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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가을 정취와 함께 거닐다②] 첩첩산중, 그곳에 풍류가 고여 있나니…영월 산꼬라데이길
[가을 정취와 함께 거닐다②] 첩첩산중, 그곳에 풍류가 고여 있나니…영월 산꼬라데이길
  • 조아영 기자
  • 승인 2019.10.14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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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경대산을 병풍처럼 두른 김삿갓면에 트인 '산꼬라데이길'
걸으면 걸을수록 산골 마을 매력 발견할 수 있어
예밀마을, 오는 11월 예밀와인 축제 개최
사진 / 조아영 기자
영월 산꼬라데이길을 걸으며 만나는 첩첩산중 풍경. 사진 / 조아영 기자

[여행스케치=영월] 깊은 산세가 주는 정취를 느끼기에 늦가을만큼 좋은 때도 없다. 애달픈 단종 이야기와 방랑시인의 풍류가 서린 영월군을 파고들면 ‘산꼬라데이길’이라 이름 지어진 길이 나타난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산골짜기를 따라 느릿느릿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가뿐한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아 한번 썼다가 사십 년 평생 쓰게 되었네. (…)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고 흥겨우면 들고서 다락에 올라 달구경하네. 속인들의 의관은 모두 겉치장이지만 하늘 가득 비바람 쳐도 나만은 걱정이 없네.‘ - 김병연, <내 삿갓> 中

쉼과 여백이 있는 슬로시티, 이곳에 트인 길
해발 1088m의 망경대산을 병풍처럼 두른 김삿갓면은 영월읍내에서 차량으로 20분 남짓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마을의 원래 이름은 하동면이었으나 항상 큰 삿갓을 쓰고 전국 각지를 유랑했던 난고 김삿갓과의 인연으로 2009년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방랑시인이 사랑한 고장인 만큼 수려한 자연경관과 고씨굴, 김삿갓 유적지, 묘 등 문화자원을 두루 갖춰 2012년 10월에는 강원도 최초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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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모인다는 뜻을 지닌 모운동 마을. 사진 / 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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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증맞은 이정표가 마을과 길 방향을 알려준다. 사진 / 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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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꼬라데이길 중 모운동과 인접한 광부의길. 사진 / 조아영 기자

김삿갓면 예밀리와 주문리를 잇는 ‘산꼬라데이길’은 걸으면 걸을수록 산골 마을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이다. 강원도 사투리로 산골짜기를 뜻하는 이 길은 인공적인 시설을 최대한 배제하고 망경대산의 주요 능선을 다채로운 테마로 나눈 길이다.

총 길이는 27.5km로, 예밀길에서 모운동길까지 8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구간별 거리는 1.1km~6km이며, 트레킹족은 물론 산악자전거(MTB) 라이딩을 즐기는 이들에게도 알음알음 소문나 주말이면 많은 이들로 북적인다.

김기원 김삿갓면 주문2리 이장은 “산꼬라데이길은 시작점과 종점이 나뉘어져 있지만, 원하는 길을 골라 효율적으로 둘러보는 것이 좋다”며 “모운동 동화마을과 인접한 광부의길은 과거 광부들이 오갔던 길로 이곳에서 출발해 만경사까지 둘러보고 오시는 분들이 많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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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로 제작한 판화 작품을 볼 수 있는 양씨 판화 미술관. 사진 / 조아영 기자

모운동을 트레킹 시작점으로 삼는다면 길을 나서기 전,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것을 권한다.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진 주택가 사이로 작은 미술관이 둥지 틀고 있기 때문. 여행 중 우연히 찾은 이곳에 반해 정착한 양태수 관장이 운영하는 ‘양씨 판화 미술관’이 바로 그것이다. 한지로 제작한 선명한 색감의 판화 작품을 볼 수 있으며, 미술관 외부에 손녀 모습을 그려 붙인 모습까지 다정하게 느껴진다.

