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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남해일주도로] 물고기가 숲을 낳고, 숲이 물고기를 부르는, 남해가 열린다
[남해일주도로] 물고기가 숲을 낳고, 숲이 물고기를 부르는, 남해가 열린다
  • 김진용 기자
  • 승인 2005.05.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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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단항 마을 풍경.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단항 마을 풍경.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스케치=남해] 섬과 섬이 나누는 정겨운 이야기가 있어 남해는 부담이 없다. 풍랑을 피하는 섬이 지척이니 어부에게는 푸근하고, 여행객에게는 숨겨진 보물이 빛나는 곳. 그 사이로 해가 떨어지면 낭만까지 머금는 섬 바다.

‘국내 최초 연도·연륙 복합 해상교량.’ 설명 한번 거창하다. 경남 사천시에서 남해군 창선면까지의 섬과 섬을 잇는 다섯 개의 다리, 삼천포~창선 대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2004년 4월 한꺼번에 개통됐다. 예나 지금이나 다리가 생업을 위한 소원이었을 주민들이 얼마나 기뻤을까.

다섯이 모여 하나로되 하나하나가 또한 저마다 빛난다. 서해대교의 가운데 부분처럼 생긴 사장교도 있고, 호주 시드니의 하버 브리지처럼 생긴 아치교, 거제대교처럼 다소 밋밋한 F.C.M교, 구름다리처럼 생긴 P.C빔교….

생김새나 혈색이 제각각인 배다른 오형제다. 밤이면 바다에 비친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다리는 10개로 늘어난다. 신호에 따라 가변차로로 바뀌니 다리 위에서는 조심할 것.

단항 마을의 왕후박나무가 있는 풍경. 왕후박나무를 자세히 보면 11 줄기가 얽혀 한 몸을 이루고 있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단항 마을의 왕후박나무가 있는 풍경. 왕후박나무를 자세히 보면 11 줄기가 얽혀 한 몸을 이루고 있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삼천포~창선대교를 지나 오른쪽 1024번 지방도로 접어든다. 물고기가 낳은 늘푸른 큰키나무인 왕후박나무가 있는 대벽리 단항마을에 닿는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모건 프리먼이 가석방된 후 팀 로빈스가 묻어둔 메시지를 찾으러 가는 장면과, 메시지를 묻어놓은 커다란 나무가 서있던 초원의 풍경을 기억하는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왕후박나무가 있는 단항 바닷가에서는 그 야트막한 평화로움이 떠오른다. 왕후박나무는 강인한데다 뿌리가 깊다. 그래서 주로 남해안에서 자라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남해 창선도의 이 왕후박나무는 5백 년 전 어부가 큰 물고기 배를 갈랐더니 그 씨앗이 나왔다 한다. 풍어를 비느라 전해진 이야기일 게다. 나무가 사람을 돌보고, 사람이 또한 천연기념물이라는 이름으로 나무를 돌본다.

11줄기가 얽혀 한 몸을 이루며 웅장하게 퍼졌으니, 나무가 아니라 숲인 듯 와~ 당당하다. 14km를 더 가면 창선도와 남해도를 가르는 지족해협에 가 닿는다. 물고기가 이 빠른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다 힘이 부치면 어떻게 될까.

원시어업 죽방렴. 예전에는 갇힌 멸치떼를 퍼담느라 하루 두 번 물때가 모자랄 판이었지만 요즘은 하루에 한 번 뜨기도 쉽지 않다고.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원시어업 죽방렴. 예전에는 갇힌 멸치떼를 퍼담느라 하루 두 번 물때가 모자랄 판이었지만 요즘은 하루에 한 번 뜨기도 쉽지 않다고.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마음 따로 몸 따로 이리저리 뒷걸음질치게 마련. 그 뒤쪽에다 그물을 벌려 놓으면 손 안대고 코 풀 수 있다. 지족해협의 원시어업 도구인 죽방렴이 바로 그것이다. 물이 빠지고 나면, V자로 벌려 말뚝에다 고정시켜 놓은 그물 안에는 멸치, 도다리, 꽁치, 전어, 병어, 새우가 팔딱팔딱거리고 있다.

어민이 뜰채로 그것들을 건져낼 때 참나무 말뚝 위에 앉아 기다리던 영리한 갈매기도 따라 잔치를 벌인다. 지족리에서 V자는 이렇듯 풍어의 상징이었건만, 요즘은 어디나 그렇듯 예전만 못한 듯하다.

죽방렴은 이곳에 23개, 삼천포에 10여 개가 있다. 허가도 더 못 받고 더 크게 만들지도 못한단다. 어족 보호를 위해서다. 그러니 죽방렴을 대물림하기도 하고 팔기도 한단다. 얼마쯤 하냐 했더니, 서울 변두리 아파트 한 채 값이네.

지족해협을 건너는 창선교를 지나 이번에는 왼쪽으로 나 있는 3번국도로 접어들어 보자. 화천마을 못 미쳐 넓은 모래 갯벌이 나타난다. 남해의 좋은 점은 개흙 갯벌이 대부분인 서해와 달리 다양한 갯벌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건리의 방조어부림. 아열대 수목이 1.5km 해안을 따라 빽빽하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물건리의 방조어부림. 아열대 수목이 1.5km 해안을 따라 빽빽하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모래 갯벌과 개흙 갯벌, 그리고 모래와 개흙이 섞인 혼합 갯벌이 곳곳에 퍼져 있다. 물건리에서는 물고기를 부르는 숲 방조어부림을 만난다.

