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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농촌마을탐방 2] 동학의 마을, 남원... 농촌체험마을에서의 역사 기행
[농촌마을탐방 2] 동학의 마을, 남원... 농촌체험마을에서의 역사 기행
  • 조용식 기자
  • 승인 2019.09.06 15: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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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동학의 시작점, 광한루원... 최제우, 서형칠 약방으로 피신이 계기
동경대전 집필한 교룡산성 '은적암'... 새로운 세상을 노래한, 칼노래도 지어 불러
농촌관광거점마을 문화체험형 숙박시설부터 산양 젖 짜기, 치즈 만들기 등 체험까지

[여행스케치=남원] 남원의 농촌체험마을인 요천마을과 비전마을은 다양한 체험과 놀이, 그리고 숙박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1박 2일 여행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그리고 농촌체험마을 주변으로 동학농민혁명의 기념비가 있어 당시의 현장을 되새길 수 있는 역사 여행지이기도 하다.

남원의 농촌체험마을에는 동학이라는 뿌리가 존재하고 있다. 그 뿌리의 시작은 바로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이 싹튼 광한루원이라는 사실이다. 

광한루원 동학농민혁명 기념비. 사진 / 조용식 기자
광한루원 주차장에 세워진 동학과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광한루원 기념비. 사진 / 조용식 기자

광한루원에서 만난 동학농민혁명 기념비
광한루원 주차장에 세워진 ‘동학과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광한루원’ 기념비에는 ‘동학의 교주 수운 최제우 선생이 혹세무민, 사도난정의 죄목으로 1861년 겨울, 경주에서 피신차 남원에 들어와 광한루 오작교 주변 서형칠의 약방에 머물다가...’라고 적혀 있다.

한병옥 남원정신문화연구원은 “당시 광한루원의 호수 남쪽은 성 밖 시장인 남원장이 있었으며, 서형칠의 약방도 사람이 많이 드나들던 시장에 있었다”며 “한약재를 현금화하기 위해 약방에 들렸다가 서형칠의 주선으로 안전하고 집필하기 좋은 교룡산성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설명한다.

광한루원의 호석. 사진 / 조용식 기자
광한루원의 호석이 자리한 곳이 남원 성 밖 시장터 부근이다. 사진 / 조용식 기자

수운 최제우 선생은 교룡산성 내 덕밀암으로 들어가 ‘은적암’이라는 현판을 걸고, 동학의 경전을 집필하고 포교 활동을 하였는데, 이것이 ‘호남에 동학이 전파된 효시’이다. 광한루원으로 들어서면 호석(虎石:호랑이 형상의 돌)이 있는데, 바로 이 자리가 남원성 밖 시장이었다. 연못 건너편은 모두 시장 터였으며, 동학 농민군의 처형 장소로도 사용됐다고 한다.

Info 호석
옛날 남원 고을 수지면 견두산에 떼를 지어 살고 있는 들개들이 한바탕 짖어댈 때마다 고을에 괴변이 일어났다. 이에 이서구 전라 감사가 견두산을 향하여 두 개의 호석을 설치하였더니 재난이 없어졌다고 전한다. 또 하나의 호석은 호평 마을 회관 앞에 세워 놓았다.

남원 교룡산성의 홍예문. 사진 / 조용식 기자
수운 최제우 선생이 들어간 남원 교룡산성의 홍예문. 사진 / 조용식 기자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을 집대성하다
최제우 선생이 들어간 교룡산성은 해발 518m인 교룡산을 에워싼 것으로 둘레는 3.1km에 이른다. 성의 터와 형식으로 보아 백제 시대에 쌓았던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으며, 성안에는 우물이 99개 있었으며, 100여 민가가 살았다고 한다. 밀덕봉과 복덕봉 등 산세가 가파르기 때문에 임진왜란이나 동학농민혁명 당시 무기를 놓아두던 군기 터가 있다. 

교룡산성 내 은적암. 사진 / 조용식 기자
최제우 선생이 동경대전을 집대성했던 교룡산성 내 은적암 터. 사진 / 조용식 기자

교룡산성에서 선국사와 군기 터를 지나면 최제우 선생이 기거했던 은적암으로 가는 길을 만난다. 산세가 험한 만큼 가파르지만, 돌계단을 만들어 은적암까지 올라가는 길이 한결 편리해졌다. 은적암은 불에 타 완전 소실이 되었으며, 그 터에는 천도교 서울교구가 세운 ‘은적암 터’ 표지판과 장고 터(소금에 절인 장아찌와 간장, 고추장 등을 보관한 자리), 그리고 주변의 암벽들만이 당시의 모습을 기억할 뿐이다.

