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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산사체험] 평창 오대산 월정사의 하루, 인생 한 박자 쉬어 가죠?
[산사체험] 평창 오대산 월정사의 하루, 인생 한 박자 쉬어 가죠?
  • 박지영 기자
  • 승인 2005.08.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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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평창 오대산 월정사 전경. 2005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평창 오대산 월정사 전경. 2005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여행스케치=평창] ‘탁탁탁탁탁…나무문수보살마하살.’ 산사의 아침은 경쾌한 목탁소리로 시작된다. 도시 사람들은 한창 꿈꾸고 있을 새벽 4시. 맑은 기운이 사람들의 정신에도 침투한걸까? 합장을 하고 총총걸음으로 대적광전으로 오는 사람들의 얼굴에선 새벽에만 느낄 수 있는 오묘한 푸른빛이 감돈다.

예불할 땐 아무 말이 필요 없다. 목탁 소리가 곧 시작이며 마무리다. 목탁리듬에 맞춰 입으로는 원각경을 독송하며 108배 절을 한다. 누군가가 그랬다. 무념무상(無念無相)의 세계로 가장 빨리 들어가는 길이 바로 108배라고….

너나 할 것 없이 많이 가져야 하는 세상. 빨리 돌아가는 시국에 내키지 않아도 몸을 맞춰야 하는 속세에서의 생활. 그 틈바구니 속에서 힘들었던, 고민했던 이유가 절에서는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만다.

아침은 ‘바루공양’으로 한다. 죽비를 세 번 치면 합장을 하고 어시발우(밥그릇)와 일분자(국), 이분자(반찬), 삼분자(물)에 먹을 만큼 적당량을 덜어 남에게 음식물이 보이지 않게 조용히 먹는다.

아침 예불을 드리는 체험객들. 2005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아침 예불을 드리는 체험객들. 2005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삼분자에 담았던 물은 다 먹고 난 그릇을 헹구어도 처음의 깨끗한 물 자체로 남아있어야 한다. 죽비가 신호가 되니 말이 필요 없으며, 욕심 없이 만족하는 소욕지족(小慾之足)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공양이 끝나면 운력을 한다. 여러 사람이 ‘구름처럼 모여’ 땀을 내는 수행의 일과로 행하는 노동이다. 마지막에 하는 마당 쓸기는 마음에 남은 망념까지 쓸어버리라는 의미가 포함된다.

중국 백나라 때의 스님인 백장선사가 90세가 되도록 운력을 하자 제자들이 그의 농구를 치워버렸다. 이에 백장선사는 단식을 하며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 즉,‘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사찰의 모든 일들은 밭매기와 청소하기부터 시작해 스님들의 운력으로 이뤄진다. 공양을 하고는 절을 한 바퀴 돌면서 휴식을 취하는데, 체험가족 중 유치원 다니는 한울이가 스님에게 뭔가를 얘기한다. 들어보니 같이 놀자고 조르고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있는 여래, 한울 그리고 스님. 2005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있는 여래, 한울 그리고 스님. 2005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스님~나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자앙~.” 귀찮다던 스님도 졸라댐에 지고 만다. 술래가 된 한울이 누나 ‘여래’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맞춰 한울이는 스님과 함께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간다.

아이들은 받아들이고 친해지는 데에 벽이 없다. 어른들은 스님에 게 거리를 두는데, 아이들은 절과 불교문화에 대해 알려주는 선생님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새벽에 전나무 숲길을 산책하면 머리도 맑아지고 동식물이 기지개 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2005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새벽에 전나무 숲길을 산책하면 머리도 맑아지고 동식물이 기지개 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2005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월정사 들어오는 길에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전나무 숲길은 이른 아침 산책하거나 상념에 젖기 좋은 장소이다. 묵언을 하고 걷다보면 고요한 숲 속에서 노랑턱멧새의 지저귐, 까막딱따구리가 파놓은 나무 둥지, 지들끼리 곧잘 싸우는 재빠른 다람쥐의 움직임, 금강초롱 등의 향기와 소리가 가깝게 느껴진다.

중간에 뽕나무 열매 오디와 산딸기가 열려있어 참가자들은 하나씩 맛을 보며 품평회를 한다. 한 아이는 익기 전의 빨간 오디가 더 새콤해서 맛있다며 따주라고 성화이다. 월정사 주지스님은 이 전나무 숲길의 아스팔트 포장을 뜯어내고 흙을 깔아 흙길로 만들 계획이다.

흙길이 깔리면 맨발로 울창한 전나무 숲길을 걷는 것도 정신 수양에 도움이 되겠다. 저녁 공양을 하고 제 설거지는 자기가 직접 한다. 물 한 컵을 먹더라도 먹을 수 있게 도움을 준 많은 이에게 감사하며 다음 사람을 위해 깨끗이 씻어둔다. 자기할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게 절에서의 행동원칙이다.

자월스님의 깊이 있는 법고시범. 2005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자월스님의 깊이 있는 법고시범. 2005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법고를 울리는 범종루로 간다. 스님이 먼저 일정한 박자에 맞춰, 냇가에서 맞아가면서 배웠다는 법고 시범을 선보인 후, 체험객들은 보신각에서 해가 바뀔 때 치는 범종도 직접 쳐본다.

스님의 소리는 깊고 아름답지만, 체험객들의 소리는 흩어지고, 때론 너무 크고 다른 쪽을 잘못 쳐서 소리가 둔탁해지기도 한다. 종과 때리는 나무가 수직이 돼야 하는데 순간 마음이 흐트러지면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다.

