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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사찰기행] 이 문을 들어오거든 망상을 피우지 말라, 전북 완주 송광사
[사찰기행] 이 문을 들어오거든 망상을 피우지 말라, 전북 완주 송광사
  • 이현동 객원기자
  • 승인 2005.07.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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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송광사 금강문에서 안쪽을 보다. 금강문, 사천왕문, 탑, 대웅전이 일직선으로 놓여있다. 2005년 7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송광사 금강문에서 안쪽을 보다. 금강문, 사천왕문, 탑, 대웅전이 일직선으로 놓여있다. 2005년 7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여행스케치=전북] 순천 조계산에 송광사가 있다면 완주 종남산에도 같은 이름의 송광사가 있다. 그 뿌리가 같기 때문. 천년고찰 송광사는 평범한 듯한 가운데 하나하나가 기막힘을 간직한 사찰이다.

송광사 초입, 그 화려했을 벚꽃 길을 따라 푸름 속으로 들어선다. 벚꽃나무길이 끝나고 작은 시내를 건너는 저만치에 송광사가 있다.

벚꽃보다 더 화려했을 송광사의 옛 역사. 세월의 흐름 끝에 수명을 다한 것 같은 건물과 그 땅 위에 새로운 백년을 세우는 건물에서 세심한 손길이 느껴진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구석구석 어느 것 하나도 방치하지 않은…. 휙 하니 둘러보고 나오면 여느 절과 다르지 않지만, 조목조목 들여다보면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볼거리가 많다.

볼 게 없을 거라고 그냥 그렇게 돌아서 나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1,500년이 넘는 불교의 역사가 녹아 있는 절이 어디 우리에게 ‘이것 좀 보고 가시오’ 하고 말하던가?

다만 절에 들어서 마음을 놓고 열면, 그 자리에 들어서는 것이 절이 아니겠는가! 송광사도 그러하여 산문을 들어서 마음을 내려놓으면 뜻밖의 송광사를 보여주니 그 즐거움이 어찌 작다고만 하겠는가!

송광사 소조사천왕상. 송광사의 흙으로 빚은 사처노앙상으로 예술성이 뛰어나다. 2005년 7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송광사 소조사천왕상. 송광사의 흙으로 빚은 사처노앙상으로 예술성이 뛰어나다. 2005년 7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송광사. 옛날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종남산 자락을 지나며 신령스러운 샘물을 마시고 기이하게 여겨 그 자리에 훗날 절을 짓고자 땅에 징표를 묻었다.

이후, 지눌스님은 순천 조계산에 송광사를 중창하고 그의 문도들에게 이르기를 “종남산에 좋은 터가 있어 그 징표를 묻어 두었으니 그곳에 사찰을 열면 대대로 기울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나중에 그의 제자들이 종남산으로 와서 그 터에 절을 열고 순천 송광사와 같은 이름으로 송광사(松廣寺)라 했다. 송광사는 그렇게 고려시대에 탄생했지만 현재 모습은 조선후기 17세기 벽암스님의 중창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절의 내력을 이렇게 살피고 일주문을 들어선다. 일주문에서 금강문, 사천왕문 그리고 대웅전까지 문과 문이 일직선으로 겹쳐있다. 시야가 점점 좁아진다. 기둥이 둘이어도 넷이어도 오로지 한마음으로 들어서야 한다는 일주문.

송광사 대웅전 수미단 용의 얼굴과 지장전 도깨비상. 2005년 7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송광사 지장전 도깨비상. 2005년 7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그 의미가 시야 끝에 한점으로 모아지는 듯 할 때 잠깐 벚꽃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며 시야를 뺏는다. 일주문을 지나 왼쪽에 서 있는 장승이 눈에 들어온다.

장승의 몸에 적힌 글귀, ‘入此門內莫存知解’(입차문내막존지해) 어디선가 본 것인데 생각을 거듭하니 동래 금정산 범어사 불이문에서 본 것임이 생각났다.

‘이 문에 들어오거든 망상을 피우지 말라’라는 뜻인데 범어사 불이문에는 ‘神光不昧萬古徽猷’(신광불매만고휘유)라고 앞부분에 적고 있다. ‘신기로운 광명이 어리석지 아니하여 만고에 아름다운’이란 의미.

결국 이 문을 통해 절에 들어서거든 망상을 피우지 말라는 이야기다. 망상이란 섣부른 알음알이라는 뜻일 터이니 어찌 내가 절에 대해 조금 안다고 부처님을 아는 체 하리오. 그것이 알음알이, 즉 얕은 지식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내 얇은 지식에 오히려 발걸음만 무겁다. 무거운 발걸음이 금강문에 이르자 더욱 무거워진다. 무게가 느껴지는 금강역사상도 그러하지만 제 수명을 다한 듯 기울어진 건물도 그러하다. 마음마저 무겁다. 천왕문을 지나면서 조금 나아진다.

