리 금강 하구입니다. 탐조대 가까이에는 붉은부리갈매기나 청둥오리가 먹이를 받아 먹으러 모여듭니다. “저거 혹시 텃새 아냐?” 이미 텃새화 되어가는 새들이라 이전에도 보았나 봅니다.

실망도 잠깐, 강둑을 따라 조금만 오르니 저 멀리 십 수만 마리의 가창오리떼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새라길래 새인줄 알지, 새까맣게 떠있는 게 섬이라고 해도 믿을 정돕니다. 이따만한 망원경 두께에 비해 턱없이 자그마한 접안렌즈가 아이들 눈에 잘 맞춰질 리 없습니다. 그래도 강 저편을 바라보는 아이들은 열심입니다.

서천 철새탐조대에서 갈매기떼와 오리떼를 눈 앞에서 바라볼 수 있다.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서천 철새탐조대에서 갈매기떼와 오리떼를 눈 앞에서 바라볼 수 있다.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운이 좋으면 한가로이 노니는 고니를 관찰할 수 있는 서천군 봉명리 부근.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운이 좋으면 한가로이 노니는 고니를 관찰할 수 있는 서천군 봉명리 부근.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망원경에 들어있는 가창오리떼는 장소를 옮기려고 가끔씩 수면 위를 낮게 날며 거닙니다. 서로서로 부딪히지 않게 차례차례 지그재그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가족의 눈에 제법 장관인가 봅니다. 띠처럼 둘러선 갈대는 철새의 은신처고, 잔잔한 호수는 휴식처라는 학예사의 설명.

봄을 위해 겨울 내내 충분한 휴식과 지방질을 쌓도록,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충고. 수창이는 그제사 왜 학예사 아주머니가 칙칙한 갈색 롱파카를 입었는지 이해합니다. “조용조용 얘기해야겠네.” 수창이는 어느새 목소리까지 낮췄습니다.

억새와 갈대는 어떻게 구분하나. 설렁탕과 곰탕을 구분하는 것만큼 해묵은 이 주제를 놓고 때 아닌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서식지로 구분해야 한다, 색깔과 화사함으로 구분한다, 예리한 잎에 손을 베이면 갈대다, 아니다 억새풀이다…. 토론 스튜디오는 신성리 갈대밭.

신성리 갈대밭 전경. '한국갈대 7대선'으로 사랑받는 이곳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촬영장으로도 유명하다.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신성리 갈대밭 전경. '한국갈대 7대선'으로 사랑받는 이곳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촬영장으로도 유명하다.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6만 평이 넘는 갈대 천지 한가운데에서 갈대 수천 만 그루에 둘러쌓인 채, 갈대가 들으면 섭섭해 할 이야기들을 잘도 합니다. 그 틈에서도 아이들은 갈대 사이 술래잡기가 한창입니다. 포근한 햇살에 실린 강바람이 차르륵 갈대밭을 쓸어가는 소리에 귀가 즐겁습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마을로 돌아온 가족들을 기다리는 것은 자루째 쌓여 있는 고구마와 생굴입니다. 화덕에 숯불이 지펴지고 목장갑을 낀 아빠들이 불쏘시개와 집게를 챙겨들었습니다. 석화굴과 군고구마 잔치가 벌어질 요량입니다. 숯불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굴과 고구마가 올려집니다. 시뻘건 불씨가 퍽퍽 튀기 시작하고 어느새 친구가 된 14가족의 떠들썩한 재잘거림도 한껏 커져 갑니다.

호일에 싼 고구마와 굴을 구워먹는 사람들.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호일에 싼 고구마와 굴을 구워먹는 사람들.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어두워지면서 마을 앞 마당에서는 생굴과 고구마 구이 잔치가 벌어진다.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어두워지면서 마을 앞 마당에서는 생굴과 고구마 구이 잔치가 벌어진다. 2005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어디선가 “아빠, 불씨 튀어”하면, “야야, 뜨거워 죽겠다. 내가 군고구마 되겠다”하는 대꾸에 웃음보가 터집니다. 다 구워진 굴껍질을 까 이웃에게 나누어 드리는 것은 어느새 수미 몫입니다. 주머니칼로 살살 돌려 까는 폼이 워낙 잘 깠거든요. 먹는 것 보다는 까는 게 더 재미있답니다. 오죽하면 옆에서 ‘제주 해녀’라는 별명을 붙여줬을까요.

할인마트에 갈 때조차도 할머니를 포함해 온가족이 나선다는 수미네. 가족 여행지로 어디가 좋더냐고 물었습니다. 수미는 주머니칼을 든 손으로 안경을 추켜올리며 석화굴 하나를 쓱 건넵니다. “가족끼리 같이 가면 다 재미있잖아요. 안 가면 손해에요.”

농한기라 농삿일을 체험해 보진 못했지만, 농번기의 농촌 체험과는 또 다른 여유와 맛을 느낍니다. 겨울 농촌에 어둠이 깔리고 신작로 가로등 불빛이 주황색으로 물들어 갑니다. 어디서 개 짖는 소리 하나 깊어갈 법한 고요한 농촌 들녘의 밤. 가족들의 웃음소리는 잦아들 줄 모릅니다. 가는 눈발이 날립니다. 환하게 웃는 온가족의 모습은 왜 이리 부러울까요. 내일 아침 눈이 쌓인다면 참 좋겠습니다.

Tip. 충남 서천 이색체험마을
봄에는 모내기와 봄나물캐기, 그리고 씨뿌리기. 여름에는 옥수수따기와 과일수확체험, 그리고 원두막체험. 가을에는 벼베기와 고구마캐기, 그리고 밤수확 등 다양한 농사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옹기전시장과 식물원같은 박물관, 그리고 철새탐조여행, 모시체험과 같은 이색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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