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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만화 속 배경 여행] ‘방짜’에서 자신을 찾으라던 칼잡이의 길,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좇는 여행
[만화 속 배경 여행] ‘방짜’에서 자신을 찾으라던 칼잡이의 길,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좇는 여행
  • 서찬휘 여행작가
  • 승인 2019.10.2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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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용 작가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따라 안성 여행
유기에 대해 알 수 있는 안성맞춤박물관ㆍ안성마춤 유기공방
'이몽학의 난' 평정한 홍계남 장군의 흔적까지
안성 안성맞춤박물관 외부 전경.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안성 안성맞춤박물관 외부 전경.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안성] ‘안성맞춤’은 경기 안성에서 유기(鍮器, 놋그릇)를 주문하면 딱 알맞게 왔다 하여 붙은 표현이다.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주인공 ‘견자’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유기 장인이 있는 곳도 바로 이곳, 안성이다. 만화 속 깨달음의 흔적을 좇아 안성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내 파란 세이버>를 그린 박흥용이 1996년 발표한 작품이다. 같은 해 대한민국 만화문화 대상 저작상을 수상한 데 이어 영화 <왕의 남자>를 만든 이준익 감독의 손으로 2010년 영화로 재탄생했다. 

한계 속에서 추구하는 자유,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벼슬’이라는 닿을 수 없을 목표를 두고 괴로워하던 서자 출신 주인공 한견주(견자)는 노상 글월 읊는 서생을 괴롭히며 허송세월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맹인 황정학과 만나게 되고, 앞을 볼 수는 없지만 누구보다도 세상을 훤히 꿰뚫는 눈을 지니고 있는 침구술사이자 검객인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집을 나서게 된다. 작품은 한량이었던 견자가 스승 황정학과의 여정을 통해 점차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신분과 욕망과 열등감을 내려놓고 자유를 찾는 모습을 그린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왕실에서 쓰였던 유기는 고풍스러운 멋을 자랑한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무속에서 사용하는 무징과 삭도등.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시대 선조 때이다.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이 닥치고, 그 틈을 타 견자와 같이 서자라는 신분의 한계를 칼로 뒤집으려는 이몽학이 난을 일으킨다. 한계에 맞닥뜨린 채 칼을 쥐고 있다는 입장에서 이몽학과 견자는 서로 비슷해 보이는 인물이나 자유를 찾고자 하는 방법과 방향은 정반대로 갈린다. 

주인공 견자에게 스승 황정학과 함께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는 인물은 안성에서 방짜유기를 만드는 장인이다. 황정학이 장님이라 항아리에 숨어 자라야 했듯, 방짜 장인은 소문난 실력자지만 노비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왕실 제기를 만드는 작업에서 박탈되어 작업장에 홀로 남게 된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안성은 극 전체를 아우르는 무대는 아니지만, 주인공이 깨달음을 얻고 목표를 세우게 되는 곳으로써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전권 표지.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Tip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박흥용 글ㆍ그림, 바다그림판 펴냄.
<내 파란 세이버>로 널리 알려진 박흥용 화백의 만화. 조선 선조 때를 배경으로 청년 한견주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며, 총 3권으로 완결되었다.

견자의 구도길을 따라, 안성으로 향하다
안성에서 유기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공간은 두 곳이 있다. 한 곳은 안성시 대덕면에 자리한 안성맞춤박물관이며, 다른 한 곳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보유자 김수영 선생이 아버지 향원 김근수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설립한 안성마춤 유기공방이다. 

먼저 안성맞춤박물관은 2002년 안성시가 세운 시립 박물관이다. 1층 유기전시실에는 왕실에서 쓰였던 놋그릇과 오로지 임금만 쓸 수 있었던 유기가 전시되어 있어 시선을 끈다. 일반 백성이 썼던 투박한 유기와는 달리 고풍스러운 멋이 느껴져 발걸음을 오래 멈춰 세운다. 전시실에서는 유기를 비롯해 안성에서 성행했던 주물유기 제작법 등 만드는 방법과 과정을 살펴볼 수 있으며, 체험 코너에서는 유기를 직접 만져볼 수 있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다양한 유기 종류를 살펴볼 수 있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유기 장인들의 작업 과정을 재현한 실물 모형.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안성장시를 재현한 디오라마.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안성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죽주산성 전투’에 관한 내용도 디오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소가 끄는 수레에 짚을 가득 채우고 불을 붙인 채 돌격하는 ‘복개전차대’공격이 재현되어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 최초로 쓰인 방식이었다고 한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금강산으로 몰려온 왜군을 견자가 지휘한 산적 무리가 몰살시킬 때 쓴 방식과 흡사해 흥미롭게 다가온다. 작품을 읽은 이라면 유기와 더불어 눈여겨볼 만 하다.

안성맞춤박물관에서 차량으로 약 10분 거리에 자리한 안성마춤 유기공방은 공방을 겸한 박물관이다. 공방 뒤편에 별도 건물이 마련되어 있으며, 고 김근수 선생이 아들인 김수영 선생과 함께 오랜 시간에 걸쳐 모아온 자료와 물품을 살펴볼 수 있다. 

INFO 안성맞춤박물관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6시(매주 월요일 휴관)
주소 경기 안성시 대덕면 서동대로 4726-15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안성마춤 유기공방 외부 전경.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유기 제작에 쓰이는 도구.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이몽학 토벌에 공을 세운 자의 흔적을 찾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견자의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인 이몽학은 실존 인물이다. 왕족의 서얼 출신으로 아비에게도 쫓겨나 충남 홍성 인근을 거점 삼아 움직였다고 기록돼 있는데, 만화에서는 견자에 비해 호감형으로 그려진다. 실제 이몽학은 부하에게 목이 잘려 무덤조차 없지만, 그와 접점이 있는 곳이 안성을 떠나는 길목에 자리한다. 바로 홍계남 장군 고루비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홍계남 장군의 고루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었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1597년 34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홍계남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인물로 해당 비석은 당시 싸움터였던 자리에 서 있다. 홍계남 장군은 이몽학의 난(1596) 당시 반란을 평정하는 데에도 공을 세웠지만, 반란 주모자 중 하나가 ‘홍계남, 김덕령, 곽재우는 우리 편’이라는 소문으로 인해 고초를 겪은 일이 있다.

홍계남은 가까스로 풀려났으나 이듬해 병으로 죽고 마는데, 훗날 영조가 1745년 장군의 전공을 기려 홍계남 장군 고루비를 세운다. 고루비는 현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기공방을 둘러본 뒤 함께 살펴보기 좋다.

INFO 홍계남 장군 고루비
주소
경기 안성시 미양면 구수리 산87-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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