수십 종의 아열대 나무가 초승달처럼 생긴 해안을 따라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대대로 파도와 태풍, 그리고 염해로부터 마을을 지켰으니 방조림(防潮林)이란다. 우거진 숲이 만든 그늘 덕에 수중 미생물이 많아져 물고기가 모여 든다니 또한 어부림(魚付林)이다. 숲이 물고기를 부른다. 여태 몰랐다.

한낮에 미조리에서 본 바다는 눈부신 은빛이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한낮에 미조리에서 본 바다는 눈부신 은빛이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텐트와 취사를 금지하고 위반할 땐 법적 조치하겠다는 표지판이 서 있다. 이 숲의 썩은 고목 하나하나에도 물건리 주민들이 붙인 이름이 있을 법 하다. 물건리에서 미조리에 이르는 12km 물미 해안도로는 도로가 굽은지, 절벽 위 해송이 더 굽은지 내기하는 것 같다.

해송은 신기하게도 그 구부러진 모습이 모두 제각각이다. 물건리에서 9km 남짓 굴곡을 반복하다 보면 항도리가 나오는데, 차를 세울 만하다. 마안도와 팥섬이 형제처럼 정겹다. 물미해안도로는 남해의 끝자락 미조항 포구에 가닿는다.

미조항은 주변의 풍광도 빼어나거니와 고깃배로 분주한 선창에는 어항 특유의 활기가 가득하다. 아침 7시에 활어가, 8시에는 방금 죽은 선어가 판매된다. 송정해수욕장과 상주해수욕장을 지나 앵강만 쪽으로 올라오면 가로수길이 시원하다.

남해와 그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인 금산에 솟은 상사 바위를 비롯한 기암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남해와 그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인 금산에 솟은 상사 바위를 비롯한 기암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왼쪽으로 호수처럼 열린 바다, 벚꽃과 광나무 가로수길, 오른쪽으로 남해의 명산 금산의 삐죽삐죽 솟은 바위. 이곳저곳 눈 둘 바를 모르겠다. 내친 김에 남면 쪽으로 넘어가자. 두곡·월포 해수욕장을 지나면서 남면 해안도로가 시작된다.

해안의 계단식 논으로 유명한 남면의 가천 다랭이 마을을 향하는 이 도로는 물미 해안도로와는 다른 맛이 난다. 가파른 바위 해안과 탁 트인 바다가 마치 광활한 동해를 보는 것 같다.

드라이브 여행 끄트머리에 만난 아름다운 남해의 일몰.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드라이브 여행 끄트머리에 만난 아름다운 남해의 일몰.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아침에 삼천포~창선 대교에서 출발해 여유 있는 드라이브를 즐겼다면 가천 다랭이 마을 정도에서 그림자가 제법 길어졌을 법 하다. 여수 반도 너머로 넘어가는 저녁해를 내내 바라보며 서면을 돌아 올라오는 드라이브 코스에도 여전히 할 말이 남아 있다. 남해는 이렇듯 보물섬이었던가.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를 빠져나오면, 아기자기하고 부드럽고 호방하고 장쾌한 남해가 아쉽다.

멸치회무침 한상.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멸치회무침 한상.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Tip. 맛집
우리식당
남해의 대표적인 멸치 식당. 창선교 다리 건너 왼쪽의 지족리에 있다. 죽방령에서 갓 잡은 멸치로 내놓는 멸치회무침이 칼칼하다. 사계절 먹을 수 있다.

우리식당은 30년 째 멸치회무침을 내놓는데, 손으로 일일이 멸치 대가리를 떼내고 뼈를 추려내며 비늘을 벗겨낸 뒤 남해산 막걸리로 버무려내는 등 일손이 많이 간다고.

싱싱한 전복회 한 접시.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싱싱한 전복회, 해삼, 미역 한 접시.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해(海)사랑 전복마을
제주도에서 전복 양식 기술을 갈고 닦은 주인장이 남해로 와서 연 전복 요리집. 해삼과 미역에다 전복 내장까지 골고루 얹어 낸 고단백 영양식 전복회 한번 제대로 먹어보자. 잣과 대추까지 띄운 전복죽 한 그릇에 속도 든든.

남해 미조항 부근은 다도해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설리 해수욕장 근처의 해사랑 전복마을에서 본 풍광도 그에 못지않다.

남송 마리나 피싱호텔 내부 전경.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남송 마리나 피싱호텔 내부 전경.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숙박
남송 마리나 피싱호텔
성수기 가족 여행객에게는 딱맞는 콘도 겸 리조트. 지난 3월 문을 열었으니 시설은 당연히 깨끗하고, 물건리 방조어부림이 한 눈에 내려 보이는 언덕에 있으니, 풍광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하다.

몽블랑 모텔 내부 전경.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몽블랑 모텔 내부 전경.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몽블랑 모텔
삼천포~창선 대교의 야경를 보고 싶으면, 몽블랑에서 묵는 게 좋겠다. 대교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해 2백 미터 정도 오르면 새로 조성되고 있는 모텔 타운이 있다. 가까운 거리에 자동차 극장과 단항회센터가 있어 연인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모텔. 해안이 풍광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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