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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제주 해녀도 원정 오는 보령 장고도, 푸른 황금의 섬 열렸네
제주 해녀도 원정 오는 보령 장고도, 푸른 황금의 섬 열렸네
  • 김진용 기자
  • 승인 2005.10.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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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드넓은 바다와 하늘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장고도 풍경. 2005년 10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드넓은 바다와 하늘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장고도 풍경. 2005년 10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스케치=보령] 자연이 주는 풍성한 선물의 계절. 장고도는 바다가 속살을 열어 황금을 내어주는 섬이다. 느긋한 주말 여행객을 위해서도 더할 나위 없는 갯벌과 바다를 품고 있다.

하늘이 바다를 닮았다
한줄 새하얀 구름이다. 아득히 낮게 포말을 일으키는 건 파도가 아니라 구름이다. 구름의 파도다. 그 파도가 몸을 한번 뒤채니 아릿한 뭉게구름 하나 피어오른다. 눈길 다하는 곳 지평선이 수평선과 닿아 있다.

바다가 하늘을 담는 줄 알았더니, 하늘이 바다를 닮았더라. “오빠, 이것 봐. 또 잡았어!” 꼬마 아이가 맛조개를 흔들며 내달린다. 아이를 좇아 눈을 들면 갯벌이 드러누웠다.

미처 다 뒷걸음질 치지 못한 갯물줄기가 서해의 속살 곳곳에 엉겨 흐른다. 하늘빛과 몸을 섞어 풍성한 은빛으로 반짝거린다. 느릿느릿 갯벌을 20분 걸어서야 바다에 닿는다. 물결이 살랑, 갯벌과 꼬물꼬물 살을 비볐던 맨발을 어루만진다.

왔니. 보령시 대천 앞바다 장고도. 동쪽 해안은 넓고 완만한 만으로 이뤄져 있다. 서북쪽은 모래 갯벌이 넓게 퍼져있다. ‘명장섬 해변’ 모래 갯벌이 특히 유명하다. 명장섬 해변은 가족 여행객에게 적당한데, 수심이 알맞고 갯벌이 완만한데다 평온하기 때문이다.

명장섬 일몰이 장고도의 하루를 닫는다. 명장섬은 장고도의 전승놀이 '등바루놀이'가 시작된 곳이다. 저월 대보름이나 음력 4월 해당화 만발한 계절에 초경을 지낸 처녀들이 예쁘게 차려 입고 명장섬 해변으로 나온다. 돌맹이로 구획을 지어 방을 만들고 해당화로 치장한 후 그 안에서 굴캐는 시범을 보이며 일종의 성인식을 치뤘다. 2005년 10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명장섬 일몰이 장고도의 하루를 닫는다. 명장섬은 장고도의 전승놀이 '등바루놀이'가 시작된 곳이다. 저월 대보름이나 음력 4월 해당화 만발한 계절에 초경을 지낸 처녀들이 예쁘게 차려 입고 명장섬 해변으로 나온다. 돌맹이로 구획을 지어 방을 만들고 해당화로 치장한 후 그 안에서 굴캐는 시범을 보이며 일종의 성인식을 치뤘다. 2005년 10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명장섬 해변은 명장섬의 해변이 아니라, 명장섬이 떠 있는 장고도의 해변이라는 뜻이다. 물이 걷히면 해변 왼쪽의 봉긋한 명장섬까지 하루 두 번 거대한 바닷길이 떠올라 또 다른 가족 나들이길을 열어준다.

나지막한 섬이 명장섬 해변을 두른 풍경이 서해의 묘미를 마음껏 뽐낸다. 명장섬을 경계로 왼쪽은 ‘당너머 해변’이다. 명장섬에서 당너머 해변 사이에는 ‘간첩선이 절대 못 들어올 정도로’ 암초가 많아 낚시 포인트가 될 법하다.

당너머 해변은 명장섬 해변에 비해 갯벌은 좁지만, 물이 빠지면서 나타나는 이런저런 바위로 올라가는 재미가 있다. 당집이 있는 당산 너머에 있으니 ‘당너머’란다. 주민이 지어 부르는 이름은 언제나 쉽다.