최제우가 지어 불렀던 칼노래. 사진 / 조용식 기자
최제우가 지어 불렀던 칼노래는 당시 민중들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을 잘 대변하고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한병옥 연구원은 “동경대전의 12편 중 절반을 은적암에서 집필한 최제우 선생이 재판을 받을 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칼노래”라며 “은적암에서 지어 부른 칼노래는 당시 민중들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을 잘 대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룡산성을 내려오는 길에 ‘동학 성지 남원’ 기념 조형물에서 최제우가 춤을 추며 불렀다는 칼노래를 읽어보면, 새삼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끼게 된다. 바로 옆에는 ‘사람이 하늘이다. 사람을 하늘로 떠받들기 위해서~“로 시작되는 복효근 시인의 ‘다시 밝혀드는 동학의 횃불’이란 시가 적힌 비를 만날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 쪽뚤. 사진 / 조용식 기자
요천마을 앞에 세워진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쪽뚤. 이곳에서는 1만여 농민군이 방아치 전투를 벌이기 위해 모여 있던 곳이다. 사진 / 조용식 기자
동학농민혁명 당시 사용했던 깃대 바위. 사진 / 조용식 기자
동학농민혁명 당시 사용했던 깃대 바위. 사진 / 조용식 기자

요천마을 앞 쪽뚤에 모인 1만여 농민군
전북 남원의 다슬기 체험 마을로 잘 알려진 요천마을에서 약 1km 거리에는 동학농민혁명의 유뮬인 깃대 바위가 있다. 깃대 바위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남원의 농민군이 영남지방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운봉 공격을 앞두고 두 개의 홈을 파서 깃대를 세웠던 곳이다.

깃대 바위를 중심으로 동학 농민군 1만 명은 지금의 요천마을 앞의 쪽뚤(남색 물감의 원료로 사용되는 쪽풀이 많은 들판)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지금의 비전마을과 신기마을 등이 있는 운봉지역에 주둔한 민보군(民保軍: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유생들이 조직한 군대)에게 방아치와 여원치의 갈림목에서 혼란을 주기 위해서다.

남원 요천다슬기마을 풍경. 사진 / 조용식 기자
남원 요천다슬기마을의 모습. 사진 / 조용식 기자

한병옥 남원정신문화연구원은 "깃대 바위에 부대기를 게양하고 승리를 다짐하던 농민군은 14일 인시(새벽 3~5시)에 방아치를 공격하였으나 가파른 골짜기에서 산성의 성벽을 허물어 돌을 굴린 민보군에게 패배하여 수백에서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며 "남원성으로 후퇴를 하였으나 여기에서도 밀린 농민군은 유하다 독립 운동에 앞장 섰다"고 설명한다. 

방아치전투 기념비. 사진 / 조용식 기자
동학농민혁명 방아치 전투지 기념비. 사진 / 조용식 기자

방아치 전투를 지휘했던 인물은 바로 류태홍(1867~1950) 선생이다. 1891년 사례역 교조 신원운동 때 우도 대표 전봉준과 함께 좌도 대표로 관찰청에 상소를 올렸던 류태홍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에 참여한다. 하지만 그는 방아치 전투에서 패하고, 1905년 천도교 청년동맹인 진보회 활동, 남원 3.1만세 운동 지휘, 신간회 활동을 거쳐 해방 후 남원 건국준비위원장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에서 일제강점기, 해방 등 우리 민족사의 모든 것을 지켜본 인물이다. 현재는 남원시 이백면 강촌마을 입구에 그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일본인에 의해 파기된 황산대첩비. 사진 / 조용식 기자
일본인에 의해 파기된 황산대첩비. 비에 적힌 글을 쪼아 글씨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로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황산대첩비지의 모습. 사진 / 조용식 기자
운봉읍 황산대첩비지의 모습. 사진 / 조용식 기자

남원시의 운봉읍 비전마을에는 남원 황산대첩비지가 있는데, 고려 말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군을 무찌른 사실을 기록한 승전비이다. 그러나 1945년 일본인들에 의해 황산대첩비가 파괴되어  1957년 다시 만들어 세웠다. 당시 일본인들은 황산대첩비의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비석의 글씨를 쪼아 뭉갰으며, 대첩비를 파괴했다. 파손된 비는 일본인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파비각’이란 편액을 달아 보관하고 있다.

