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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농촌체험] 영산강 역사와 함께 사는 나주 영산나루마을
[농촌체험] 영산강 역사와 함께 사는 나주 영산나루마을
  • 노서영 기자
  • 승인 2005.12.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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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에 띄운 소망 담은 촛불 상자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서해에서 잡은 해산물을 내륙으로 나르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영산강. 담양 용추봉이 발원지인 이 강은 영산나루마을이 있는 신곡리를 지나 함평, 무안, 영암, 목포를 지난다. 이 강의 옛 이름은 통일신라 때 나주의 옛 이름이었던 금성이 앞글자를 따서 금천, 금강이라 불렸다고 한다. 고려 때 신안군 흑산면 영산도 주민들이 왜구를 피해 마을을 개척하면서 영산포라 불리면서 영산강이라 불리게 되었다. 2005년 12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서해에서 잡은 해산물을 내륙으로 나르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영산강. 담양 용추봉이 발원지인 이 강은 영산나루마을이 있는 신곡리를 지나 함평, 무안, 영암, 목포를 지난다. 이 강의 옛 이름은 통일신라 때 나주의 옛 이름이었던 금성이 앞글자를 따서 금천, 금강이라 불렸다고 한다. 고려 때 신안군 흑산면 영산도 주민들이 왜구를 피해 마을을 개척하면서 영산포라 불리면서 영산강이라 불리게 되었다. 2005년 12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여행스케치=나주] 나주 영산나루 농촌 마을로 초등학생과 부모 합쳐 스무 명이 1박 2일 체험을 떠난다. 모처럼 야외로 떠나는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가 버스를 가득 채운다.

며칠 전 버스 창을 통해 보이던 들판의 황금물결은 온데간데 없고, 갈기갈기 옷가지가 찢겨진 허수아비 한 채만이 아이들의 웃음에 쓸쓸히 미소를 머금는다.

“코끼리 젖꼭지는 두 개, 사람과 고래의 젖꼭지도 두 개, 그러면 곰의 젖꼭지도 두 개다! 맞으면 두 손 들어 O자를 들고, 틀리면 가만히 있으세요. 자, 하나, 둘, 세엣! OX?”

한국문화관광연구소에서 여행기획팀을 맡고 있는 이상근씨의 퀴즈에 아이들은 웃고 운다. 질문자의 얼굴을 교묘히 살피는 아이, 친구들이 무슨 답을 하는지 눈치 보다가 슬쩍 손으로 O자를 그리는 아이. 갈 길이 멀어 지칠 법도 한데 아이들은 예외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부족국가시대 마한의 중심지이자, 고려 태조 왕건과 오씨부인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완사천이 있는 나주의 영산나루마을이다.

나주에서 올해 들어 처음 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된, 영산강과 인접한 이 마을에는 42가구에 7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바로 이 날이 처음 체험 가족을 맞이하는 날이라 마을 사람들의 설렘과 기쁨이 풍성한 잔치 속에 녹아 나온다.

돼지를 잡아 환영한 마을 주민들. 2005년 12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돼지를 잡아 환영한 마을 주민들. 2005년 12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와~ 이게 무슨 냄새야? 맛있겠다. 저도 한 입만 주세요. 네? 저도요!” 오후 5시 정도에 마을에 도착한 체험 가족들이 먼저 본 것은, 지글지글 불판에서 구워지고 있는 삼겹살. 쫄깃하고 먹음직스럽게 굵은 족발도 노릇노릇 익어간다.

마을에서 첫 손님을 환영하는 의미로 돼지를 잡은 게 분명하다. “영산나루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영산강의 기름진 땅과 우수한 쌀을 자랑하는 저희 마을에서 시골마을의 정취를 흠뻑 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을의 책임을 맡고 있는 김승식 이장의 인사가 끝나자 가족들에게 민박집이 배정되었다. 저녁 일정은 양초 만들어 영산강에 띄워 보내기.

“제 소원은 통일. 그리고 민규 아토피 낫게 해주세요!”, “하늘에서 돈 벼락 내리게 해주세요.”, “100조 모으게 해주세요. 공부 잘하게 해주세요.”, “세계일주 하고 싶어요.”