소조사천왕상이다. 소조라면 흙으로 빚은 것을 말한다. 사천왕상 중에서 비파를 들고 있는 사천왕상의 보관 왼쪽 끝 뒷면에 ‘1,694년에 조성했다’라고 적혀있어 조성시기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조성시기가 확실하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를 더해준다.

송광사의 종루. 아자각, 흔히 십자각이라고 한다. 평면 구성이 아자 모양이다. 이곳에 범종, 목어, 법고, 운판이 있다. 2005년 7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송광사의 종루. 아자각, 흔히 십자각이라고 한다. 평면 구성이 아자 모양이다. 이곳에 범종, 목어, 법고, 운판이 있다. 2005년 7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사천왕문을 지나면 왼편에 목을 축일 곳이 있다. 석조 가운데 수도같은 것이 있는데, 대나무로 만든 것이다. 그 예술적 감각의 탁월함이란! 더운 날씨 속에 몸 안에 스며드는 시원한 물은 망상을 피우지 말라는 긴장감 속에 솟아나는 여유를 준다.

송광사에는 이 대나무로 만든 수도 말고도 사람 얼굴을 한 굴뚝이며, 천진동자상이며, 세심정 앞 나무장승이며 곳곳에서 기발하면서도 탁월한 예술적 감각이 보인다. 송광사가 평지 위에 그대로 노출되어 햇빛에 메마른 듯 느껴지는 가운데 촉촉한 인상을 던져준다.

대웅전 천장에 장엄된 물고기, 용, 게, 거북이며, 대웅전 수미단에 조각된 용의 정면상이며… (용의 조각이나 그림은 대부분 옆면을 기준으로 한다. 어디 용의 얼굴 정면을 그려놓은 것이 있었던가! 찾기란 힘든 일이다) 보통은 대웅전 처마 밑에 용을 장엄하는데 송광사 대웅전에는 처마 끝에 받치는 활주라는 기둥에 용머리를 새겨 놓았다.

게다가 지장전 기둥과 기둥 사이에 조각된 도깨비 얼굴은 어떠한가? 절을 찾는 이에게 쉼을 제공하는 세심정이라는 정자는 또한 어떠한가? 민가처럼 느껴지는 세심정 옆의 요사는? 그렇게 눈을 돌리면 그 끝에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 들어온다.

정말로 탁월한 감각이 아닐 수 없다. 이 놀라움을 절정에 이르게 하는 것은 송광사의 종루이다. 이 종루는 열십자(十) 모양으로 평면구성을 하고 있어 십자각이라고 흔히 부르는데, 절에서는 아자각(亞字閣)이라고 부른다.

이런 모양의 종루도 전국에서 유일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건축적인 구성 하나하나가 특이하고 세심하여 놀라울 따름이다. 이젠 절 들어설 때의 무거움은 어디가고 없고 또 다른 무엇이 없나 하는 진지한 호기심만이 가득하다.

송광사 대웅전 수미단 용의 얼굴. 2005년 7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송광사 대웅전 수미단 용의 얼굴. 2005년 7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대웅전에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 등 삼세불을 모셨다. 모두 소조인데 1,641년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송광사는 1,600년대, 임진왜란이 끝나고 벽암스님이 주석하면서 새로운 면모로 중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불상 사이에는 ‘주상전하수만세’, ‘왕비전하수제년’, ‘세자전하수천추’라고 새겨진 목패가 놓여 있는데 이는 인조와 인조의 세자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과 봉림대군을 위해 조성한 것. 시간이 꽤 흘렀다.

계단 없이 평지를 이루는 송광사. 한달음에 구석구석을 다 담으려했던 욕심 끝에 얼마 전에 새로 오신 송광사 총무스님을 만났다. 창엄이라는 불명의 스님은 내 욕심을 일러 욕심에 지나지 않음을 깨우쳐 주셨다. 그 말을 받은 필자는 알 듯 하면서도 그 말을 지금껏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말 붙이기를 좋아하고 뜻 붙이기를 좋아하는데 자꾸 의미를 붙이지 말라. 그냥 있는 그대로 볼 뿐. 대웅전이라고 하면 그 뿐이지 그 외에 무슨 말이 필요한가? 글 쓰는 사람은 대웅전, 세 음절로 석장 이상으로 글을 쓰기도 하는데. 그 무슨 소용인가!”

아직도 알지 못한다. 필자가 아는 것이 알음알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자체도. 그리하여 ‘入此門內莫存知解’(입차문내막존지해)라는 글귀를 보고도 내 얕은 지식으로 이 글을 적고 있다. 이것이 정말로 망상이라면 다시 송광사에 들어선다면 펜을 놓아야하지 않을까!

그러나 내 알음알이를 내지 않을 때, 그 때의 깨달음은 지난날의 내 알음알이 펜을 소용없다라고만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결과에 이르게 할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대하면서 송광사 산문을 나선다. 바람이 덥다.

Info 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익산IC -> 17번지방도 -> 진안으로 빠지는 26번지방도 -> 우아사거리 -> 진안 방향으로 좌회전 -> 26번지방도 -> 송양면에서 좌측 -> 송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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