영월 산꼬라데이길 전체 지도. 일러스트 / 김지애 디자이너
영월 산꼬라데이길 전체 지도. 일러스트 / 김지애 디자이너

INFO 영월 산꼬라데이길
안전한 트레킹을 위해 소요 시간을 반드시 염두에 두고 해가 저물기 전에 이동하는 것을 권한다. 트레킹 코스 인근에는 식당이 없기 때문에 도시락, 간식, 생수 등을 미리 챙겨가는 것이 좋다. 
이동코스 예밀길(6km)~송골길(2.3km)~굽이길(5.5km)~솔숲길(3.8km)~만경사길(1.2km)~명상길(1.1km)~광부의길(3.3km)~모운동길(4.3km)

여행자의 길로 거듭난 탄광촌 오솔길 따라
모운동 곳곳을 둘러봤다면 마을과 이어지는 광부의길에 들어선다. 과거 무연탄을 캐기 위해 2000여 명의 광부들이 분주히 오갔던 이 길은 이제 여행자의 길로 다시 태어났다. 

잘 정비된 이정표를 따라 조붓한 오솔길을 5분쯤 걸으면 하늘색 벤치가 놓인 터와 만난다. 벤치 곁에 세워진 안내판은 이곳이 탄광 갱도가 무너지지 않도록 받치는 기둥인 ‘동발’을 제작했던 곳임을 알려준다. 동발 제작소 터 인근에는 광차(광산에서 캐낸 광석을 실어 나르는 화물 열차)에 기대 서 있는 광부 조형물이 있어 과거를 그려보며 사진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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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 갱도가 무너지지 않도록 받치는 기둥인 '동발'을 제작하던 터. 사진 / 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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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이라 이름 지어진 광부와 광차 조형물. 사진 / 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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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업소 목욕탕으로 이용됐던 공간은 이채로운 감상을 준다. 사진 / 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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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들이 동전을 던지며 안전과 행복을 기원했던 광부의 샘. 사진 / 조아영 기자

조형물을 지나 두 명이 겨우 나란히 걸을 수 있을 법한 오솔길을 파고들면 멀찍이 광업소 목욕탕으로 이용됐던 건물이 보인다. 광산에서 새카맣게 탄가루를 뒤집어쓴 광부들이 하루의 더께를 씻어냈던 곳이다. 쓰임새를 다한 건물은 현재 찾는 이가 드물어 텅 비어있지만, 충분히 이채로운 감상을 준다. 목욕탕 건물 뒤편에는 옛 갱도 입구가 자리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걸었던 길을 되돌아 나와 곧게 뻗은 북쪽 길로 걸음을 이어간다. 산골짜기에 난 길이지만 경사가 완만하게 닦여 있어 쉽게 걸을 수 있고, 자박자박 따라붙는 자갈 소리까지 기분을 들뜨게 한다. 길 왼편에는 나무가 우거져 있어 가을 햇살을 가려주며, 반대편을 바라보면 들쭉날쭉 높이 솟은 산세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하는 첩첩산중 풍경은 여행자의 걸음을 오래 멈춰 세운다.

단, 광부의길 일부 구간은 폭이 좁고 난간이 설치되지 않은 곳도 있어 자칫 발을 헛디뎌 다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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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가릴듯 높게 자라난 나무가 그늘을 내어준다. 사진 / 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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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길은 1.1km의 짧은 구간으로 피톤치드 산림욕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풍경과 새소리를 벗 삼아 20분가량 더 걸어가면 ‘명상길’이라 이름 붙은 또 다른 길이 나타난다. 1.1km의 짧은 구간에 피톤치드 산림욕 쉼터가 마련되어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나무가 잘려 나간 밑동이 그대로 의자가 되고, 하늘을 가릴 듯 빼곡히 자라난 활엽수가 그늘을 내어준다. 나무 둥치에 앉아 숲이 내어주는 청량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다 보면 켜켜이 쌓였던 스트레스가 저만치 멀어지는 듯하다. 