소원을 담은 촛불이 활활 타고 있다. 2005년 12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소원을 담은 촛불이 활활 타고 있다. 2005년 12월. 사진 / 노서영 기자

크레파스로 칠한 파라핀을 불에 달구어 액체가 되면 종이컵에 붓고 굳기를 기다린다. 제일 예쁘게 만든 양초 하나를 선정해서 달밤에 영산강에 가서 띄워 보내는 놀이. 화선지에 곱게 소원을 적어 불에 태우기로 했는데, 소원들이 가지각색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세상에 부자는 없다. 그래서일까 많은 어린이들이 부자되게 해달라고 적는다. 초등학교 4학년 수진이의 맑은 파란색에 빨간 하트모양을 넣고 종이컵을 잘게 잘라 만든 양초 ‘해바라기’가 1등상을 먹었다.

아이들이 우르르 영산강으로 내달린다. 컴컴한 고요 속에서 아이들이 만든 양초마다 점점이 불이 켜지고 아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소망의 종이를 태운다. “수진아, 소원 뭐라고 썼는데?” 수진이가 강물에 종이컵 양초를 조심스레 띄운다, 비밀을 속삭이듯. “내년에는 꼭 강아지 키우게 해달라고 썼어요….”

소원을 적고 있는 민준이. 동생의 '아토피성 피부염 치유'와 대국적 소원 '통일'을 적었다. 2005년 12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소원을 적고 있는 민준이. 동생의 '아토피성 피부염 치유'와 대국적 소원 '통일'을 적었다. 2005년 12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밤 10시다. 시골에 올 때마다 경험하건데 이때가 되면 꼭 잠이 쏟아지더라. 도시에서는 자정이 훨씬 넘어도 눈이 말똥말똥하던 아이들도 피곤했는지 눈꺼풀이 축 쳐진 채 엄마 어깨에 몸을 기대고는 스르륵 깊은 잠에 빠진다.

처마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깼더니 창문에 터질 듯한 감들이 한 가득이다. 옆집 감나무가 민박집까지 가지를 친 것. 마을의 집집마다 감나무가 한 그루 이상씩 있는데, 이른바 주렁주렁.

흙에 파묻은 항아리에 서너 개씩 넣고 짚으로 살짝 덮어 또 한 줄 쌓던 소중한 감. 추운 겨울 간식이라며 더도 말고 딱 한 개 꺼내다 가족들 머리 맞대고 숟가락으로 한 입씩 아껴먹던 굵고 큼지막한 감.

감나무가 많은 영산나루마을의 영산강 모래밭에 체험 가족들이 다시 모였다.

체험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규가 맨 처음으로 공을 힘껏 날린다. 2005년 12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체험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규가 맨 처음으로 공을 힘껏 날린다. 2005년 12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지금부터 정치기 놀이를 하겠습니다. 이 놀이는 골프처럼 구멍에 공을 넣는 게임입니다. 두 팀으로 나눠서 먼저 구멍에 공을 넣고 깃발을 잡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영산팀, 나루팀! 자, 조용조용!”

조선 태종의 장남 양녕대군이 즐겼다고 전해지는 격구, 즉 장치기를 응용한 놀이다. 장치기는 일종의 하키식 놀이이고 정치기는 골프 형태의 놀이이다. 고려 중기부터 조선시대까지 왕족들이 많이 즐겼다고 한다.

짚으로 만든 공이지만 모래밭에서는 맘처럼 쉬이 굴러가질 않는다. 승부욕이 강한 정규와 동생의 아토피성 피부를 걱정하던 민준이, 그리고 수능시험을 앞둔 누나를 위해 소원을 빌던 착한 동생 강호까지.

반칙이다 아니다 싸우기 직전에 부모들의 한바탕 웃음과 함께 영산팀의 승리로 게임이 끝났다.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논두렁에서 서리태를 뽑았다.

콩사리를 위해서 불을 지피고 있다. 2005년 12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콩사리를 위해서 불을 지피고 있다. 2005년 12월. 사진 / 노서영 기자

국산 검은콩인 서리태는 여성들의 피부미용과 다이어트에 탁월하며 건강에 좋다고 해서 웰빙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콩이다.