모두들 ‘생각보다 어렵네’ 하는 표정들이다. 체험하는 사람들보다 월정사 관광온 구경꾼들이 더 재밌게 지켜본다. 저녁에는 참선을 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을 갖는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명상음악을 즐겨 들었다는 여래는 스님과 마주 앉아서 참선을 하는 폼이 제법 잡혀있다.

선우회 회원들의 참선 체험. 2005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선우회 회원들의 참선 체험. 2005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스님은 어린 나이부터 하루에 5분~10분씩 거르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공부를 하라고 한다. 꾸준히 하면 자라면서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정신이 올곧고 맑은 사람이 된다는 참선의 좋은 점도 설명해 준다.

1박 2일간 그들과 같이 ‘갈옷’을 입고 발우공양을 하고 참선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딱 일주일만 더 머물고 싶어, 사찰을 떠나는 발걸음이 못내 아쉽다. 인생에도 분리수거가 필요하다면, 버릴 것 버리고 챙길 것만 챙겨 가볍게 다시 찾으면 좋겠다.

Info 가는 길
자가운전
 : 영동고속국도 진부IC -> 6번국도 -> 4km 직진 -> 월정 삼거리(월정주유소)에서 좌회전 -> 4km 북상 -> 간평교 -> 삼거리에서 좌회전 -> 4km 직진 -> 월정사 주차장
대중교통 : 동서울터미널 -> 진부터미널(2시간 30분소요/30분 간격) -> 월정사 경유 상원사행 시내버스 이용(1일 12회 운행/20분소요) 돌아올 때는 진부에서 동서울 직통이용.

Tip. 월정사 템플스테이 종류
산사체험 _ 4인 가족 기준 (1박2일)
산사의 하루 _ 개인기준 (숙박일은 늘릴 수 있음)
일반인 여름수련회 _ 3차로 나누어 진행. 개인 기준 (3박 4일), 3차는 (4박5일)
단기출가학교 _ 1년에 4번(한달 과정)

청류다원 내부 모습. 2005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청류다원 내부 모습. 2005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주변여행지
청류다원
월정사 산책 후 목이 마르다면 주저 말고 절 입구에 있는 청류다원 전통찻집에 들어가 보자. 한 모금이나 담길 듯한 미니 찻잔들이 앙증맞게 전시되어 있고, 창 밖으로는 울창한 잣나무 숲이 늘어서 있어 전망이 좋다.

조용한 가운데 불교음반을 틀어놓아 산새소리와 함께 운치 있게 차 마시기에 제격이다. 전통 찻집에서 먹어보는 오미자팥빙수는 우유 대신 오미자엑기스를 넣어 새콤하고 깊은 맛이 입안을 맴돈다.

별미인 ‘호박식혜’는 호박 으깬 물에 식혜를 한 것으로 달달하고 걸쭉한 맛이 기분 좋은 포만감을 불러온다. 그 외 여러 가지 약재와 쌍화차를 넣은 약차는 한약방에 특별 주문한 것으로 자칫 기운 잃기 쉬운 여름 날 보약 대신으로 인기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

비로봉식당의 30여 가지 반찬이 차려지는 상차림. 2005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비로봉식당의 30여 가지 반찬이 차려지는 상차림. 2005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비로봉식당
부근에 여러 음식점들이 밀집해 있지만, 비로봉식당과 비교를 하지 말라. 감자, 배추, 무, 브로콜리, 상추, 칼리, 고추, 쑥갓, 콩 등 웬만한 야채는 직접 재배하여 반찬을 만들기 때문에 농약걱정이 없고 싱싱하다.

20년된 집으로 일단 들어와서 음식을 주문하면 전라도 정식이 저리가라 할 정도로 거하게 차려진다. 나물 종류만 15가지, 다른 반찬까지 포함해 30여 가지의 반찬이 나와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소화제 역할을 하는 매콤새콤한 누룩치 무침과 표고버섯에 계란을 입혀 튀긴 표고버섯전이 부드럽고 담백하다. 직접 빚은 머루주, 더덕주, 돌배나무로 만든 산신배주와 삼지구엽주를 판매하는데 산채음식에 곁들여 먹으면 신선이 부럽지 않다. 월정사에서 차로 3분, 걸어서 20분. 절에서 진부 가는 방향.

겸손 속에 덕이 나온다고 이야기하는 자월스님 월정사 포교국장. 2005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겸손 속에 덕이 나온다고 이야기하는 자월스님 월정사 포교국장. 2005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Interview 자월스님 월정사 포교국장
“겸손 속에 덕이 나옵니다”
‘출가’란 제목으로 단기 출가생의 이야기를 다룬 2부작 방송이 나간 뒤로는 단기출가학교의 경쟁률이 10:1로 치열해졌다. 덕분에 포교국장을 맡고 있는 자월스님의 포지션도 여러 장르를 넘나든다.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보세요. 부처님의 수만 가지 가르침 중에 한 가지 만이라도 행하려고 하고, 그것이 작더라도 노력하려는 마음, 부처님같이 살고자 하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모여 겸손 속에 덕이 나옵니다. 부모는 자식한테 요구하는 바를 줄이고, 보여야 합니다. 정말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욕심을 버려 빈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자식은 부모에 게 절대적으로 효심이 근본이 되어야 하고요.”

사찰체험도 그런 의미다. 꼭 뭘 느끼고 가기보단, 산세 속에 쉬었다 가라며, 특유의 인자한 말투로 성심껏 불자들을 챙긴다.

“불교라는 종교 자체에 매이지 말고, 어렵다는 생각도 버리면 쉽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자체가 생활 속에서 터득될 수 있도록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는 게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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