이성계가 황산대첩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내용이 기록된 비. 사진 / 조용식 기자
새롭게 세워진 황산대첩비에는 이성계가 황산대첩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황산대첩비지 바로 옆으로 비전마을의 자랑인 동편제의 시조로 불리는 송흥록 명창의 생가가 있다. 이곳은 매년 5월이면 현대차 정몽구 재단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함께 진행하는 ‘동편제마을 국악 거리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다양한 체험과 편안하고 안락한 숙박시설까지
‘치즈’ 하면 임실이라고 하지만, 남원의 운봉에도 치즈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정영학 농부가 운영하는 희망씨앗농장이다. 올해 예비관광벤처기업으로 선정된 희망씨앗농장은 대산농촌재단과 함께 어린이를 대상으로 낙농체험을 한 결과, 만족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된 곳이기도 하다.  

희망씨앗농장의 유산양. 사진 / 조용식 기자
희망씨앗농장의 유산양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정영학 희망씨앗농장 농부. 사진 / 조용식 기자
정영학 희망씨앗농장 농부는 "아이들이 초원에서 즐겁게 뛰어놀며 산양과의 교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정영학 농부는 “가족들과 함께 치즈 만들기, 아이스크림 만들기, 피자 만들기 등의 요리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산양 젖 짜기, 풀 먹이기 등의 체험을 통해 아이들이 초원에서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곳”이라고 희망씨앗농장을 소개한다. 또한 지리산 생햄을 만드는 솔마당에서는 소시지 체험을 할 수 있다.  

농촌관광거점마을 문화체험형 숙박시설인 동편제 휴. 사진 / 조용식 기자
농촌관광거점마을 문화체험형 숙박시설인 동편제 휴의 외관 모습. 사진 / 조용식 기자
동편제마을 휴의 내부 모습. 사진 / 조용식 기자
동편제마을 휴의 내부 모습. 사진 / 조용식 기자

아이들과 함께 식사와 숙박을 즐길 수 있는 농촌관광거점마을 문화체험형 숙박시설인 동편제마을 휴(休)·락(樂)이 지난 9월 4일 문을 열었다. 동편제 휴·락을 운영하는 오인숙 대표는 “농촌 마을을 찾아오는 어린이 체험 여행, 수학여행, 가족여행 모두에게 편안하고 안락한 시설을 준비했다”며 “동편제마을의 특색에 맞게 달빛 판소리, 국악 등의 공연을 통해 문화체험을 겸한 숙박시설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신시설로 달빛 판소리, 국악 등의 문화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 / 조용식 기자
최신시설로 달빛 판소리, 국악 등의 문화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 / 조용식 기자
동편제마을 휴의 정원. 사진 / 조용식 기자
동편제마을 휴의 야외 정원 모습. 사진 / 조용식 기자

Info 희망씨앗농장 
지리산 자락 해발 500m에 자리하고 있으며, 70여 마리의 유산양을 기르고, 직접 짠 신선한 산양유로 요구르트와 치즈를 만들고 있는 목장형 유가공업체. 
체험 내용 치즈, 아이스크림, 피자 만들기, 산양 젖 짜기, 풀 먹이기
체험 비용 1인당 3만7000원(식사 포함)
주소 전북 남원 운봉읍 전촌길 36

Info 지리산 둘레길 2코스 
운봉~인월구간의 바래봉-고리봉과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운봉고원을 걷는 길이다. 주변에 황산대첩비, 국악의 성지, 송흥록 생가 등 볼거리가 많다. 
거리 및 소요 시간 9.4km, 4시간 소요. 
코스 운봉읍-서림공원-북천마을-신기마을-비전마을-국악의 성지-옥계저수지-월평마을-인월읍

취재협조 남원시 농촌종합지원센터, 한병옥 남원정신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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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경 2019-09-07 16:54:42
"천부경과 도덕경" 블로그 참고 바랍니다. 5월--도덕경 해독글, 8월--천도교 경전 해독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