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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한국의 정원] 별서정원의 백미 '담양 소쇄원' 소리, 세속에 비켜선 대숲의 바람 소리
[한국의 정원] 별서정원의 백미 '담양 소쇄원' 소리, 세속에 비켜선 대숲의 바람 소리
  • 김진용 기자
  • 승인 2006.02.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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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제월당에서 내려선 햇살을 즐기는 여행객.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제월당에서 내려선 햇살을 즐기는 여행객.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스케치=담양] 소쇄원에는 있는 둥 마는 둥 하는 야트막한 담장이 있다. 열려 있는 담장으로 풍경은 걸어서 지나다니고 냇물은 내키는 대로 흘러 들어온다. 뭣보다 소리가 드나든다. 댓잎에 이는 바람소리가 언제나 물결처럼 소쇄원을 적시고 지나간다.

“대실(竹谷)의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 대숲에서 일고 있는 바람에 귀가 젖어 그 소리만으로도 날씨를 분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 그저 저희끼리 손을 비비며 놀고 있는 자잘하고 맑은 소리, 강 건너 강골 이씨네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이쪽 대실로 마실 나온 바람이 잠시 머무는 소리, 어디 먼 타지에서 불어와 그대로 지나가는 낯선 소리, 그러다가도 허리가 휘어질 만큼 성이 나서 잎사귀 낱낱의 푸른 날을 번뜩이며 몸을 솟구치는 소리, 그런가 하면 아무 뜻없이 심심하여 제 이파리나 흔들어 보는 소리, 그리고 달도 없는 깊은 밤 제 몸 속의 적막을 퉁소 삼아 불어 내는 한숨 소리. 그 소리에 섞여 별의 무리가 우수수 대밭에 떨어지는 소리까지라도 얼마든지 들어낼 수가 있었다.”

최명희의 <혼불>에 담긴 우리네 선조들의 심성과 감수성이다. 우리 옛 정원엔 그 심성이 녹아 있다. 풍경은 소리를 빚고, 정원은 그 소리를 받아들인다. 도로가 나고 전선주가 늘어서고 건물이 오르면서, 전통 정원에서 소리도 사라졌다.

사랑채인 광풍각. 들어열개문을 올리면 가운데 방이 트인다.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사랑채인 광풍각. 들어열개문을 올리면 가운데 방이 트인다.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담양 소쇄원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소쇄’(瀟灑)는 ‘기운이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오곡문(五曲門) 담장 밑으로 흘러들어오는 물줄기는 바위틈을 돌아 내려오며 졸졸졸 한다. 나무 홈을 타고 작은 바위 계곡을 건너는 물줄기는 또르륵 한다.

실폭포가 되어 암반에 떨어지는 물줄기는 탁탁탁 한다. 휘파람 불던 산새 한 마리는 눈 덮인 계절에 먹이를 찾는지 뜻없이 푸드득 오른다. 그렇게 내리고도 미련이 남은 듯 이따금씩 나는 사르락 사르락 눈 쌓이는 소리.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아득하게 아늑한 소리….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으면 바람이 불어온다. 소쇄원을 두른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다. 바람이 댓잎을 쓸어오는지 댓잎이 바람을 쓸어오는지, 바람이 물결이 된다. 잔잔해졌는가 싶더니 솨아 한쪽으로 몰린다. 우우우 말을 건넨다. 번역하긴 힘들다.

동산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 제월당 뒤뜰. 뒤뜰에는 담이 아예 없다.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동산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 제월당 뒤뜰. 뒤뜰에는 담이 아예 없다.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제월당 마루에 스민 햇살에 얼었던 발이 따뜻하다. 소쇄원을 가장 소쇄원답게 즐기는 법은 서재인 제월당(霽月堂) 누각이나 사랑채인 광풍각(光風閣) 마루에 앉아 눈을 감고 귀를 여는 것인지도 모른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차분히 내려놓아야겠다 싶을 때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 기억 속의 소쇄원은 그렇게 대나무 숲 한가운데 조용히 숨어 있다.

소쇄원을 다시 찾는 길이다. 광주에서 무등산을 넘어 담양군 남면으로 들어가면 무등산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고, 담양읍에서 출발하면 광주호를 따르게 돼 어느 길을 택하든 계절의 정취에 흠뻑 젖을 수 있다.

어느새 관람료에다 사철 여행객으로 붐비는 스타 여행지가 돼 버렸다. 입구엔 대숲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얼마나 들어가야 소쇄원이 나오느냐고 묻지 말 것. 그곳 역시 소쇄원의 일부니까. 해를 가리는 빽빽한 대숲을 지나자마자 눈앞이 밝아진다. 밝고 어두움이 뚜렷이 나뉘는 곳에서 소쇄원 내원이 시작된다.

