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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맛과 멋 여행 ① 담양] 조선의 열린 공간이자 호남 사림들의 사랑방, 소쇄원
[맛과 멋 여행 ① 담양] 조선의 열린 공간이자 호남 사림들의 사랑방, 소쇄원
  • 조용식 기자
  • 승인 2019.10.17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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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 양산보가 꾸민 대표적인 민간정원
비 오는 날 보름달 달빛에 더욱 빛나는 소쇄원
마을 부녀회가 직접 만든 처사밥상 인기 
다가갈수록 하늘이 열리는 공간의 멋을 보여주는 소쇄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간정원이다. 광풍각을 계곡에서 바라본 풍경. / 조용식 기자

[여행스케치=담양] 거문고 가락 장단에 맞춰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애처롭게 들린다. 광풍각과 제월당 주변으로는 늦가을의 풍경이 서서히 물들어가지만 다가갈수록 푸른 하늘이 열리는 곳이 전남 담양의 소쇄원이다.

500년 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타난 소쇄처사 양산보 선생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참가자들과 함께 소쇄원을 걸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조선 시대로의 여행을 떠난다.  

500년 전 조선 시대로의 여행, 담양 소쇄원
“조선 시대 초기에는 한 번의 왜침을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14~16세기로 이어지는 200년 동안은 현재의 우리보다 15배 이상 평화로운 시대를 누려왔던 것이죠.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영역에서 상승곡선을 그리던 그 시절에 양산보 선생이 처사로 살아야 했던 사건이 발생합니다.”

명승 제40호로 지정된 전남 담양 소쇄원 입구 이정표. 사진 / 조용식 기자
'소쇄처사 양산보와 함께 걷는 소쇄원' 프로그램을 통해 조선 중기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양산보가 생존했던 1550년대의 복식을 입고 기념촬영을 하는 참가자들. 사진 제공 / 권예빈 여행작가

이항준 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전임연구원(소쇄처사 양산보 선생 배역)은 1519년 기묘사화로 전남 화순군 능주면으로 귀양살이를 하던 스승 조광조를 양산보 선생이 담양에서 오가며 보필했다고 한다.

그러나 1521년 스승인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돌아가자 양산보는 “나는 영원히 벼슬에 나가지 않고 은거하면서 살겠다”며 처사의 길을 택하고 이곳 소쇄원으로 들어와 정원을 만들게 된 것이다.  

소쇄원은 양산보 선생이 어릴 적, 오리들이 물길을 따라 올라가는 것을 보고 따라오다가 발견한 곳으로 ‘이 공간에 무엇인가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조광조의 죽음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소쇄원 입구에는 오리들을 물길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만날 수 있다.  

기묘사화를 겪기는 했지만, 여전히 평화로운 시대를 유지했던 1520년대는 호남지역의 유교와 사림 문화는 절정기를 꽃피우던 시절이다. 이런 문화의 절정기를 이루는 데 사랑방 역할을 했던 곳이 바로 소쇄원이다. 

가을 풍경으로 서서히 물들고 가는 제월당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걸려 있는 액자들에서 16세기 호남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화순으로 공부하러 갈 때 소쇄원에서 꼭 쉬었다 갔다며 <소쇄원 48영>의 시를 지은 화서 김인후, ‘소쇄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면앙정 송순, 시인인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등의 작품을 제월당에서 볼 수 있다.  

한문으로 적힌 액자의 내용은 ‘소쇄처사 양산보와 함께 걷는 소쇄원’ 프로그램을 통해 함께 동행하는 소쇄처사를 통해 조금이나마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선비의 꿈과 삶의 의지가 서린 곳, 소쇄원
소쇄원은 1530년(중종 25년)에 양산보가 꾸민 조선 시대 대표적 정원의 하나로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봉대와 애양단, 광풍각 그리고 제월당 등이 남아 있다. 

화서 김인후가 지은 <소쇄원 48영> 시의 1영에 소개된 대봉대. 사진 / 조용식 기자
소쇄처사 양산보와 함께 걷는 소쇄원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한복을 입고 소쇄원을 거닐고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이항준 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전임연구원은 "겨울이 되면 소쇄원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이 애양단"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며 정원으로 꾸며진 소쇄원. 사진 / 조용식 기자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최소한의 인공을 더해 만들어진 소쇄원은 긴 담장이 동쪽에 걸쳐 있고, 북쪽의 산 사면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계곡을 이루고 소쇄원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다. 

정원은 입구에서 만나는 초가지붕의 정자, 대봉대에서 시작된다. 원래 소쇄원에는 8개의 정자가 있었는데, 그 첫 번째가 대봉대이다. 양산보는 1519년의 기묘사화를 기억하며, 어질고 현명하며 사대부를 존중할 줄 아는 왕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봉대를 만들었다. 