'용굴' 너머 멀리 명장섬 옆으로 '용난바위'가 자그맣게 솟아 있다. 언제부턴가 외지인이 용굴을 코키리 바위, 용난바위를 촛대바위라 부르기 시작했단다. 용굴과 용난바위 전설에서 짐작하듯 장고도는 뱀신을 섬겼다. 뱀의 천적은 돼지. 지방층이 두꺼워 뱀독이 핏줄까지 침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고도에선 돼지를 키울 수 없다. 예부터 돼지를 키우면 큰 흉사가 생겼단다. 2005년 10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용굴' 너머 멀리 명장섬 옆으로 '용난바위'가 자그맣게 솟아 있다. 언제부턴가 외지인이 용굴을 코끼리 바위, 용난바위를 촛대바위라 부르기 시작했단다. 용굴과 용난바위 전설에서 짐작하듯 장고도는 뱀신을 섬겼다. 뱀의 천적은 돼지. 지방층이 두꺼워 뱀독이 핏줄까지 침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고도에선 돼지를 키울 수 없다. 예부터 돼지를 키우면 큰 흉사가 생겼단다. 2005년 10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장고도’는 멀리서 보면 장구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지만, 직접 보니 그다지 장구 같지 않았다. 외지인이 붙인 이름이란다. 외지인은 겉에서, 마을 사람은 안에서 이름 지어 부른다.

당너머 해변 끄트머리에 장고도의 명물 ‘용굴’ 바위를 볼 수 있다. 바다의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이곳 해변을 기어나오다 바위가 가로막길래 그냥 뚫고 가버린 구멍이라고 한다. 굴 뒤로 정말 이무기가 지나간 듯 협곡 같은 홈들이 길게 패인 바위가 줄지어 있다.

물이 빠지니 확연하다. 용굴 구멍으로 명장섬에 솟은 ‘용난 바위’가 보인다. 이무기가 백년 수도해 날아올랐다는 바위다.

은빛이었다 푸른 빛이었다 하다가 가까이 보면 투명하다. 2005년 10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은빛이었다 푸른 빛이었다 하다가 가까이 보면 투명하다. 2005년 10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장고도의 제주 해녀들
마을에는 집집마다 뚜껑 덮인 ‘다라이’가 여러 개 있다. 까나리 액젓을 담그는 통이다. 화학약품 없이 소금물로만 담그는 덕에 변하지 않고 오래 간단다. 예전엔 몇 천통씩 팔려 나가고, ‘백령도 사람 멸치 액젓 입맛을 까나리 액젓으로 바꾼 게 장고도 뱃사람’ 일 정도로 유명했다 한다.

마을에 문의하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다. 조금 놀랐다. 장고도에서 제주 해녀 14명을 만났기 때문이다. 제주 어장을 떠나 봄에서 늦여름까지 장고도에서 전복 해삼을 캐고 있단다. 채취 시기가 제주도와 차이가 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워낙 장고도에서 벌이가 좋기 때문이란다.

씨알 좋은 전복을 캘 줄 아는 제주 해녀와 마을 어촌계가 사이좋게 수익을 나누고 있었다. 장고도 주변은 자연산 전복과 해삼의 1종 어장이다. 장고도 사람도 조심할 정도로 암초가 많고 수심도 적당하기 때문이다.

명장섬 옆의 조개 양식장에 홍합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2005년 10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명장섬 옆의 조개 양식장에 홍합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2005년 10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너른 갯벌에 해산물도 널렸으니, ‘곳간에서 인심 나는’ 섬이다. 배낭에 카메라 가방까지 짊어진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카메라 가방을 들어주겠다며 마을 사람이 말을 건넬 정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타 지역 사람이 적응하기 힘든 곳이기도 하다.

김치꺼리를 씻을 때나 굴을 까고 굴 껍질 다듬을 때 바닷물이 필요하다.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해 바닷물을 저장해 사용한다. 2005년 10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김치꺼리를 씻을 때나 굴을 까고 굴 껍질 다듬을 때 바닷물이 필요하다.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해 바닷물을 저장해 사용한다. 2005년 10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민박집이 아닌 민가에서 외지 사람을 받아 준 일이 없단다. 장고도는 근처의 고대도보다 큰 섬이지만, 인구는 오히려 작다. 유입 인구가 전혀 없기 때문이란다. 한 민박집 아주머니는 장고도에서 다른 섬으로 시집가는 건 상관없지만, 다른 섬에서 장고도로 시집 들어오는 것은 꺼려했다는 말도 들려준다.

풍부한 수산 자원 덕에 근처 섬 가운데 제일 먼저 마을이 생긴 섬이다. 그런 풍성함 때문에 섬의 문턱을 낮출 이유도, 외지인에게 친절할 이유도 없었다 한다. 우리가 그렇듯 장고도 주민 역시 서로 다른 모습을 지니고 살고 있다.

Tip. 식사
식당이 따로 없어 민박에서 식사해야 한다. 갯벌에서 잡은 조개도 요리해 주지만, 비수기에는 힘들다. 먹을거리를 준비해 들어가는 게 좋다.

Info 가는 길
서해안고속국도 대천IC -> 36번국도 대천해수욕장 방향 -> 대천해수욕장 지나 대천신항 여객터미널
대천 신항에서 승용차를 실을 수 있는 페리호가 하루 3번 있고 한 시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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