다른 콩은 이미 수확이 끝나고 떨어졌지만, 서리가 내릴 때까지 자라서 서리태라 불리는 이 콩은 아직도 덜 익은 풋콩이 지천이다. 줄기째 따다가 불에 꺼멓게 타면 그제야 콩깍지를 벗겨 먹는다.

설익으면 씁쓸하면서 비리지만, 적당히 잘 익힌 콩은 고소하고 달기까지 하다. 일명 콩사리라 불리는 농촌 아이들이 즐기던 간식이자 놀이거리였다.

“엄마도 먹어요.” 밥에 넣은 콩은 몽땅 골라 엄마 밥그릇에 올려놓던 아이들이 콩을 이렇게 좋아했었나. 입가에 검댕이를 묻히면서 한참 먹더니 엄마가 생각났나 보다. 나이가 제일 어린 동규가 희죽 웃더니 엄마 입에 한 알을 쏙 넣어준다.     

마을 사람들과 정들고 같이 온 체험가족들과 정들었는데 벌써 작별의 시간이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회관에 모여 떠나갈 체험가족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새싹비빔밥을 지어준다.

비타민과 미네랄, 항암 성분이 들어있는 새싹채소는 성인병 예방에 탁월하다. 실같이 얇고 짤막한 새싹과 각종 나물들을 넣어 고추장에 비벼 먹는 그 맛이란. 마을 주민들의 풍성한 인심에 흠뻑 취한 여행이었다.

Info 가는 길
서해안고속국도 무안IC -> 광주 방향 -> 함평사거리 -> 공산면 -> 공산철물점이 보이면 좌회전 -> 신곡리 영산나루마을

Tip. 영산나루마을과 MBC 드라마 ‘삼한지’ 촬영 세트장
총 270억원의 예산을 잡고 있는 내년 4월에 방영될 드라마 ‘삼한지’ 나주 세트장이 한창 공사중이다.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의 탄생에서부터 고구려, 백제의 건국 과정을 다루는 대하 드라마의 7~80%가 영산나루마을이 있는 신곡리 세트장에서 촬영된다.

세트장도 둘러보고 농촌마을에서 가족들과 농촌체험도 하고, 마을 사람들의 푸근한 정도 느끼며 쉬어가는 것은 어떨까.

봄에는 보리피리, 한과 만들기, 여름에는 영산강뱃놀이, 자전거하이킹, 가을에는 김장채소 가꾸기, 벼베기, 강변 정치기, 연만들기 그리고 겨울에는 군고구마 굽기, 보리밥 밟기, 김장하기 프로그램이 있으며 고택마당놀이와 양초공예 등은 연중 체험이 가능하다.

나주 이야기
삼한시대 마한의 중심지로, 고려 태조 왕건이 건국의 발판으로 삼았던 곳이다. 노령산맥이 서남쪽으로 뻗어 이룬 나주의 진산인 금성산(해발 451m)과 황해에서 잡은 해산물을 내륙으로 나르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영산강.

맑은 강물의 정기를 받은 넓고 비옥한 나주평야는 나주의 상징이다. 나주는 통일신라시대에는 금산(錦山), 금성(錦城)으로 불렸다가 후삼국시대에 와서 나주(羅州)라 이름 불리게 되었다.

완사천 샘가 모습. 2005년 12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완사천 샘가 모습. 2005년 12월. 사진 / 노서영 기자

고려 태조 왕건과 오씨 처녀
왕건이 고려 개국 이전에, 영산강을 중심으로 후백제 견훤 세력과 다투던 시절, 지금의 완사천에서 빨래를 하던 한 처녀에게 물 한 바가지를 청했다. 처녀는 물을 담은 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건넸다.

급히 마시고 체할 것을 염려하여 천천히 마시도록 하기 위한 처녀의 지혜와 미모에 탄복한 왕건은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이 처녀가 나주의 토착세력인 나주 오씨 집안의 딸이었으며, 고려 제2대왕 혜종을 낳은 장화왕후 오씨 부인이다. 완사천 샘가에는 이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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