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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8월호
[순천 금둔사] 오롯한 여염집 같은 사찰 금둔사, 매화향 분분한 뜨락에 주저앉다
[순천 금둔사] 오롯한 여염집 같은 사찰 금둔사, 매화향 분분한 뜨락에 주저앉다
  • 여행스케치
  • 승인 2005.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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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홍매화가 아름답게 핀 금둔사 풍경. 2005년 5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홍매화가 아름답게 핀 금둔사 풍경. 2005년 5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여행스케치=순천] 봄소식이 하나둘 들려와야할 때인 듯 싶은데…. 꽃샘추위와 때늦은 폭설로 기상이변이 잦은 올해, 봄이 유난히 더디게 옵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사람의 마음일 뿐. 그래도 봄은 다가와 있습니다. 순천 금둔사 홍매화의 청량한 향기는 이미 봄이라고 속삭입니다.

봄을 찾으러 나서 보았습니다. 저기, 남도 들녘으로 가면 봄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 조금 긴 여정 앞에 서보았습니다. 충청도를 지나자 푸른빛들이 시야에서 일렁이기 시작합니다. 숲의 천이 과정이 다른 때문이지, 남쪽으로 갈수록 소나무가 무성합니다.

소나무야 본래 겨울에도 푸른 상록수지만 이맘때 보는 소나무 초록빛은 조금은 다른, 조금 더 싱싱한 초록을 띠고 있습니다. 그 사이사이로 들녘이 보이고 저만큼 산 아래 민가도 보입니다. 오밀조밀 사람 사는 마을 뒤편엔 또 어김없이 대숲이 들어서 있는데, 소나무의 초록색과 더불어 남도의 들녘을 푸르게 채색해 주고 있습니다.

초록색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인 자연의 색이며 생명에 가까운 색이기에 봄을 이야기 하는 첫 번째 색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소나무와 대숲의 초록빛으로 마음에 한 움큼 봄을 담습니다. 초록색이라고 하기엔 아직은 연한 연둣빛의 봄을 만납니다. 보리밭입니다.

바람은 아직 찬데 겨울을 이기고 저 여린 듯한 줄기들이 파랗게 자라나는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길 떠나는 날이 춘분이었는데 바람이 무척 찼지요. 꽃샘바람이 심하게 불어댔습니다. 그런 바람 속에서 만나는 연둣빛 보리밭을 두 번째 봄이라 이름 지어 봅니다. 잠깐 차에서 내려 보리밭가에 서 봅니다.

산사로 향하는 길목에 피어난 홍매화. 2005년 5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산사로 향하는 길목에 피어난 홍매화. 2005년 5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찬찬히 보리밭가를 들여다보니 벌써 쑥이 손가락 마디만큼 자라 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엉거주춤 주저앉아 쑥을 뜯어봅니다. 그만 가자고 아이들이 졸라대지만 향기로운 쑥 냄새가 내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지천으로 자라난 쑥은 금세 한 움큼 손에 안기고 그 정도면 쑥차 몇 잔 끓여 마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쑥의 초록빛은 너무나 독특하여 ‘쑥색’이라는 이름으로 불러 주어야 합니다. 쑥색으로 다가온 세 번째 봄은 무척이나 향기롭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천, 수만 가지의 봄 꽃 중 그중 으뜸인 꽃, ‘매화’를 그렇게 부르면 다른 봄꽃들이 시샘을 할까요? 매화꽃, 그것도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일본매화가 아닌 토종매화를 보러 순천의 금둔사로 향하는 길입니다.

금둔사는 홍매화로 유명한 사찰이랍니다. 우리나라 토종매화 중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사진으로 먼저 만나본 금둔사 홍매화의 꽃빛에 진작 마음을 빼앗겼던 터였습니다. 금둔사 홍매화는 입춘(立椿) 무렵 꽃망울을 부풀기 시작하여 춘분(春分)에 가서야 첫 개화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낙안읍성 지나, 한 5km 정도를 갔을까, 대로에 ‘금둔사’ 이정표가 보입니다. 이정표가 있는 대로에서 금둔사쪽을 바라보니 바로 코앞에 일주문인 듯한 두 개의 기둥이 보입니다. 큰길에서 그렇게나 가까이 있더니…. 감흥을 다 깨는 것만 같습니다.

8각 7층 석탑이 있는 대웅전 앞마당 가득 봄이 내려앉아 있다. 2005년 5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8각 7층 석탑이 있는 대웅전 앞마당 가득 봄이 내려앉아 있다. 2005년 5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저 절 안에 홀로 피어있을 홍매화가 도무지 그려지지 않습니다. 길을 오릅니다. 그리 넓지 않은 자리에 길 양쪽 가득 햇살을 받으며 반짝이는 잎새를 달고 있는 야생차밭이 보입니다. 마침 스님 두 분이 장작으로 쓸 나무를 패다가 우리 가족을 합장으로 맞아주십니다.

스님들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습니다. 춥다고 외투를 여미던 손이 갑자기 부끄러워집니다. 내가 가본 절 중에서 어쩌면 가장 작고 소박할 것 같은 절집의 문, 금전산 금둔사의 일주문에 들어섭니다. 일주문이라고 하기보단 여염집 대문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주문 오른쪽으로 사찰로 들어가는 샛문이 하나 있는데 그 아래가 계곡입니다. 계곡 아래 대숲이 우거져 있어서 마침 부는 바람에 댓잎 서걱이는 소리가 청량하게 들려왔습니다. 거칠 것 없던 바람도 대숲에서 가지런해져서 청량한 바람소리를 만들어 내는 듯 싶었습니다.

