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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사찰체험] 서산 부석사 템플스테이, 세상 번뇌 끊었더니 오로지 나만 있더라
[사찰체험] 서산 부석사 템플스테이, 세상 번뇌 끊었더니 오로지 나만 있더라
  • 이민학 기자
  • 승인 2005.12.16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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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서산 부석사는 677년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조선 초 무학대사가 중창하였다. 근대 한국 선불교를 중흥시킨 경허, 만공 큰 스님들이 수행한 곳으로 선종사에 의미가 깊은 사찰이다. 2005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서산 부석사는 677년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조선 초 무학대사가 중창하였다. 근대 한국 선불교를 중흥시킨 경허, 만공 큰 스님들이 수행한 곳으로 선종사에 의미가 깊은 사찰이다. 2005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여행스케치=서산] 물질문명이 극에 달한 반작용일까? 명상이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체험여행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실시간으로 지구 저편의 소식을 듣는 인터넷 시대. 한걸음 한걸음 걸어올라 오란다. 서산 도비산 속 부석사에서.

체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신부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이란 이탈리아 소설이 생각났다. 작은 마을의 무뢰한 같은(?) 신부 돈 까밀로가 벌이는 갖가지 일화를 읽으며 배를 잡고 웃느라 떼굴떼굴 굴렀던 기억도 났다.

성당을 떠올리면 엄숙함부터 떠오르는데 이와는 거리가 먼 너무나 인간적인 신부의 이야기. 왜 그 소설이 떠올랐을까? 서산 부석사 주지 주경스님은 우격다짐의 다혈질 돈 까밀로 신부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데 말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티셔츠 바람으로 사찰을 찾아온 이들과 함께 불주를 꿰던 주경 스님이나 페인트를 뒤집어쓰며 ‘일화당’ 단청을 칠하던 원우 스님, ‘스님, 스님’하며 경내를 뛰어다니는 동자들 등등.

즐거운 다담시간. 주경 주지스님이 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윽한 다향에 머리 속까지 맑아진다. 2005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즐거운 다담시간. 주경 주지스님이 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윽한 다향에 머리 속까지 맑아진다. 2005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이런 모습들이 서로 어울려, 평소 스치듯 지나는 ‘고적하고 엄숙한’ 사찰의 모습과는 다른, 시끌벅적하면서도 인간적인 친숙함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찰체험에 참가한 십여 명의 체험객도 소란함에 한몫을 더했다.

“템플스테이가 요즘 인기잖아요. 궁금해서 참가했어요.” “다른 데는 108배를 한다잖아요. 그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이쪽으로 왔어요.” 대답들이 너무 간단해서 더 이상 질문을 이어가기가 멋쩍었다.

대학생 등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많아 의외였는데 알고 보니 부석사 템플스테이에는 젊은이들이 오히려 더 많이 참가한단다. 종교와 상관없이 하루쯤 자신과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게 이유. 요즘 젊은이들의 화두는 무엇일까? 사랑? 취업? 아니면….

“자기가 누군지 알아야 뭘 해도 하지 않겠습니까.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나는 누구인가…”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 자신에게 물었을 법한, 그러나 명쾌한 답을 얻은 이는 그리 많지 않은 질문. 나는 누구일까. 첫날 저녁. 참선에 앞서 자세를 잡는 법, 숨을 쉬는 법 등등 요령을 알려준 뒤 주경 스님이 권한 화두가 무거웠는지 모두 꿀 먹은 벙어리이다.

새벽 예불은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기도 하다. 2005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새벽 예불은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기도 하다. 2005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이어진 다담시간까지도 모두 말이 없다. 새벽 네 시. 도량석을 도는 원우스님의 목탁소리가 잠을 깨운다. 사찰을 깨끗이 정화시킨다는 의미로 게를 외우며 사찰 곳곳을 도는 도량석을 마치면 곧바로 새벽 예불이다.

새벽 예불은 희망자만 참여하기에 몇 사람 안 보인다. 6시부터 있는 참선은 모두 참가해야 한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길게 아랫배까지 호흡을 들이마시며 참선을 행하는데 열린 법당 문틈으로 희뿌연 새벽 빛이 밀려든다.

빛은 새로운 공기까지 몰고 오는지 신선함이 가슴 속 깊숙이 담긴다. 참선을 마치면 마당을 쓰는 시간. 간밤에 절을 뒤덮은 구름 때문인지 축축한 마당에 젖은 낙엽이 달라붙어 잘 쓸리지 않는다. 박박 힘주어 빗질을 하는데 흙까지 튀긴다.

참선을 마치면 '마음을 쓸듯' 경내 마당을 빗질한다. 2005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참선을 마치면 '마음을 쓸듯' 경내 마당을 빗질한다. 2005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보다 못한 주지 스님이 ‘마음을 쓸어내리듯 빗질을 하라’고 한 말씀 하니 금세 빗질이 다소곳해진다. 빗질 같은 작은 일 하나에도 정성을 담는 마음. 바쁘게, 목적을 향해, 결과를 얻고자 살다보면 잊기 쉬운 마음이다.

템플스테이가 인기를 모으는 이유가 이에 있는 게 아닐까? 인간이면서도 너무나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이나 글이 아닌,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

하루에 불과하지만 사막을 헤매는 방랑자에게 한모금의 물도 천금보다 소중하듯, 삶에 한 모금 쉼표를 찍어주는 것. 정성들여 빗질을 하고나면 이른 아침도 맛있다.