오곡문을 통해 흘러드는 계류의 입수부.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오곡문을 통해 흘러드는 계류의 입수부.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애양단(愛陽壇)이라 씌어있다. 오곡문(담장 한쪽을 헐고 문이라 부른다) 담장 밑으로 들어온 작은 계류가 다섯 굽이 바위를 운치있게 돌아 내려간다. 그 중 한 줄기는 계류를 벗어나 너럭바위 위에서 나무 홈을 타고 건너와 연못을 이룬다.

그러다 다시 실폭포로 떨어져 계류에 안기는 멋스러움은 그야말로 감동적이다. 동백, 매화, 백일홍, 살구꽃, 복사꽃, 단풍나무와 소나무가 철마다 그 멋스러움을 지켜보고 섰다. 450년 전 쯤 소쇄원을 지은 이가 ‘남에게 팔지 말 것이며, 누구 한 사람의 소유가 되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지.

소쇄원에는 고유의 전통 조경 기법 가운데, 흘러와서 흘러가는 물을 막지 않고, 지형을 그대로 살린 자연스러움이 담겨있다. 연못은 땅을 뜻하는 사각형(方池)이고 그 옆에 선 대봉대(待鳳臺) 서까래는 우주를 뜻하는 원이다.

다섯 굽이를 치며 내려오는 물줄기와 나무 홈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어울려 청량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다섯 굽이를 치며 내려오는 물줄기와 나무 홈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어울려 청량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자연관이다. 수직으로 쌓아올린 연못의 석축과 가지치기하지 않은 나무는 일본 정원의 그것과 뚜렷이 구분된다. 주변 풍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열린 담장, 뒤쪽 비탈을 계단식으로 처리해 매화를 심은 화계(花階) 역시 전통 조경 기법의 교과서이다.

거기에 은행나무, 대나무, 소나무, 복숭아나무를 비롯해 유교와 신선사상을 대변하는 갖가지 상징물에까지 관심을 가진 이라면 소쇄원은 2박 3일로도 모자란다. 소쇄원은 조선 중종 때 선비인 소쇄공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조성하기 시작해 3대 70년에 걸쳐 지어졌다.

양산보는 조광조의 문하에 들어갔다가 스승이 화순으로 유배되고 죽음을 당하게 되자 세속에서 비켜서 울창한 대나무 숲으로 들어온 인물이다. 담양엔 들판이 기름져 예부터 경제력을 바탕으로 식자층이 두텁게 형성됐다.

전통 정원의 풍경은 끝이 없다. 식영정에서 바라본 주홍빛 광주호.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전통 정원의 풍경은 끝이 없다. 식영정에서 바라본 주홍빛 광주호.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그들은 당쟁의 와중에 중앙 정계의 권력에서 밀려나거나 스스로 물러나 고향 곳곳에 정자와 정원을 꾸며 자연을 벗삼아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면앙정가>의 배경인 면앙정, <성산별곡>의 터전인 환벽당과 식영정,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의 탯자리인 송강정, 그리고 여름이면 백일홍으로 붉게 타오르는 명옥헌 정원, 독수정, 취가정, 풍암정….

모두가 엇비슷한 시기에 조선 가사 문학의 전성기를 일군 인물들이 어울려 지은 정자와 정원이다. 찾아보면 제각기 선비 정신과 가사 문학의 걸작에 얽힌 재미난 사연과 유래가 내려와, 여행객에게 깊숙한 마음자리를 되돌려 준다.

소쇄원은 경북 영양의 서석지,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 그리고 보길도의 부용동 정원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별서 정원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단연 걸작이다. 고유의 전통 조경 기법을 대부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Info 담양
가는 길 _ 호남고속도로 창평IC → 60번지방도 고서 방향 → 887번지방도 남면 방향 → 광주호 지나 소쇄원 ※담양군이 운영하는 시티투어에 참가해도 좋다. 매달 1,3,5주 토요일 광주역에서 09:30분 출발하는 시티투어 버스는 가사문학유적 뿐 아니라 관방제림과 죽녹원 같은 담양 대나무 문화 관람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즐길 수 있다.

식사 _ 담양엔 떡갈비가 유명하다. 소쇄원 가는 길목 광주댐 도로 중간의 담양 숯불갈비. 남면과 고서면 지역에 추어탕을 잘 하는 집이 많다. 주민과 주차장 직원들이 소쇄원 근처 다래원을 추천한다.

일반 식사와 추어탕, 그리고 꽃게탕이 나온다. 명옥헌 근처 죽향의 맛 추어탕도 추천할 만하다. 봄 여름에는 죽순을 넣어 추어탕을 우려내고, 대나무 잎을 갈아 반죽한 대잎냉면도 별미.

숙박 _ 담양 금성면에 담양리조트온천이 있어 가족이 묵기에 적당하다. 저렴한 시설을 찾으려면 남면에 럭키하우스, 베스트 여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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