산골짜기 고즈넉한 산사에서 누리는 망중한
명상길 삼림욕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서는 만경사길로 걸음을 넓힌다. 만경사길은 산 중턱에 자리한 만경사까지 이어지는 1.2km의 산길이다. 다른 길보다 경사가 가파른 편이지만 쉬엄쉬엄 경치를 구경하다 보면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사람과 동물만 드나드는 길은 다듬어지지 않아 더욱 운치 있게 느껴진다. 길 곁으로 우거진 숲에는 정성스레 쌓아 올린 돌탑이 드문드문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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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구간에 비해 경사가 가파른 편이지만 운치 있게 느껴지는 만경사길. 사진 / 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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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사 앞에 세워진 33관세음보살상. 사진 / 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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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 위로 가라앉은 운무가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잘 닦인 산길을 지나면 사찰 입구를 지키는 2개의 코끼리 석상이 보인다. 코끼리 석상 뒤편으로는 각기 다른 표정을 한 33관세음보살상이 서 있다. 관세음보살상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면 이내 광활한 풍경이 발아래로 펼쳐진다. 온 세상을 굽어보는 자리에 서서 산 위로 가라앉은 운무를 바라보면 마음을 짓누르던 근심이 한 톨의 먼지보다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고요한 산사를 거닐며 잊고 지냈던 여유를 찾고, 찰나의 망중한을 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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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꼬라데이길 시작점인 예밀마을에서는 와인을 시음해볼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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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도가 높아 맛이 좋기로 유명한 김삿갓포도. 사진 / 조아영 기자

한편, 산꼬라데이길의 시작점인 예밀길은 진한 포도향을 품은 길이다. 이곳에는 일교차가 큰 산골 마을답게 당도 높은 ‘김삿갓포도’가 자란다. 여름이면 주렁주렁 탐스럽게 매달린 포도가 객을 반겨주고, 가을이면 와인 축제를 개최해 여행객을 부른다. 예밀길에서 트레킹을 시작한다면 마을에 자리한 와이너리에 들러 예밀와인을 시음해보자. 2019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은 예밀와인의 풍미는 여행의 흥취를 돋워주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INFO 만경사
주소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망경대산길 140-20

TIP 예밀와인 축제
2017년 첫선을 보인 와인 축제. 마을의 특산물인 포도ㆍ와인을 활용한 먹거리와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와인 칵테일 쇼, 재즈 공연, 와인 족욕, 와인 시음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기간 11월 2일
주소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예밀촌길 237

영월 산꼬라데이길 주변 여행 정보

천연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된 고씨굴 입구. 사진 / 조아영 기자

고씨굴
임진왜란 당시 왜병과 싸운 고씨 일가가 피난한 곳이라 하여 이름 지어진 석회동굴. 천연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동굴 내부에는 종유석, 곡석, 석순 등 생성물이 잘 발달되어 있어 볼거리가 다양하다. 보존 상태 또한 탁월하여 학술적ㆍ자연적으로 보존가치가 높다. 
주소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영월동로 1117

김삿갓면에 자리한 난고김삿갓문학관 외부 전경. 사진 / 조아영 기자

난고김삿갓문학관
난고 김삿갓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문학관. 서책과 기증 자료가 전시되어 있으며, 김삿갓 시 창작 국악 듣기, 시 문구 직접 써 보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문학관 인근에는 김삿갓 묘역과 그가 방랑을 떠나기 전까지 살았던 주거 유적지가 자리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주소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김삿갓로 216-22

단종의 유배지로 널리 알려진 청령포. 사진 / 조아영 기자

청령포
영월군의 남한강 상류에 자리한 명승지. 어린 나이에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유배지로,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오직 나룻배로만 오갈 수 있다. 이곳에는 단종의 유배 당시 비참한 모습을 보고, 오열하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하여 ‘관음송’이라 이름 지어진 소나무가 서 있다. 
주소 강원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 68

라디오스타박물관에서는 라디오의 역사와 종류를 살펴볼 수 있고, 직접 녹음도 해볼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라디오스타박물관
영화 <라디오스타>의 배경이 된 (구) KBS 영월방송국을 리모델링한 박물관. 라디오의 역사와 종류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으며, 시대별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2층의 녹음 부스에서는 라디오 시보, 1분 뉴스, 라디오 단막극 등을 체험하고 녹음해볼 수 있다. 
주소 강원 영월군 영월읍 금강공원길 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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