이제 원우 스님의 사찰 소개 차례. 생태에 관심이 많은 원우스님은 사찰보다도 주변 자연생태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부도의 이끼를 보고 어느 게 더 오래 된 부도인지 알게 됐는데 정말 ‘모르면 눈이 있어도 보지를 못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멀리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손님 이름조차 몰라주면 섭섭하다. 도감을 펼쳐들고 하나하나 확인을 한다. 2005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멀리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손님 이름조차 몰라주면 섭섭하다. 도감을 펼쳐들고 하나하나 확인을 한다. 2005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사찰마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약간씩 다른데 부석사는 특이하게 철새탐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철새도래지 천수만이 바로 뒤편이고 천수만습지연구센터 한종현 교육간사가 있어 가능한 일. 주경 스님은 연구센터 공동의장이기도 하다.

여행사에서 기획한 철새탐조여행을 다녀와서 저 멀리 하늘 점점이 다니는 철새 밖에 못 봤다는 이들이 많다. 대개 망원경과 삼각대를 부족하게 준비하기 때문에 여러 명이서 서로 보겠다고 떠들면 어느새 철새는 날아가고 없다.

부석사 철새탐조는 그럴 염려가 없다. 본인이 철새를 좋아하는 것은 물론 남들이 철새를 제대로 못 보면 좌불안석이 되는(?) 한종현 간사가 모두가 충분히 볼 수 있도록 망원경을 넉넉히 준비하기 때문이다.

조류도감까지 나눠주며 새 이름을 하나라도 익히지 않으면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을 듯 열심히 설명하므로 대충이라도 알게 된다. 덕분에 기자도 휜뺨검둥오리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부석사에서는 간월도와 서해바다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가만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 시름이 사르르 쓸려내려가는 듯 하다. 2005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부석사에서는 간월도와 서해바다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가만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 시름이 사르르 쓸려내려가는 듯 하다. 2005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부석사 템플스테이는 소박한 사찰 모습 만큼이나 격의 없다. 사찰체험 하면 발우공양이 어쩌고 108배가 저쩌고 하는데 여기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오는 순서대로 접시에 담아 먹고 싶은 만큼 먹는다. 프로그램 순서가 바뀔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냥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누군가’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 부석사에서는 그것이면 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참선의 방법만은 자세하게 가르쳐 주는 데 아침저녁 생활 속에서 하면서 ‘나’를 찾아보라는 뜻?

Info 가는 길
자가운전 _ 서해안고속국도 서산IC 또는 해미IC -> 서산 32번국도 -> 649지방도 -> 부석 -> 부석사
대중교통 _ 서산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부석까지 약 20분 정도 소요.

Tip. 부석사의 사랑이야기
서산 부석사는 도비산 중턱에 길쭉하게 자리 잡고 있다. 멀리 간월도와 안면도 너머 서해바다를 바라보는 풍광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과 대중들의 극락세계 안양루가 마주보고 있다.

아미타불은 서방 극락정토에 머물며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부처님. 좌우 협시불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 또한 중생을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여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보살이다.

극락전 앞에 대중들의 정토 안양루가 있음이 딱 맞아 떨어지는데 이런 점에서 마음에 번뇌가 요동치는 이들이 와서 머릿속을 헹구고 가면 좋을 듯하다.

극락전 옆으로 11칸 건물이 산세를 따라 약간 휘어지듯 서있는데 인재를 길러낸다는 의미의 ‘목룡장(牧龍莊)’ , 번뇌와 망상을 잘라버릴 칼을 찾는 ‘심검당(尋劍堂)’ 그리고 부석사 현판이 걸려있다. 부석사의 창건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면 목룡장이라는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불법을 닦고 돌아올 때였다. 그동안 남몰래 대사를 연모해왔던 아랫마을 선묘낭자가 대사의 귀국 소식을 듣고 용기를 내어 사랑을 고백하였다. 대사가 ‘불법을 닦는 이로 불가하다’고 하자 다음날 승복차림으로 나타나 ‘따라가서 곁에서 불도를 배우겠다’고 했다.

대사가 다시 돌아가기를 권하자 선묘낭자는 상심하여 바다에 뛰어들었는데 곧바로 용으로 환생하였다. 용은 대사가 가는 곳마다 몰래 숨어 따라다녔다. 시간이 지나고 대사는 자기 때문에 죽은 낭자가 생각났다.

그리고 낭자의 넋을 달래고자 서해 바다가 보이는 도비산에 절을 지으려 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이를 반대하여 절을 부수려 하자 갑자기 하늘에서 바위가 둥둥 떠오면서 큰 소리로 ‘절을 해하는 자는 가만 두지 않겠다’고 야단을 쳤다.

이에 놀란 사람들이 물러가자 바위는 절이 보이는 바다 위에 둥둥 떠서 절을 지켰다. 그래서 절 이름이 부석사(浮石寺)가 된 것. 사람들은 용이 된 선묘낭자가 다시 바위로 변하여 절을 지켰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절 방 한 칸에 ‘목룡장’이란 현판 하나쯤 걸어두는 게 인연에 맞지 않겠는가. 한걸음 더 나가니 극락전과 안양루가 들어선 연유도 모두 인간의 번뇌를 씻고 극락정토에 머물라는 뜻에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사랑도 감당할 수 없으면 번뇌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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