‘대봉’이라는 말은 봉황새가 날아오르는 건물로, 임금을 뜻하는 봉황새는 오동나무에만 앉고, 대나무의 열매인 죽실만 먹으며, 예천이라고 하는 동쪽에서 솟아나는 단물을 먹고 산다. 

그런 봉황의 서식 조건을 다 갖추기 위해 대봉대 주변으로는 오동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예천까지 조성되어 있다. 또한 대봉대는 화선 김인후의 시 <소새원 48영> 중 1영에 등장하는 정자이기도 하다. 

대봉대를 지나면 담장으로 애양단(愛陽壇)이란 한문이 눈에 들어온다. 이항준 전임연구원은 “겨울이 되면 소쇄원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이 애양단이며, 그 내면에는 은둔 생활을 했던 소쇄처사의 효심을 읽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학자가 은거하면 부모에 대한 효도를 제일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이 소쇄원도 개인의 은거 공간인 것 같지만, 연로한 부모님이 날이 갈수록 나이가 들어 날이 가는 것이 아깝다(애양)는 의미로 애양단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소쇄처사 양산보와 함께 걷는 소쇄원' 인기
애양단을 지나 외다리를 건너면 계곡물이 흐르는 바위 위에서는 거문고 연주가 들려온다. ‘소쇄처사 양산보와 함께 걷는 소쇄원 프로그램의 하나로 초대된 정준수 전주시립국악단 상임단원의 멋들어진 거문고 가락을 감상할 수 있다.

계곡물이 흐르는 바위 위에서 거문고 연주를 듣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 제공 / 이상인 티티엘 뉴스 선임기자
정준수 전주시립국악단 상임단원이 거문고 연주를 하고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16세기 호남지역 유림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소쇄원의 제월당에서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프로그램 참가자들에게는 마을 부녀회에서 직접 만든 거사 밥상(사진)과 처사 밥상을 맛볼 수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거문고 가락을 따라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이 노래하면, 계곡 바위를 중심으로 광풍각, 대봉대 주변에는 여행자들이 발길을 멈추고 1520년대의 조선의 모습에 빠져든다. 비가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을 뜻하는 광풍각은 객을 위한 사랑방이라고 할 수 있다.

소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제월당이다. 제월당이란 비 온 날 보름에 가까운 저녁에 달빛이 비치는 소쇄원의 공간을 말한다. 다시 말해 비 갠 날 저녁 보름 달빛에 제월당에 앉아 소쇄원의 아름다운 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녹음이 울창한 여름이나 가을이면 사진작가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소쇄원의 자연 공간은 소나무, 대나무, 버들, 단풍, 등나무, 창포, 순채 등 7종의 국내 종을 비롯해 매화, 은행, 복숭아, 오동, 벽오동, 장미, 동백, 치자, 대나무, 사계, 국화, 파초, 연꽃, 철쭉 등을 비롯해 모두 22종이 심어졌다고 한다.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남도 맛 기행(광주, 목포, 나주, 담양)의 총감독을 맡은 전고필 PM(Project Manager)은 “평민들이 표면을 닦는 ‘세수’라고 한다면 소쇄는 몸과 마음마저 닦는 것을 말한다”라며 “‘소쇄처사 양산보와 함께 걷는 소쇄원’ 프로그램을 통해 조금이나마 당시의 모습과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8월에 소쇄원을 방문했던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kbc 광주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사실 소쇄원은 제가 가끔 들르는 곳인데 그냥 왔다 스쳐 가는 것보다도 그 정신들을 같이 배우고 나누니까 훨씬 더 생동감 있는 것 같고 입체적인 여행이다”며 프로그램에 참여한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과 함께 무등산 반디마을 ‘평촌’ 어머님들의 따뜻한 인정과 손맛을 맛볼 수 있는 밥상도 만날 수 있다. 두부 보쌈과 생선 그리고 매운탕으로 준비한 거사 밥상과 청빈하고 담백한 선비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처사 밥상이 그것이다. 처사 밥상은 체험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으며, 거사 밥상의 경우 별도 예약을 해야 한다.  

Info 
소쇄처사 양산보와 함께 걷는 소쇄원

기간 매주 토요일 진행(11월 30일까지) 
참여 시간 오전 10시  
참여 가능 인원 10명(10인 이상 단체는 평일 체험 가능)
가격 청소년 1만2000원, 성인 1만5000원(소쇄원 입장료, 의복비, 분장비, 처사 밥상 포함 금액)
문의 소쇄원 홈페이지(www.soswaewon.co.kr)
 

취재협조 : 한국관광공사 전남지사 /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남도맛기행(8권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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