정유재란때 불타 폐사지에 불과했던 절을 1983년부터 지허스님이 복원하고 있다는 절, 그때 낙안읍성 마을에서 5년 된 가지를 가져다 심었다는 홍매화가 있다는 절로 초대해주는 홍교가 아담합니다.

대웅전 뒷담에 핀 하얀 매화. 2005년 5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대웅전 뒷담에 핀 하얀 매화. 2005년 5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바람에 섞인 소리들이 와락 안겨오는 다리 위,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 바위틈 사이로 제법 우렁차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한적한 절 마당에 내리는 햇살이 두런거리는 소리…. 고즈넉한 산사, 찾아오는 이도 별로 없어 한적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대웅전 앞마당에 8각7층석탑이 홀로 덩그맣게 놓여 있어 외롭다 싶었는데 대웅전 오르는 계단 앞에 석탑 닮은 두 개의 측백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대숲이 울타리 삼아 절마당을 두른 대웅전을 거닐고 있는데 바람이 문득 불어와 향기를 가져다 줍니다.

은은한 향기를 따라가 보니 대웅전 뒷담, 샘가를 마주하고 매화가 활짝 피어나 있습니다. 홍매는 물론이고, 푸른 듯 하얀 청매와 눈부신 하얀 꽃송이를 단 백매까지…. 목하, 금둔사는 매화꽃이 화사하게 피어난 봄 속이었습니다. 샘가에서 목을 축이다 물에 비친 매화꽃을 봅니다.

구름 한점 없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매화꽃을 비춰 보기도 합니다. 눈앞에 마주하고 보고, 샘물에 비춰도 보고,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들여다봐도 매화꽃은 황홀할 만큼 곱기도 하거니와 그 향기가 청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여기저기 자연스럽게 흩어져 심어진 금둔사의 매화나무로 하여 이 소박하고 아담한 절 안 가득 매화꽃향기가 흘러 다닙니다. 돌계단 양쪽에 쌓은 돌담은 아기자기한 느낌을 줍니다. 그런 길이라면 아무리 길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금둔사 삼층석탑으로 가는 돌계단. 2005년 5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금둔사 삼층석탑으로 가는 돌계단. 2005년 5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삼층석탑으로 가는 돌계단에서 바라본 금둔사 전경. 2005년 5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삼층석탑으로 가는 돌계단에서 바라본 금둔사 전경. 2005년 5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돌담을 따라 금둔사의 삼층석탑(보물 제945호)과 석불비상(보물제946호)을 보러 갑니다. 석탑이 있는 곳에서 바라보니 남도의 소금강이라고 불린다는 금전산 자락 금둔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곳에서 많은 불자들이 저마다의 기도를 올렸는지 그 흔적들이 촛불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대웅전 뒤뜰에도 햇살이 가득합니다. 매화꽃향기 분분히 날리고 빨랫줄을 걸어놓은 선방(태고선원) 마당을 지나 산신각을 오르는 길입니다. 잘 생긴 마애불을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금둔사의 마애불은 폐사지였던 곳에 오롯이 남은 유일한 유물이었다고 합니다.

정유재란 때 불타 폐사지로 남은 금둔사를 지켜온 마애불. 2005년 5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정유재란 때 불타 폐사지로 남은 금둔사를 지켜온 마애불. 2005년 5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보일 듯 말 듯한 마애불의 미소가 새겨진 바위 곁에도 눈처럼 하얀 매화꽃이 따라와 피어있습니다. 매화꽃 향기를 맡으면 부처님의 미소가 아마 그럴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한사람이 겨우 들어가 기도를 올릴 수 있을까 싶은 작은 산신각과 금둔사에만 유일하게 남아있다는 마애불 60분을 조각한 불상을 들여다봅니다. 따라온 아이들이 ‘아기부처님’이냐고 물을 만큼 귀엽고 앙증맞은 불상입니다.

금둔사를 처음 본 순간 어쩐지 낯익은 얼굴을 만난 듯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절이 주는 아늑함 때문이었습니다. 위압적인 모습이라곤 찾을 수 없는 소박한 절입니다. 그곳에서 여염집의 장독대를 똑같이 닮은, 산신각아래 요사채 뒤꼍의 장독대를 만났습니다.

금선사의 꽃울타리, 돌담 그리고 장독대 풍경. 2005년 5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금둔사의 꽃울타리, 돌담 그리고 장독대 풍경. 2005년 5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이젠 아예 장독대 아래 퍼질러 앉아 한동안 그렇게 앉아 있고 싶습니다. 먼저 핀 매화꽃 몇 송이가 하늘하늘 잘 닦여 윤기 나는 장독대위로 낙화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장독대 주변이 온통 동백꽃과 매화꽃 세상입니다.

멀리 호수를 담은 금전산 자락을 바라보며 장독대에 앉아 매화가 한창인 어느 날 빨갛게 동백꽃이 피어나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날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대웅전 마당에 서서 다시 한번 금둔사를 휘 둘러 보며 아쉬운 걸음을 돌립니다. 여전히 바람이 불어 댓잎 부딪히는 소리 청량하게 들려오고 매화향기가 바람에 실려 따라옵니다. 뒤돌아보니 대웅전 마당 가득 햇살이 들어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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